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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라이트노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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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골드
작품등록일 :
2021.02.01 17:52
최근연재일 :
2021.09.17 22:00
연재수 :
22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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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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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00,741

작성
21.03.2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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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
추천
27
글자
19쪽

35.

DUMMY

35.


서둘러서 계단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3층의 끝 방을 향해 달려간다.

하필이면 남성들의 목욕탕 출입구는 여관의 정면을 기준으로 왼쪽 끝에 있었기 때문에 301호실로 가려면 복도 전체를 가로질러서 반대편으로 가야했다.

우리 일행들은 편해서 좋겠다.

301호에선 바로 통로 끝 계단을 내려가기만 해도 되는데. 나는 앞으로 목욕탕을 갈 때마다 1층을 가로지르든 3층을 가로지르든 해서 반대쪽으로 건너가야했다. 그것도 일주일 내내!

뛰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걷는 것은 아닌 속도로 복도를 가로질러 마침내 301호 객실 앞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행이 늦지는 않은 것 같았다.

디귿자의 날개를 꺽어서 우리 객실 쪽을 보니. 마침 여성 고용인 한 명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301호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정말로 제 때에 도착한 것이다.

문을 닫고 나온 고용인이 조금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있는 날 보고 살짝 웃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낸다.

나도 정말 행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301호실의 문을 두드렸다.


“네.”


하며 아멜이 문을 열어준다.


“휴우. 다행이 안늦었네.”


그제서야 참았던 숨을 들이킨다.

그 짧은 순간에 나 몰래 파이를 먹어치운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조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려는데.


“포웬이다!”


하고 아멜이 갑자기 확 하고 뛰어서 내 목을 부둥켜 껴안아 버렸다.

으아닛. 뭐하는 거야 이 아가씨야.


“라임베리 파이! 잊지 않았구나.”


당황해서 세 사람을 번갈아서 쳐다보자 밀레나가 손짓한다.


“두 분 다 입구에서 그러지 마시고 어서 들어오세요.”


“응응. 빨리 먹자. 다 같이 먹어야지 맛있지.”


조금 정신이 없어져서 아직 완전히 마르지않은 젖은 머리를 정리하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돈도 제대로 지불했고 어차피 우리 파티의 객실이지만. 왠지 모르게 쭈뼛쭈뼛 하며 객실로 들어간다.


“실례합니다.”


“뭐야 그게. 바보같이.”


아멜이 웃었고 셰피도 웃었고 밀레나도 웃는다.

이게 우리 파티구나.

조금 전에 위그데인 파티의 지옥 같은 삼각관계를 살짝 엿본 후유증 때문일까. 어쩐지 조금은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대단해 포웬. 이런 식으로 객실에 간식을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어.”


셰피가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쓰면서도 내심 꺄아 하는 톤으로 좋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어깨가 자연스레 으쓱해진다.


“좀 전의 고용인 아가씨한테 물어보니 달투나에서 가장 맛있는 파이를 만드는 베이커리에서 사온 것이라고 합니다. 파이에 곁들여 마실 수 있는 차도 이렇게 주전자로 하나 가득 가져왔습니다.”


목덜미에 매달려있는 아멜을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주자 아멜이 다시 쪼르르 객실 내부에 있는 티 테이블로 달려간다.

그곳에는 먹음직스러운 파이 세 덩이가 기세좋게 포개어져 바구니 안에 쌓여있었다. 저거 한 덩이로도 세 사람은 족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게 2인분 씩이라는 모양이다.

와우.


“무겁지 않았을까요. 어떻게 들고 온 거지.”


셰피가 조금 미안함이 묻어나는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복도에 올 때 보니까 바퀴가 달린 요만한 카트를 끌고 가더라고.”


내 말에 밀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층을 오르내릴 때만 주의하면 이 정도 크기의 빵과 주전자라고 해도 여성 고용인 혼자서 다룰 수 있다는 거군요.”


“아니면. 밀레나가 저번에 얘기해 준 것처럼 승강기 라는 게 있을 지도 모르죠. 사람이 타고내릴 수준은 아닌 것 같지만.”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불이 켜진 객실을 조금 둘러보았다.

객실의 공용공간은 복도 만큼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밝고 환했는데 방안 벽에는 양초를 켜놓을 수 있는 철제 프레임이 설치돼 있었고. 허리 높이의 식기장 위에는 심지에 기름을 먹인 등유가 켜져 있었다.

1인실에는 벽촛대 가 아니라 작은 드로워 서랍장에 올려놓는 양초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3인실도 침대당 서랍장이 있다는 것만 빼면 비슷하다고 한다.

화장실은 객실 입구로 들어오자마자 바로 왼편에 마련되어있다.

목욕탕이 있는 여관이니 만큼 화장실은 평범한 여관의 화장실 사이즈들 보다 더 작은 느낌이었다. 딱 한 사람이 들어가서 자리에 앉거나 손을 씻을 수 있는 만큼 밖에 되지 않는다.

화장실 벽을 보니 객실에 있는 등유를 올려놓을 수 있는 빈 거치대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아하 이런 구조인가.

그러니까 방안이나 실내 공간은 양초를 쓰고. 들고다닐 수 있는 용도로는 등유를 사용하라는 뜻인가 보다.

어차피 양초나 등유가 필요한 시간은 하루 중 야밤의 몇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마저도 책을 볼 것이 아니면 금방 자버리겠지.

나 같은 경우는 밤에는 불을 켜고 끄는 것이 귀찮으니까 화장실을 갈 때도 밤눈으로 찾는다.

그 외에는 여느 여관처럼 바닥은 나무 바닥으로 되어있고. 벽은 절반은 나무 나머지 절반은 복도와 비슷한 색으로 회벽칠이 돼 있었다.

이 객실은 원래 크기는 2인실 2개 정도를 합친 규모인 듯 하다.

그렇지만 1인실과 3인실로 나눠 놓으면서 남는 공간을 이렇게 간단한 다과가 가능한 공용 공간으로 만들어 둔 것이다.


“어서 앉아.”


셰피가 손짓한다.

나와 마찬가지로 목욕을 마치고 적당히 느슨해진 복장에 머리카락은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아 있었다.

살짝 젖은 앞머리를 가볍게 정리해둔 셰피의 모습이 그제서야 뒤늦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목욕탕에서 있던 탓에. 똑같이 여관에서 준비해 놓은 비누가루를 썼을 텐데도. 어쩐지 좋은 향기 같은 것이 실내에 가득차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가급적 셰피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으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그녀의 목 아래 옷깃과 쇄골선을 바라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끄응....

아마 평소의 나였다면.

아니. 불과 아까 전의 나라면 분명 조금은 마음의 평온이 깨지거나 심란함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떠올리기만 해도 속이 체할 것 같은 위그데인의 이야기를 들은 덕분인지.

평소와 같은 옷차림이었지만 외투 한두 벌을 벗어놓아 훨씬 가벼워진 복장의 파티원들을 보고 통요하긴 커녕 오히려 편안해 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떤 의미론 조금 안심이 되기까지 하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약 어떤 이유에서이든 셰피나 아멜이나 밀레나가 그런 식으로 서로 싸우고 있었다면. 나는 진작에 위벽이 녹아서 쓰러져 버렸을 것이다.

그러니 어느 한쪽만 도움을 받은 게 아니라. 나도 위그데인에게서 도움을 받은 셈이다.

그의 고민을 들어준 덕분에 나도 평정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넷이 다같이 둘러 앉기엔 무리니까. 난 서서 먹을께.”


어제까지만 해도 레이디들과 함께 꺄르르 담소를 나누고 싶었는데. 지금은 어쩐지 저 세 사람 사이에 껴 있을 자신이 없어졌다.


“응. 그게 편하면 그렇게 해.”


셰피도 억지로 앉으라고 권하지 않고 내가 편한 쪽으로 배려해 준다.

그리곤 나무로 만든 식기와 접시를 들고 며칠 내내 이름만 들어보았던 라임베리 파이 하나를 절반 만큼 덜어낸다.

셰피가 바삭하게 잘 익은 윗면의 파이 크러스트를 가르자 구운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살짝 따끈한 김이 오른다. 그리곤 속에서 주르륵 하고 먹음직스러운 라임베리 필링이 조금 걸쭉하게 흘러내리며 파이 밑바닥에 고였다.

뒤이어 예전에 다 같이 먹어본 생열매의 그 시큼한 향이 아니라. 빵집에서 제대로 구워낸 달콤하고 향긋한 버터와 설탕과 복잡한 시나몬 향과 라임베리의 과일향이 방안 가득 퍼진다.


“우... 와....”


마치 무슨 의식이라도 되는 것 처럼. 다들 셰피가 내 분량의 파이를 덜어주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이거 너무 황송하다.


“먼저들 먹어도 돼.”


“그치만 이렇게 챙겨주느라 고생했잖아.”


“응. 응. 먼저 먹는 건 포웬이라고 정했으니까. 괜찮아.”


왠일로 아멜이 아까부터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니까 오히려 좀 두려울 정도다.

하지만 정말로 순수하게 파이를 먹을 수 있는 게 기뻤나 보다.

츄르륵 하고 침을 삼키며. 아멜이 접시 위로 덜어내는 파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어... 어제 꿈에 파이가 나왔어.”


그 정도로?

까먹은 척 하고 안사줬으면 진짜로 큰일날 뻔 했다.

솔직히 오늘도 원래 일정으로는 느긋하게 베이커리를 찾아다닐 여유 같은 건 없었다.

그렇지만 여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있길래 한 번 부탁해 보자 라고 한 건데. 덕분에 최고의 타이밍에 파이를 먹을 수 있게 됐나 보다.


“목욕을 마치고 다같이 방에 왔는데. 얼마 안돼서 누가 문을 두드리는 거야. 그러더니 다음 순간에 파이가 담긴 바구니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걸 볼 때의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


“아니. 미안...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정말 최고야. 남은 하루 동안 포웬이 아무리 바보 같은 소릴을 해도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을 만큼.”


그 정도였냐.

얼마나 대단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어감으로 보면 엄청 대단한 것처럼 느껴졌기에 감탄한다.

아니지. 누가 바보같은 소릴을 한다는 거냐.

밀레나도 웃으면서 나를 본다.


“정말 꿈이라도 꾸는 것 같습니다. 고맙게 잘 먹을게요. 포웬.”


“네. 제가 사겠다고 한거니 부담갖지 말고 마음껏 드세요.”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셰피가 덜어낸 파이 접시와 식기를 건네 주었다.


“자. 포웬.”


“응. 고마워.”


정말 만나보기 힘든 녀석이었다.

마침내 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것 같다.


“오늘 하루 고생 많았어. 그러니까 포웬도 맛있게 먹어.”


“응. 셰피도 고생 많았어.”


드물게 셰피가 조금 수줍어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솔직히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려. 자기 전에 이렇게 달콤한 파이를 먹을 수 있는 게 실감이 안나. 요랄다한테 들켰다면 아마 엄청 혼났을 거야.”


셰피는 어른들 눈을 피해서 밤에 몰래 군것질을 하는 기분인가 보다.

밤에 군것질 하는 건 맞지만 어른들한테 들킬 걱정은 없다.

그게 또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새삼스레 즐겁다.


“이는 닦고 자야겠네.”


“응.”


그리고나서 아직 말을 안해줬다는 걸 깨닫고 얘기를 덧붙였다.


“참. 뭐래더라. 여관 비용을 1골드로 계산했는데 그게 달투나의 은화 환율로 61실버 래. 그래서 31실버인 숙박비랑 관련 비용을 제외하면 30실버 정도는 신용 대금으로 맡겨놨어. 그 돈으로 이런 식으로 서비스를 받거나 식당 요금으로 낼 수 있나 봐. 술이나 음료에다가 간단한 심부름도 가능하다니까. 필요한 게 있으면 누구라도 주문해도 괜찮아.”


남으면 돌려받으면 되고 다 쓰면 알려준다니까 그점도 편리하다.


“진짜로?”


아멜의 눈이 무시무시하게 빛난다.


“그러니까 필요하다면 이라고 말했잖아. 매일 밤마다 이렇게 간식을 주문할 생각은 하지 말고.”


“응.”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긴 한 건지. 반짝거리는 눈으로 파이를 보며 황홀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자. 기도 담당. 파이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올려주세요.”


셰피가 그런 아멜의 어깨를 흔들어 제정신으로 돌려놓았다.


“아 맞다. 내가 기도 담당이구나.”


어느샌 스스로도 인정해버린 모양이다.

그리고 아멜 넌 주전자 담당이기도 하다.

그녀가 두 손을 공손히 모아서 여지껏 본 중에 제일 진지한 모습으로 기도를 올렸다.


“우리 파티. 라임베리 언프로즌이 처음으로 라임베리 파이를 먹어봅니다. 감사를 담아 이 파이를 별비의 성좌께 올리겠으니 부디 받아주세요.”


자기 입에 들어올 파이를 신에게 공물을 바치겠다는 저 기도를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다.

원래 다 그런 건가 싶기도 하지만.

진짜 저래도 되나?


“신들께선 그렇게 째째하지 않거든요.”


“아멜이 그렇게 말 한다면 분명 그런 걸 겁니다.”


밀레나도 이젠 우리 파티에 적응을 끝냈는지 좋은 게 좋은 거죠 라는 느낌으로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우리 파티의 종교적인 부분은 괜찮은 건가.

그렇게 다들 아멜을 따라 잠시 기도를 올린다.

그리고는 가만히 대기.

왜 그런가 했더니 내가 먹질 않으면 다들 먹질 못 한다는 눈빛으로 기대에 차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 나로서도 좋은 게 좋은 거 구나 라고 납득해버리고. 속으로 간단하게나마 고릴라 여신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라임베리 파이를 한 입 가득 베어물었다.


“잘 먹겠습니다!”


일말의 틈도 없이 곧바로 아멜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녀의 볼이 순식간에 엄청난 크기로 부풀어오른다.


냠냠냠.

우물우물.


“....”


처음 먹어본 라임베리 파이의 맛은.

와아 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명물이 괜히 명물이라는 불리는 게 아니구나.

그리고 다른 도시들의 농토와 비슷한 면적으로 펼쳐져있던 달투나 북쪽의 라임베리 과수원을 떠올려보니. 이 정도의 맛이기 때문에 그 정도 넓이를 차지하는 구나 라는 걸 단박에 이해했다.

파이를 먹기 전에 냄새는 시나몬과 버터향이 주류였다면. 먹은 뒤에 느껴지는 맛은 오직 라임베리의 상큼한 맛과 달콤한 맛이 절묘한 밸런스를 이루며 입안의 모든 미각 세포에 달라붙어 혀에 녹는 느낌이었다.

각성의 지식이 튀어나올 정도의 맛이란 거다.

그러니 먹기 전과 먹은 후의 빵에 대한 감각이 완전히 뒤바뀌는 대단한 맛이었다.

비유하자면 마치 처음에는 잘생긴 배우가 주인공인 줄 알았는데. 무대 뒤에서 가만히 서 있던 인물이 갑자기 가면을 벗어던지며 주인공을 차지해 버리는 그런 화려한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어머.”


“과연... 대단합니다.”


셰피와 밀레나도 눈동자가 커지며 파이의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아멜은 입이 귀까지 벌어질 듯이 헤벌쭉 웃으면서 입안에 음식을 넣고 오물오물 씹고있다.


“행보케.”


그래.

많이먹어라.


“이거 자기 전인데 다 먹을 수 있으려나.”


파이 한 개의 절반 분량을 덜었는데도 이 정도다.


“먹을 수 있어.”

“있습니다.”

“있을 것 같아.”


세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어... 뭐.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순간 화르륵 하고 뿜어져 나오는 그녀들의 기세에 놀라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생각해보니 세 사람 다 나랑 같은 량으로 저녁을 먹지 않았나?

저녁 이후에 후식으로 먹기엔 많긴 많은 것 같은데.


“여자들한텐 디저트가 부담된다 라는 단어가 없어.”


무슨 말인지 잘 못알아듣겠는데.

어째서? 라고 물어보니.


“디저트를 포기할 바에는 밥을 안먹어 버리니까.”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응?”


“그 정도라는 거야.”


“잘 모르겠지만 알거 같다.”


고향마을에서 르당바울까지 매일 2끼만 먹고 10일 동안 걸어왔다는 아멜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온다.


“그럼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해.”


누가 묻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말을 했다.

파이 한 덩이의 절반을 먹는 데도 벌써 배가 부른다. 하지만 다른 세 사람은 아직도 량이 안찼나보다.

모자라지 않도록 2인분을 더 주문한 게 정답이었으리라.

고급스러운 광택이 나는 은제 주전자에 담긴 차를 따라 마셨다.

향 자체는 그저 담백한 곡물향이 나는 것 같았는데 입안에 들어오니 의외로 떫으면서도 쓴 맛이 확 하고 퍼졌다가 금세 입안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그 향이 사라진 자리에는 달콤하게 혀를 덮었던 파이의 향도 함께 씻겨져 버렸다.

과연.

고개를 끄덕인다.

달콤한 파이와 함께 먹기에는 최고의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이거라면 나도 욕심을 내서 파이 한 조각을 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저렇게 즐겁게들 다과를 즐기는 모습을 보니 내 돈으로 샀다는 아쉬움 같은 건 벌써 사라져버렸다.


“우히힛.”


행복해서 눈을 뜰 새가 없다는 듯이 입을 오물거리는 아멜에게 밀레나가 말을 건넨다.


“아멜도 이 차랑 같이 곁들여서 마셔봐요. 훌륭합니다.”


확실히 이런 좋은 차를 내버려두고 빵만 포식하면 너무 아깝지 않나.


“이 차도 포웬이 주문한 거야?”


셰피가 눈을 빛내며 묻기에 어쩐지 나도 뻥을 칠까 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힐리먼의 추천을 받았다고 말해 주었다.

당장 차 이름이 뭔지도 모르니 물어보면 금방 들통날 게 뻔했고.


“응. 그래도 포웬 덕분이야. 대단해.”


“타인의 조언과 경험에 의지하는 것도 모험가가 갖춰야 할 덕목이죠.”


흠흠.

쑥스러웠지만 기분은 무척이나 좋았다.

지난 며칠 동안 받은 칭찬보다 오늘 하루 파이를 먹으면서 받는 칭찬이 더 많은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도 차와 곁들여서 남아있는 라임베리 파이를 금세 먹어치웠다.

잘 먹었습니다.

정말 맛있었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들어가게?”


셰피가 고개를 기울이며 묻는다.


“아아. 응. 다 같이 좀더 담소를 나눴으면 하지만. 배도 부르고 오늘은 일찍 자고 싶어서. 난 신경쓰지 말고 맛있게들 먹어.”


“그럼 그래. 바이바이.”


아멜이 가볍게 포크를 쥔 손을 흔들어 준다.


“먼저 실례할께요.”


밀레나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대로 걸음을 옮겨 1인실의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어두웠지만 공용공간과 창문 양 쪽에서 조금씩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캄캄한 건 아니었다. 물론 어둡다고 하더라도 레인저의 밤눈이 있으니 침대 모서리에 정강이를 찍힌다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문을 잠그고 침대에 엎어지듯이 쓰러졌다.

고급스러운 여관이라는 느낌이 나는 풍신한 이불과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오늘 하루동안 쌓인 피로가 후욱 하고 금세 온몸을 덮쳐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아까 전에 위그데인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정확히는 내가 그 청년에게 해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머릿속이 온통 파이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어쩐지 너무 말을 함부로 던진 것은 아닐까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서 발을 조금 동동 구른다.

으아아악.

쪽팔리다.

말도 안돼는 소릴 했다는 자각에 얼굴이 벌개져서 베개에 처박고있는 고개를 차마 들 수가 없었다.

민망함을 넘어서 건방지다고 까지 느껴졌다. 헛소리도 정도라는 게 있지.

서로 비슷한 나이대 인데 대체 내가 뭐가 잘났다고 그런 말을 해버린 걸까.

심각한 실책이다.

끄으윽 하는 소리를 입안에서 흘리며 베개로 머리를 싸맸다.

침대 위에서 소란스럽게 이불을 뻥뻥 찰 수는 없어서 최대한 조용하게 온몸을 비틀어 본다. 그리고 잠깐의 고통이 지나가자 곧 냉정한 기분으로 돌아왔다.

어쨌거나.

해줄 수 있는 말은 남김없이 다 말해주었다.

나머지는 위그데인에게 달렸다.

돈 많은 부잣집 금발 청년이 아니라. 모험가로서 내리는 그의 선택이 결과를 판가름 할 것이다.

파티에게 진심을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용기 있는 선택 말이다.

해가 지는 저녁놀 사이로 라임베리 과수원을 뛰어다녔던 나에게도 필요한 종류의 용기였다.

그것만 있다면. 그에게도 분명 신의 가호가 함께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끝으로 또 다시 하루를 마치며 금세 잠이 들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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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60 백발대마왕
    작성일
    21.04.05 11:56
    No. 1

    추천글을 보고 정주행 중입니다.
    묘사와 전달력이 대단하네요.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찬사를 날리는 흔치 않은 감탄으로
    읽던 중간에 멈춰서서 엄지척 한번 날리고 계속 갑니다.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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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82. (4) +5 21.08.02 181 17 23쪽
210 82. (3) +5 21.07.29 212 22 18쪽
209 82. (2) +2 21.07.28 169 18 17쪽
208 82. (1) +3 21.07.27 183 24 25쪽
207 81. +8 21.07.26 190 24 24쪽
206 80. (2) +5 21.07.22 221 28 26쪽
205 80. (1) +4 21.07.21 192 22 20쪽
204 79. (2) +3 21.07.20 187 20 20쪽
203 79. (1) +1 21.07.19 181 24 25쪽
202 78. (4) +12 21.07.14 245 31 28쪽
201 78. (3) +5 21.07.13 191 25 23쪽
200 78. (2) +9 21.07.12 187 27 21쪽
199 78. (1) +2 21.07.10 189 19 19쪽
198 77. (2) +2 21.07.09 193 18 22쪽
197 77. (1) Level One. +2 21.07.08 201 16 19쪽
196 76. (2) +2 21.07.07 184 21 19쪽
195 76. (1) +2 21.07.06 203 20 18쪽
194 75. (2) +1 21.07.05 187 19 16쪽
193 75. (1) +2 21.07.03 191 18 17쪽
192 74. (2) +1 21.07.02 221 20 16쪽
191 74. (1) +8 21.07.01 223 20 17쪽
190 73. (2) 21.06.03 219 16 16쪽
189 73. (1) +1 21.06.02 230 17 16쪽
188 72. (3) +1 21.06.01 211 26 16쪽
187 72. (2) +1 21.05.31 232 25 18쪽
186 72. (1) +3 21.05.29 237 21 18쪽
185 71. (2) +1 21.05.28 240 21 15쪽
184 71. (1) 21.05.27 237 20 16쪽
183 70. +3 21.05.26 249 20 20쪽
182 69. (2) +1 21.05.25 258 16 14쪽
181 69. (1) +2 21.05.24 254 15 15쪽
180 68. (3) +3 21.05.22 256 25 14쪽
179 68. (2) +2 21.05.21 243 19 15쪽
178 68. (1) +1 21.05.20 244 23 16쪽
177 67. (3) +2 21.05.19 252 21 14쪽
176 67. (2) 21.05.18 253 17 14쪽
175 67. (1) +1 21.05.17 286 17 16쪽
174 66. (2) +4 21.05.15 294 27 14쪽
173 66. (1) +5 21.05.14 269 29 14쪽
172 65. (2) +3 21.05.13 264 21 15쪽
171 65. (1) +3 21.05.12 286 25 15쪽
170 64. (3) +2 21.05.11 269 25 11쪽
169 64. (2) +3 21.05.10 285 25 11쪽
168 64. (1) +1 21.05.09 288 23 10쪽
167 63. (2) +5 21.05.08 277 25 9쪽
166 63. (1) +3 21.05.07 263 23 10쪽
165 62. (2) +4 21.05.06 282 28 15쪽
164 62. (1) +5 21.05.05 299 27 14쪽
163 61. (3) +2 21.05.04 272 30 13쪽
162 61. (2) +2 21.05.03 272 26 14쪽
161 61. (1) 타오르는 눈동자들. 21.05.02 305 22 14쪽
160 60. (2) +5 21.05.01 281 32 14쪽
159 60. (1) +1 21.05.01 247 17 13쪽
158 59. (2) 21.04.30 317 28 11쪽
157 59. (1) 21.04.30 262 22 11쪽
156 58. (2) +3 21.04.29 277 30 14쪽
155 58. (1) 21.04.29 277 26 15쪽
154 57. (3) +7 21.04.28 320 30 10쪽
153 57. (2) +1 21.04.28 267 19 11쪽
152 57. (1) +1 21.04.27 303 24 10쪽
151 56. (3) +2 21.04.27 269 19 14쪽
150 56. (2) +2 21.04.26 296 24 12쪽
149 56. (1) +1 21.04.26 291 21 13쪽
148 55. (4) +1 21.04.25 313 22 13쪽
147 55. (3) +2 21.04.25 272 22 12쪽
146 55. (2) +5 21.04.24 318 30 14쪽
145 55. (1) +1 21.04.24 300 20 14쪽
144 54. (2) +1 21.04.23 310 26 13쪽
143 54. (1) 21.04.23 322 20 14쪽
142 53. (2) +12 21.04.22 366 33 13쪽
141 53. (1) +1 21.04.22 306 25 14쪽
140 52. (3) 21.04.22 295 20 12쪽
139 52. (2) 21.04.21 316 17 15쪽
138 52. (1) 21.04.21 299 18 15쪽
137 51. (2) 21.04.20 362 30 13쪽
136 51. (1) 21.04.20 334 22 12쪽
135 50. (5) 21.04.19 358 30 13쪽
134 50. (4) 21.04.19 335 25 11쪽
133 50. (3) +2 21.04.18 354 34 12쪽
132 50. (2) 21.04.18 327 32 12쪽
131 50. (1) 21.04.17 368 32 13쪽
130 49. (4) 21.04.17 323 26 12쪽
129 49. (3) +1 21.04.16 371 29 11쪽
128 49. (2) +1 21.04.16 348 23 13쪽
127 49. (1) +4 21.04.15 380 32 15쪽
126 48. 우리도 그 길로 향한다. 21.04.15 341 29 14쪽
125 47. (2) +9 21.04.14 379 48 13쪽
124 47. (1) +2 21.04.14 329 26 14쪽
123 46. (3) +2 21.04.13 371 34 16쪽
122 46. (2) +8 21.04.13 342 28 13쪽
121 46. (1) +7 21.04.12 367 33 11쪽
120 45. (2) 21.04.12 324 24 15쪽
119 45. (1) +2 21.04.11 359 26 14쪽
118 44. (3) +2 21.04.11 353 27 11쪽
117 44. (2) +1 21.04.10 354 31 12쪽
116 44. (1) 21.04.10 334 27 10쪽
115 43. +4 21.04.09 377 32 11쪽
114 42. (4) +5 21.04.09 343 33 13쪽
113 42. (3) +7 21.04.08 393 42 12쪽
112 42. (2) +2 21.04.08 329 25 13쪽
111 42. (1) +4 21.04.07 382 32 13쪽
110 41. (3) +2 21.04.07 328 27 13쪽
109 41. (2) +4 21.04.06 429 34 11쪽
108 41. (1) +2 21.04.06 411 30 13쪽
107 40. (2) +5 21.04.05 438 31 13쪽
106 40. (1) +5 21.04.05 397 27 14쪽
105 39. (4) +8 21.04.04 449 30 12쪽
104 39. (3) +1 21.04.04 404 25 13쪽
103 39. (2) +6 21.04.03 457 29 10쪽
102 39. (1) +1 21.04.03 422 25 14쪽
101 38. (2) +3 21.04.02 424 26 13쪽
100 38. (1) 21.04.02 423 21 13쪽
99 37. (3) 21.04.01 421 23 13쪽
98 37. (2) 21.03.31 377 17 13쪽
97 37. (1) 21.03.31 404 21 12쪽
96 36. (4) +1 21.03.30 394 23 12쪽
95 36. (3) 21.03.30 395 23 12쪽
94 36. (2) +1 21.03.29 415 23 13쪽
93 36. (1) 21.03.29 392 21 13쪽
» 35. +1 21.03.28 397 27 19쪽
91 34. (3) +3 21.03.28 425 30 13쪽
90 34. (2) +3 21.03.27 377 20 13쪽
89 34. (1) 21.03.27 429 26 12쪽
88 33. (3) +2 21.03.26 446 26 11쪽
87 33. (2) 21.03.26 412 21 10쪽
86 33. (1) 21.03.25 413 25 9쪽
85 32. (3) 21.03.25 430 20 11쪽
84 32. (2) +1 21.03.24 434 21 11쪽
83 32. (1) Equipment Quest. 21.03.24 433 24 13쪽
82 31. (4) +7 21.03.23 455 44 12쪽
81 31. (3) +1 21.03.23 423 22 11쪽
80 31. (2) 21.03.22 422 23 11쪽
79 31. (1) 21.03.22 427 24 13쪽
78 30. (4) 21.03.21 450 29 12쪽
77 30. (3) +2 21.03.21 429 24 11쪽
76 30. (2) +3 21.03.20 439 24 15쪽
75 30. (1) +1 21.03.20 483 26 17쪽
74 29. (2) +1 21.03.19 439 29 13쪽
73 29. (1) 21.03.19 443 28 13쪽
72 28. (4) +3 21.03.18 445 27 12쪽
71 28. (3) 21.03.18 413 26 12쪽
70 28. (2) 21.03.17 407 25 12쪽
69 28. (1) 21.03.17 474 26 11쪽
68 27. (3) 21.03.16 438 33 15쪽
67 27. (2) +1 21.03.15 491 27 15쪽
66 27. (1) +1 21.03.15 470 32 14쪽
65 26. (4) +6 21.03.14 472 35 16쪽
64 26. (3) 21.03.14 473 33 17쪽
63 26. (2) +1 21.03.13 476 32 15쪽
62 26. (1) 21.03.13 489 30 17쪽
61 25. (4) +5 21.03.12 482 30 13쪽
60 25. (3) +1 21.03.12 455 28 14쪽
59 25. (2) 21.03.11 468 25 18쪽
58 25. (1) 21.03.11 432 25 14쪽
57 24. (4) 21.03.10 487 29 14쪽
56 24. (3) 21.03.09 485 26 12쪽
55 24. (2) 21.03.08 465 28 16쪽
54 24. (1) +1 21.03.08 469 24 14쪽
53 23. (3) +1 21.03.07 501 31 11쪽
52 23. (2) 21.03.07 480 30 12쪽
51 23. (1) +2 21.03.06 494 29 13쪽
50 22. (3) +5 21.03.06 469 32 9쪽
49 22. (2) +1 21.03.05 520 29 10쪽
48 22. (1) +1 21.03.05 509 34 15쪽
47 21. (4) +2 21.03.04 522 36 11쪽
46 21. (3) +1 21.03.04 522 31 11쪽
45 21. (2) 21.03.03 495 35 11쪽
44 21. (1) +1 21.03.03 552 34 12쪽
43 20. (4) +1 21.03.03 486 37 12쪽
42 20. (3) +2 21.03.02 565 31 11쪽
41 20. (2) +2 21.03.01 525 37 14쪽
40 20. (1) 얼지 않은 라임베리. 21.03.01 737 35 11쪽
39 19. (4) +3 21.02.28 559 44 17쪽
38 19. (3) 21.02.28 567 31 13쪽
37 19. (2) +1 21.02.27 558 36 14쪽
36 19. (1) 21.02.27 583 31 15쪽
35 18. (3) +1 21.02.26 581 41 12쪽
34 18. (2) +1 21.02.26 608 43 12쪽
33 18. (1) +3 21.02.26 582 3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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