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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골드
작품등록일 :
2021.02.0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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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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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2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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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4. (2)

DUMMY

그렇게 어느새인가 우리는 언덕 위에 도착해 있었다.

아래로 도시의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바람이 상쾌한 장소.

여태까진 굳이 신경쓰지 않았지만. 당연히 이 정도의 넓은 공간에 사람이 적고 조용하다는 이야기는 그 장소의 목적이 따로 있단 얘기다.

벽돌로 쌓아올린 방 한 칸 크기의 작은 납골당을 기준으로 주변은 온통 키 작은 풀들이 덮여있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다지 화려하지는 않지만 가지각색의 크기와 모양으로 다듬어진 묘비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 있다.


“여기로 괜찮겠어요?”


이제와서 묻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기에 요랄다에게 물었다.


“충분... 아니 오히려 넘치는 정도네.”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괜찮은 곳이군. 관리도 잘 돼있어.”


요랄다의 말에 파올이 맞장구를 친다.


“북부에 대해선 그저 멀고 불편한 곳이라는 선입견만 있었는데. 무덤가를 이렇게나 깨끗히 만드는 문화라면 좀 더 머물고 싶어지네. 근처도 둘러보고.”


“응. 그게 좋겠다.”


파올과 요랄다가 무덤에 나아있는 작은 길을 조심스럽게 걸으며 주변의 잡초들을 하나 둘 뽑아버렸다.

요랄다가 셰피에게 묻는다.


“셰피는 어때?”


“너무 좋아요. 상상한 것 보다 더.”


아니 무덤가가 마음에 든다는 건 이상하지만....

나랑 같은 생각을 했는지 요랄다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렇지만 무슨 느낌인지는 알겠다.


“포웬.”


“네.”


“좋은 장소야. 그러니까 걱정할 것 없어. 이곳이라면 오히려 축복을 받을 지 모르겠구나.”


“뭔가 달라지나요?”


스테이터스 적으로 혹시라도 저주를 풀어준다 거나?


“그런 불경한 생각 말고. 그냥 좋은 일이 생기길 기원해준다 정도로 받아들여.”


그러면서 무덤가를 한 바퀴 돌아. 묘지 뒤 쪽에 수풀이 우거진 곳에서 이름모를 하얗고 노란 들꽃들을 따오기 시작했다.

파올도 아무 말 없이 요랄다의 행동을 따라하며 거들어준다.

그리고선 따온 꽃에서 꽃잎들 만 따로 모아 거뒀다.

줄기와 이파리는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말리듯이 펴 놓는다.


“안식을 취하는 앞서 잠든 영혼들이여. 부디 이곳에서 일으킬 소란을 잠시 너그러이 양해해주길 바랍니다.”


“바랍니다.”


파올이 댓구하며. 모아놓은 꽃잎들을 무덤 주변으로 둥굴게 몇 톨미터 마다 한 송이씩 정성들여서 땅에 내려놓는다.

나와 셰피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그러면서 마침내 적절해 보이는 장소를 찾았는지. 요랄다가 나머지 꽃들을 모두 모은다.

그곳은 묘지의 제일 앞에 나있는 정 가운데 공터였는데. 바닥에 보폭 한 발자국 넓이 만큼 네 방향으로 꽃을 놓았다.

그 네 방향을 기준으로 또 다시 네 곳에 더해 꽃을 놓고. 또 꽃을 놓고. 그렇게 4방, 8방, 16방향에 걸쳐 열 여섯 송이의 꽃이 놓여진다.


“여기 가운데로 들어와. 꽃은 되도록 건드리지 말고.”


아무래도 내가 잘 모르는 의식이다 보니 조금 경건한 마음가짐을 가진 채 하라는 대로 따라한다.

나와 셰피 둘이 까치발을 들고 꽃을 두른 그 공터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신께서 이 자리에 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 이 파티 계약은 이곳에서 안식을 취하고 있는 모든 영혼들이 증인이 되어줄 거야.”


손바닥을 아래로 하고 앞으로 내밀라고 했다.

그리고 손가락을 굽히거나 붙잡지는 말라고도 덧붙인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자, 내 손등 위로 셰피의 손바닥이 포개어진다.

조금 전에 외설적으로 손바닥을 비벼대던 자기 모습이 그제서야 생각났는지. 요랄다와 파올은 짐작도 못하는 이유로 셰피의 머리가 펑 하고 빨개진다.

진짜 하나하나 감정표현이 너무 정직하다.

나도 덩달아 웃음을 참는다.


“이제 서로 파티를 맺어.”


“네? 어떻 게요?”


“그냥 할 수 있어. 비각성자들은 조금 요령이 필요하긴 하지만 각성자는 그게 ‘원래’ 가능해.”


생각해보자.

원래 가능하다고? 그렇다면 각성으로 충분히 끌어낼 수 있는 지식이다.

조금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힌다.

눈을 감자 언덕 위에 부는 바람들이 기분좋게 머리와 뺨을 살며시 스쳐지나간다.

셰피에게 말했다.


“셰피. 넌 앞으로 내 동료야. 던전에서 내 목숨을 맡길 게.”


“응.”


셰피가 이제는 피하거나 당황하지도 또 부끄러워 하지도 않고. 시원하게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모험가. 모험에 대한 것 만큼은 늘 저렇게 당당하다.

멋있구나 내 동료는.

그리고 셰피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맞닿아있던 서로의 손등과 손바닥에서부터 무언가가 촤르르륵 하고 스테이터스를 잡아당겼다.

순식간이었다.

아니 스테이터스를 잡아당긴다고?

스테이터스 어빌리티는 신에게 부여받은 가호. 인간의 몸 위에 덧대어진 것이다.

그 느낌은 마치. 몸에 거미줄이 찰싹 달라붙어서 내 팔을 함께 당겨주는 새로운 힘줄이나 보이지않는 근육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그 스테이터스가 셰피 쪽으로 조금 당겨지고 있었다.

그리고는 가느다란 줄 하나가 서로의 스테이터스에 연결되어 묶인다.

처음 느끼는 생소한 감각이 스테이터스의 거미줄을 간지럽히듯 흔들거렸다.

마치 거미줄 위에 앉아있던 내 발끝으로 다른 거미줄의 떨림이 전해지는 기분이다.

이게 모험가의 파티구나.


“어때 신기하지? 모험가가 아니면 이런 걸 느껴볼 수 없고 뭐라고 표현하기도 힘들지.”


“네....”


셰피도 비어있는 다른 한쪽 팔을 조금 움직여가며 그 신기한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이래서 파티를 맺으면 서로의 위치 정보를 알 수 있다는 것이구나.

두 사람의 스테이터스가 탄력있는 거미줄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이쪽이 진동하거나 떨리면 저쪽에도 그 거미줄의 떨림이 전해진다.


“아직 본편은 시작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놀라지 마렴.”


요랄다가 말했다.

파올은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이 처음 파티를 맺을 때를 떠올리는지 즐겁게 웃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그의 얼굴 어디에서도 어두운 그림자나 죄책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계약은 이제부터야. 보통 어느 한쪽이 제안하고 다른 한쪽이 받아들이는 일반적인 파티와는 달라. 간다.”


간다니 어딜?

여기서 또 뭘 더 간다는 건가.


“요청. 코어 룰.”


살랑거리던 바람이 사그라들었다.


“카테고리 파티 계약. 상호 간의 일치된 합의에 따라 사레이 호수 드루이드의 마더 체체란싱의 방식을 따른다. 제안자는 요랄다. 당사자는 포웬 고릴리아 와 셰우페니르. 선언하오니 거짓이 있다면 원래로 돌아갈 것이오 진실하다면 목소리에 응답하세요.”


통!


하고 호수 표면에 거대한 물방울이 또롱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나와 셰피가 밟고있는 땅을 제외한 주위의 동그랗게 놓여있던 꽃잎이 바깥으로 촤르르륵 퍼져나갔다.

아니 퍼져나가는 것 처럼 보였다.

꽃으로 둘러싼 원 밖에 서 있던 요랄다가 수 십 톨미터 바깥으로 쭈우우욱 멀어진 채 서 있었다.

언제 저기까지 간 거지.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꽃들이 놓여져있는 모양과 꽃잎 하나하나 조차도 원래 위치 그대로 였는데. 단지 꽃들 사이의 간격이 어마어마하게 넓어져 있었다.

보폭 딱 한 걸음 크기만한 작고 둥그런 꽃의 원이 어제의 도시 광장처럼 커다랗게 넓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 한가운데에서 나와 셰우페니르 만이 처음 파티계약을 맺을 때 자세 그대로 제자리에 서 있었다.


“들리니?”


정말로 저 멀리서 말하는 것처럼 요랄다의 목소리가 개미 목소리만 하다.


“기분이 어때?”


“귀에 물이 찬 기분이예요.”


“이거 꿈은 아니죠?”


셰피가 묻자 요랄다가 싱글벙글 웃는다.


“요랄다한테는 우리가 어떻게 보여요?”


“어떻게 보이긴. 똑같지. 그렇지만 포웬. 네 입은 제잘거리는데 눈에 초점이 없어.”


“우린 요랄다가 개미같이 보이는데.”


“부럽다. 나도 해보고 싶긴 한데.”


요랄다가 그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뒤를 돌아보며 파올을 불렀다.


“파올!”


파올의 존재는 꼭 어두운 연극 무대 뒤쪽에 조명이 없는 곳에 서 있는 보조 출연자처럼 느껴졌다.


“안돼 안돼. 안해! 절대 안해.”


“생각해보니까. 우리 제자한테 파티 계약을 맺으라고 해놓고 스승들이 아무것도 안하면 되겠어? 체면이 안 서잖아. 한 팀이 늘어나나 두 팀이 늘어나나 지금 당장 해버려도 아무 상관없는데. 응?”


파올이 생각해보니 자신들도 파티 계약을 맺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확하게 어제 저녁에 셰피의 설득으로 그 이유가 사라져 버렸다.


“응?”


요랄다가 또 다시 발랄하게 묻는다.

어이. 빨리 좀 결정해요.

이거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됩니까.


“세계수의 성좌시여....”


어딘가에서 끌고오는 것처럼 요랄다가 시커먼 그림자의 손목을 붙잡은 채 그대로 꽃으로 된 원 안으로 들어왔다.

무대의 조명이 비추지 않는 바깥에 서있던 검은 그림자는. 촤라라락 꽃잎들과 함께 어두운 부분이 벗겨지며 파올의 모습을 드러냈다.


“요랄다! 파올!”


셰피가 흥분해서 소리친다.


“하아... 이렇게 될 수도 있구나.”


파올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

나도 둘이 이렇게나 갑작스럽게 파티 계약에 합류하게 될 줄은 몰랐다.


“다시 만나게 되서 반가워요 파올. 혼자보다 둘이 훨씬 낫네요.”


그의 표정은 세상에서 제일 쓴 맛 나는 약초를 우겨넣은 것 같은 얼굴로 일그러져 있었다.

방금까지 옆에 있어놓고 만나서 반갑댄다.

왠지 셰피 뿐 아니라 나 또한 엄청나게 기분이 좋아져서 파올을 놀려먹었다.

어쩐지 동료가 생긴 기분이다. 이 기분을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할까.

깨소금맛? 나만 당할 수 없지?

나보다 경험도 많고 레벨도 높은 모험가들이지만. 파티 계약이라는 면만 놓고보면 똑같이 처음이었으니 일종의 계약 동기생이 되는 거 아닌가.

이런 즐거움을 어찌 기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나.


“설마. 어제 네 녀석의 잔꾀는 이 상황을 만들기 위한 큰 그림이었냐?”


“하하하. 제 지능에 그럴 리가 있나요.”


그랬다면 난 레인저 후보가 아니라 대마법사다.

요랄다는 그 와중에 꽃잎의 원 내부에서 주변을 둘러보며 감회에 젖어 있었다.


“안에서는 이렇게 보이는 구나.”


조금 쓸쓸해 보이면서도 어딘가의 그리움이 묻어나는 것이. 또 행복해 보인다.

그녀도 이 안쪽에 들어와 보는 것은 처음인 모양이다.


“요랄다.”


“계속 하시죠.”


셰피와 내가 그녀를 부른다.


“준비됐지?”


파올이 아직은 스스로를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복잡해보이는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요랄다가 양 손으로 그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자. 어깨에 힘을 빼고는 결국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에 또한 두 번째 당사자는 요랄다와 파올. 코어 룰에 의거하여 위 두 파티의 구성원들이 계약자로서 각자의 파티에 귀속됨을 선언합니다. 이 계약이 서로 간의 일치된 의사와 일치된 합의를 거쳐 동일동시에 파기되기 전까지. 바라옵건데 이곳에 모인 증인들 앞에서 약속의 존엄함과 숭고함을 천금과 같이 짊어지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와 같이 요청드립니다.”


빛이 휘날린다거나 무언가 마법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이미 충분히 마법같은 경험을 하고 있으니 뭐가 더 필요할까 싶지만.

바깥을 둘러싼 꽃잎의 원이 서서히. 그리고 부드럽게 안으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끝난 거예요?”


“응. 지금 당장 나가라는 얘기는 아니고.”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셰피가 자신의 몸을 둘러보지만. 손등에 특별한 무늬가 생긴다거나 머릿속에 나팔 소리가 울려퍼진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와중에도 꽃의 고리들은 천천히 우릴 중심으로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그 무대 바깥의 어두운 조명들 역시 점차 밝아지기 시작했고. 주변의 풍경들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느긋하게 감상한다.

현실감 없는 광경이 느리게 흘러가니 이건 이것대로 비현실적인데.


“그래? 그럼 이제 파티를 한 번 해제 해봐.”


셰피가 덜컥 겁을 먹었다.


“그러다 혹시 뭔가 잘못되면....”


“괜찮아 괜찮아. 계약 해지도 이거랑 비슷하게 의식을 치뤄야 하니까.”


주변의 형태가 완전히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바닥을 내려다보니 고작 보폭 한 걸음 만큼의 꽃으로 만든 공간도 그대로이다.

그때 어딘가에서 갑작스레 바람이 불어와. 무덤가와 우리 주변에 정성스럽게 내려놓았던 꽃들을 자연스럽게 언덕 아래와 하늘로 날려보냈다.

셰피가 나와 요랄다의 눈치를 살피더니 조금 호흡을 가다듬었다.

방금 파티 계약을 맺었는데. 사실은 꽃을 내려놓은 위치가 어딘가 잘못되서 계약이 실패했다거나 허무하게 깨진다거나 하면 좀 좌절할 것 같다.

파올도 긴장한 표정으로 셰피를 바라보았다.

셰피가 눈을 질끈 감는다.


“에잇!”


끼이익 탱!


하고 나와 셰피를 연결하고 있던 스테이터스의 거미줄 한 가닥이 확 하고 당겨졌다가 강한 반발과 함께 터엉 하는 충격을 받았다.


으히익.


실제로 소리가 들린거나 몸이 떨린 건 아니지만. 탄성있는 고무줄을 가득 잡아당겼다가 놓은 것 처럼 스테이터스의 가호에서 전해지는 기묘한 감각이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절대 안 끊어져.”


요랄다가 히죽 웃는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 바로 다음 순간 파올이


“으히익.”


하는 나와 똑같이 요상한 소리를 지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요랄다도 똑같은 실험을 시도한 모양이다.


“뭐야 이거.”


파올이 벌건 대낮에 도깨비라도 본 것 같은 얼굴로 자기의 양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어때. 이게 바로 코어 계약이란다.”


셰피가 실감이 안 나는지 파올과 요랄다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곤 나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눈이 투명해지며 눈물을 글썽거린다.

아이고 아가씨.

그리고는 와락 하고 셰피가 요랄다를 껴안는다.

물론 그녀의 키가 더 크니 모양새는 좀 이상하지만.


“요랄다... 요랄다.”


“그래. 그래. 이제 다 괜찮아.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구나.”


요랄다가 뺨을 부비며 머리를 파묻어 오는 셰피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파티 계약을 맺으라는 억지스런 요구도 불평 한 번 않고. 사실은 많이 무서웠지.”


“...응.”


둘 사이에 끼어들 틈이 없다보니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조금 다른 곳으로 돌렸다.

쳐다보고 있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다.

그런 내 옆에는 마찬가지로 파올이 다가오고는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설명으로는 듣긴 했지만 파티 계약이란 게 이 정도인 줄은 전혀 몰랐다.

하지만 요랄다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비록 나름의 이유가 있다지만 이런 강력한 구속력을 지닌 계약 의식을 딸 같은 제자에게 강요한 셈이다.

게다가 상대가 누구인지 정해진 것도 아니고 상대방에 대해 알아갈 시간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실상 어떤 모험가와 만나게 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의 제자를 본인에게서 떨어뜨려 놓으려 무리를 시킨 거다.

내 입장 같은 건 조금 차치하고. 내가 셰피라도 무섭다고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파올과 요랄다를 화해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 모든 게 자기 탓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요랄다 일행이 좀 더 평범한 파티였다면. 셰피도 파티 계약을 맺으라는 강요를 받지 않았을 테고 여지껏처럼 셋이서 함께 남쪽으로 여행을 떠났을 지 모른다.

그랬다면 나는 셰피와 만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혹여 만난다 하더라도 그저 술집에서 스쳐간 한 때의 독특한 인연 정도로 생각했겠지.

혼자만의 망상일지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다 잘됐잖아. 다행이네.”


“...응.”


셰피가 어린애처럼 요랄다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고개를 끄덕인다.


“자. 이젠 동료랑 제대로 마주봐야지.”


그런데 셰피가 고개를 젓는다.


“너무 부끄러워....”


“이제와서?”


요랄다가 셰피의 어깨를 두드리며 깔깔 웃는다.


“포웬. 이런 때는 네가 나서라.”


파올이 내 옆구리를 톡톡 찌른다.


“자기도 부끄러워서 요랄다 눈도 못 마주치는 주제에.”


“너 하는 거 보고 따라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됐냐.”


그렇게까지 말해준다면 충분하다.

발끝을 떨어가며 초조해 하는 파올의 표정이 일품이었기에 나름 만족스러웠다.

셰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신기하게 거리가 가까워지니 서로에게 연결된 스테이터스의 거미줄이 마찬가지로 줄어들었다.

방향 뿐 아니라 거리까지 그대로 알 수 있다.


“그냥 파티를 ‘동료가 어딘가에 있구나’ 라고 한다면, 파티 계약은 ‘동료가 여기에 있구나’ 라고 알 수 있어.”


“가르치는 것 처럼 말해도 요랄다도 처음이 잖아요.”


요랄다가 드물게 조금 얼굴이 빨개졌다.

그리고 아직 그런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 셰피에게 귓속말로 뭔가를 속삭인다.


“어때? 눈을 감아도 동료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감각이.”


셰피가 요랄다의 어깨 너머로 귀끝까지 빨개진다.

저 상태보다 더 부끄러움 정도가 올라가면 이제부턴 내가 힘들어지니까. 이제 그만 적당히 놀렸으면 좋겠다.


“이리와. 셰피.”


한 숨을 쉬고 손을 내밀었는데 의외로 금방 손을 마주 내밀어온다.

내 왼 손목과 그녀의 오른 손목에 묶여있던 금속줄이 자성을 띄며 둥실 떠올라 부드럽게 가까워진다.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해야지.”


셰피에게는 아직 요랄다와 파올과 작별을 해야할 시간이 남아있다.


“응.”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셰피가 고개를 끄덕였다.

덩치는 소 만한데 마음이 여리기는 토끼 같구나.

이건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물론.


“이젠 당신 차례에요. 파올.”


바턴을 넘기 듯이 파올에게 말하자.

파올도 조금 진지해진 얼굴로 요랄다에게 다가갔다.

어떤 말을 할까 어떤 장난을 쳐줄까. 고민하는 얼굴로 파올이 다가오는 것을 느긋하게 기다리던 요랄다가.


“늦어서 미안해.”


그 한 마디에 결국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너무 늦잖아, 이 나쁜 자식아.”


아침의 햇살이 이제는 조금 정오에 가까워져 가는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지난 3년 동안 과거에 짖눌려 살아오던 이 두 사람에게 가장 필요했던 그런 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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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68. (2) +2 21.05.21 222 19 15쪽
178 68. (1) +1 21.05.20 224 23 16쪽
177 67. (3) +2 21.05.19 232 21 14쪽
176 67. (2) 21.05.18 233 17 14쪽
175 67. (1) +1 21.05.17 264 17 16쪽
174 66. (2) +4 21.05.15 271 27 14쪽
173 66. (1) +7 21.05.14 248 29 14쪽
172 65. (2) +3 21.05.13 242 21 15쪽
171 65. (1) +3 21.05.12 266 25 15쪽
170 64. (3) +2 21.05.11 249 25 11쪽
169 64. (2) +3 21.05.10 264 25 11쪽
168 64. (1) +1 21.05.09 268 23 10쪽
167 63. (2) +4 21.05.08 256 25 9쪽
166 63. (1) +3 21.05.07 243 23 10쪽
165 62. (2) +4 21.05.06 263 28 15쪽
164 62. (1) +5 21.05.05 280 27 14쪽
163 61. (3) +2 21.05.04 250 30 13쪽
162 61. (2) +2 21.05.03 252 26 14쪽
161 61. (1) 타오르는 눈동자들. 21.05.02 284 22 14쪽
160 60. (2) +5 21.05.01 259 32 14쪽
159 60. (1) +1 21.05.01 226 17 13쪽
158 59. (2) 21.04.30 297 28 11쪽
157 59. (1) 21.04.30 243 22 11쪽
156 58. (2) +3 21.04.29 256 30 14쪽
155 58. (1) 21.04.29 257 26 15쪽
154 57. (3) +7 21.04.28 300 30 10쪽
153 57. (2) +1 21.04.28 247 19 11쪽
152 57. (1) +1 21.04.27 283 24 10쪽
151 56. (3) +2 21.04.27 250 19 14쪽
150 56. (2) +2 21.04.26 275 24 12쪽
149 56. (1) +1 21.04.26 267 21 13쪽
148 55. (4) +1 21.04.25 287 22 13쪽
147 55. (3) +2 21.04.25 250 22 12쪽
146 55. (2) +5 21.04.24 294 30 14쪽
145 55. (1) +1 21.04.24 276 20 14쪽
144 54. (2) +1 21.04.23 288 26 13쪽
143 54. (1) 21.04.23 301 20 14쪽
142 53. (2) +12 21.04.22 343 32 13쪽
141 53. (1) +1 21.04.22 286 25 14쪽
140 52. (3) 21.04.22 274 20 12쪽
139 52. (2) 21.04.21 296 17 15쪽
138 52. (1) 21.04.21 278 18 15쪽
137 51. (2) 21.04.20 343 30 13쪽
136 51. (1) 21.04.20 312 22 12쪽
135 50. (5) 21.04.19 336 29 13쪽
134 50. (4) 21.04.19 313 24 11쪽
133 50. (3) +2 21.04.18 331 33 12쪽
132 50. (2) 21.04.18 304 31 12쪽
131 50. (1) 21.04.17 343 31 13쪽
130 49. (4) 21.04.17 300 25 12쪽
129 49. (3) +1 21.04.16 348 28 11쪽
128 49. (2) +1 21.04.16 326 23 13쪽
127 49. (1) +4 21.04.15 358 32 15쪽
126 48. 우리도 그 길로 향한다. 21.04.15 318 29 14쪽
125 47. (2) +9 21.04.14 359 48 13쪽
124 47. (1) +2 21.04.14 307 26 14쪽
123 46. (3) +2 21.04.13 348 34 16쪽
122 46. (2) +8 21.04.13 313 28 13쪽
121 46. (1) +7 21.04.12 345 33 11쪽
120 45. (2) 21.04.12 301 24 15쪽
119 45. (1) +2 21.04.11 335 26 14쪽
118 44. (3) +2 21.04.11 331 27 11쪽
117 44. (2) +1 21.04.10 334 31 12쪽
116 44. (1) 21.04.10 311 27 10쪽
115 43. +4 21.04.09 354 32 11쪽
114 42. (4) +5 21.04.09 320 33 13쪽
113 42. (3) +7 21.04.08 372 42 12쪽
112 42. (2) +2 21.04.08 308 25 13쪽
111 42. (1) +4 21.04.07 360 32 13쪽
110 41. (3) +2 21.04.07 305 27 13쪽
109 41. (2) +4 21.04.06 407 34 11쪽
108 41. (1) +2 21.04.06 386 30 13쪽
107 40. (2) +5 21.04.05 417 31 13쪽
106 40. (1) +5 21.04.05 375 27 14쪽
105 39. (4) +8 21.04.04 428 30 12쪽
104 39. (3) +1 21.04.04 382 25 13쪽
103 39. (2) +6 21.04.03 436 29 10쪽
102 39. (1) +1 21.04.03 400 25 14쪽
101 38. (2) +3 21.04.02 404 26 13쪽
100 38. (1) 21.04.02 403 21 13쪽
99 37. (3) 21.04.01 401 23 13쪽
98 37. (2) 21.03.31 358 17 13쪽
97 37. (1) 21.03.31 365 21 12쪽
96 36. (4) +1 21.03.30 375 23 12쪽
95 36. (3) 21.03.30 376 23 12쪽
94 36. (2) +1 21.03.29 393 23 13쪽
93 36. (1) 21.03.29 372 21 13쪽
92 35. +1 21.03.28 375 27 19쪽
91 34. (3) +3 21.03.28 404 30 13쪽
90 34. (2) +3 21.03.27 355 20 13쪽
89 34. (1) 21.03.27 409 26 12쪽
88 33. (3) +2 21.03.26 426 26 11쪽
87 33. (2) 21.03.26 391 21 10쪽
86 33. (1) 21.03.25 391 25 9쪽
85 32. (3) 21.03.25 407 20 11쪽
84 32. (2) +1 21.03.24 414 21 11쪽
83 32. (1) Equipment Quest. 21.03.24 404 24 13쪽
82 31. (4) +7 21.03.23 434 42 12쪽
81 31. (3) +1 21.03.23 404 22 11쪽
80 31. (2) +1 21.03.22 403 23 11쪽
79 31. (1) 21.03.22 407 24 13쪽
78 30. (4) 21.03.21 431 29 12쪽
77 30. (3) +2 21.03.21 410 24 11쪽
76 30. (2) +3 21.03.20 416 24 15쪽
75 30. (1) +1 21.03.20 442 26 17쪽
74 29. (2) +1 21.03.19 419 29 13쪽
73 29. (1) 21.03.19 421 28 13쪽
72 28. (4) +3 21.03.18 425 27 12쪽
71 28. (3) 21.03.18 392 26 12쪽
70 28. (2) 21.03.17 386 25 12쪽
69 28. (1) 21.03.17 455 26 11쪽
68 27. (3) 21.03.16 419 33 15쪽
67 27. (2) +1 21.03.15 469 27 15쪽
66 27. (1) +1 21.03.15 448 32 14쪽
65 26. (4) +6 21.03.14 450 35 16쪽
64 26. (3) +1 21.03.14 451 33 17쪽
63 26. (2) +1 21.03.13 456 32 15쪽
62 26. (1) 21.03.13 467 30 17쪽
61 25. (4) +5 21.03.12 459 30 13쪽
60 25. (3) +1 21.03.12 432 28 14쪽
59 25. (2) +2 21.03.11 448 25 18쪽
58 25. (1) 21.03.11 410 25 14쪽
57 24. (4) +2 21.03.10 463 29 14쪽
56 24. (3) 21.03.09 464 26 12쪽
55 24. (2) 21.03.08 444 28 16쪽
54 24. (1) +2 21.03.08 449 24 14쪽
53 23. (3) +1 21.03.07 480 31 11쪽
52 23. (2) 21.03.07 459 30 12쪽
51 23. (1) +2 21.03.06 473 29 13쪽
50 22. (3) +6 21.03.06 449 32 9쪽
49 22. (2) +1 21.03.05 489 29 10쪽
48 22. (1) +1 21.03.05 483 34 15쪽
47 21. (4) +1 21.03.04 499 36 11쪽
46 21. (3) +1 21.03.04 501 31 11쪽
45 21. (2) 21.03.03 471 35 11쪽
44 21. (1) +1 21.03.03 523 34 12쪽
43 20. (4) +1 21.03.03 461 37 12쪽
42 20. (3) +2 21.03.02 539 31 11쪽
41 20. (2) +2 21.03.01 501 37 14쪽
40 20. (1) 얼지 않은 라임베리. 21.03.01 546 35 11쪽
39 19. (4) +3 21.02.28 536 44 17쪽
38 19. (3) 21.02.28 534 31 13쪽
37 19. (2) +1 21.02.27 529 36 14쪽
36 19. (1) 21.02.27 558 31 15쪽
35 18. (3) +1 21.02.26 552 41 12쪽
34 18. (2) +1 21.02.26 583 43 12쪽
33 18. (1) +3 21.02.26 555 36 15쪽
32 17. (4) +6 21.02.26 515 48 12쪽
31 17. (3) 21.02.25 524 33 12쪽
30 17. (2) +1 21.02.25 541 31 12쪽
29 17. (1) +1 21.02.24 564 39 16쪽
28 16. (3) +2 21.02.24 564 41 11쪽
27 16. (2) 21.02.23 567 35 11쪽
26 16. (1) +4 21.02.22 605 44 16쪽
25 15. (2) +4 21.02.21 634 35 15쪽
24 15. (1) +1 21.02.20 654 40 15쪽
23 14. (3) +5 21.02.20 720 43 21쪽
» 14. (2) +3 21.02.20 701 39 18쪽
21 14. (1) +3 21.02.19 742 46 14쪽
20 13. +7 21.02.16 869 52 18쪽
19 12. +3 21.02.13 840 44 13쪽
18 11. (2) +3 21.02.12 844 53 15쪽
17 11. (1) +5 21.02.10 949 49 18쪽
16 10. (4) +5 21.02.08 905 57 16쪽
15 10. (3) +4 21.02.06 1,020 4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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