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화. 4강(2)
앞에서 들려온 외침에 마도경이 급하게 몸을 트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마도경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화염부가 날아왔다. 제기랄!
부채를 펼쳐서 화염부를 막아내고 나니 마도경이 내게서 멀리 떨어졌다. 저 자식이!
하지만 이번엔 부적사로 보이는 삼학년 선배가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지속적으로 화염부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으라챠!"
철혁 선배의 목소리였다. 철혁 선배는 나를 공격하는 삼학년 선배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노렸다. 당황한 삼학년 선배가 뒤로 물러서며 철혁 선배에게 붓을 겨누었다.
흑신을 상대하는 적인을 향해 방울을 흔들면서 내 시선은 다시 마도경의 뒤를 쫓았다. 마도경의 종착지는...
"조심해!"
돌진하는 마도경을 본 호준 선배가 소리쳤다. 하지만 어검을 막아내고 있던 유나는 자신에게로 뛰어오는 마도경을 못 본 것 같다. 해성이가 근처에 있긴 하지만 다른 삼학년 선배를 상대하느라 미처 보지 못 한 것 같다.
호준 선배의 외침에 유나가 마도경을 알아챘지만 그 직후 마도경의 장검이 유나의 목덜미에 휘둘러졌다.
"꺄악!"
목덜미를 움켜잡으며 주저 앉는 유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와 동시에 보호막이 깨지며 아웃되는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마도경 자식은 눈동자를 굴려 내 쪽을 힐끔 봤다가 목을 감싸며 주저앉은 유나의 양 팔을 발로 찼다. 유나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뒤로 넘어져 버렸다. 저 자식 지금 보호막이 깨진 걸 보고도 발로 찬 거야?
이윽고 호준 선배가 달려와 유나를 이끌고 시합장 밖으로 나갔다. 호준 선배는 보호막이 깨진 이후에 유나가 발로 차였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 한 것 같다.
"이 개자식아!"
온 몸에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었다. 선배들은 내 갑작스런 외침에 놀라 잠시 이쪽을 봤다. 하지만 나에게 더 신경 쓸 새 없이 상대하고 있던 적 팀과의 대전을 속행했다.
아무래도 마도경이 일부러 유나를 찬 것을 본 건 나뿐인 것 같았다. 별동대고 뭐고 지금 이 순간 저 새끼 만큼은 용서 못 하겠어.
나는 들고 있던 방울도 집어 던진 채 마도경을 향해 뛰었다. 마도경은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장검을 내게 내밀고 있었다.
"그래 이거지. 표정이 아주 마음에 드는데?"
나를 도발하기 위해 유나를 이용한 게 틀림 없다. 하지만 이건 도를 넘었다. 이젠 정말 용서 할 수 없어.
마도경과 거리가 몇 걸음도 채 남지 않았다. 이 일격으로 마도경 자식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힘을 보여주고 싶어. 넌 그렇게 맞아도 싼 놈이니까.
앞뒤를 가리지 않고 부채에 영력을 남김없이 불어 넣었다. '영력 투사'가 아니었다.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힘. 몸이 망가지든, 부채가 부서지든, 난 저 자식을...!
마도경도 장검에 영력을 투사했는지 검날에서 흰색의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너 같은 건... 꺼져 버려!"
나는 그대로 부채를 힘껏 휘둘렀다. 아까 전처럼 막아내려고 하는 건지 마도경이 건들거리는 모습으로 검날을 내 부채로 향했다. 그리고 찰나의 시간이 흐른 뒤, 마도경의 표정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내 눈에도 보였다. 마도경의 장검이 산산조각이 나며 흩어지기 시작했고 그대로 내 부채는 마도경의 얼굴을 강타했다. 마도경의 보호막이 깨졌다. 뺨을 맞아 고개가 돌아간 마도경이 그대로 시합장 반대편까지 굴러가는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순간 모든 사람들이 행동을 멈춘 듯 정적이 흘렀다. 보건 선생님이 황급히 마도경한테 뛰어갔다. 마도경이 선생님의 부축을 받으며 고개를 젓는 것을 보니 그래도 크게 다치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도 위력에 놀랐는데 확실히 십인대전용 보호부의 효과는 대단한가 보네.
"세상에..."
"저게 무슨 영력 투사야?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날아가?"
주변을 보니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무사지망생인 학교 친구들이 일격을 날려도 시합장의 끝에서 끝까지 무언가를 날려 보낸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일 테니까.
나는 숨을 몰아 쉬었다. 부채를 쥐고 있던 손에 저릿한 느낌이 뒤늦게 오고 있었다. 후들거리는 내 손을 반대 손으로 움켜쥐어 저릿한 느낌을 가라앉혔다.
마도경이 아웃 당하고 난 직후에 흐른 정적은 잠깐이었다. 곧 다시 전투가 재개됐다. 나에게 달려드는 2학년 선배를 앞에서 막아내는 사람이 있었다.
"방울부터 회수해."
해성이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직 대결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마도경 하나를 아웃 시켰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해성이의 엄호로 방울을 다시 주워서 적인을 소환해 도초아 선배의 흑신을 몰아세웠다. 마도경이 아웃으로 빠진 이후 상대팀은 차례차례 아웃당하기 시작했고 결국 마지막은 도초아 선배만이 남았다. 하지만 보호막을 깨뜨리기도 전에 도초아 선배는 패배를 직감하고 그대로 항복했다.
우리가 이겼다.
시합이 끝나자 차유경 선생님은 우리 십인대의 승리를 선언했다. 운동장에 모여있던 학생들의 힘찬 축하의 환호와 박수소리로 가득해졌다. 진우 선생님도 활짝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우리가 승리한 건 좋긴 한데... 유나는 괜찮나?
이후 절차가 남아 있어서 바로 보건실로 가지는 못하고 자리에 남아 있어야 했다. 절차라곤 해도 아까 일어났던 일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것 같지만.
"그럼 여은이가 남은 절차 좀 맡아 줘. 나는 진우 선생님이랑 같이 유나 좀 보고 올게."
"네~ 다녀오세요."
누나가 진우 선생님과 같이 먼저 보건실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나도 따라 가고 싶은데... 어쩔 수 없지.
"동하는 신수사니, 무사니?"
소윤 선배가 나한테 은근슬쩍 다가와서 물었다. 뭐라고 대답하지...?
다른 선배들도 천천히 나한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질문 세례가 들어오겠구나...
[자! 다음 순서는 4강 2라운드! '권도강' 십인대와 '민갑수' 십인대의 경기가 있겠습니다! 10분 정도 휴식한 뒤 진행 될 예정입니다!]
배주영 선배의 목소리였다. 계속 대전 중에도 진행을 하고 있었던 걸까?
문득 출전 대기 장소를 돌아보니 수린이, 성호, 소연이가 몸을 푸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다들 컨디션이 좋아 보이네. 만약 다음 경기에서 쟤네가 이긴다면 다음은 우리와 결승에서 만나게 되겠지.
* * *
경기를 돌아보는 시간이 끝나고 나와 해성이는 보건실로 향했다. 수린이네 조가 어떤식의 전술을 쓰는지는 선배들이 확인해 줄 테니까, 유나가 괜찮은지부터 봐야 겠어.
보건실로 향하면서 해성이에게 마도경이 한 짓에 대해 얘기 했다. 해성이는 묵묵히 듣고 있었지만 전에 본 적 없이 무시무시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보건실에 들어가자 유나가 침대에 기댄 상태로 보건 선생님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유나는 우리를 보곤 방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다행이다, 크게 다친 것 같진 않네.
그래도 유나가 누워 있는 걸 보니 다시금 마도경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다.
"마도경 그 자식이 진짜..."
"난 괜찮아. 해성이한테도 말 해 줬나 봐? 인상 좀 풀어."
"흠."
해성이도 화가 난 것 같았지만 사실 가장 화가 났을 유나가 오히려 우리 둘을 위로하려는 것 같았다.
유나는 마도경 자식에게 팔을 발로 차이는 바람에 통증으로 결승전에 나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보건 선생님은 아프면 참가하는 걸 재고해 보라고 하셨지만 유나의 의지는 확고했다.
"난 결승전에 반드시 나갈거야. 말리지 마."
"어휴..."
극구 괜찮다는 유나의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팔이 아프면 붓으로 문양을 그리기도 힘들 텐데.
"참, 채아 선배도 왔다 가셨는데, 우리가 어떻게 이겼길래 그렇게 들떠 계신거야?"
"동하가 마도경을 장외 아웃 시켰다. 일격으로."
나는 해성이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띄워주니까 괜히 부끄럽다고.
"진짜?"
"부채로 마도경의 장검을 파괴하고 그대로 마도경을 날려 버렸다. 시합장 측면에서 반대 쪽 끝까지 말이다."
옆구리를 찔러 신호를 줬는데도 해성이의 쓸데 없는 정보 전달은 계속 됐다. 나는 피곤해져서 얼굴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우와, 잘했어, 대단해!"
"시합은 그 이후로 우리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동하가 마도경에게 보여줬던 무위가 엄청났던 탓에 지금도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
그래, 알아.
보건실로 올 때부터 학생들의 시선이 너무 따끔거렸다니까.
해성이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결국 완성 시켰나보군."
"...그러게. 그냥 너무 열이 받아서... 지금 다시 하면 또 될 지는 모르겠어."
해성이가 나를 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다시 해도 똑같이 될 거라는 뜻이겠지. '영력 투입' 말이야.
"그래도 역시 네 말대로 함부로 쓰면 안 될 것 같아. 아직도 손목이 저릿해."
"좋은 생각이다."
"무슨 얘기 하고 있는 거야? 영력 투입?"
나와 해성이의 대화에서 맥락을 찾지 못한 유나의 질문이었다. 그렇게 유나에게도 영력 투입 얘기를 해 주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유나가 보건실 침대를 박차고 나왔다. 만류하는 우리들을 뒤로 하고 씩씩하게 보건실을 나가는 모습에 나와 해성이는 서로 실소를 터뜨릴 수 밖에 없었다.
유나를 뒤따라 나서자 복도에서 보이는 건 어디론가 향하는 마도경 삼인대였다. 마도경은 나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미간을 찌푸리더니 못 본 척 빠른 걸음으로 옆을 스쳐 지나갔다. 은설이가 유나를 아는 척 하려다가 마도경을 따라갔다.
"흠. 성질 많이 죽었네?"
"시합장 끝에서 끝까지면... 도대체 몇바퀴를 구른 거야? 그 정도면 저럴 만 하지... 나도 그 모습을 봤어야 했는데!"
멀어지는 마도경의 뒷모습을 보며 한마디 했더니 유나가 분개하며 대답했다.
"그건 그래."
유나를 괴롭힌 대가로는 아직 부족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만족스럽네.
"지금이면 수린이네 4강 시합도 끝났을까?"
"글쎄... 가 보자."
우리들은 복도를 지나 운동장으로 향했다.
본관을 나오자마자 보이는 운동장에서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말 신수였다. 말 신수는 시합장 내에서 이곳저곳을 빠르게 질주하며 주변을 교란하고 있었다. 게다가 마지막엔 압도적인 발차기로 학생 한 명을 아웃라인 밖으로 튕겨 냈다.
"와... 저거 수린이가 부리는 거 맞지?"
"여름 방학때 본 게 지금은 더 커진 것 같은데?"
"음."
운동장 옆에 마련된 관람석으로 가면서도 시합장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수린이는 성호와 소연이의 보호 아래에서 흑오를 조종하고 있었다. 방울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네.
"크하하핫!"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양날 도끼를 든 권도강 선배가 반파된 수호석 앞에서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저거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응."
유나도 눈을 깜빡거리며 대답했다. 권도강 선배는 '1조장'인데 왜 '상대방의 수호석' 앞에서 호탕하게 웃고 있는걸까?
['권도강' 십인대가 결승전에 진출합니다! 1조장이면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상대방의 수호석을 파괴하는 압도적인 무력! 엄청납니다! 권도강!]
이 작품은 픽션입니다. 나오는 지명이나 단체, 인물은 실존하는 것과 일체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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