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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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그림/삽화
발아현미우유
작품등록일 :
2014.08.20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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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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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1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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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31막) 방관의 의도 (5)

DUMMY

근무는 이미 끝났다.

평소대로 개인정비를 하려는 자, 외출을 하려는 자, 그리고 야간 당직을 준비하는 자로 시끌벅적한 근위대숙소 주변. 그러나 본궁으로 통하는 대로변의 작은 정원, 원형탁자를 둘러싸고 있는 세 근위기사들은 지독한 추위에 입김이 얼어붙을 지경이었음에도 이 ‘일상’에 동참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의 신경을 옥죄고 있는 건 오로지 손목시계의 초침과, 저물어 가는 하늘의 햇빛뿐.


“.......이제 18시 다 됐어.”


마지막으로 시계를 확인한 에이미가 다시 두터운 장갑 속으로 손목을 감추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치체와 캄포는 덩달아 장갑을 걷어 시계를 확인한다.


“이제 우린 할 만큼 했어. 보고 해야 한다.”


덤덤한 치체의 목소리. 그러나 에이미는 약간의 비웃음으로 그의 일어서려던 움직임을 봉쇄한다.


“뭐라고 보고하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까 에두가 탈영한 거 같다고? 친절하게 셋이서 배웅까지 해줬는데?”


“대장님께서 근위대 전원을 긴급소집하고 문책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보고 드리는 게 나을 거다.”


“그건 책임회피일 뿐이야.”


“책임회피는 이미 다섯 시간 전에 저질렀어. 동기로서의 책임은 다했으니, 이제 근위대로서의 책임을 질 차례다.”


그러나 이런 치체의 신념은 캄포에게도 지지받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지금 에두의 탈영을 보고하는 걸로 네가 말한 근위대로서의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겠어? 에이미의 말대로, 그건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더 크게 혼나기 싫다는 이유로 들키기 직전에야 선생님에게 용서를 구하는 거랑 같은 짓이야. 오히려 정말 몰랐다는 식으로 가만히 있는 게 나을 수도 있지.”


“우리가 여기서 침묵해버리면 근위대 전원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은 물론 근위기사로서의 맹세마저 저버리는 것이 된다. 너희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로서는 용납할 수 없어.”


에두와 만나기 전의 치체였다면, 그는 여기서 귀족으로서의 명예와 책임을 운운하며 에이미, 캄포와 자신과의 신분적 차이에 대해 노골적으로 조소를 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훈련소 시절의 그 모든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에두와 같은 자들에 대한 편견과 편협했던 자신의 귀족론에 대해 시선을 돌려놓을 수 있었다. 즉, 지금 그의 발언은 어디까지나 귀족으로서의 오트만 치체가 아니라 근위기사로서의 책무를 언급한 것이었다. 물론 그 누구보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에이미와 캄포였기 때문에 그들은 이런 치체의 신념 자체를 저지할 생각은 없었다.


“보고하는 걸 말리진 않겠어. 하지만 우린 어디까지나 에두의 동기이고 동료야.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의 생명을 빚진 은인이라고도 할 수 있지.”


캄포는 빠르게 에이미의 의도를 읽어낸다.


“탄원서를 내자는 거야?”


“근위대뿐만이 아니라, 그날 에두의 지휘를 받았던 모두가 동참할 수 있다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


에이미의 말에 캄포는 잠시 턱을 짚고 생각에 잠긴다. 길게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우려는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있었다.


“그렇긴 하지만, 에두에 대한 동기들의 평가는 여전히 좋지 않아. 아니, 오히려 나쁜 쪽에 속하겠지. 생명의 은인이라는 거엔 나도 동의를 하지만, 그놈의 평소 태도나 언행은 역시.......”


“행실에 대해선 본인이 책임을 져야지. 하지만 탄원서를 내겠다면 나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 다만, 보고는 어쩔 수 없어.”


역시나 단호한 치체의 태도. 에이미는 절반의 만족만을 안고서 고개를 끄덕인다.


“우선 이번 조치가 에두에게 너무 가혹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해. 위수지역을 이탈하고 복귀가 늦은 건 맞지만, 귀빈과 잠자리를 함께 했다는 걸 일방적인 에두의 잘못으로 몰고 가기엔 좀 억울하다고 생각해. 에두가 강간을 한 것도 아니고, 들어보니까 서로 합의 하에 했던 거 같은데.”


“문제는 그 상대가 니에브공국 권성의 제자라는 점이지. 그 사람이 본국에 어떤 식으로 보고를 하느냐에 따라 국제적인 문제로 번질 수도 있으니까.”


“내가 보기엔, 오히려 그 라셰라는 년한테 더 악의가 있었던 걸로 보여. 뻔히 어떻게 될지 알면서 일부러 영수증까지.......”


“그 사람에게 협조를 바라는 건 어렵겠네.”


다시 침묵으로 되돌아가는 에이미와 캄포. 잠자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치체가 장갑을 걷어 올려 시계를 확인한다.


“일단 나는 대장님께 보고를 하고 오겠다. 그동안 둘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탄원서를-”




“대장님께 무슨 보고를 한다는 거지?”




순간 정지되는 세 근위기사의 사고.

전혀 기척을 느낄 수 없었던 그 목소리에 치체와 캄포, 에이미는 화들짝 놀라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그러나 그들의 경례에 경례로 답을 해주면서도, 붉은기가 감도는 오즈카의 눈동자는 세 후배의 의중을 단숨에 꿰뚫어 볼 기세로 날카롭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장님께 보고 드리기 전에 내가 알아야 할 사항이라도 있나?”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오즈카의 무표정과 시선. 치체는 목소리의 떨림을 간신히 참아내며 숨을 뱉는다.


“아, 아닙니다. 선배님이 신경 쓰실 일은 아닙니다.”


“대장님은 아셔야 하지만 난 몰라도 되는 일이 뭔가?”


“.......그, 그게.......”


목소리를 흐리는 치체. 결국, 에이미가 앞으로 나선다.


“에두에 관한 일입니다, 선배님.”


“에두?”

눈썹을 치켜뜨는 오즈카.

“걔가 뭐?”


“.......”


에이미는 뭔가 뱉으려던 목소리를 삼킨다. 지원을 바라는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지만, 당혹감은 치체나 캄포에게도 마찬가지. 그들에게 있어 최악의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오즈카는 그런 후배들을 향해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에두라면 방금 사병훈련소에 도착, 입소했다고 연락이 왔다.”


“.......!”


“.......예?”


휘둥그레 눈을 뜨고 오즈카를 바라보는 세 명의 근위기사. 이런 반응을 예상하긴 했지만, 오즈카는 미소를 내보이진 않는다.


“에두를 향한 이번 조치에 무언가 할 말이 있다면, 대장님이 아니라 나에게 먼저 보고해라.”


“아, 아닙니다, 선배님. 잠깐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눈치가 빠른 에이미가 수습에 나선다. 이런 의도를 깨닫고, 치체와 캄포 또한 어색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다.


“오해?”


“예, 필요 없는 걱정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필요 없는 걱정이라.......”

완전히 고개를 내리는 햇빛. 동시에 곳곳에서 가로등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허연 입김이 구름을 대신하여 밤하늘을 향해 피어올랐고, 오즈카는 그곳을 향하고 있던 시선을 후배들을 향해 되돌린다.

“그건 절대로 필요 없는 걱정이 아니다. 너희들의 그 관심과 걱정이 없었다면, 그 걱정이 실제로 일어났을지도 모르지.”


“.......”


“훌륭한 기사와 훌륭한 지휘관은 절대로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본인의 의지, 수많은 도움과, 그리고 수많은 희생이 뒤따라야 하지. 에두라는 기사의 의지는 지금까진 타의적이다. 이건 바뀔 수 있어. 그리고 바뀔 거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특히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녀석이 너희를 의지하고, 너희가 녀석을 의지하고, 너희가 그에게서 배우면서 그 또한 너희에게 배울 수 있도록.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예.” “예.”


동시에 터져 나오는 우렁찬 대답.

오즈카는 그제야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뒤돌아간다.

세 명의 후배는 그 선배의 듬직한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경례를 내리지 않았다.





=====================




“후우.......”


맛있게 빨아들인 마지막 한 모금을 더럽게 토해내고서, 에두는 꽁초를 버리고 그 연기의 잔향을 전투화로 비벼 무너트린다.

어둠이 내리깔리는 카모라 숲. 이미 나무와 나뭇잎들의 그림자밖엔 존재하지 않는 그 어둠의 한복판에서 에두는 마지막 꽁초와 함께 미련을 버렸다. 굳이 시계를 바라볼 필요도 없었다. 발걸음에 신속함을 가할 필요도 없었다.

그의 미래이자 그의 밑바닥이, 바로 눈앞에서 그를 환영하고 있었다.

사병훈련소.

그 이상의 설명이나 소개가 필요 없다는 듯, 오로지 필요한 글자만을 품고 있는 아치형 입구. 숲 한복판에 지어졌기 때문에 아직 그 정확한 규모나 설비를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사병’이라는 단어의 막막함은 마지막으로 에두의 결심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사실, 에두는 이 숲을 그대로 지나치려 했다. 반강제로 시작된 자신의 ‘기사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거리와 무법지대, 자유로 돌아가고자 했었다. 스스로 굳은 결심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자리에 서있었을 뿐이다.


“.......하아, 씨팔.”


근위기사가 일반병사들과 함께 재교육을 받는다는 굴욕감?

끝내 사라지지 않은 채 발목을 잡은 편견과,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배신감?

모두 아니었다. 그가 포기하려 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증명의 두려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는 인연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들의 ‘기대’.

처음으로 자신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투자해주었으며, 맡겨주었던, 그 모든 부담감.

결국, ‘일탈’은 그 모든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자신의 어리광이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그는 내심 자신이 다시금 여기까지 떨어졌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있었다. 여기서 나아가지 않고, 멈춰서, 그대로 돌아가면, 모든 것을 예전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 거라는 유혹이 있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발걸음은 훈련소 앞에 멈춰있었다.

‘왜’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아마 시간이 지나면,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난다면 이 물음에 답을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확신은 없었다. 다만, 그의 뇌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때’ 맛보았던, 작은 희열.


“입소하시는 겁니까?”


어느새 위병소에까지 걸음이 닿았던 모양이다. 갑작스럽게 의식의 흐름을 끊고 들어오는 경계병을 향해, 에두는 고개를 끄덕이며 품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어 건넸다.


“.......근위대?”


의문과 놀라움이 함께 번져 나가는 병사의 얼굴. 그는 순간 경례를 해야 하는가 고민을 했지만, 에두가 먼저 그의 고민을 덜어준다.


“병사신분으로 재입대하는 거요.”


“아, 그렇습니까. 입소식은 따로 예정되어있지 않습니다. 들어가셔서 정면의 가장 큰 건물이 막사이니, 그곳에서 숙소배정을 받으시면 됩니다.”


인증서를 돌려받고, 에두는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고른다.

이제 한 걸음만 더 내딛으면, 돌아갈 길은 없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터. ‘마지막’으로, 본래 자신이 소속되었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일 터.


“.......”


하지만 에두는 짧은 한숨만 품고서 발을 내딛는다. 숲의 어둠을 어지럽게 흐트러뜨리는 훈련소의 불빛이 눈을 간질였지만, 그는 고민하지 않고, 망설이지 않는다.





훈련소 자체가 급조되었던 탓에 좋지 않은 소문이 떠돌기도 했지만, 막사의 규모나 상태는 정규군의 그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제대로 된 구색을 갖추고 있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5층 건물이 연달아 네 채가 이어져 있었고, 각 내무반은 30여 명으로 이루어진 분대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설계되어있었다. ‘재훈련’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각 예비역의 계급도 분명 천차만별, 그 점을 고려했는지 지급된 군복의 계급장은 제거된 상태였다. 때문에, 자신의 내무반으로 들어선 에두가 처음 느낀 것은 바로 다양한 병사들의 나이와 체격이었다.

에두 본인도 다른 기사훈련소 동기들에 비해 부족한 체격은 아니었지만, 이곳 병사들의 몸집에 비하면 그는 한없이 왜소한 편이었다. 영력의 단련을 통해 기량을 향상하는 기사들과는 달리, 병사들은 육체의 능력 그 자체를 생존수단으로 삼기에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에두가 군장을 내려놓으면서 실수로 관물대에 부딪치는 바람에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내무반의 모든 ‘훈련병’들이 잠시 시선을 모았지만 잠시뿐이었다. 어떠한 목소리도 없고, 어떠한 시선 교환도 없었다. 오직,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침묵만이 가득했다. 에두 본인도 먼저 거리를 좁히거나 이런 낯선 사람들과의 담소를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곧바로 이 침묵의 향연에 기꺼이 동참한다.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중년 남자, 속옷을 드러낸 채 누워있는 젊은 여자, 마치 현역군인처럼 정자세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노인까지. 기다림과 침묵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 속에서 에두가 택한 자세는 다름 아닌 관물대에 기대어 반쯤 누워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불편하면서도 편한 침묵은 길게 이어지지 못한다.


“차렷, 똑바로 앉습니다.”


내무반을 뒤흔드는, 무게가 느껴지는 목소리. 모두의 시선이 입구를 향한다.

건장한 체격, 깊게 눌러쓴 모자, 마찬가지로 계급이 달려 있지 않은 가슴팍. 그러나 내무반에 있는 모두가 이 젊은 남자의 교련복을 보고 그가 교관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합니다. 똑바로 앉습니다.”


이전의 목소리보다 더욱 날카로워진 울림. 입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앉은 이들부터 슬금슬금 바로 앉기 시작한다. 그러나 교관은 그 속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자신이 들고 있던 지휘봉으로 강하게 벽을 후려치며 고함을 내지른다.


“신속하게 움직입니다! 여러분 여기 놀러 온 거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 각자 길을 찾기 위해 이곳에 찾아오신 겁니다. 훈련소 측에서는 전혀 아쉬운 게 없으므로, 교관과 훈련과정에 불성실한 태도를 보일 시 즉각 퇴소 조치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


“대답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예에.”


힘이 실려 있기는커녕, 박자조차 맞지 않는 대답. 교관이 한걸음 안으로 들어선다.


“본인이 과거에 계급이 뭐였는지, 어디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지금 이 분대에도 장교 출신의 훈련병이 두 분 계십니다. 하지만 여러분 모두 계급에 상관없이 같은 기회를 되찾기 위해 이곳에 오신 겁니다. 저흰 그 기회를 드리려는 거고, 여러분은 그거에 따르기만 하시면 됩니다. 그게 불만이면 나가시면 됩니다. 여긴 정규군훈련소가 아닙니다. 그 어떤 것도 강제되지 않습니다.”


“.......”


에두는 놀랐다.

교관이 언급한 장교 출신의 훈련병에 자신이 포함되어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제외한 또 한 명이 있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웠던 것이다.


“교관의 통제와, 앞으로 이어질 12주간의 기초훈련 기간을 감당하기 싫은 훈련병은 소등 전까지 퇴소를 해주시면 됩니다. 만약 이곳에 남길 바라신다면, 내일 아침부터 교관의 경어는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두시기 바랍니다. 아시겠습니까?”


“예에.”


한바탕 짧은 폭풍이 지나가고, 다시금 침묵이 내무반을 지배한다. 물론 이중에 퇴소요청서를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돌고 돌아 다시 이 길로 돌아온 자들에게는 유일한 기회. 물론 에두는 자신의 이곳에 있는 이유가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의도’를 깔볼 생각은 없었다. 그는 이곳에서까지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의 단절. 그것이 그가 생각한 최선의 방법.


“장교 출신이라는 거, 당신이죠?”


때문에, 그는 작은 목소리로 훅 치고 들어온 공격에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 녹색 빛의 은은한 눈동자가 가까이 다가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


에두의 불편한 표정, 불편한 침묵.

이 의도를 알아챘는지, 남자는 멋쩍게 웃으며 자신을 소개한다.


“이런 실례했군요. 제 이름은 제임스 테넌. 당신과 마찬가지로 장교 출신의 훈련병입니다.”


“.......장교? 하지만 그쪽은-”


“네, 맞습니다. 전 기사가 아닙니다.”

담담한 테넌의 태도에 에두의 표정은 더욱 의문으로 일그러진다. 처음 접하는 일이 아니었기에, 테넌은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기사도 아닌 제가 어떻게 당신이 기사라는 걸 알아챘는지 궁금합니까?”


“.......”


“저는 오히려 기사인 당신이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지 궁금하군요. 저야, 생각지도 못한 분에게 초대를 받아서 온 것이지만.”


“댁이 상관할 바 아니니까 좀 꺼지시지.”


평소대로인 에두의 태도와 어투. 그러나 테넌은 미소를 거두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서로 좋았겠습니다만, 아쉽게도 훈련번호를 멋대로 바꿀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에두는 그제야 자신의 옆 관물대에 새겨진 이름을 확인한다.

제임스 테넌.

이어지는 테넌의 목소리와 함께, 에두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순간이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에두아르도 렐라바.”


작가의말

언제나 미흡한 글을 봐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색한 문장이나 문맥, 오타가 있다면 지적부탁드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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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막) 방관의 의도 (5) +1 18.01.16 233 9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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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7 (31막) 방관의 의도 (3) +5 18.01.06 238 8 10쪽
336 (31막) 방관의 의도 (2) +5 18.01.01 232 8 17쪽
335 (31막) 방관의 의도 (1) +2 17.12.27 265 7 20쪽
334 (막간) 전조 17.12.22 233 6 15쪽
333 (30막) 정말로 새롭게 피어난 향기는 역할 수밖에 (10) +4 17.12.17 228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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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30막) 정말로 새롭게 피어난 향기는 역할 수밖에 (8) +1 17.12.06 205 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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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 (30막) 정말로 새롭게 피어난 향기는 역할 수밖에 (2) +4 17.11.04 242 10 21쪽
324 (30막) 정말로 새롭게 피어난 향기는 역할 수밖에 (1) +3 17.10.30 288 1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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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29막) 빛과 진실이 흐르는 땅에 그 아이의 이름이 울려 퍼지기를 (7) +3 17.09.28 238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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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29막) 빛과 진실이 흐르는 땅에 그 아이의 이름이 울려 퍼지기를 (4) +2 17.09.11 229 7 13쪽
317 (29막) 빛과 진실이 흐르는 땅에 그 아이의 이름이 울려 퍼지기를 (3) +6 17.09.06 286 9 13쪽
316 (29막) 빛과 진실이 흐르는 땅에 그 아이의 이름이 울려 퍼지기를 (2) +6 17.09.01 253 10 16쪽
315 (29막) 빛과 진실이 흐르는 땅에 그 아이의 이름이 울려 퍼지기를 (1) +3 17.08.28 232 10 31쪽
314 (막간) 방랑의 종착지 +4 17.08.23 258 13 18쪽
313 (28막) 이름 (12) +6 17.08.18 219 11 13쪽
312 (28막) 이름 (11) +4 17.08.13 259 9 14쪽
311 (28막) 이름 (10) +8 17.08.08 226 9 14쪽
310 (28막) 이름 (9) +8 17.08.02 257 10 21쪽
309 (28막) 이름 (8) +8 17.07.28 284 9 18쪽
308 (28막) 이름 (7) +4 17.07.23 226 6 15쪽
307 (28막) 이름 (6) +3 17.07.18 262 9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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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5 (28막) 이름 (4) +8 17.07.08 252 9 15쪽
304 (28막) 이름 (3) +4 17.07.03 241 11 13쪽
303 (28막) 이름 (2) +6 17.06.28 228 9 14쪽
302 (28막) 이름 (1) +2 17.06.23 272 10 19쪽
301 (막간) 그가 웃기 전에, 그리고 웃은 후에 +3 17.06.18 261 9 10쪽
300 (27막) 이쪽을 보고, 들짐승처럼 웃어주세요 (11) +9 17.06.13 288 11 18쪽
299 (27막) 이쪽을 보고, 들짐승처럼 웃어주세요 (10) +1 17.06.08 251 11 14쪽
298 (27막) 이쪽을 보고, 들짐승처럼 웃어주세요 (9) +2 17.06.03 247 10 13쪽
297 (27막) 이쪽을 보고, 들짐승처럼 웃어주세요 (8) +2 17.05.29 339 7 14쪽
296 (27막) 이쪽을 보고, 들짐승처럼 웃어주세요 (7) +2 17.05.24 285 9 12쪽
295 (27막) 이쪽을 보고, 들짐승처럼 웃어주세요 (6) +3 17.05.20 252 6 15쪽
294 (27막) 이쪽을 보고, 들짐승처럼 웃어주세요 (5) +5 17.05.14 290 1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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