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비검무

웹소설 > 자유연재 > 무협

이검혼
그림/삽화
검혼
작품등록일 :
2021.01.24 14:07
최근연재일 :
2022.01.22 16:57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7,401
추천수 :
130
글자수 :
94,804

작성
22.01.15 15:32
조회
274
추천
6
글자
9쪽

독아방에 들이닥치다2

내 운명은 내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고




DUMMY

17. 독아방에 들이닥치다2



여기저기서 지금의 사태를 의심하는 소란스러움이 끊이지 않았다. 성질 급한 몇몇은 벌써 자신의 짐을 챙겨 천막에서 나오고 있었다. 청운은 다시 한번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힘주어 말했다.


“뒷일은 걱정하지 마시고 속히 자신의 갈 길을 가세요. 그리고 아무리 급해도 다시는 급전을 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청운은 수석 순찰에게 반은 윽박지르고 반은 협박하듯이 말했다.


“지금 당장 독아방으로 가자. 그곳은 어디에 있느냐. 앞장서라.”


“방의 총단은 이곳에서 약 오십여 리 떨어진 화현산 계곡 초입에 있습니다. 하지만 협객님, 제가 협객님을 모시고 방에 가면 저는 죽은 목숨입니다. 살펴주십시오.”


수석 순찰는 청운에게 간청하듯 말했다.


“네 목숨은 내가 반드시 책임진다. 그건 걱정하지 마라. 당장 앞장서라.”


청운은 다시 한번 단호하게 수석호위를 다그쳤다. 그리고 혹시나 이곳에 남은 놈들이 앞서 길을 떠난 사람을 해코지하지 못하도록 전부 혈을 짚어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세 시진이 지나면 혈은 저절로 풀릴 것이다. 혹시라도 이곳에서 일한 사람에게 위해를 가한다면 내 반드시 돌아와서가 징치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들도 즉시 이곳을 떠나 새 삶을 찾아라.


비록 칼밥을 먹고 살 수밖에 없다고 해도 가능하면 남을 착취하거나 해하지 않는 일을 하며 살도록 하시오. 내 장담하는데 오늘 이후로 강호에 독아방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오.”


청운은 자신의 의지와 단호함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의 왼쪽에 있는 채석장의 절벽을 향해 거의 전력으로 쾌-타-절 세 초식을 연달아 펼쳤다. 모두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거의 수십 장에 달하던 절벽이 청운의 검에 마치 종잇장처럼 베어져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시작을 안 했으면 몰라도 했으면 반드시 끝장을 봐야 한다는 것이 일에 대한 청운의 철학이었다. 청운은 곧장 수석 순찰을 데리고 독아방으로 향했다. 독아방은 제법 규모가 그럴듯했다. 대여섯 채의 전각이 보기에도 일반 장원의 크기를 훨씬 능가했다.


그리고 이곳으로 오는 동안 수석 순찰을 통해 알아본 바로는 독아방은 내당과 외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방의 총인원은 방주와 좌우 호법 그리고 총사를 포함해 이백이 조금 넘는다고 했다. 청운이 정문 앞에 당도하자 수석 순찰을 알아본 문지기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니, 이 야밤에 무슨 일이요. 뭐 급하게 보고할 일이라도···.”


“그게 아니라, 이 분께서 방주님에게 볼일이 있다고 해서···”


수석 순찰은 말을 얼버무리며 청운을 가리켰다. 청운이 불쑥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지금 즉시 귀 방주에게 보고해라. 광산 문제로 찾아온 손님이 있다고.”


“당신이 누군데 이 밤에 방주를 찾는 것이요. 내일 날이 밝거든 다시 오시오. 대낮에 와도 방주님께서 만나줄까 말까한데 어디 이 야밤에 무례하게 방주님을 찾는 것이오. 썩 꺼지시오. 경을 치기 전에.”


문지기는 아예 청운을 무시하며 손사래를 쳤다.


이래서는 시간만 끌 것 같았다. 청운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작심하고는 자기 앞에 있는 문지기를 그대로 밀어버리고는 대문을 향해 일장을 날렸다. 우지끈, 꽈-쾅. 대문은 그대로 박살이 나버렸다.


대체 무슨 일이냐! 야밤의 소란에 무기를 빼든 수십 명의 사내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그들을 본체만체한 청운은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너희들은 빠져라. 내가 만나야 할 사람은 방주다.”


“이놈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나 보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를 부려 행패를···.”


말과 동시에 청운을 향해 서너 개의 검이 청운을 향해 날아들었다. 청운은 초장에 기선을 제압해야겠다는 생각에 거의 오성의 공력을 사용해 자신에게 달려들던 자들을 향해 몸를 회전시키며 일장을 날렸다.


으-악, 아-악, 퍼-버-퍽, 쿠-쿠-쿵. 청운의 일장에 함부로 달려들던 자들이 추풍낙엽처럼 피를 토하며 사방으로 나가떨어졌다. 그때였다. 대기를 울리는 우렁찬 목소리가 정면의 전각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멈추어라. 대체 무슨 일이냐.”


모든 전각에 동시에 불이 환하게 켜졌다. 정면의 전각에서 제법 신분이 높아 보이는 세 사람이 장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가장 앞에 선 가슴에 銀자가 새겨진 황의의 도포를 걸친 사십 대 중반의 날카로운 인상의 사내가 흉광을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청운을 노려보았다.


청운도 한 치의 물러남이 없이 사내를 마주 노려보며 짧고 단호하게 소리쳤다.


“방주를 만나러 왔소.”


“이놈이 실성을 했나. 여기가 어디라고 한밤중에 들이닥쳐 다짜고짜 방주님을 찾다니. 네 오늘 네 놈이 이승을 하직하게 도와주마.”


황의인 옆에 서 있던 관자놀이에 칼자국이 깊게 팬 흉터를 가진 흑의의 사내가 인상을 있는 대로 구기며 곧바로 자신의 검으로 청운의 목을 찔러왔다. 자세히 보니 객점에서 청운에게 함부로 욕을 하고, <목운서점> 근처의 골목에서 청운에게 잔인하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대던 바로 그놈이었다.


그자를 보자 청운은 그날의 참담함이 떠올라 분노의 불길이 머리끝까지 치솟아 올랐다. 인성이 전혀 갖추어지지 않는 저런 놈은 틀림없이 또 다른 사람을 함부로 해코지할 것이 뻔하다.


저런 놈에겐 인정사정없이 따끔한 맛을 보여 줘야 한다는 작심을 하자마자 청운은 구무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이 창안한 무위검의 쾌초식을 발출했다. 청운의 검에서 뻗어나간 투명한 적색 검기가 청운을 공격하던 흑의인의 가슴을 향해 빛살처럼 쏘아졌다.


“피해라!”


외침과 동시에 사십 대 중반의 銀자가 새겨진 도포를 사내가 청운의 검기를 자신의 검으로 맞받아쳤다. 청운의 검기와 황의인의 검기가 충돌한 찰나의 순간. 하지만 이미 흑의인은 왼팔이 잘려 나가고 옆구리가 베어 진 채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다급하게 청운의 검을 막아섰던 황의인마저 충격을 못 이겨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나 입가에 한 가닥 핏줄기를 입가에 흘리며 연신 몸을 휘청거리고 있었다.


“은 검사님! 괜찮으십니까.”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내 몇몇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귀하는 도대체 누구요. 우리 방과 무슨 원한이 있기에 이 야밤에 찾아와 이런 행패를 부리는 것이오.”


청운의 무위에 놀라서인지 한결 공손한 목소리로 황의인이 말했다.


“하월산 광산에서 볼모로 잡혀 강제 노역을 하던 사람들 문제 때문에 왔소. 빨리 방주에게 안내하시오.”


청운이 다시 한번 단호하게 말했다.


“광산과 선금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이 쓴 빚 때문에 그리된 것이오. 다시 말해 그들은 모두 정당하게 계약서를 쓰고 일을 하는 것인데, 귀하는 왜 부당하게 본방을 찾아와 이렇게 핍박하는 것이오.”


황의인이 한마디도 지지 않고 청운의 말을 반박했다.


“무엇이 정당이고, 무엇이 부당이오? 이보시오! 아무리 일을 해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터무니없는 이자로 선량한 사람에게 굴레를 씌워 평생을 노예로 부린 것이 정말로 정당하단 말이오.

내 오늘 당신들이 말하는 그 ‘정당’이 얼마나 부당한 것인지 단단히 깨우쳐 주겠소. 어차피 당신이 책임지지도 못할 일. 빨리 방주를 이 자리에 불러오시오.”


“대체 무슨 일로 이 난장판인가.”


뾰족한 턱에 염소수염을 기른 오십대 초반의 청의를 입은 중년인이 마치 자신의 목소리를 타고 날아오듯 장내로 날아들었다.


“구호법님을 뵙습니다. 청운을 에워싸고 있던 장정들이 일제히 그자를 향해 포권의 예를 취했다.


“네 놈이 이 푸닥거리를 했느냐. 네 놈은 누구냐. 대체 우리 방에 무슨 원한이라도 있느냐. 그이유를 바른대로 대지 못하면 오는 네 놈은 이곳에서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다. 내 장담한다.”


청의의 중년인이 푸른 섬광이 번뜩이는 분노의 눈빛으로 청운을 쏘아보았다.


“좀 전에도 말했지만 광산에서 강제노역을 하는 사람들 문제로 왔소. 당신이 책임질 수 없는 일이라면 일찌감치 방주를 불러오시오.”


청운도 전혀 지지 않고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청의인의 눈빛을 되받아치며 말했다.


“내가 그 문제를 해결할 순 없지만 네 놈을 없애버릴 순 있지. 네놈이 없어지면 결국 문제는 해결되겠지. 내가 모든 걸 정리해 주마. 내 도를 갖고 오너라.”


구호법은 옆에 있던 사내에게 말했다.


“안 그래도 여기 대령하고 있었습니다.”


청의인의 뒤에 시립하고 있던 흑의의 사내가 위맹해 보이는 큼직한 도를 청의의 중년인에게 내밀었다.


“이놈. 오늘, 내 귀호도법에 죽는 걸 영광으로 알라.”




Ⅰ. 내 운명은 내 삶을 살지 못하고 1. 늦가을 달빛은 지나간 미련을 아득히 비추고 늦가을 대기에 씻긴 달빛이 투명하다 못해 시리다. 하남표국 별채의 지붕 위, 밤하늘에 얼기설기 얽혀 살랑거리는 백송의 잔가지가 깊은 밤하늘에 달빛을 아로새기는 현자의 붓질 같다. 마치 고목의 일부처럼 백송의 한쪽 가지를 밟고 선 검은 복면에 흑의를 입은 인형이 불 켜진 별채 한곳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다. 별채의 창호지에 비친 그림자의 움직임이 마치 정물처럼 고요하다. 잠시 후 창문 한쪽이 활짝 열린다. 갓 이십 대가 될까말까한 백의를 말쑥하게 차려입은 청년이 고개를 내밀고 물끄러미 달무리를 바라본다. 무슨 상념이 그리 깊은지 그의 눈빛이 밤하늘보다 더 깊다. 한순간 청년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 바로 그 순간, 백송 가지가 미세하게 흔들리나 싶더니 검은 인형이 먹줄을 튕기듯 백의의 청년이 한숨짓는 방안으로 쏘아졌다. 방 안의 젊은이가 놀랄 틈도 없이 한순간 복면인의 시퍼런 검 끝이 젊은이의 목젖에 닿는다. "내놔라." 복면인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시퍼런 검 끝으로 젊은이를 찌를 듯 단호하다. "대체 뭘 내놓으란 말이오."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젊은이의 목소리는 차분하다. "모르겠단 말이지, 그럼 죽어야지." 복면인이 검 끝에 살짝 힘을 주자 검 끝에 한 방울의 붉은 피가 몽글 맺힌다. "정말 모르겠다면 내가 가르쳐주지. 이번 표행에 대한 표단(계약서)과 행로에 대한 정보를 모두 내놔라."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듯 흑의의 복면인은 칼끝에 한 번 더 힘을 주었다. 앳된 청년의 목에서 또 한 방울의 붉은 피가 시퍼런 칼끝에 맺힌다. 바로 그때였다. “그건 절대 안 되지!” 웅후한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우지끈 방바닥이 부서지며 번개처럼 한 인형이 위로 솟구쳐 올랐다. 그는 솟구쳐오름과 동시에 젊은이의 목에 대고 있던 검은 복면인의 칼끝을 쳐냈다. "드디어 꼬리를 잡았구나." 바닥에서 회오리처럼 솟아오른 청삼의 중년인이 흑의의 복면인을 향해 분기에 찬 호통을 치는 순간, 하남표국의 모든 전각과 마당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그 불빛 속에 검과 활을 든 한 무리의 장한들이 별채를 완전히 에워싼 채 금방이라도 흑의의 복면인을 도륙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비록 날개가 있더라도 너는 절대로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빨리 복면을 벗고 네가 누구인지를 밝혀라." 청삼인의 단호하면서도 서늘한 목소리가 흑의 복면인을 겁박했다. "그 무슨 개소리를 그렇게 논리적으로 하시나.“ 청삼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흑의 복면인의 검이 청삼인의 심장을 찔러 갔다. "감히, 누구에게.“ 청삼의 중년인이 복면인의 검 끝을 살짝 목만을 젖혀 흘린 후 칼등으로 복면인의 검을 든 어깨를 후려쳤다. 청삼인은 흑의 복면인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을 목적인 것 같았다. 청삼인의 급작스런 반격을 예측하지 못한 복면인은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한 강한 충격에 다급히 문을 박살내며 밖으로 날아올랐다. 하지만 비가 오듯 자신에게 쏟아지는 화살 세례에 흑의 복면인은 결국 던진 돌이 떨어지듯 마당에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내려선 흑의 복면인을 보자마자 마당 중앙에서 여태까지의 모든 사태를 긴장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던 황의의 중년인이 소리쳤다. "나는 네 놈이 누군지 이미 다 안다. 그동안 나와 함께 동고동락한 옛정을 생각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이실직고하면 모든 걸 불문에 부치고 용서하겠다. 내 장담한다. 황일평, 이 표두!" 방금 흑의 복면인에게 고서을 지른 사람은 다름 아닌 하남표국주 능천삼이었다. 그는 사십대 후반의 나이로, 어릴적 낙일문의 제자로 들어가 낙일도법을 익힌 후 이십대 초반에 하남표국을 세워 하남 땅에서 황룡표국과 어깨을 겨루는 제법 규모가 있는 표국을 만들었다. 그는 육척의 장신에 성품이 호탕하고 뒤끝이 없어 주변에 평판도 좋았다. "이미 내 정체를 아니까 이따위 복면은 필요 없겠지." 흑의의 복면인, 아니 황표두는 자신의 복면을 확 벗어젖혔다. 그는 삼십대 중반의 구렛나루가 덥수룩한 강인한 인상의 사내였다. "국주님, 무림의 은원은 말이 아니라 검으로 하는 것이지요.“ 황표두는 말과 동시에 급습하듯 능국주의 심장을 자신의 검으로 찔러갔다. "기어이 내 호의를 무시하고 나를 실망시키는군." 능국주는 자신의 말이 자신의 귀에 들리기도 전에 자신의 도를 뽑아 자신의 절기인 낙일도법을 전개했다. 파-파르르릉. 주변의 공기를 찢는 도의 파공음이 울림과 동시에 한줄기 붉은 도기가 황일평의 검기를 쪼개어갔다. 퍼-퍼-퍼-엉 굉음이 터짐과 동시에 황일평은 몸은 휘청거리며 수십 걸음 뒤로 주르르륵 밀러났다. 잠시 후 입에서 몇 모금 선형을 꾸역꾸역 토해내더니 풀썩하고 바닥에 그대로 꼬꾸라졌다. “저 놈을 포박해 창고에 감금하라. 내일 내 친히 심문해 진상을 낱낱이 밝히리라." 국주는 할 말을 마치자마자 백의를 입은 청년을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강서기 고생했네. 자네의 기지가 아니었으면 이번에도 어김없이 표물을 강탈당할 뻔 했네. 내부에 간자가 있을 거라는 자네의 예측은 정확했네. 어디 다친 곳은 없는가." "아닙니다 국주님. 저보다는 국주님과 전호법께서 잘 대처하신 덕분에 다행히 목을 살짝 긁힌 것 외에는 아무 탈도 없습니다." 청년이 가볍게 국주에게 목례했다. "아니지, 황궁에서 큰일을 해도 시원찮을 자네 같이 뛰어난 인재가 고작 내 표국의 서기가 되고, 게다가 내 못난 자식의 글 선생까지 해주니 내가 복이 터진 사람이지." 능국주는 자신의 말이 한 치의 거짓이 없는 진심이라는 듯 진지한 눈빛이었다. "과찬이십니다. 국주님." 청년이 다시 가볍게 능국주에게 목례를 했다. "그나저나 별채가 이렇게 다 부서졌으니 별채를 고칠 때까지 본채를 쓰시게." "배려에 감사합니다" 청년이 공손히 대답했다. 바로 그 순간, 적의를 입은 이십대 후반의 청의를 입은 표사가 능국주를 향해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 국주에게 다급한 보고를 했다. "국주님! 황표두가 쓰러질 때 독단을 깨물었는지 절명했습니다." "괴사로군, 괴사야. 어쩔 수 없지. 내일 날이 밝자마자 의원에게 보이고 무슨 독인지 알아보게." 능국주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자리를 떴다. * * * 본채로 쉬러 가던 강서기, 아니 강청운은 마음을 바꿔 정원 연못가에 있는 전각에 올랐다. 갈대와 부들이 무성한 수면에 잠긴 달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청운은 자신의 지나온 과거를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는 동네에서 천재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었다. 내가 못내 자랑스러운 약초꾼 아버지는 산에서 귀한 약재를 캐 오시면 나부터 챙겨 먹이셨다. 물론 어머니와 여동생에게도 잘 대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가족에 대한 가장의 의무로 그런 것이라면, 나에게는 가족이라는 혈연의 정에다 미래에 대한 어떤 기대 같은 것이 더 담겨 있었다. 그리고 학당의 훈장님이 나를 칭찬했다는 소리를 다른 사람을 통해 때마다 불콰하게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곤 하셨다. 그리고 술기운에 쓰러져 잠이 드실 때까지 집안 식구들에게 몇 번이고 거듭 사는 맛이 난다고 중얼거렸다. 현에서 치른 세 번의 해시와 향시에서는 세 번 다 장원을 했다. 하지만 중앙에서 치른 회시와 전시에서는 나름 답안지를 완벽하게 작성했다고 자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낙방을 하고 말았다. 그때마다 나는 과거에서 낙방한 것보다 부모님과 스승님을 또 실망시키고 말았다는 자괴감과 절망감에 죽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약초를 캐러 산에 올랐던 아버지가 절벽에서 떨어져 돌아가셨다. 목과 가슴에는 짐승이 그랬는지 아니면 어떤 외력에 의한 것인지 도저히 구분이 안 되는 상처가 몇 군데 있었다. 나는 더 절박해졌다. 홀어머니와 여동생을 먹여 살리려면 반드시 과거에 합격해 하급관리라도 되어야 했다. 그래서 아버지 장례를 끝내자마자 공부에 더욱 매진했다. 작년에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한 번 더 과거에 응시했으나 역시 또 떨어졌다. 그때 고개를 들어 바라본 하늘은 푸르기는커녕 샛노랬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오월의 먼지 펄펄 날리는 관도 위에서 그만 탈진해 쓰러지고 말았다. 그 순간 나는 그대로 이 세상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가의말

열독해 주시는 독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도비검무는 회차가 늘어갈수록 서사가 확대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계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도비검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0 하오문의 호법사자가 되다1 22.01.22 227 7 10쪽
19 天의 사자와의 조우 22.01.19 254 4 10쪽
18 독아방에 들이닥치다3 22.01.17 256 6 8쪽
» 독아방에 들이닥치다2 22.01.15 275 6 9쪽
16 독아방에 들이닥치다1 22.01.11 290 7 10쪽
15 하오문을 찾다 22.01.07 299 6 12쪽
14 다시 강호로 22.01.04 311 8 9쪽
13 생사현관의 타통 22.01.01 328 7 11쪽
12 무위검의 탄생 21.12.29 341 5 10쪽
11 수중동굴 속에서의 각성 21.12.27 360 7 12쪽
10 첫 표행, 마지막 표행 21.12.24 351 5 19쪽
9 무림맹으로2 21.12.22 342 5 8쪽
8 무림맹으로1 21.12.20 358 5 9쪽
7 인연과 악연2 21.12.18 387 6 9쪽
6 인연과 악연1 21.12.15 406 6 11쪽
5 붓 대신 칼 +1 21.12.11 493 8 13쪽
4 우연한 나들이는 우연한 기연을 만나고 2 21.12.08 509 6 11쪽
3 우연한 나들이는 우연한 기연을 만나고1 21.12.05 514 6 9쪽
2 내 운명은 나를 모르고 21.12.03 462 7 13쪽
1 내 운명은 내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고 +1 21.11.25 639 13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