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드러진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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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슈라
작품등록일 :
2021.02.1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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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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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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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5. 숨은 살의(完)

DUMMY

웨이터는 익숙한 듯 그녀와 남은 두 사람 앞에 재떨이를 놓아주었다. 그러니 돈 가르시아에게 곁에 있는 사람이 시가통을 열어주었고 이내 연초보다 독한 연기가 사방에 풍겼다.


"지금부터 사실대로 얘기하셔야 할 거에요?"


위풍당당한 자태와 달리 공손한 어투였다. 그녀 대신 옆에 있는 이들이 돈들을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시선들을 의식한 지는 모르지만 앙드라게타 돈, 엘비초가 공손한 체 말했다.


"성모님께 맹세컨대 우린 아니야."

"이름만 있는 성모는 누구나 팔 수 있죠."


깊은 숨과 함께 그녀의 붉은 입술 새에서 연기가 흘러 퍼졌다.


"산토리노에서 젤리코께서 발견된 건 유감이네."

"블랜디 군께서 제게 그런 말씀을 할 줄은 몰랐는데요?"


붉은 눈이 그녀의 새끼손톱처럼 가지런히 휘었다.


"젤리코께서 그 일로 많이 낙담하셨어요. 그래뵈도 든든한 자금줄이었거든요."


곱게 포장했지만 속내는 까놓고 말해서, 네 주제에 웬 사과냐. 라고 먹이는 거다. 앙드라게타는 차치하고도 카모라 아니랄까봐, 먹이는 기술이 장난 아니라고 요엘은 속으로만 감탄했다.


"그때는 약이 우리 자금줄이었지. 지금은 카모라도 도울 정도로 우리도 든든하다만."


"...생각해보죠."


매캐한 연초냄새를 들이마셨다가 흘리는 모습은 흐트러짐 하나 없었다.


"산토리노서 젤리코 씨를 본 사람이 있다던데."


"...네, 명망 있으신 분을 그리 뵙게돼서 황망합니다."


짐짓 경건하게까지 보일 정도로 요엘은 그녀에게 허리를 숙여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카모라 돈은 수하가 들어올린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끄며 말했다.


"무슨 경위로 뵙게 된 거죠?"

"...부하랑 산토리노에 나갔다가 사건 현장을 보게 되었습니다. 경찰이 이미 도착해 있더군요."

"그런 당신은 그게 젤리코 씨인걸 어떻게 안거죠?"

"안디오 경장이 부하들과 얘기하던 걸 들었습니다."

"......"


그제서야 카모라 돈은 그녀를 흘깃거렸다. 흩어진 향담배 냄새 사이에서 그녀는 팔짱을 끼며 소파에 기댔다. 흔한 스프링 소리 하나 없었다. 제 손을 깍지낀 채 그녀는 의미없이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팝송만이 그들 사이에 들려오고 모든 시선이 카모라의 돈에게 쏠려 있었다.


"후후후..."


그 정적을 깬 건 가르시아 본인이었다.


"뭘 그렇게 빤히 바라보시나요?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정적의 장본인인 주제에 아무 것도 모르는 양 그녀는 해맑게 웃어보였다. 아르젠팔토라 측 돈은 슬쩍 웃음을 매달고 말했다.


"그대에게 있는 은빛이 너무 눈부셔서 말이야."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이 색깔을 사랑하셨죠."


어깨를 타고 흐르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가르시아가 대답했다. 그 눈빛은 지난 세월에 잠긴 것처럼 보였지만 클럽의 조명 때문인지 되려 어두침침하게 빛나, 실상 별 생각 없이 얘기한 것 같았다.


"그대가 우릴 어찌 생각하는지 아네만, 우린 자네 대부님을 죽인 범인을 찾는 데 전념할 생각이라네."


그리 말했는데도 가르시아는 여전히 제 머리카락을 매만지고 있었다.


"돈나?"


얼핏 예를 차려 그가 다시 되물어올 때 카모라 돈은 제 머리카락을 쓰레기 튕기듯 제 어깨 뒤로 넘겼다.


"젤리코 씨가 돌아가신 건 유감이지만 이런 광경을 보니 좋네요."


고요한 좌중에게 고혹적인 음색이 내려앉았다.


"아버지께선 카모라 외에는 쓰레기처럼 보셨죠.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의미 없는 말일 수도 있지만 돈들의 감각이 그쪽에게 쏠린 게 느껴질 정도로 네 개의 시선은 카모라 돈에게 붙어 있었다.


"내가 원하는 건 이대로 서로 침범하지 않고 화목하게 지내는 거죠. 더 취하지도, 덜주지도 않고. 믿을만한 정보통이 검찰청에 있던 다브네 파가 젊은 검사들에게 잠시 밀렸다고 했어요. 우리한테 소소하게 받던 용돈을 들키고 말았나봐요.


즉슨, 나는 서로 앙금이 있던 없던 서로 뭉쳐야할 상황이란 거에요.

동의하시나요?"


졸지에 증인 역으로 선 요엘은 온 몸이 빳빳하게 굳는 기분이었다. 검찰은 그녀랑 인연이 없지만 다브네 파라면 카모라나 아르젠팔토라에게 뒷돈을 받고 그네들의 범죄를 감춰주는 데 앞장서는 이들이었다.


"걔네 일엔 관심없지만 좀 귀찮아지겠구만?"


앙드라게타 돈이 제 미간을 씰룩거렸다. 맞아서 부은건지 알 수 없는 눈두덩이가 역동적이게 꿈틀거려 그가 얼굴에 새긴 문신이 괴기하게 보였다.


"다브네 파가 그런 일이 있었다면 슬슬 우리도 번거로워지겠군요."


그 늙구렁이들이 햇병아리들에게 걸려들었대도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자신이 정점에 섰다고 착각하는 것들이 범하는 실수일 뿐이니까.


"우리 선에서도 최대한 협력하겠습니다. 돈나."


"하지만 말이죠."


갑자기 가르시아란 카모라 돈은 부하가 쥐고 있던 재떨이를 빼앗아 그들 가운데에 있는 테이블에 던졌다. 까만색 유리가 테이블에 부딪쳐 산산조각이 나고 축축한 휴지가 담뱃물을 흘리며 바닥에 떨어졌다.


"야! 누구 죽일 일 있어?!"


앙드라게타 돈이 벌떡 일어서 소리 질렀다. 그 모습에 고개를 젓다만 자신도 기분이 좋지 않은 지 아르젠팔토라 돈도 삐딱하게 고개를 들었다. 여자는 그럼에도 웃고 있었지만 그렇기에 되레 이질적이었다. 퍼킹, 퍼킹거리는 시끄러운 팝송을 배경으로 두기엔 너무 티 없는 웃음이라 요엘 그 자신은 그 뒤에 들려올 말에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다.



"만일 젤리코 씨를 죽인 게 당신들이라면... 나는 그런 거 제쳐두고 전부 다 죽여버릴 거에요. 모든 것을 동원해서라도요."


아무리 두 조직이 날고 기어도 카모라만한 재력이나 권력은 없었다. 그를 알기에 성을 내던 앙드라게타 돈은 머쓱하게 자리에 앉았다.


"돈, 실례지만 제가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한켠에 있던 요엘이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 붉은 시선이 저를 고고하게 훑어보았는데 단지 돈이 저를 훑어보아서라기보단 자신의 말이 아르젠팔토라를 비껴갈 수단이 될지 걱정스러워 몸을 굳혔단 게 맞는 말일 테다.


"젤리코 씨의 시체를 봤고, 안디오 경장이 제게 언질을 줬습니다만..."


그때 안디오는 피해자가 에녹 젤리코란 걸 알자 요엘에게 귀엣말을 남겼다.


"이 일은 청부업자가 진행한 거 같습니다."


그때 카모라 돈이 미간을 찡그렸다. 내부자가 청부업자를 고용했을 가능성이야 무궁무진하니 그렇겠지.


"시체 절단면이 너덜너덜했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아르젠팔토라 돈이 반쯤 일어났다. 왜 그런 걸 얘기 안했냐는 듯 그가 그녀를 쏘아보았지만 요엘은 그를 향해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깔끔했다죠. 시체 청소부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알겠어요."


잠시간 카모라 돈은 생각에 잠긴 듯 하더니 곧 가볍게 말했다.


"청부업자도 아닌 쓰레기들을 고용했다하면 절대 쉽게 잡히지 않겠단 의지가 보이네요."


시체 청소부라는 일은 말 그대로 뒷처리반이었다. 피와 지방이 묻은 내장은 물론 인간이 죽어가면서 흘린 변까지 치우는 그것들은 희귀한 변태가 아닌 이상 노가다보다 고된 일이었다. 즉슨, 노가다에서도 써주지 못하는 이들이 하는 일이라 빈민이나 소위 얘기하는 신분 불명자들이 소위 많았다.


카모라 돈은 그렇게 말하곤 입가를 슬 늘려 미소를 지었다.


"물론 우리 내부자가 저지른 짓이라면 보상은 톡톡히 하겠어요. 우리는 혈맹이니까요."


"혈맹?"


그 단어에 앙드라게타 돈이 얼척 없단 양 얼굴을 삐뚤게 일그러뜨렸고 아르젠팔토라 돈은 고개를 저었다. 저 치는 눈치 없단 소리 꽤나 들었을 듯 하다.


요엘은 그 일련의 일들을 지켜보며 안디오가 했던 말을 곱씹었다. '아무래도 시체 청소부의 짓일지도 몰라.' 사지에 대해 아는 것들이 없는 것들은 일을 손쉽게 하려 절단톱 따위를 쓰곤 했다. 그런데 하필 카모라의 고문을 죽일 일이 있던가? 설령 내부자가 한 일이라도 가르시아 돈을 돈으로 세운 데에 앞장선 이를 죽이면 자신의 정체가 탄로날 경우는 뒷전에 뒀는가?


그러나 그 생각들은 곧 묻혀야 했다. 카모라 돈은 웨이터에게 양주를 주문했고 그들 에게 줄 잔을 준비하는 웨이터를 따라 곁에 선 요엘도 준비를 했으니까.



* * * *



정리라곤 하나 되지 않는 방이었다. 그곳에선 누군가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닫힌 문이 열리자 그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형아!"


산만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앙증맞은 말투는 짜증났을 법 하나 상대는 싫은 기색 없이 그에게 다가갔다.


"포포가 먹이를 먹지 않아."


그렇게 말하며 그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의 어깨를 도닥이며 상대 남자는 달래듯이 속삭였다.


"괜찮아. 우리가 일을 하면 할 수록 포포도 기운 차려서 먹이를 먹을거야."


그 뒤에는 아주 큰 수조가 있었는데 침대 하나 놓으면 반절 차지하는 방 다음으로 가장 많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냄새나고 축축한 밤거리 때문인지 녹조가 잔뜩 끼여 있었고 물고기로 보이는 덩어리들은 수면 아래서 두둥실 춤추고 있었다.


"정말?"

"정말이고 말고."


그러나 아이를 달래듯 조용한 말투랑 다르게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눈은 그 어느 것보다 시허옇게 빛나고 있었다.


"자, 마테오. 오늘은 푹 쉬렴. 내일도 포포 먹이를 줘야하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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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5. 숨은 살의(完) 21.05.07 2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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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p5. 숨은 살의(3) 21.05.02 38 0 7쪽
15 ep5. 숨은 살의(2) 21.04.30 33 1 8쪽
14 ep5. 숨은 살의(1) 21.04.26 30 1 8쪽
13 ep4. 엔리코(完) 21.04.23 62 1 10쪽
12 ep4. 엔리코(1) 21.04.22 40 0 10쪽
11 ep3. 부식된 일상 (完) 21.04.04 6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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