키메라, 기사가 되어 복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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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오피온
작품등록일 :
2021.01.0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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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16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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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1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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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토벌(6)

DUMMY

사람은 노동과 비례하게 휴식을 취해야 한다. 무리하게 노동을 이어간다면 필시 나쁜 결과를 몰고 올 뿐이다. 마일즈는 지금 기사의 경력이 꽤 되기에 모르지 않는다. 잘 알고 있을 터.


충분히 이해하기에 수풀에서 또 몬스터가 나타나 싶은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랐으나. 수풀에서 그림자가 먼저 보이더니 이윽고 정체가 밝혀지자 감정이 사그라들었다. 오래전 전쟁터에서 헤어진 동료라도 만난만큼 반가웠다.


수풀에서 기사단이 휴식하고 있는 도로로 튀어나온 인물은 동료 따위가 아니지만.


마일즈는 반갑다며 그를 향해 다가갔다.


그러나,


“또 너인가. 끈질기군.”


상대는 환영하지 않는 눈치였다.


“야, 어디서 처맞고 다니냐.”


분명 말은 안부를 걱정하지만 느낌은 전혀 아니다. 껄렁껄렁한 게 걱정이 아닌 불만이었다.


“내가 할 역할을 뺏은 새끼는 누구냐. 내가 친히 패주는 날을 고대했더니. 설마 피터냐? 아니지?”


순간 동기의 이름을 입에 담는 마일즈.


“시발 피터에게 이미 당하다가 도망쳐 온 게 여기였냐. 그러냐?”


짜증 난다며 마일즈는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린다.


“혼자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오른팔을 움켜쥔 채 말하는 그.


“닥쳐, 임마. 네 입에서 나올 말은 살려주세요, 살려만 주시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이게 최선이야.”


으득, 하고 이를 악무는 마일즈.


“그래도 얌전히 내버려 둘 생각은 없다만.”


마일즈가 외침과 동시에 움직였다. 손에 쥔 창을 들고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뭐야. 선배 왜 저래?”

“야야, 조용해. 괜히 휘말리지 말고.”

"신경 끄자. 선배 일에 참견해서 뭐가 좋냐."


혼자 뛰쳐나간 마일즈를 보는 후배 기사들 시각은 그랬다. 원래 다혈질적인 성격이 있어서 뭔가 개인적 다툼이 있는 사이인가 보다. 가령 술집에서 예전에 한바탕 했다던가.


“방해하지 마라.”


마일즈가 다가오자 그는 몸을 놀려 도망치려 했다.


“여기서 잡힐 내가 아니다!”


숲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인물은 옆으로 몸을 날렸다. 마일즈에게서 벗어나려고 했다.


“미친!”


마일즈의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알 수 있듯. 잡힐 뻔했으나 잡히지 않았다. 돌연 나타난 그가 찢긴 망토를 마일즈에게 벗어 던져 피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가까스로 마일즈에거서 벗어나 바닥을 굴렀다.


“크윽.”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그는 얼굴을 드러냈다.


무릎을 살짝 꿇은 그는 뼈밖에 없어 보인다. 그만큼 살이 없는 사내였다.


언뜻 지나가듯 보인 사내의 모습은 별거 없다. 상당히 마른 사내 정도가 인상 전부였다.


그러나 요셉의 눈길을 끄는 게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특이하게 생긴 문신. 얼굴 한쪽을 다 차지한 큰 문신.


사내의 등장에 요셉은 아무런 생각도 없었다. 다들 기사들과 똑같이 뭔데 저렇게 성질을 내며 대응하는 걸까. 이 정도의 단순 의문이었다. 한 가지 더 더하면 얽히지 말자 정도다. 괜히 개인사에 끼어들면 사람만 피곤해지는 법이니.


“!!!!”


그러나 그가 얼굴을 드러내고 문신을 본 순간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투구 속 평온한 얼굴을 급격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어째서지. 왜 저게 저기에!”


요셉은 피가 끓어올랐다. 가슴 속에서 분노가 차올랐다. 한순간 혈압이 치솟는 기분으로 변한 건 다름이 아니다.


“왜 똑같은 문신이냐.”


갑자기 모습을 보인 사내의 얼굴에 있는 문신은 똑같았다. 다름 아닌 전생에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귀족에게 같은 게 있었다. 루치아노란 이름에 귀족에게 말이다.


어찌 있을 수 있겠나. 그 날 문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특이하다 여겼으니.


너무나도 선명하게 박힌 루치아노의 문신을 처음 발견한 날이 떠오른다.



**********


툭, 툭.


거친 바람이 불었다가는 날아가기에 십상이라 못 질은 필수다. 북방 지역은 워낙 바람이 매섭게 불어오니 오두막 견디기 어렵다.


“끝냈습니다.”


인기척을 내며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살짝 젖히며 시선으로 그녀를 찾았으나.


기사로 보이는 남자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셋쯤이 서 있고 그들과 달리 앉아 있는 남자 한 명이 보였다.


수도 귀족답네.


단번에 알아차린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고귀한 신분의 증거라고 할 수 있는 모피 외투를 걸쳤기 때문이다. 이미 눈에 익은 인물이기도 하지만 너무 대놓고 고급의 옷을 입을 수 있음을 과시하고 있다.


수도에서 왔다는 귀족 나리셨나. 그보다 이런 변방 지역에 오면서도 최대한 차려입다니.


아니꼽게 그를 바라보다가 한 곳에서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 왼쪽 목부터 턱 부근까지 이어진 문신. 십자가 가운데 끝부분에 용이 똬리를 튼 문신.


기이하다고 여겼다. 저런 게 있었나 싶으면서도 독특하다고 기억하게 되었다.


“영지를 다스리는 자네의 솜씨는 내 익히 들어 알고 있지. 북방 변방 지역임에도 오크에게서 무사할 수 있음은 다 자네의 덕임을.”

“황공합니다.”


오렌지빛이 드물 감도는 노란 머리카락과 긴 속눈썹이 특징인 그녀는 머리를 숙인다.


인사치레나 주고받는 권력자들끼리의 대화에 원체 관심이 없었다. 흥미를 끄고서 보고를 마치는 게 평소 그였으나.


보고하지도 않았기도 하지만 이전에 그녀를 조금 더 보려는 심산이었다. 귀족 간의 예의를 갖추는 상황 속에도 미소를 지은 얼굴은 잠시라도 더 머리에 넣고 싶었다.


웃을 때 늘어지는 눈꼬리며 금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는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자 없으리.

주먹을 꽉 움켜쥐며 생각했다.


“여로의 조촐한 위안이 의미로 작게나마.”


무릎을 꿇은 그녀는 튼튼해 보이는 상자를 내밀었다.


“크흠, 뭘 이런 거까지.”


의자에 앉은 수도에서 온 귀족이 손을 살짝 흔든다.


그걸 보고 있자니 살짝 웃음이 나올 뻔했다. 즐거운 광경이라 나오는 웃음이 아닌 비웃음이 말이다.


내가 안나 님에게 말씀드리지 않았으면 흉이나 봤을 놈이.


실제로 의자에 앉아 있는 루치아노 백작이 뒷담 하는 현장을 우연히 듣고. 앞에서 무릎 꿇은 안나 님에게 말씀드리지 않았다면. 지금 같은 상황은 없었으며 또 험담이나 하겠지. 변방의 시골 귀족이 어쩌고저쩌고.


오두막 안에 있는 기사들이며 수도에서 온 루치아노 백작까지 시선이 상자에 쏠려 있다.


“오두막 외벽 수리 마쳤습니다.”


한숨을 지으며 도망치는 사람 마냥 서둘러 발걸음을 돌렸다.


그가 발걸음을 돌려 나가는 순간 상자로 거침없이 손을 뻗는 루치아노 백작. 안에 든 내용물은 오두막 안의 사내들의 탄성을 지르게 만든다.


돈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위선자는 아니다. 돈은 분명 필요하다. 밭을 가꿀 재료를 살 때도 빵을 비롯한 식량에도 필요하니. 없으면 절대로 안 되는 게 맞다. 싫을 리 없다. 그러나 저런 위선자 귀족이 탐내는 모습을 보고만 있기도 싫으며.


무엇보다 안나가 저 귀족에게 무릎을 꿇는 게 가장 눈 뜨고 볼 수 없다. 하다못해 자신이 대신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은 분한 심정에 머물 수 없다.


“그대가 관리하는 이 영지가 번창하길 내 진심으로 기도하지.”


안에서는 루치아노 귀족의 흡족한 음성이 들린다.


“황공하옵니다.”


안나의 목소리가 들리자 더욱이 자신의 신분이 원망 되었다. 적어도 신분이라도 같으면 대신 무릎을 꿇을 수 있거늘.


마음과 달리 할 수 있리가 없다.


북방 지역 작은 영지에서 태어난 그에게는 불가능하다. 양을 치고 보리농사를 지으는 그가 감히 여겨서는 아니 될 심정이다. 아무리 작은 영지를 다스린다 한들 귀족은 귀족이니까.


“엿 같네.”


하필 귀족에게 마음이 생길 줄이야.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라던지 상황 등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아 주먹을 불끈 쥔다. 시작 조차 말아야 했거늘.


갓 따온 꽃향기 같은 게 갑자기 코를 찌른다.


“!?”


냄새의 정체를 알다 보니 놀라면서도 서둘러 뒤를 돈다.


“안나 님.”


한쪽 무릎을 꿇어 예의를 갖추려고 하자.


“괜찮아요.”


그를 일으키는 안나.


“예.”


짤막하게 말이 나온 원인은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나오셨나. 저런 수도에서 온 귀족 따위에게 무릎 꿇지 마 등. 하고 싶은 말은 꽤 있으나. 입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그저 목구멍에서 머물 뿐.


“우리 나름대로 순종을 표시하기 위함입니다. 하지 않는다면 수도로 돌아가 무슨 말을 전할지 모르니까요.”


작게 속삭이는 이유는 혹여나 오두막에 남은 그가 들을까 염려가 되어서겠지.


“나도 알아요. 우리 영지 내의 저런 돈이 없다는 현실을.”


보리를 수확하거나 양을 쳐서 양털을 깎거나. 아니면 양젖을 짜서 치즈를 내다 파는 등. 정말 소소한 수입원밖에 없는 작은 영지다. 영주인 이상 그 누구보다 잘 알 터.


“그런데 저렇게 수도에서 온 귀족에게 바치고. 화가 나셨겠죠.”


사정을 잘 아는 그녀이기에 오두막을 나서는 게 재정을 생각지 않았다고 화났다고 여겼다. 실체는 그게 아니지만.


“아닙니다.”


부정했다. 그녀가 오해하고 있기에. 그저 자신의 상황에 화가 났을 뿐이거늘.


“그렇다면?”

“.....”


가까이 다가오는 그녀의 시선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획 돌렸다.


어찌해야 하나 싶다가 나온 발언은.


“무식해서 그런지 두 분의 말씀을 이해 못 하는 게 답답해서 그랬습니다.”


거짓말이었다. 관심은 없을뿐더러 귀족들 대화를 깊게 알 필요도 없다. 생업은 농사인데 알아서 어디에다가 쓰겠느냐.


“그렇습니까.”


피식 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돌아봤으나.


“관심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웃는 느낌은 없다. 원래부터 눈웃음이 살짝 있고 입꼬리도 선한. 평소 안나의 얼굴이었다.


“의무 복부는 아직 남았죠?”

“예.”


북방 지역 인근에는 강력하고 흉포한 오크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북방 지역 주민은 의무복무가 시행되어있다. 성인이 되면 성별에 상관없이 일정 기간 기사로서 훈련한다. 북방 지역 경계선에 펼쳐진 거대한 성벽에 배속되기도 한다.


“다행입니다. 남은 기간, 제 곁에서 업무 보조를 하시면 될 듯합니다.”

“네?”


이야기가 어찌 그리 흘러가는지 알지 못했다.


의무복무를 하는 주민은 훈련과 성벽에서 근무가 주 임무다. 가끔 오늘처럼 영지 내의 시설 수리도 맡고 있다.


후자와 달리 전자가 주로 이룬다. 비상시 국가 기사단이 파견될 때까지 마을 주민들끼리 버틸 수 있게 하려고.


이처럼 시행해왔기에 마을과 도시에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견고한 방어체계가 가능했다.


의무복무는 결코 영주를 보좌하는 일을 하지 않았는데.


“서류 작업에 관심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저도 마침 혼자 하기 벅차다고 여겼는데 잘 되었습니다.”


실수로 한 말을 통해 그 날 이후 계속해서 훈련과 그녀의 보조를 동행했다.


당시는 후회하며 접으려고 했으나.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전달이라도 해봤어야 했다.


보조와 경계 근무를 서는 나날이 계속되어갈 줄 알았던 어리석은 판단은 내리지 말아야 했다.


불꽃의 화살이 붉은 띠를 그리며 허공을 달리는 그 순간까지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달이라도 해봤어야 했다.


금실처럼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 핏빛으로 물드는 광경을 눈에 새기는 순간까지도. 부드러운 미소가 냉기를 머금어 갈 때까지 그랬다.


“안나.”


이름조차 불러 볼 수 없던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작가의말

읽어주신 독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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