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 시작의 환호성(1)
고디스.
아라스의 열 한번째 종인 그는 겁이 많았다.
그래서 자신의 대역을 세웠다.
그리고 그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오늘에서야 깨우쳤다.
" 고디스님, 대역 한명이 당했습니다. "
" 그런가. "
그는 잠을 자던 도중의 소식이었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밤에 쳐들어왔으니 자신들이 이길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테니 말이다.
" 당장 소집해라, 우리도 이제 쳐들어 가도록 하지. "
검을 챙겨든 고디스의 물음에 침묵으로 답하는 부하.
" ... ? "
그제서야 고디스도 이변을 알아차렸다.
저택이 너무나도 고요하다.
자신의 수족들 모두가 발소리를 우연히 내지 않고 있을수도 있고, 어쩌면 교대 시간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문을 열고 곧바로 뒤로 물러섰다.
" 음? 무슨 일이십니까 고디스님? "
" 암구호. "
" 예? "
사실 암구호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침입자라면 아마 어떤 암구호든 댈려고 할테니 그것으로 된다.
" 암구호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
" 아닌가. "
검을 내려놓고 자신의 침실에 세워져있던 경비에게 말한다.
" 소집해라, 내 대역을 습격한 놈들이 있다. "
" 예, 알겠습니다. "
" 이번엔 또 누구냐. "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들은 이미 자신의 대역을 죽여 긴장이 빠져 있을 것이었다.
그렇기에 늘 하던대로 자신의 대역을 죽인 그들을 역으로 덮쳐 죽이면 된다.
하지만.
" ...!! "
이번엔 정말로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검을 빼어든 그가 머릿속으로 신에게 요청하자.
[ 빛의 신의 가호를 내려받습니다. ]
[ 12시간동안 몸 상태가 최상으로 고정됩니다. ]
반나절동안 지속되는 가호.
그것으로 시간은 얼마든지 끌 수 있고, 또한 자신이 질 가능성 또한 없다고 여겼다.
그랬어야 했을 터 인데..
" 거기 누구 없느냐!!! "
저택 안을 쩌렁쩌렁 울린 고디스의 함성에 대답한것은, 푸른빛의 한줄기 섬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것을 얼려버리는 검기였다.
쩌어억.
얼음이 순간적으로 얼어 생겨난 파편이 고디스를 덮쳤고, 그는 곧바로 굴러서 그 자리를 회피했다.
" 젠장, 위치를 괜히 노출시킨 꼴이군. "
하지만 검기밖에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렇게 여기며 그는 웃음지었다.
" 뭐가 그렇게 우습냐. "
터벅, 터벅.
어둠속에서 걸어온건 고작해야 열살 정도로 보이는 꼬맹이였다.
저런 놈에게 자신들의 수족이 모두 당했다는 것을 믿기 어려운건지, 고디스의 이마가 저절로 찌푸려졌다.
" 병력은 어딨지? 설마 네 혼자는 아닐테고. "
" 그걸 알려주는 바보가 어딨냐? 뇌가 원숭이 수준이군. "
울컥.
뻔한 도발이었지만 마음속에 동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 호오, 고작해야 열살짜리 땅딸보 꼬마가 어디서 어른에게 덤비는거지? "
" 뭐라는거냐, 되다 만 반쪽짜리 종 주제에. "
부글부글.
뻔한 도발로 울컥했던 감정이 격동한다.
자신의 트라우마나 다름없는 그것을 어째서 저 꼬마가 알고 있는 것인가.
그런 사실도 잊어버릴 정도로 강한 격노가 자신의 검을 뽑게 했지만.
' 참자, 참아라. '
겨우겨우 분노를 삭이면서, 저놈을 노려본다.
" 반쪽 짜리 종이라, 헛소리도 잘하는군. "
" 가호도 반쪽으로 받는놈이 반쪽이 아니면 뭐냐. "
부글.
다시 끓어오르려는걸 얼굴을 찡그리는 정도로 그치게 하고, 검을 쥔 손은 발도 준비를 취한다.
" 어디서 너같은 꼬맹이 따위가... "
발검.
섬광같이 뻗어나간 검기가 그 꼬맹이를 갈랐다.
' 이겼다! '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랬어야 했을텐데, 왜 그 검기가 자신에게 다시 오는것인가.
" 컥!? "
검기를 받아채지 못하고 당황하여 바닥에 굴러서 겨우 피한다.
저런 열살짜리 꼬맹이가 왜 검기를...!
" 궁금하냐? 나같은 꼬맹이가 왜 검기를 쓰는지. "
자부심에 찬 그 표정이 더없이 짜증난다.
죽여버리겠다는 마음으로, 검에 검기를 담아 휘두른다.
" 으아아아!!! "
막 휘두르는것과 다름이 없었지만, 그래도 검기는 검기다.
수없이 날아간 그 검기들은 분명히 그 꼬맹이를 조각조각 찢어놨어야 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멀쩡하다.
검을 들고 서 있는 그 놈의 표정에서 이제는 짜증을 넘어선 무언가가 느껴질 정도였다.
" 이건... 말도 안된다!! "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는 그는 깨닫지 못했다.
테라의 손에 돋아난 얼음덩이가 팔을 타고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 앞으로 고작해야 열번? 그정도 휘두르고 나면 네 전신에 얼음이 뻗쳐 나갈거다. -
" 열번이라... "
충분하다.
열번의 칼질이면 저놈을 죽여버리는데 충분하다.
그런 내 사정을 모르고 있는 저 자식은 그저 흥분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뿐이다.
" 지원병력!! 지원병력이 오면 네놈은 죽은 목숨이다!! 하하하하!! "
반쯤은 정신을 놓은 것 처럼 보이는 놈이었지만, 지원병력은 확실히 껄끄러웠다.
신의 종에는 다다르지 못해도, 실력으로는 그에 준하는 사람들이 저놈의 사병이었으니까.
그래, 원래는 그랬을거다.
" 정말로 모르겠나? "
그 말에, 그 놈은 얼굴을 찡그렸다.
" 뭘 모른다는거냐, 이 얼간이같은 꼬맹아. "
그놈의 표정에는 자신은 이미 이겼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웃기는군, 자신의 처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만하는 꼴이라니.
" 네 잘난 지원병력은 대체 어느 세월에 오는거지? "
" 그건... ! "
맞는 말이다.
제일 빨리 왔어야 했을 지원병력은 이미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
공간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들을 배치해놨으니 당연했다.
그런데 왜, 아직까지도 단 한명의 병력도 오지 않는것일까.
그 때였다.
" 허억...헉! "
전이 마법의 여파로 불어닥친 돌풍과 함께, 고디스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제 우리를 죽이고, 고문하려는 생각이나 품고 있겠지.
하지만 그건 착각이다.
저놈은 고디스를 도울 수 없다.
" 고디...스..시여.. "
털썩.
온몸이 피투성이인 마법사로 보이는 그는, 고작해야 두걸음을 옮기고 쓰러져 죽어버렸다.
고디스의 표정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 뭐냐!! 도대체 뭐냐는 말이다!! "
" 네놈의 지원병력이라는거, 어떻게 됐을 것 같나? "
" 뭐? "
대충 사태파악을 했을텐데, 모르는 척 하는건가, 아니면 정말로 머리를 굴리지 못한 건가?
전자라면 칭찬해 주겠지만, 후자라면 그 똑똑한 척 하던 머리도 이제 못 굴리는 퇴물이라는 거겠군.
뭐, 수천년 동안이나 굴려온 대가리가 닳는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 그런.. 그런 말도 안되는!! "
사람이 절망에는 다섯개의 단계가 있다고 하던가.
그 단계를 착실하게 밟아가고 있었다.
" 개소리 하지 마라!! 이 고디스가 여기서 죽을 것 같냐!! "
자아도취도 저쯤 되면 병이다.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나에게 더욱더 분노한 그가, 검기를 날려댔다.
" 세르핀, 막아줄 수 있겠어? "
" 지금 있는 마력 정도면 가능합니다. "
" 부탁할게. "
- 카앙!! -
날려댄 검기는 모두 세르핀이 펼친 방어에 막혀버렸다.
물론 고디스의 눈에는 그저 내가 가만히 있는데도 모두 막혀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겠지만.
" ㅁ...뭐 이딴... 이딴게 어딨냐!!! "
분노하며 더욱더 검기를 날려대는 그놈의 틈으로, 검기를 날렸다.
" 흐아악!! "
이번에는 칼을 휘두르던 도중이라 방어조차도 못하고, 그는 제 한쪽 팔을 얼음덩이로 달고 다니게 생겼다.
" 아아아악!!! "
살점이 통째로 얼어붙는 기분은 아마 생애 처음 느껴보겠지.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 네놈이 나에게 저질렀던 짓은 고작해야 이 한번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네놈에게 할 복수는 고작해야 이걸로 끝나지 않는다.
" 다시 한번 그놈의 잘난 지원병력에 부르짖어봐라. "
" 끄윽... 이 개새끼가!! "
얼어붙지 않은 한쪽 검으로 검기를 날리려 하는 그.
" 나는.. 나는 아라스님의 가호를 받았다!! 네놈같은 놈에게 질까보냐!! "
외쳐대는 꼴이 안쓰럽기까지 할 정도였지만, 그놈에겐 일말의 동정심도 없다.
크게 날린 검기가 그놈의 왼쪽 다리와 오른쪽 발을 얼려버렸다.
" ㅇ..왜 녹지 않는거냐!! 왜!!! "
" 아라스의 가호? 그딴 모자란 짓을 믿고 그렇게 행동했나? "
다리온은 이미 아라스의 가호를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에게 충고해줬다.
- 아라스 놈의 가호, 일정 기간동안 몸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한다고 했지? 근데 그거, 같은 신의 힘인 내 힘이면 상쇄가 되어버릴걸. -
" 다리온은 이제 신이 아니라면서요, 괜찮아요? "
- 한번 신이었던 영혼은 다시 신에게 도전할 수 있는 법이야, 세상이 그래. -
얼렁 뚱땅 넘기기는 했다만, 그 말은 명확하다.
아라스의 절대적인 방어만 믿고 까불댔던 그놈에게 회심의 일격을 먹여줄 공격.
그리고 그 공격은 그야말로 제대로 먹혀 들어갔다.
" 이...이!! "
콰당.
앞으로 달리려던 놈이 발이 움직이지 않아서 넘어졌다.
꼴 좋군.
터벅, 터벅 다가간다.
검을 휘두르려 하는 그놈의 손을 차버리고, 저 멀리 검을 날려버렸다.
" 자, 마지막으로 남길 유언 같은건 없나? "
" 프..프하하하하!! 네놈따위가 나를 죽인다고?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
끝까지 당당하군.
어차피 지금 죽을 놈이 왜 이렇게 육갑을 떠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죽여야 할 때다.
" 죽어라. "
검을 높이 치켜들었다.
푹.
살점을 찌르는 소리와 함께, 그놈의 눈에서 빛이 꺼져간다.
고디스, 내게 전생 전의 분노를 겪게 해준 제일 증오스러웠던 놈을 죽였다.
그렇지만 지금와서 딱히 무언가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시원함은 더 큰 허무감과 고무감에 지워졌고, 오히려 아직도 남은 긴장감이 나를 휩싸고 있었다.
" 대행자시여, 고생하셨습니다. "
그렇게 말하는 세르핀의 손길이 나를 향할 때 였다.
- 어이, 물러서!! -
[ ???의 신이 경고합니다. ]
다리온이 경고한 그때, 의문의 신도 신탁을 보내왔다.
행동은 빨랐다.
세르핀을 감싸안고 뒤로 있는 힘껏 땅을 박찼을때,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짐작하기도 힘들때 그곳에서 나온 것은.
" 뭐야, 안 죽었나? "
목이 없고, 그 자리에 보랏빛 불빛이 자리한 한마리의 마물이었다.
그것을 우리는 목없는 기사.
" 듀라한... "
아라스의 비호를 받은 그놈이 이런 식으로 나올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나에게, 큰 낭패를 안겨줬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다시 한번 검을 들고 저놈을 쓰러뜨리는 수 밖에.
" 아라스님이 나에게 내려준 힘을 보고도 다시 싸우겠다고? 미련한 바보자식. "
" 그건 내가 할 말이다, 배반자 자식. "
배반자.
그놈은 아라스의 뜻도 따르지 않는 배반자였다.
배반자 따위에게 내가 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행자와 배반자의 검, 어느 쪽이 더 강력한가.
그것은 이 싸움으로 결정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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