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자와 아가씨는 서로 의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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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poker
작품등록일 :
2021.02.05 23:20
최근연재일 :
2021.03.2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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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3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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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꼭두각시는 자신이 인형이라는 걸 모른다(1)

DUMMY

“왜냐, 디오! 이유를 말해봐라.”


“아버님께 이유를 말할 이유가 있을까요?”


“뭐라고?!”


“잠깐만요, 당신. ···엄마에게도, 못 말하겠니?”


“당연합니다. 그리고 애초에 이유랄 게 있나요? 제가 언제 당신들 뜻대로 움직였다고.”


“이 녀석··· 키워준 은혜를 배반할 셈이냐!”


“당신, 왜 말을 그렇게 해요!”


“키워줬다라··· 재밌네요.”


“!”


“디오, 아니야, 아빠가 조금 흥분하셔서······”


“원하지 않던 때에 태어난 저를 버리고, 원하던 때에 태어난 동생이 능력이 부족하자, 그때서야 저를 찾으셨던 분들이, 키웠다라.”


“···이, 이건 말실수다.”


“전 나름 만족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말이죠. 저를 키워주고 있던 분들을 당신이 죽이고 저를 납치했죠.”


“그만!”


“아, 그래도 그건 의외였어요. 용병을 시키지도 않고, 본인 손을 더럽히다니. 정직한 걸까요, 멍청한 걸까요?”


“후계자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겠다. 지금 당장, 나가 있거라......”


“미룰 가치조차 없는 소리입니다만.”


끼이익......


“하나 말씀드리죠. 동생은 확실히 저보다는 약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훨씬 뛰어납니다. 가문의 후계라면, 동생이 나을 겁니다.”


쿵.


“후우.”


매년 끝날 때마다 이 소리군. 그냥 마음 편하게 동생을 후계로 올리면 될 텐데.


“형님!”


“···.”


“아, 아버님과 무슨 대화를···”


“네가 이 가문의 후계로 적합한지 의논했지.”


“네, 네? 왜 제가?”


“동생아. 시대는 변하고, 가치도 변하는 거란다. 무력이 모든 걸 지배하는 시대는 지났어. 적어도, 인간 사회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버려야 해.”


“하, 하지만···”


“나는 힘만 있을 뿐, 경영이나 가문의 운영. 즉 돈을 관리하는 건 아무것도 몰라.”


“그건 형님이 늘 수업을 안 들으시니.”


“그래서 네가 적합하다고 하는 거다. 시대는 변했고, 부모님도 나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했으니까.”


“아닙니다! 형님의 힘이라면 그것만으로 모든 걸 손에 넣을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그저 순혈 중에 조금 특별한 피일 뿐이다. 모든 걸 지배하지는 못해.”


“아···”


“하지만 만약··· 시대의 흐름 따위 무시하고, 모든 걸 지배하는 존재가 있다면···”


“형님?”


“아니다. 생각이 깊었다. 잠시 밤바람 좀 쐬고 오마. 기다리지 말고.”


“아, 네.”






“후우. 이 썩을 귀족 연기도 못 해 먹겠네.”


시대에 뒤떨어진 늙은 피들. 무력만 있으면 뭐 해? 그럼 인간들에게도 다른 가문에게도 적이 되는데.


본인들은 뒤에서 받아먹기만 하고, 내가 다 처리하라고?


“그럴 바에야 더러운 피에 들어가고 말지.”


최근에 한 가문이 또 몰살당했다고 하던데. 활동은 열심히 하네.


그런 식으로 해서, 뭘 바꾸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


―형님의 힘이라면 그것만으로 모든 걸 손에 넣을 수 있을 겁니다.


내 피는 조금 특별할 뿐. 은에 닿으면 경직되고, 심장이 뚫리면 죽는다.


이런 내가 아무리 뭘 하려 해봤자, 무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만약, 나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존재가··· 그런 존재가 내 눈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바람이나 쐬자.”


쓸데없는 기대를 접고, 나는 나만의 비밀장소로 향했다.


이름조차 지어지지 않은 산. 그 산의 뒤쪽에 있는 작은 수풀.


그 수풀을 계속 파헤쳐가다 보면, 바다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벽이 나타난다.


오는 데에만 몇 시간이 걸리지만, 생각하고 싶은 게 있거나 마음을 돌리고 싶을 때는 여기가 가장 좋았다.


특히 오늘은 달이 높고 밝게 떠오르는 날이었다. 어떻게든 오고 싶었다.


쓸데없이 감상적이지만, 가끔은 괜찮겠지.


“역시.”


예상대로 아주 절경이었다.


이 절벽 근처에만 수풀이 없고, 마치 나 이전에 누군가가 온 듯한 흔적이 있었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곳에 주인은 없고, 만약 독차지하려 한다면 죽인 다음에 내가 차지하면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경치를 구경할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손님이 와계셨네요?”






“~~!”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또, 또 옛날 꿈인가.


“디오......”


아가씨는 내 위에서 주무시고 계신다. 어느새 올라오셔서는.


“떨어지면 어쩌시려고요.”


조심스럽게 아가씨를 옆에 내려놓고, 이불을 덮어줬다.


“후우.”


연구원이 만들어준 피를 먹어서일까, 최근 두 번이나 옛날 꿈을 꿨다.


꿀 거면 다른 걸 꿀 것이지, 하필이면 그때를···


싫은 기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편안하기만 한 기억은 아니라고.


왼손과 심장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고,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

*

*



“···왔냐.”


“네, 왔습니다.”


제자가 퉁명스럽게 말했고, 디오도 아무 감정 없이 대답했다.


“여기가 원래 있던 곳보다 더 좋아 보이는데요?”


여러 가지 기계들을 살펴보며 디오가 말했다.


“거긴 숨기엔 좋았지만, 기계나 도구들을 가져오기엔 번거로웠거든.”


“그런데도 그곳에 있었던 건, 숨기 좋아서인가요? 아니면, 샛별이라는 여자아이 때문인가요.”


“···.”


제자가 말없이 일어나, 디오의 정면에 섰다.


“너··· 왜 안 막았어.”


제자는 흐느끼는 목소리와 붉어진 눈으로 디오를 노려봤다.


흡혈인의 능력으로 인해 붉어진 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인 걸까.


“막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왜!”


“반대로, 왜 막아야 하죠?”


“!”


“애초에, 왜 막아야만 하는 상황을 만든 것입니까.”


“으···”


“그때의 상황에는 저도 불만이 있습니다. 왜 그런 상황에서 애에게 그런 말을 했죠?”


“그건··· 그때가 최적이라 생각했어. 병원에 간 후에는 안 믿을 것 같았고, 극적인 상황에서 알려주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았다고.”


“당신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그 애가 도망갔습니다. 근데 그걸 왜 저에게 잡으라 하신 거죠?”


“!”


“그리고 그것 때문에 아가씨가 연기를 얼마나 들이마신 줄 압니까? 조금이라도 호흡에 문제가 생겼다면 당신의 눈앞에서 그 애의 시체를 찢을 생각이었습니다.”


“~~~!”


디오의 멱살을 잡으려 할 때, 디오가 먼저 제자의 턱을 잡았다.


“대답해보시죠? 왜 그 애를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했습니까?”


“다, 닥쳐···”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자신을 투영시켜, 자위용 도구로 잘 쓰고 계셨으면서, 갑자기 왜?”


“닥치라고!”


“도구에 애정이라도 생긴 겁니까? 그래서 현실을 받아들여 줬으면 했습니까?”


“~~~!”


제자는 뭐라도 하고 싶었지만, 디오의 새빨간 눈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손발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죠? 그 애는 확실히 아빠가 죽었다는 걸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따라 죽었죠. 어때요? 본인의 욕심으로, 도구가 망가진 기분이.”


“무, 무슨 말을 하려고 온 거야!”


“저는 그저 질문에 대한 답을 얻고 싶을 뿐입니다. 당신의 행동과 사고방식은 정말 전형적이고 뻔하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그런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뭘··· 확인한다고?”


“당신은 그 애가 왜 죽음을 각오했는지 아시나요?”


“뭐?”


“죽음을 이해하기 어려운 나이라도, 화재에 휘말린 경험이 있고, 불길과 시체만 봐도 발작하는 애가, 스스로 불길로 뛰어든 이유 말입니다.”


“......”


제자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샛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 자체는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이해하는 건 도저히 무리였다.


“···모른다는 뜻으로 해석하겠습니다. 좋네요. 예상대로입니다.”


“너, 넌, 알기라도 한다는 거야?”


“생각은 할 수 있죠. 그 애는 저와 닮았으니까.”


“?”


“아무튼.”


디오가 손을 놨고, 제자는 피멍이 든 것 같은 턱을 쓰다듬었다.


“의뢰했던 피의 양산은 어느 정도 진행됐나요.”


어느새 디오의 눈은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시간만 있으면 돼. 예산이야 네가 주고 있고, 성분표도 다 있으니까.”


“시간은 어느 정도로?”


“야. 연구하는 사람한테 시간 운운하면 제대로 못 하는 거 몰라?”


“뭐,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만.”


“근데, 이거 많이 만들어서 어디다 쓰려고?”


“또 물어보시는군요.”


“또 얼버무리게? 네, 네. ···하지만 이건 꼭 물어봐야겠어.”


“뭐죠?”


“네가 나한테 샘플로 준 거, 앨리스 그 애 피 아니지. 정확하게 말해. 누구 피야?”


“그건 왜 물으시죠?”


“흡욕성분이 미쳤잖아.”


흡욕성분이란, 흡혈인의 피에서만 발견된 성분이다.


정확한 연구는 진행되지 않았지만, 흡혈인의 능력과 흡혈 욕구는 이 성분의 영향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단순 수치로도 사람 미치게 할 수준이라고.”


“실제로 살에 닿은 인간이 이성을 잃었죠.”


“그래. 흡혈인의 피가 인간의 피보다 진하다는 건 못 들었거든? 정체가 뭐야.”


“정확하게 말하면 아가씨의 피가 아닌 건 맞습니다. 하지만 연구소에서 발견한 거라 저도 잘 모르겠네요.”


“그 거짓말 언제까지 할래?”


“거짓말이라 하심은?”


“나, 네가 선생님을 죽였다고 생각하거든? 바른대로 말해.”


“사실이 아닌 것은 부정할 수밖에요.”


“그렇게 나오시겠다? 좋아, 네가 이 피로 뭘 하든 내 알 바 아니니.”


“인간 하나 처리 못 하시던 때와는 다르시군요.”


“닥쳐. ···선생님도 죽었고, 샛별이도 죽었어. 이제 그냥 돈 벌고 폐인처럼 살다가 뒈지려고.”


“차마 자살은 못 하겠다는 소리를 길게도 하시네요.”


“닥치라고.”


“뭐, 저는 일만 해주신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래, 그래. 아, 하나 더. 이 불명이라 된 건 무슨 성분이야?”


제자가 디오에게 종이를 보여주며 물었다.


“연구 자료에 이딴 단어를 쓸 리가 없잖아. 조금 길고 복잡해지더라도 확실하게 표기한다고.”


“정말 불명이기에 그런 것 아닐까요?”


“그럼 더 문제지. 몇 년 전에 발견조차 안 된 성분이 피에서 갑자기 나타났다는 거잖아. 대체 누구 피길래―”


“신경 쓰실 필요 있나요? 전에 만들었던 대로만 만드시면 됩니다. 큰 문제는 없었으니.”


“···알았다, 알았어. 네가 이 인간도 미치게 하는 피를 대량으로 얻어서 뭘 하려는지는, 넘어갈게.”


“네, 그겁니다. 그 애를 더 추억하기 위해서라도, 쓸데없는 짓은 안 하는 게 좋죠.”


“···.”


디오는 제자를 뒤로하고 앨리스에게 돌아갔다.


‘이렇게 무너지면 더 쓰지도 못하겠네. 역시 아직은 중위 그놈이 가장 쓸만해.’


“디오!”


밖으로 나오자, 앨리스가 디오에게 달려와 안겼다.


“일 끝났어?”


“네, 이제 다음으로 가죠.”


“다음은 어디야? 나 배고픈데.”


“가는 길에 뭐라도 사 갑시다. 그리고 다음 가는 곳은··· 조금 냄새가 심할 수도 있는데, 괜찮나요?”


“응.”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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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생명의 신(7)(完) 21.03.27 41 0 11쪽
49 생명의 신(6) 21.03.26 19 0 13쪽
48 생명의 신(5) 21.03.25 25 0 12쪽
47 생명의 신(4) 21.03.24 43 0 11쪽
46 생명의 신(3) 21.03.23 17 0 12쪽
45 생명의 신(2) 21.03.22 17 0 12쪽
44 생명의 신(1) 21.03.21 17 0 12쪽
43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5) 21.03.20 30 0 11쪽
42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4) 21.03.19 19 0 11쪽
41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3) 21.03.18 42 0 11쪽
40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2) 21.03.17 17 0 11쪽
39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1) 21.03.16 18 0 11쪽
38 인식을 초월하는 공포(4) 21.03.15 44 0 12쪽
37 인식을 초월하는 공포(3) 21.03.14 28 0 11쪽
36 인식을 초월하는 공포(2) 21.03.13 52 0 11쪽
35 인식을 초월하는 공포(1) 21.03.12 16 0 12쪽
34 점장(3) 21.03.11 15 0 13쪽
33 점장(2) 21.03.10 19 0 12쪽
32 점장(1) 21.03.09 21 0 12쪽
31 걱정인가, 과보호인가(3) 21.03.08 14 0 12쪽
30 걱정인가, 과보호인가(2) 21.03.07 26 0 13쪽
29 걱정인가, 과보호인가(1) 21.03.06 25 0 12쪽
28 꼭두각시는 자신이 인형이라는 걸 모른다(3) 21.03.05 21 0 11쪽
27 꼭두각시는 자신이 인형이라는 걸 모른다(2) 21.03.04 20 0 12쪽
» 꼭두각시는 자신이 인형이라는 걸 모른다(1) 21.03.03 59 0 11쪽
25 보이지 않는다면, 보이게끔 하면 된다(5) 21.03.02 21 0 14쪽
24 보이지 않는다면, 보이게끔 하면 된다(4) 21.03.01 31 0 12쪽
23 보이지 않는다면, 보이게끔 하면 된다(3) 21.02.28 47 0 12쪽
22 보이지 않는다면, 보이게끔 하면 된다(2) 21.02.27 21 0 11쪽
21 보이지 않는다면, 보이게끔 하면 된다(1) 21.02.26 2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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