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력(물리) 맛 좀 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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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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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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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2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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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광반조

DUMMY

“쿨럭. 다 쓰러트린 건가?”


주위에는 시체만이 즐비해 있었다.


원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되어 있는 사체들 사이에 유일하게 살아있는 것은 나 혼자뿐이었다.


“그리고 여기가 나의 종착지라는 거고?”


홀로 살아왔다.


가진 것은 맨몸뿐.


돌아갈 곳을 잃은 나는 방황해왔고.


그 끝에 전귀(戰鬼)니, 10강이니 하는 거창한 이명으로 불리게 되었지만.


나는 그저 싸우고 싶어서 싸우고, 죽이고 싶어서 죽였다.


고고한 사명을 가지고 마족과 싸우던 영웅들과 달리, 나는 그런 짐승 같은 삶을 살았을 뿐이다.


재능도, 운도 나름대로는 있었던 것이겠지.


아니라면 진작에 전장의 넋이 되었을 테니.


그러나 그 삶도 여기서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철문을 부수고 성벽을 쪼개던 손발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언제부터 내가 바닥에 누워 있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


“신명 나게 싸웠구나.”


마장 크롬웰.


마족의 군단장이자, 가장 유명한 인류의 숙적 중 하나.


명성 못지않은 강적이었다.


내 일생 마지막의 적으로서 손색없을 강자였다.


“더 많은 마족을 죽이지 못한 것은 아쉽다만···”


내 마지막을 지켜보는 친구들도, 가족들도 없다.


싸움에 미쳐 살다 보니 가족을 이룰 생각도 하지 않았고.


일면식이라도 한 사람은 이미 흙으로 돌아간 뒤.

아쉬움이라면.


“도노반, 이프리안.”


오랜 사이인 다른 전우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지 못했다는 것이.


인간과 다른 시간의 흐름을 살아가는 두 사람과 달리 나는 이미 너무 늙었다.


육체는 전성기를 넘긴 지 오래고.


병에 걸린 5년 전부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빠르게 힘을 쇠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성녀 마리아벨의 힘으로도 병세 진행을 늦출 수 있었을 뿐, 근본적인 치료는 불가능했다.


강대한 신성력을 쑤셔 넣어서 병마의 진행을 억제하고 있었을 뿐이었고.


오러를 쓰면 쓸수록 병의 진행은 더 빨라진다고 말했다.


어제까지 잘 참아오기는 했지만, 나에게 오러를 사용하지 말라는 의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으라는 의미와 같았다.


“덕분에 마리아벨의 시간을 5년이나 빼앗아 버렸네.”


내가 가진 오러의 양과 동등한 양의 신성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은 성녀의 업을 지닌 그녀로서도 상당히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걸 5년이라니, 무리한 일을 부탁하기도 했다.


“제자들에게 더 가르침을 주지 못한 건 아쉬울 따름이지만···”


분수에 맞지 않는 제자를 기르게 된 것은 이프리안의 권유 때문이었다.


내 입으로 말한 적은 없지만, 병세가 진행되고 있다는 걸 이미 깨닫고 있었던 것이겠지.


내가 그대로 제자를 가르치는 완만한 삶을 살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주먹 하나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지 30년.


전장이 수련장이고, 적이 곧 스승이었다.


오늘보다 내일 더 강해지지 않는다면, 죽는 것은 내가 되었다.


아류라고는 하지만, 눈으로 훔치고 직접 맞아서 기억한 것을 전부 버무렸다.


그 끝에 강자로 추앙받게 된 나였지만.


그 최정상에는 도달해보지 못했다.


무(武)의 정점.


극의(極意).


<무신(武神)>


일권(一拳)으로 산을 날리고 바다를 가른다는 그 경지에는 닿지 못했다.


“조금만 나에게 시간이 더 있었다면...”


나에게는 살아가면서 목표로 내걸었던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마족을 절멸하는 것.


나머지 하나는 무의 정점에 오르는 것.


나름대로 발버둥 쳤다고 하지만, 결국 성취하지 못했다.


뚝-


아무런 전조도 없이 무너진 마족 성체의 천장에서 금색의 물방울 하나가 떨어졌다.


맑은 하늘에서 떨어진 한 방울의 물방울은 내 입을 타고 흘러들어왔고.


달콤하고 감미로운 맛과 함께 내 몸에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새똥은 아니었던 모양이네.”


움찔.


지금까지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던 손끝이 움직였다.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던 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러를 담아두었던 심장의 그릇은 이미 산산조각이 났다.


때문에 천천히 죽음을 맞이하면 될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힘없이 누워 있던 몸을 일으킨 나는 비틀거리며 어떻게든 내 두 다리만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길지 않다는 건 안다.


모든 힘을 금하고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면 그래도 몇 주 정도의 시간은 있겠지.


이게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시간.


“”스승님!””

“스승.”


귀에 익어버린 목소리.


그러나 이곳에서 들려서는 안 될 어린 제자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상처가··· <리커버리>”


성녀 마리아벨의 말에 전신을 수놓았던 자잘한 상처들은 물론이고, 잘게 씹혀서 형체도 알 수 없게 변했던 팔도 말끔하게 수복되었다.


“바보 같은 놈! 등신! 머저리 새끼!”

“라이오넬, 왜 그렇게 혼자서 무리를.”


나를 향해 욕을 씨부리는 고음의 목소리는 엘프이자 창궁(蒼弓)으로 불리는 이프리안의 것.


낮은 저음으로 나를 걱정하는 인물은 드워프이자 광창(狂槍)으로 불리는 도노반의 것.


내 전우들···


그리고 내 제자인 이안, 안나, 키올.


“여긴 웬일이냐?”

“웬일이냐니. 그게 할 소리야?”


이프리안은 나에게 항상 신경질적이다.


알게 된 지는 가장 오래되었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항상 이렇게 된다.


“라이오넬, 말해보게 왜 이런 무리를 했는지.”


도노반은 내가 왜 이런 무리를 했는지 대충 눈치채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에게 질문을 하는 까닭은 그 이유를 직접 내 입으로 듣고 싶어서겠지.


“죽을 곳이 필요했다.”

“죽을 곳이라뇨!?”


수긍하는 것만 태도를 취하는 도노반과 달리, 성녀인 마리아벨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전사는 전장에서 죽어야지. 평온한 삶 따위 나는 바란 적 없거든.”

“너는 꼭···”


이프리안은 오랜 삶을 사는 만큼 죽음에 대해 둔감한 다른 엘프들과 달리.


인간에 가까운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


“···가능하면 라이오넬 너는 오래 살아주길 바랬어.”


그녀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죽음을 봤고.


지금까지 본 것보다 더 많은 죽음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발버둥 쳐도 인간이 엘프보다 오래 살 수는 없다.


그런데도 그녀는 내가 살아 주기를 바란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내 몸 상태는 내가 가장 잘 안다.”

“···”

“마리, 어떻게 된 건데!?”

“보이는 상처는 다 나았어요. 라이오넬 씨의 몸은 이미...”

“상처는 다 나았는데 뭐가···”


그래 상처는 다 나았다.


나를 좀 먹는 것은 다른 것 때문이다.


“뭐야. 몸 전체가 검게...”


마리아벨의 조언을 무시하고 과도한 오러를 끌어내서 쓴 대가.


오러의 그릇은 깨어져 심장은 금방이라도 움직임을 멈추려는 듯이 느리게 뛰고.


약해진 몸에서 병마는 날뛴다.


[폐색성 마기 과다 축적증]


용병들 사이에는 편하게 [시체병]이라고 부르는 병이다.


밖으로 배출되지 못한 마기가 몸의 끝부분부터 검게 물들이며.


결과적으론 검게 변한 환부가 썩어 들어가고 움직이지 않게 되는 병으로.


팔, 다리부터 천천히 몸을 갉아먹는 그 병은 환부를 잘라내는 것 외에는 치료법이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팔다리 끝이 아니라 내장과 뼈 전반에 걸쳐서 전이되었고.


목 아래를 통째로 갈아 끼울 수도 없었던 터라.


마리아벨의 조언으로 연명치료만 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렇게 되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 눈으로 직접 이렇게 된 꼴을 보니 우습게만 느껴진다.


“이건 성녀의 힘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거야?”

“죄송합니다. 제힘으로는···”


병과는 별개로 내 생명력은 풍전등화다.


내 나이가 육십을 넘겼으니, 인간치고는 오래 산 편이리라.


거기다 오러의 그릇을 깨트린 것에 대한 대가로 마지막 불꽃같은 힘을 얻게 되었지만.


억지로 끌어낸 힘에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었고.


다 탄 불꽃은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라이오넬···”


이프리안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비슷한 감정을 가진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기분 나빠지게.”

“넌 이럴 때도 그런 농담을.”

“이프리안 내가 불쌍하나?”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아니.”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오래 살아서 좋을 것도 없지. 하지만 네 생각대로 제자들을 키우는 느긋한 삶이 어떨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면 왜···”

“생각해 보니 나쁘지는 않더군.”


내 주위로 쪼로로 달려와 나를 부둥켜안고 있는 제자 셋의 모습을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나에게 조금 더 시간이 주어진 것은 너희와 이렇게 마주보기 위함이었을 지도 모르겠네.”

“라이오넬님, 전과 같은 치료를 한다면 아직···”

“나는 죽어 있는 상태로 살고 싶지는 않다.”

“···”


산다는 건 자신의 생명을 불태운다는 것이다.


이미 내 불꽃은 꺼지기 직전.


타 나고 남은 양초에서 피어나는 연기 같은 것이겠지.


“안 잡아 줘도 된다.”


흔들리는 내 몸에 딱 달라붙어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제자들을 보며 말했다.


“스승님, 무얼 하시려고.”


꺼지기 전에 불꽃이라 하더라도 조금 정도는 더 대화를 나눌 시간이 남아있을 것이다.


염치 불고하고 성녀님께 신세를 조금 더 진다면 조금 더 시간을 늘릴 수도 있을 것이고.


여기 있는 모두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인다.


나도 아직 전하지 못한 말이 조금 남았고.


하지만.


“마지막이라면 마지막답게 화려하게 장식해야지.”


구질구질하게 말을 더 잇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


“””스승님!”””


제자들은 잠긴 목소리로.


“라이오넬!”


이프리안은 울음을 참는 것만 같은 목소리로 나를 향해 그렇게 외쳤다.


슬슬 시간이다.


나는 위태로운 발걸음을 하는 내 모습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뒤로하며, 거리를 벌렸다.


“제자들아 보아라! 이게 너희에게 주는 마지막 가르침이다!”


제자들에게 고지하듯, 나 자신을 고무하듯이 그렇게 외쳤다.


“후···”


그리고 전신의 힘을 빼고 자세를 잡는다.


그저 팔을 당기고 내지르는.


수만 번, 수십만 번, 혹은 그 이상 반복했을 동작.


내 인생 최후의, 마지막 일격.


“이게 내가 살았다는 증거다!”


이미 그릇이 깨진 나에게 남은 오러는 없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이치에 맞게 내질러진 주먹은.


지금까지의 어떤 지르기보다도 빠르고 강했다.


쿠우와아아앙!!!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에서 정적을 깨듯 소리는 뒤늦게 들렸다.


질러진 주먹은 허공을 가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족 성체의 벽을 몇 개나 부수고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산을 깎아 골짜기를 만들었다.


나는 내질러진 주먹을 되돌릴 생각도 하지 못하며, 일생일대의 일권(一拳)을 내질렀다는 만족감을 느꼈고.


“좋은 인생이었다.”


어두워지며 거꾸로 뒤집히는 시야 사이로 나에게 달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망막에 새기며 그렇게 눈을 감았다.


* * *


그리도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소문으로만 듣던 사후세계라는 곳에서 죽은 전우들과 재회하기는커녕.


300년 후의 미래에서 갓 태어난 어린아이로 다시 눈을 뜨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응애”


그것도 왕국 3대명가중 하나, 신성명가로 이름 높은 하이넨 가문의 막내 아들로서 말이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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