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 세계수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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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냥현자
작품등록일 :
2021.01.2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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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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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3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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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셰프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DUMMY

이효현이 주문한 물건은 곧바로 왔다.

일명 신속 배달이란 녀석이다.


“중국집도 아니고······ 어떻게 전화 한 번에 물건이 바로 오는 건데.”

“오랫동안 거래했던 사장님께 부탁 좀 했죠. 각 지방에 지부를 두고 계셔서 국내라면 어디든 가능하거든요.”


이효현 배달 온 주방용품을 확인했다.

육수나 대량으로 국을 끓일 때 쓰는 5L 국솥 두 개와 설거지에 쓰이는 세제다.


“이걸로 어떻게 설거지를 하려는 건데.”

“후후, 지켜보시죠.”


자신만만하게 곧바로 국솥 하나에 물을 채우기 시작했다.


일단 뭘 하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현석은 곧바로 들어온 주문을 처리하기 위해 뜰채를 집어 들었다.


“사장님, 무슨 일인가요?”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설거지를 해결할 좋은 방법이 있다던데.”

“확실히 설거짓거리가 많긴 하니까요. 어마무시할 정도로요······.”


희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건가.


장사가 잘되는 만큼 설거짓거리가 많은 건 당연하다 생각했던 현석이다.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던 모양이다.


“사장님이 혼자서 다 처리하셔서 몰랐지만, 요즘은 알겠더라고요.”


이효현이 들어오기 전까지 이따금 현석 대신 설거지를 했던 희나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현석이야 세계수의 가호 덕에 피로를 거의 느끼지 않기에 설거짓거리가 많든 적든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도 내가 설거지를 담당할 수만은 없으니까.’


희나의 의견을 들어보니 확실히 이효현 말대로 문제다.

앞으로 장사를 계속할 걸 생각하면 현석이 설거지를 맡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솔직히 지금까지도 아슬아슬했다.


주방보조로 희나가 있었고, 조리하기 간단한 라면이었기에 설거지할 틈이 있었던 거니까.


“생각해 보면 간당간당했던 거네.”


현석은 뒤늦게 깨닫고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실감했다.


좋은 기회를 얻어 맛집 사장이 되긴 했지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사장님, 다음 주문에 나갈 그릇이 부족해요.”

“아······.”


걱정하던 차에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잠시 기다려 달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는 순간.


“그릇 필요하죠. 여기 있어요.”

“이효현 셰프님!”


기다렸다는 듯 이효현이 라면 그릇을 내밀었다.

물기도 싹 닦인 그릇이다.


“어떻게······.”

“응? 아까 말했잖아요. 제대로 된 설거지가 어떤 건지 보여주겠다고요.”


이효현은 다시 설거지로 돌아갔다. 그런데 아까와는 상황이 달랐다.

몇 개의 그릇이 여유가 생길 만큼 설거지가 끝나 있었다. 그녀는 바로 쓸 수 있게 행주로 물기를 닦아내는 중이었다.


갑자기 설거지 능력이 향상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설거짓거리가 줄어든 건 아니다.


일단 하던 일이 있었기에 현석은 잠시 궁금증을 뒤로 미뤄뒀다.


아무튼 어찌어찌 문제를 해결했으니 궁금증은 나중에 풀어도 좋으리라.


***


“끝났다~!”


오늘 정산까지 마친 저녁 시간.

한껏 기지개를 켜며 이로니아가 외쳤다.


“아까까진 힘들어 죽겠다 뭐라 하더니만, 아직 힘이 남아도네.”

“아니거든요! 남아 있던 힘 다 써버렸다고요!”

“니아 언니. 여기 계산 틀렸어요.”

“에?! 그, 그럴 리가······!”


옆에서 마지막으로 계산을 검토하던 희나의 지적에 이로니아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자, 천천히 처음부터 다시 해봐요.”

“으으······ 더 이상은······!!”

“저도 도와드릴게요.”


희나가 돕는다고 하니 도망갈 구석이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몇 시간에 걸쳐서 했던 계산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자업자득이라 현석은 쓴웃음이 나왔다.

그것보다 희나가 고생하네.


“장사 끝나고 회식 중이에요? 꽤나 화기애애하네요.”


그때 맨 마지막으로 정리를 끝낸 이효현이 현석 옆에 앉았다.


“회식은 무슨. 평소처럼 노가리나 까면서 정산하고 있는 거지.”

“아······ 여기는 수작업으로 하는군요. 많이 힘들겠네요.”


테이블 위에 올라온 정산표와 현금을 쓱 살펴보았다.

이효현은 언제나 요리에만 집중했기에 정산은 전문가에게 맡겼다. 실제로 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매일매일 정산하는 거 안 힘들어요? 이 정도 규모면 사람을 고용해도 될 텐데요.”

“이렇게 모여서 하면 금방인데 사람을 쓸 게 뭐 있어.”


계산에 서툰 이로니아가 시간이 좀 걸리긴 해도 딱히 힘든 작업은 아니다.

무엇보다 그날 수익을 확인하는 건 사장으로서 기쁜 일이다.


“이해할 수 없네요. 돈을 버는 건 당연한 건데 말이죠.”

“너무 자만하는 거 아니야?”

“사실인데요. 전 한 번도 가치 없는 요리를 해본 적이 없어서요.”

“······.”


유명 셰프라고 하더니 자신감이 충만하다 못해 넘쳐흘렀다.


뭐,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기에 새삼스러울 필요가 없지만.


“일은 잘 끝났어?”

“보시다시피요. 문제없이 끝냈죠.”


슬쩍 주방을 보니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시선을 돌려 이효현을 보자 자신감 충만한 얼굴로 입꼬리를 올렸다.


“제게 물어보고 싶은 거라도 있는 표정이네요. 후후, 공손하게 부탁한다면 알려주지 못할 것도······.”

“됐어. 문제만 없으면 상관없으니까.”

“잠깐만요. 왜 그렇게 쿨하게 넘어가는 건데요! 솔직히 궁금하잖아요.”


어, 궁금하긴 했지. 딱 1분 전에는.


현석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닫을 준비를 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러지 못했다.

이효현이 거칠게 소매를 붙잡아 자리에 도로 앉혔다.


“뭐야. 이제 가게 닫고 쉬고 싶다고.”

“잠깐이면 된다고요. 앞으로 장사에도 도움 되는 이야기라니까요.”


좋은 거라고 계속 권하는데, 보통 이러면 더 듣기 싫어지기 마련이다. 청개구리 심보라고 할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효현이 잘난 척 이야기하는 게 이상하게 현석은 눈꼴이 시렸다.


“사장님, 한 번 들어봐요. 저도 궁금해요, 이효현 셰프님이 어떻게 하셨는지.”


어느새 정산 작업을 마친 희나가 관심을 나타냈다. 한편 이로니아는 모든 기력을 다 썼는지 테이블에 널브러져 있었다.


“뭐, 희나가 그렇게 말한다면······.”


현석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설명하라 턱짓했다.


대충인 태도에 살짝 미간이 좁혀졌지만 작게 헛기침을 하며 이효현은 입을 열었다.


“설거지는 식당 운영에 있어서 기본 중 기본이에요. 과장해서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죠.”


유명 셰프답게 강의 경험이 많아서 그런지 설명에 막힘이 없었다.


“그동안은 어떻게든 잘해 온 모양이지만. 원래 방식은 너무나도 좋지 못해요. 지금까지 설거지는 사장님 혼자 맡아왔죠?”

“뭐, 그렇지.”


현석의 대답에 희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니아는 실수가 잦았고, 희나에게 맡기면 조리에 차질이 생긴다.


결국 체력이나 상황에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현석이 틈틈이 전담해 왔다.


“오늘 하루만 상태를 봤는데 심각해요. 솔직히 한 사람이 전담해도 될까 말까 한 수준이라고요. 지금까지 이걸 조리를 하면서 했는지도 의문이라고요.”

“의문일 게 뭐 있어. 그냥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그 말 꽤나 열받게 하는 거 알죠?”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왜 눈총을 받아야 하는지 현석은 알 수 없었다.


“아무튼 문제만 인식하면 해결 자체는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주방일에서 유일하게 효율만 따지면 되는 거니까요.”

“내가 한 게 그거 아니야?”

“효율보다는 주먹구구식에 가깝거든요. 솔직히 아무도 못 따라 한다고요.”


이효현은 한숨을 내쉬며 오늘 배달받았던 국솥을 가리켰다.


“이왕이면 식기세척기가 있는 게 좋겠지만······ 식당 사정상 힘드니 좀 옛날 방식을 써봤어요.”


설명한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5L 국솥에 각각 물을 가득 담고 주방용 세제를 적당한 비율을 넣어 섞는다.

거기에 접시들을 담가 놓았다가 찌꺼기가 빠져나가면 물로 헹궈 마무리한다.


“설거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찌꺼기를 빠르고 완벽하게 제거하는 거죠. 사전에 이렇게 해놓으면 효율적으로 설거지할 수 있죠.”

“대, 대단해요······!”

“······.”


희나가 감탄하는 가운데, 현석도 속으로는 살짝 감탄했다.


해결이야 간단해 보일지라도 생각하여 실행하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다.


게다가 그녀는 오늘 막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빠르게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내놓았다.


“자, 어떤가요. 제가 대단한 건 좀 아셨나요?”

“확실히 대단하네.”

“······. 웬일로 순순히 인정하네요.”

“인정할 건 인정한다고. 너 확실히 유명한 사람이 맞긴 하구나.”

“······크흠. 이제라도 아셨다니 다행이네요! 엄청 늦긴 했지만요.”


잘 모르는데 곧이곧대로 믿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아무튼 나름대로 현석은 이효현을 인정했다.

적어도 자신보다는 식당 일에 능숙해 보였다.


“그런데 너 셰프라며. 전문 요리사가 왜 이렇게 설거지에 대해 잘 아는 건데?”

“셰프라고 요리만 한다는 건 고정관념이거든요. 누구든 처음 식당에 들어가면 설거지부터 시작한다고요.”


여자가 결혼하고 손에 물을 안 묻히는 건 자랑거리가 되지만, 요리사가 손에 물을 안 묻힌다는 건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설거지는 요리에 있어서 시작이자 끝이에요. 시작과 끝이 엉망이고 잘 되는 게 있을 리 없죠.”


뻐기듯 말하는 태도는 잠시 제쳐 두고, 이효현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어쩌면 현석은 제일 기본을 간과하고 있을지 모른다.


단지 아버지가 했던 식당 일을 본 경험이 있고, 너무나도 맛있는 요리를 할 수 있다는 것만 생각하고 안이했는지 모른다.


‘반성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속으로 스스로 다시 되돌아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고마워.”

“······네?”


못 들을 소리라도 들은 듯 이효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 여자는 솔직히 감사를 표해도 난리네.


“고맙다고. 솔직히 말해서 네가 안 알려줬으면 눈치 못 챘을 거야.”

“······흠흠. 뭐, 그쪽이야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어째 시선을 피하고 손을 어디에다 둬야 할지 몰라 허우적댔다.


”어디 아프냐?“

“모, 몰라요! 아무튼! 앞으로 이런 식으로 운영되는 꼴은 볼 수 없어요. 제가 있는 이상, 제대로 해야 한다고요.”


그날을 기점으로 [강씨네 식당]은 대대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아직 쓸 수는 있지만, 슬슬 교체해야 할 것 같네요.”


주방을 쭉 둘러본 이효현은 그리 평했다.


“쓰는데 문제없는데?”

“겉으로 멀쩡하다고 다 괜찮은 건 아니에요. 기계도 정해진 수명이 있어서 되도록 정기적으로 교체해주는 게 중요하다고요.”


아버지 때부터 시작한 만큼 주방기기 대부분은 수명이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물론 그렇다고 꼭 교체하라는 건 아니에요. 가급적이면 교체하는 게 좋겠지만, 돈이 무한정한 건 아니니까요. 흐음, 이건 바꿔야겠네요. 노즐이 녹슬었어요.”


헌 노즐을 빼자 검은 때와 먼지가 가루처럼 떨어졌다. 거기에 녹슨 철 가루도 있었다.


“다행히 크게 심한 건 없어요. 조금만 수리한다면 한동안 쓰는 데 문젠 없을 것 같네요.”

“그건 다행이네.”


바로 교체 안 해도 된다는 말에 현석은 안심했다. 수입이 꽤 있긴 해도 아직 큰돈을 쓸 여유는 없었다.


“수리비는 많이 들까?”

“으음······ 뭐, 제가 아는 분을 통하면 좀 싸게 할 수 있을지도요. 잠시만요.”


이효현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만족한 얼굴로 통화를 마쳤다.


“사장님께서 특별히 싸게 해주신다고 하시네요. 앞으로도 자주 이용해 달라고요.”

“그거 괜찮은 거야? 그쪽을 이용할지 안 할지 모르는데······.”

“장사를 오래 하려면 최소 업체 한두 곳 정도와는 친분을 쌓아놓는 게 좋다고요. 이쪽은 제가 특별히 추천하는 곳이에요. 바가지를 쓸 걱정도 없고 사후 관리도 잘해주시니까요.”


유명 셰프의 말이라서 그런지 설득력이 넘쳤다.

이효현이 건넨 연락처를 받아 저장했다.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것도 바꿨으면 좋겠어요.”


이효현은 생각났다는 듯 수저통을 열었다.


그리고 꺼낸 건 쇠젓가락이었다.


젓가락?


작가의말

젓가락을 설거지 할 때마다 참 힘들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자꾸 손에서 미끄러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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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 세계수 식당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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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2화 이런 보상은 처음이지 21.02.11 123 3 12쪽
21 21화 축제가 남긴 것 21.02.10 108 3 13쪽
20 20화 축제에서 21.02.09 113 4 13쪽
19 19화 축제 담당자로 임명되다 21.02.07 114 3 12쪽
18 18화 여주 튀김 21.02.06 125 3 13쪽
17 17화 설득과 대책 21.02.05 132 3 11쪽
16 16화 지역 축제 준비 (2) 21.02.04 148 2 12쪽
15 15화 지역 축제 준비 21.02.03 171 2 12쪽
14 14화 좋은 제안? 21.02.02 198 5 13쪽
13 13화 셰프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2) +3 21.02.01 211 4 13쪽
» 12화 셰프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21.01.31 214 3 12쪽
11 11화 셰프님 뭐하세요? 21.01.30 233 7 14쪽
10 10화 셰프의 도전 (2) +1 21.01.29 259 5 12쪽
9 9화 셰프의 도전 21.01.28 270 6 13쪽
8 8화 신예 셰프의 등장 21.01.27 293 7 13쪽
7 7화 성장하는 세계수 21.01.26 291 6 12쪽
6 6화 뭘 원하는지 몰라 다 준비했어 21.01.25 314 5 12쪽
5 5화 알바생과 해결책 21.01.24 319 6 12쪽
4 4화 일해라 정령 21.01.23 351 8 15쪽
3 3화 식당 오픈 21.01.22 377 9 13쪽
2 2화 세계수 MSG 21.01.22 430 8 11쪽
1 1화 아버지가 남긴 계약 21.01.22 524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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