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용사는 바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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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양이
작품등록일 :
2021.01.0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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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2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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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09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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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없이도 살 사람

DUMMY

대화하는 도중 물벼락이 쏟아졌다.


촤아악-!


세로드가 팔을 확 끌어준 덕분에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나도 민첩한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했지만, 나와 세로드의 격차는 아득했다.

지금까지 봐온 세로드의 재빠른 행동들.

그녀는 분명 민첩한 것은 맞다.


'하지만, 민첩하다고만 표현하기에는.'

그녀의 능력은 좀 더 복합적이었다.

남들이 느끼기 힘든 감각이 훨씬 발달한 것만 같았다.


위험을 재빨리 감지하는 능력.

'꼭대기 층에서 대왕 아빌시스를 무찌를 때도 그랬지.'

남들이 쉽게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

'어두운 탑 안에서도 바닥을 한눈에 훑던 놀라운 모습은 진짜였나?'


가엾은 디날브는 물에 빠진 생쥐가 되었다.

"으악! 이게 무슨 일이야."


촤악-!


"누구야!"

연속해서 물벼락을 정통으로 맞은 디날브가 주위를 둘러봤다.


언제 열렸는지 여관 문이 열려 있었다.

토리 아주머니가 능청스럽게 커다란 양동이를 뿌려댔다.


"아. 토리 아가씨였군요. 하하."

"여관 앞이 왜 이리 지저분한지. 얼른 청소를 해야지."

토리 아주머니는 디날브에게 눈길도 안 주면서 다음 양동이를 준비하고 있었다.


"자. 이럴 게 아니라 얼른 사무소로 가세. 청소하는 데 우리가 방해되고 있어. 세로드 씨. 얼른 이리로."

재촉하는 디날브와 함께 사무소로 향했다.


***

보안관 사무소 앞.


"포탈을 구매한 것 같더구만."

"아. 네. 포탈이 다 떨어져 가서요. 어떻게 안 거죠···?"

"하하. 우연히 지나가다가 잡화점에 있는 것을 봤지."

'언제부터 본 거야.'

젖은 머리를 털면서 디날브가 말을 이었다.

"포탈 사용법을 잘 익혔더구만. 절약법도 익히고 말이야. 샤인. 방금 구매한 포탈 좀 보여주게."


세로드가 아까 구매했던 포탈을 건네줬다.

"이거 말씀인가요?"

"음. 10회 사용권 아이템이군요. 세팅은 간단합니다. 우선 펼치고, 여기를 꾸욱 세 번 누르면 되죠. 이렇게."

그러면서 디날브는 포탈 세팅을 시작했다.

"이 포탈. 귀환 포인트는 여기로 세팅해놨습니다. 마을에서 가장 안전한 곳. 보안관 사무소 앞으로요."

따뜻하게 웃으며 디날브가 세로드에게 포탈을 다시 건넸다.


마을 안은 상당히 안전했다.

꼭 보안관 사무소 주변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가벼운 다툼은 있을지 몰라도, 마을의 치안은 잘 유지되었다.

적어도 몬스터가 습격을 올 일은 없었다.

그래서 마을은 보안관 한 명으로도 잘 유지되었겠지.


"아이고. 이제는 보안관 사무소 앞이라니."

귀환하자마자 디날브와 마주칠 생각을 하자 마음이 답답해졌다.

마을에 오래 지낼수록 디날브가 악인이 아닌 것은 알게 되었다.

다쳐서 돌아오면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도 알게 되었고.

하지만 보안관과는 거리를 유지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유치장에서의 기억을 빼더라도, 좋았던 기억이 별로 없는 느낌.


"응? 그게 무슨 말인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디날브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아. 아뇨. 보안관님이 바쁠 텐데, 방해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군요."

"하하. 샤인. 걱정하지 말아. 세로드 씨에게 시간 낼 정도는 있으니까 말이야. 아! 여기까지 왔으니 사무소 안에 들어가지. 따뜻한 차라도 대접하겠네."


어두운 보안관 사무소로 들어갔다.

저벅- 저벅-


넓은 나무 책상이 가운데 있고, 널브러진 의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주변에는 철장이 있는 유치장이 몇 개 있었다.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7일간의 유치장 신세.

살면서 처음 경험했던 유치장.

'바로 풀어준다고 해놓고, 일주일 동안 가뒀었지.'


디날브는 불을 밝히고 의자를 여러 개 들고 왔다.

"자. 각자 편한 의자에 앉게. 세로드 씨. 춥죠? 잠깐 기다리세요."

시원한 실내 공기가 딱 좋았지만, 물에 빠진 디날브는 무척 서늘한 모양인지 몸을 떨었다.


따다다닥- 따다닥-

손잡이를 돌리자 낡은 난로가 열을 냈다.


난로를 세로드 옆에 가져다 놓고는 디날브가 뜨거운 차를 내왔다.

"데지 않게 천천히 마셔요. 세로드 씨."

세로드와 이트멀드는 차를 마셔본 적이 없는 눈치였다.

"와. 향이 좋아요. 꽃잎을 넣었나 봐요."

"이건 분명 귀한 음식이군요."

둘은 호록호록 소리를 내가며 맛있게 마셨다.

"음. 적당한 환경이 갖춰졌구먼."

만족스럽게 마시는 모습을 보고는 디날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굴로리어 마을은 무척이나 평화로운 곳입니다. 세로드 씨도 느끼셨겠죠."

"네. 마을이 무척 아름다워요. 사람들도 친절하고요."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는 보안관의 업무를 말해줬다.

"항간에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죠.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릅니다. 법이 없으면 질서가 무너지고, 질서가 없어지면 사람들은 혼란에 빠지죠."

"음. 그래요?"

호록호록 차를 마셔가면서 세로드가 적당히 대답했다.

"그래서 보안관이 중요한 겁니다. 경범죄를 다루고, 유치장을 관리하는 게 다가 아닙니다. 마을 사람들을 위험에서 구하고, 상점의 안전을 보장하고, 마을의 치안을 유지하는 것까지 보안관의 임무죠."

"저 사람들은 왜 잡혀 온 거예요?"

유치장에 들어 있는 사람들을 보며 세로드가 질문했다.

"하하. 말은 거창하게 했지만, 사람들이 워낙 선합니다. 말썽을 부린 사람들은 반나절 정도 휴식을 취하게끔 하고 내보내죠."

사실이었다.

'나만 빼고 다 반나절 만에 나갔으니까.'

따뜻한 식사에 폭신한 이불까지 대접받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갔었다.

"기껏 해봐야 식당에서 돈을 안 낸 사람들, 물건 보관소에서 무기를 훔쳤다가 붙잡힌 사람들이죠."

디날브의 말에서 조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물건 보관소라고요?"

"그래. 샤인. 그곳은 전통적으로 마을 사람들의 놀이터였지. 말썽쟁이들에게 자주 털리는 곳 아닌가."

침이 꿀꺽 넘어갔다.

물건 보관소에 있던 문구.

- 물건 도난 시 100% 손님 책임!

"물건이 없어지면··· 어떻게 다시 돌려받죠?"

그 말에 디날브가 가볍게 웃음 지었다.

"하하. 마을에서 아이템 잃었다는 사람 본 적 있는가? 훔쳤다가 도로 가져다 놓는다네. 본성이 선량한 사람들 아닌가."


찬찬히 주변을 둘러봤다.

유치장에 갇힌 해맑은 사람들.

이들에게는 악한 모습이 없었다.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러 들어온 사람들의 모습만이 보였다.


지는 해를 힐끗 보고는 디날브가 입을 열었다.

"음. 한 사람 나갈 시간이구만. 잠시 실례."

유치장으로 향하더니 문을 열었다.

끼익-

'안 잠겨 있잖아?'

"촐립 씨. 잘 쉬었습니까? 식사는 입에 맞았고요?"

"보안관님 덕분에 식사도 잘하고, 편하게 지내다가 갑니다."

촐립이라는 말썽쟁이 아저씨는 보안관과 가볍게 악수를 했다.

아이템을 낑낑 들더니 익숙하게 정문으로 향했다.

"촐립 씨. 그 아이템은 도로 갖다 놓아주시길."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보안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안관이 어쩌면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왜 나한테만 짓궂게 대하는 느낌이지.'


"우리도 슬슬 갈까요?"

벌써 여러 번 리필해서 마시고 있는 두 동료에게 말했다.

"좀 더 있다 가요."

따뜻한 난로와 향이 좋은 차에서 빠져나오기 싫은지 세로드가 고집을 피웠지만, 억지로 끌고 건물에서 나왔다.

"종종 들리게. 보안관 사무소는 언제든 열려 있으니 말이야."


***

여관 앞으로 가는데, 휴히파레가 걸어오는 게 보였다.


"샤인 형!"

"휴히파레. 약속 시간 안 늦게 잘 찾아왔구나."


째깍째깍 시간에 맞춰 오는 휴히파레가 내심 대견했다.

시간은 사람 간의 믿음이니까.

어릴 때부터 시간을 잘 지킨다는 것은 굉장히 귀한 자산이다.

사실 약속 시간을 정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신기하게도 우리 시간과 늘 비슷하게 왔다.


"자! 얼른 여관으로 들어가자."

휴히파레의 팔을 엉키게 만들면서 잠시 놀다가 들어갔다.


"제일 비싼 1인실 2개로 주세요."

토리 아주머니는 늘 주던 3층 열쇠를 두 개 주며 말했다.

"1인실 다 똑같다니까 왜 자꾸 헛소-"

세로드가 듣기 전에 얼른 말을 끊었다.

"하하. 늘 제일 좋은 방이군요. 사장님. 감사합니다."


익숙한 3층으로 올라갔다.


"세로드 씨.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쉬고 계세요. 짐버르 아저씨 올 때쯤에 식사하러 내려가죠."

"네. 세 사람, 좀 이따 봐요."

"나중에 노크할게요."

"조금 있다 뵙겠습니다."


휴대폰이 없으니까 만나는 게 불편했다.

언제 아저씨가 올지 모르니까.

현대 사회의 고급 교육을 받은 나는 머리를 썼다.


"제비뽑기로 20분마다 내려갔다 올 사람 정해요."

휴히파레가 갸우뚱하며 반문했다.

"그냥 1층에 얘기하면 되잖아. 아저씨 오면 말해달라고."

논리 싸움에서 밀릴 수는 없었다.

"··· 이놈! 그렇게 하면 실례잖아. 우리 때문에 얼마나 귀찮겠어."


억지로 밀어붙인 결과, 20분마다 동향 파악하기로 결정됐다.

4번을 내려갔다가 와도 아저씨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설마.'

아저씨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 자네들은 이만 돌아가게. 이제는 나 혼자만의 싸움이야.

- 나중에 저녁에 보세! 내가 갈 수만 있다면··· 말이야.


"결국 못 이겨내신 건가."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소란을 만들면 안 되는 일이었다.

이 세계에 혼란을 가져오는 것은 여러모로 위험하다.

"아니에요. 그것보다, 아저씨는 오늘 못 올 듯합니다. 우리끼리 먹어요."

아저씨에 대한 얘기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면서 방을 나섰다.


똑똑-


문이 벌컥 열리고 세로드가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헉!"

계속 보고 있을 때는 모르겠는데, 안 보다가 보니까 또 충격이었다.

아름답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올 뻔했다.

"왜요?"

콧노래를 하며 세로드는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편하게 입은 옷도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눈썹도 은은하게 빛났다.

"세로드 씨. 화장했어요?"

하루종일 조금씩 바뀐 것 같은 얼굴.

눈썹, 눈매, 코, 입술, 얼굴 색깔.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세로드는 눈을 흘겼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니에요. 뭔가 조금씩 바뀌었어요. 원래는 달랐어요."

"원래 이렇게 생겼는데요?"

"분명히···"

"자꾸 쓸데없는 말 좀 하지 말아요. 빨리 내려가요. 배고파 죽겠···을 거잖아요? 세 사람 말이에요."

눈을 째리면서 세로드가 내려가라고 떠밀었다.


***

1층의 여관 식당.


"어? 짐버르 아저씨는 아직 안 왔네요?"

주위를 둘러보고는 세로드가 의아하게 물었다.

"아무래도 아저씨는···"

쉽게 희망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여관 직원에게 물어봤다.

"혹시 저희 찾는 아저씨 없었나요? 수염이 덥수룩하고, 머리가 굉장히 지저분한 분이요."

직원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역시 그렇게 된 건가.'

"아저씨는··· 오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식사는 우리끼리 해야 해요."

침울한 마음을 애써 숨기며 말했다.

"아까 온다고 하셨잖아요?"

"사정이 있을 겁니다. 어떤 사정이."


주문으로 화제를 돌렸다.

[콩 수프, 빵, 닭고기]

단출한 메뉴판의 3가지 음식.


"여기 성인 3명에, 아이 1명이니까. 닭고기, 콩 수프, 빵. 푸짐하게 내와 주세요."

배부르게 먹고 아저씨에 대한 것은 다 잊고 싶었다.


끼익-


"어? 아저씨 왔는데요. 짐버르 아저씨. 여기예요."

세로드가 출입구로 시선을 돌리고는 손을 들었다.

'아저씨가?'

고개를 황급히 돌리자 그곳에는 만신창이가 된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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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 없이도 살 사람 21.02.09 2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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