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들이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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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하범
작품등록일 :
2021.01.15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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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5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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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비전교회 (15)

DUMMY

이유영이 건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재밌다는 겁니까?”

“마치, 세 사람이 합체하다 실패한 거 같지 않아요?”


불쾌한 비유였지만, 이유영은 그의 의견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녀의 눈에도 그의 비유처럼 보였으니.


윤홍신이 말을 이었다.


“실제로, 저 세 쌍의 팔다리와 두 쌍의 머리는 전부 제각각의 형질을 지니고 있어요. 자세한 건, 연구소에서 채취한 표본을 검사해봐야 알겠지만, 일단, 저희의 중론은 이거에요.”


윤홍신이 검지를 치켜세웠다.


“셋은 모두 참회자였다.”


이번엔 중지였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 참회자, 높은 확률로 머리 없는 참회자의 성총이 과하게 비대해졌다.”


중지 다음은 약지.


“그 참회자는 비대해진 성총을 억누르지 못하고, 같은 참회자를 먹어 치웠다. 그 결과물이···.”


윤홍신이 ‘그것’에게 다가가, 발로 ‘그것’을 툭툭 건드렸다.


“요놈이죠.”


그가 신이 나서 재차 떠들어댔다.


“자, 이거 보세요. 이것도 재밌어요.”


윤홍신이 ‘그것’의 윗부분을 툭툭 건드렸다.


“여기 보면, 무언가 떨어져 나간 게 보이시죠?”


그의 말대로, 무언가 잡아 뜯긴 듯 둥근 모양의 상처가 보였다.


“이진호 요원의 보고에 따르면, 이 부분에 촉수와 같은 기관이 있었던 거로 예상돼요. 그리고 그 촉수 끝에는 저게 달려 있었다고 했죠.”


윤홍신이 가리킨 방향에는, 기괴한 형태의 사체 하나가 있었다.


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몸뚱어리만 덩그러니 남은 채, 갈빗대에서 검은 갑각이 솟아오른 흉측하기 그지없는 모습이다.


윤홍신이 다시 둥근 상처 부근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이게 정말 재밌는 게, 요놈은 비대해진 성총을 견디지 못한 육체가 붕괴한 바람에, 아예 운동 능력을 상실해 버렸어요. 봐봐요, 입에 손이 닿지도 않고, 눕거나 설 수도 없는 몸이에요. 그런데 하필 이놈의 베이스가 되는 욕망이 식욕이잖아요? 운동 능력을 잃었다는 건, 아주 치명적이에요. 요놈의 식행위는 오로지 사냥으로만 이루어질 테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윤홍신의 손가락이 꾸불꾸불 허공에 선을 그렸다. 둥근 상처에서 괴물의 사체까지. 마치 촉수를 표현하려는 듯한 손짓이었다.


“독립된 기관을 형성해서, 운동 능력의 상실을 대체하려던 거죠.”


윤홍신이 눈을 반짝이며 그녀를 보았다. 마치 ‘재밌지 않아요?’ 라고 묻는 듯한 표정이다.


하지만 이유영은 도저히 그의 생각에 공감할 수 없었다.


“그래서, 뭐가 재밌다는 겁니까?”


윤홍신은 여전히 웃는낯을 거두지 않고 말했다.


“이 선임요원은, 성총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어요?”


성총(聖寵).


참회자가 사용하는 마법과도 같은 능력, 이유영이 아는 바는 딱 그 정도였다.


“재의 마법과 비슷한 능력 아닙니까?”

“전혀 다르죠!”


윤홍신이 펄쩍 뛰며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


“재(滓)는 오직 구도(求道)라는 수양에 힘쓰는 도구로 기능 하기 위해 연구되었기 때문에, 물리적 간섭에 관한 방향보다는 대부분···.”


윤홍신이 문득 말을 멈췄다.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이유영의 시선을 느낀 것이다.


그가 몇 차례 헛기침하고 말을 이었다.


“흠흠. 간단히 말하면, 재(滓)는 온전한 자신의 능력인 반면에, 성총은 ‘받은’ 능력이에요. 그리고 ‘이건’···.”


윤홍신이 발로 ‘그것’을 툭툭 건드렸다.


“분수에 맞지 않는 능력을 받은 주제에, 더 큰 힘에 욕심낸 머저리의 최후고요. 우리는 이걸, 말로(末路)라고 불러요. 참회자들의 말로.”


참회자들의 말로라.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문득 의문 하나가 떠오른다.


이게 참회자들의 말로라면, 모든 참회자가 이런 꼴이 된다는 말인가?


의문을 읽었는지, 윤홍신이 씨익 웃었다.


“예, 모든 참회자는 결국 비슷한 꼴을 맞이하게 돼요. 그 시기가 언제이냐의 차이일 뿐이지, 모두 이성 없는 괴물로 전락하게 되죠. 그런 면에서는, 감염자와 별반 다를게 없는 놈들이에요.”


이유영이 ‘그것’을 보았다.


‘그것’은 육중한 몸뚱이를 헐떡이며, 가늘게 생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윤홍신이 몇 번이나 몸을 툭툭 건드려도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있다.


아니, 못하는 것이리라.


윤홍신의 말에 의하면, ‘그것’의 운동 능력이 완전히 거세되었다.


세 쌍의 팔과 다리는 장식품 이상의 값어치를 하지 못한다.


“그러니 재밌지 않을 수가 있나요. 멍청이가, 멍청이짓을, 하다가, 멍청하게, 지 동료마저 이 멍청한, 몸뚱이로 끌어들였는걸요?”


‘멍청이’라는 말끝마다 윤홍신이 ‘그것’에게 발길질을 해댔다.


그후로도, 몇 번이나 ‘그것’을 걷어찬 윤홍신이 개운하다는 표정으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유영은 속이 조금 불편해져 물었다.


“이런 걸, 왜 말씀해 주시는 겁니까?”


그녀의 질문에, 윤홍신는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답했다.


“재밌잖아요.”


이유영은 침묵했다.


이 남자의 뇌 구조가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한번 머리를 열어보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하지만 충동은 충동으로 끝났고,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어, 이 선임···.”


잠깐의 정적을 못이기고 윤홍신이 재차 입을 열려고 할 때, 안경을 쓴 사내가 투명한 막을 뚫고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드문드문 빈 머리만큼이나 신경질적인 인상의 소유자인 40대 후반의 남성이었다.


윤홍신이 그를 보자마자, 호들갑을 떨며 허리를 구십 도로 꺾었다.


“오셨습니까! 수석님!”


그가 대충 손짓으로 화답하고, 이유영에게 시선을 돌려 눈짓으로 정체를 물었다. 명백히 하급자를 바라보는 눈빛이었다.


그가 아마도 직전에 윤홍신이 언급했던 차 수석이란 인물일 것이다.


그의 신분을 알아차리고, 이유영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회사 소속, 이유영 선임요원입니다.”


수석연구원은 연구소 내에서도 몇 없는 직책이었다. 눈앞의 수석연구원은 그녀의 입장에서, 그야말로 까마득히 높은 위치의 사람인 것이다.


차 수석은 악수를 권하지도, 자신을 소개하지도 않았다. 그저 무신경한 눈으로 그녀를 일별했다.


“나가서 기다리게.”

“예.”


명령에 가까운 말에, 이유영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차 수석과 같은 높은 사람과 한자리에 있는 것이 껄끄러운 참이었다.


그녀가 바깥으로 나서려 할 때, 뒤에서 차 수석의 쓴소리가 들려왔다.


“윤 선임. 아무리 운반책이라 해도, 부외자를 이곳에 들여? 정신줄 놨어?”

“···죄송합니다.”


이유영이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차 수석의 다그침에, 윤홍신이 굽신거리는 모습이 절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쌤통이네.


그 모습을 직관하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쉬울 정도였다.


이유영은 기꺼운 마음으로 투명한 막을 통과했다.



***



부스럭.


습관적으로 담배를 꺼내 문 이유영이 문득 담뱃감 안을 보았다. 새로 산 담배가 꽤 비어있었다.


그녀가 가만히 남은 담배의 수를 헤아렸다.


16개비.


차 수석과 윤홍신을 기다리면서, 벌써 6개비째를 입에 물고 있는 것이다.


이유영이 힐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차 수석이 기다리라고 지시를 내린 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약 3시간 정도.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길래, 라는 궁금증을 가지진 않았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이는 법이었다.


이유영은 그저 담배로 시간을 축내며, 그들을 기다렸다.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 시선을 돌렸다.


“아이고~ 아이고~”


윤홍신이 앓는 소리를 내며, 음압 텐트 바깥으로 나왔다.


그의 손엔, 커다란 은색 서류 가방이 하나 들려 있었다. 이전에, 연구원들이 하나씩 손에 쥐었던 것과 똑같은 생김새였다.


이유영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서 본 그의 얼굴은, 과연 앓는 소리를 할 만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3시간 만에 급격히 퀭해진 눈가와 얼굴과 가운 곳곳에 튀긴 핏방울이, 작업의 고단함을 짐작게 했다.


“끝났습니까?”

“여기요···.”


윤홍신이 축 처진 목소리로 서류 가방을 건넸다.


서류 가방은 꽤 묵직했다.


이유영은 그것을 받아든 순간, 가슴에도 묵직한 돌덩이 하나가 내려앉은 듯한 기분을 받았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예에, 가보세요···.”


윤홍신의 맥빠지는 환송을 뒤로하고, 이유영이 걸음을 바삐했다.


교회를 빠져나가는 그녀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



윤홍신이 다시 음압 텐트 안으로 들어왔다.


안의 광경은 3시간 전과 꽤 많이 달라져 있었다.


커다란 부피를 차지하던 ‘그것’과 처참한 꼴로 널브러졌던 사체는 이제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바닥을 뒹구는 몇 조각의 살점과 곳곳에 뿌려진 핏물만이 그것들이 그 자리에 존재했음을 미약하게나마 알렸다.


차 수석은 핏방울이 번진 안경을 벗어두고 그 앞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다. 그의 얼굴은 윤홍신의 그것 이상으로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윤홍신이 양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수석님, 인계했습니다.”

“그래?”


차 수석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는 하얬을 니트릴 장갑을 손에서 쭉 빼내 내팽개치고, 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다리를 부들대는 모습이, 퍽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차 수석은 기어코 다리를 꼿꼿이 세우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두어 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통화가 연결되었다.


“소장님. 차 수석입니다.”


“예, 성공적으로 작업 마치고, 인계했습니다.”


“예. 윤 선임이 보고한 대로, 3명 정도의 분량을 확보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소실시키는 즉시, 복귀하겠습니다.”


뚝, 통화가 끊기자, 차 수석이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짧은 통화 동안, 경직되었던 표정도 적당히 풀어졌다.


“윤 선임.”

“옙!”

“받아.”


차 수석이 건넨 건, 조그마한 원통형 유리병. 그 안은 새까만 무언가로 가득 차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윤홍신은 단숨에 그것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그것은 촉매였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목표는 전소(全燒). 명심해, 전소야. 할 수 있어?”


할 수 있냐 묻는 차 수석의 물음에, 윤홍신이 결연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믿지.”


차 수석이 그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쳤다. 그는 비틀대며 걸으면서도 은색 서류 가방 하나를 손에 쥐고 있었다.


윤홍신이 그의 뒷모습을 향해, 허리를 구십 도로 숙였다.


“고생하셨습니다.”


대답은 없었다.


차 수석이 투명한 막을 통과해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나서야, 윤홍신이 허리를 폈다.


그리고 손에 쥔 촉매로 시선을 돌렸다.


액체 같기도 하고, 기체 같기도 한, 새까만 무언가가 유리병 안에서 꿈틀댄다.


윤홍신이 유리병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가슴 깊숙한 곳의 옅은 떨림 또한 고정시켰다. 단단히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입술을 달싹였다.


그것은 마치.


메마른 나뭇가지를 스치는 한겨울의 삭풍. 바람으로 전해오는 나뭇가지들의 속살거림. 거대한 물푸레나무를 꿈틀거리며 오르는 뱀의 몸짓. 가지 끝에 매달려 쉭쉭거리며 지혜를 속삭이는 뱀의 혓바닥.


꽁꽁 밀폐되었던 유리병에서 검은색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연기처럼 새어 나와, 물속에 번진 물감처럼 허공을 까맣게 물들였다.


그리고 윤홍신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불길한 속살거림이 멎은 순간.


화륵.


새까만 그것이 불길로 화해, 주변을 불살랐다.


주황색 불길은 음압 텐트도, 몇 조각 남은 살점들도, 부러진 장의자들도, 목사실의 문패도, 십자가도 모조리 불태워, 새까맣게 물들였다.


비전교회가 활활 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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