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데뷔2
입을 빼죽 모으고 잠깐 고민하던 예하는 마이크를 들고 일어섰다.
“어디에 서야 화면에 나와요? 저 지금 목 잘린 거 아니죠? 네? 이마가 잘렸어요? 힝. 좀 더 뒤로. 모니터링 모니터가 있으면 좋겠어요. 네. 좀 더 뒤로. 됐죠. 아아. 마이크가 짧아. 엉망진창이야.”
민지민지는 지시를 내리려다가 허둥대는 예하가 귀여워서 지켜보고 있었다.
-캠을 올려.
-캠 줌을 바꾸면 되지
-캠을 만져
-아무 생각 없나봄 근데 보고 있으면 나도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댓글창의 글을 읽은 예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는다.
“맞네. 캠 각도를 조절하면 되는구나. 천재다.”
카메라 감독님이 그제야 웃으면서 캠 화면을 카메라 화면으로 바꿔줬다.
채팅창엔 ㅋㅋㅋ와 댕청, 그리고 맥락 없는 ㅗㅜㅑ가 줄을 잇는다.
“아아. 목소리 깨지나 봐주세요. 아~ 앗~ 악~”
뜬금삼단고음.
소름 돋네.
라이브로 듣는 가수 급 노래가 이런 거구나.
채팅창도 갑자기 느려졌다.
놀란 시청자들의 손이 굳은 듯하다.
“괜찮네요. 시작할게요. 헤헤. 음... 한번두번세번네번말 해도 전혀 지겹지도 않은걸 뭐~”
가사가 빠른 레게풍 노래였는데 아이돌 여럿이 부르는 걸 혼자 부르는 듯 숨쉴 공간이 없다.
예하는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율동을 하며 노래했는데 부르면서 즐거워졌는지 얼굴에 미소가 피고, 율동도 커진다.
“하늘이 날 반기고 세상은 아름다워 어떤 말도 나에겐 행복이 될 뿐야~”
채팅창이 느려진다.
ㅗㅜㅑ, 퍄퍄퍄 같은 의미 없는 말이 하나씩 올라오다가 그조차 사라진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단둘이 떠날 거야 하얀 파도가 우리를 부르잖아~ 아아아~”
다시 고음부가 나오자 소름이 촥 올라온다.
얘의 재능은 진짜다.
최고의 가수가 될 재능.
하지만 강제하지 않는다.
딸에게 한국대를 강요하는 마음과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 사이.
예하는 그냥 하고 싶은 걸 하게 도와주자.
원하는 대로.
뭐든지.
“넓은 바다 같은 너의 마음속에 그냥 퐁당 빠지고 싶어. 아잉!”
예하는 고양이 자세로 한입 베어 무는 동작으로 노래를 끝냈다.
“어. 헤헤. 노래 끝. 제가 태어난 해에 발표된 팝파야 언니들 노래에요. 이 노래 너무 좋아. 언니들 재결성기원! 앗 그러고 보니 간주도 안 틀었네요. 헤헤헤.”
저 미소는 연기가 아니다.
예하는 연기도 잘하지만 언제나 솔직하다.
지금 예하의 기분은 행복충만. 확실하다.
파프리카 시청 10년차 원주민 모래방지빵야빵야.
보고 있던 방송이 종료되자 난민이 되었다.
목록을 훑으며 어느 방으로 갈지 고민하는데 리스트 하단에 못 보던 얼굴이 있다.
작은 섬네일로도 충분히 전달되는 미모.
“신입 여캠은 언제든 환영이지. 크크.”
방제는 코인으로 2000배 번 썰 푼다.
BJ 이름은 BJ미래펀드.
...... 이 무슨 끔찍한 혼종이란 말인가.
“그래, 아마추어는 이런 어설픈 면이 매력인거지.”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다.
이것도 첫 방송만의 매력인거지.
어린 신입의 패기 있는 실수에 웃으며 방송을 눌렀다.
묘하게 렉이 걸리며 느리게 진입된다.
노래 중간쯤에 진입했다.
-그냥 퐁당 빠지고 싶어. 아잉!
새끼 사자가 사과를 베어 무는 것처럼 앙! 하는 안무와 함께 무반주 라이브 노래가 끝났다.
심장이 물린 것 같은 충격을 받은 모래방지빵야빵야는 잠깐 굳었다가 ㅗㅜㅑ 행렬에 동참했다.
채팅창에 ㅗㅜㅑ가 빛의 속도로 올라가더니 렉과 함께 점차 느려진다.
이건 채팅이 없는 거랑 다르다.
“터... 터져욧!”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한 방송이 폭발해버렸다.
“응? 터져요? 터졌다고요? 컴퓨터가 터져요?”
방송 송출이 멈춰버렸다.
사람이 없는 팝플레이어를 제외한 모든 방이 정지됐다.
예하가 눈을 동그랗게 뜬 상태로 멈춰있다.
“사람 많아서 터졌다고요? 펑? 히잉. 그럼 불난 거예요? 보고 있던 사람들 모두 컴퓨터가 사망했어요? 119불러야 해요? 진짜요? 오빠 빨리 신고해! 어떡해... 왜 웃고만 있어요? 신고해요!”
예하는 진짜 놀라서 허겁지겁 물어봤다.
사람 수십 명만 있는 팝플레이어만 살아남아 예하를 놀려먹고 있다.
편집, 장치 팀은 빠르게 방송을 다시 켜고, 채팅기능을 정지시켰다.
튕겨났던 사람들이 빛의 속도로 모여들었다.
“힝. 컴퓨터 터졌다면서요. 괜찮으세요? 불 껐어요?”
저건 연기다.
처음엔 속았어도 민지민지가 깔깔 웃으면서 말해줬으니까 이젠 안다.
연긴데 진짜 같다.
초보스러운 귀여움이 폭발하니 또 사람들이 자판을 타다다다닥 치겠지.
모래반지빵야빵야는 채팅을 치다가 전송이 안 되는 것을 알았다.
채팅기능 정지.
그래. 차라리 낫다.
또 터지면 광고보고 들어와야 하니 짜증이 나지.
그래도 이 말만은 꼭 하고 싶었다.
사탕1000개 후원, 전할 메세지 : 한곡 더!
눌렀는데.
안 된다.
후원도 막았다고?
1000개면 10만원인데?
“어. 시작하래요. 네. 지금부터 시작. 여기서 편집해서 올린대요. 흠흠. 안녕하세요. 미래그룹 홍보팀 소속 비제이 제시예요. 미래펀드에 대해 홍보하러 나왔어요. 사장님이 시켰어요.”
제시라는 가명으로 나온 예하는 아나운서모드로 전환해 대본을 읽었다.
펀드 가입방법을 말한 후 오늘의 자랑, 비썸 거래내역을 공개했다.
“시작은 이때였군요. 2017년 1월.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라이트코인에 분산해서 넣었네요.”
예하의 설명을 듣다보니 추억이 방울방울 솟구친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라이트코인에 분산해서 넣었네요. 두 배 오르고, 바로 수익실현. 대단하죠? 사는 것보다 파는 게 더 어렵다는 거 다 아실 텐데 미래펀드는 확실한 타이밍에 팔았네요. 이후 1주일간 하락. 바닥에서 다시 줍습니다. 완벽해요.”
과거 거래내역을 열며 얼마에 사고 얼마에 팔았는지 설명한다.
그 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1년 전 겨울 몸은 추웠지만, 마음은 참 따뜻했지.
참 좋은 23세였어.
사이트 화면만으로 나란 존재를 유추할 방법은 전혀 없다.
“벌써 9월이네요. 중국발 악재로 40% 빠지면서 5000달러가 3000달러까지 왔네요. 하지만 미래펀드는 대단해요. 미리 내렸다가 바닥에서 다시 주웠네요. 가만있었으면 40% 손해 봤을 텐데 정확히 내려서 바닥을 잡았어요. 이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아시죠? 굉장해요.”
그동안 너무 자랑하고 싶었다.
소리 지르면서 시발존나짱이라고 자랑하고 친구들에게 전화 돌리고, 만원짜리 백만장 강남대로에 뿌리고 싶었지만, 마티즈가 찾아올까봐 두려워서 참았다.
그래.
그때부터 약간 미쳤던 것 같다.
그래도 너무도 짜릿했던 기억이다.
“힝... 재미없어요. 개인 방송은 채팅 보는 재민데.”
뭣이!
모래반지빵야빵야는 제시의 말에 공감했다.
사람들이 개인방송을 보는 이유가 뭔가.
같이 보는 사람들끼리 던지는 개드립의 향연을 읽는 재미가 절반, 내 드립에 비제이가 반응해줄 때의 기쁨이 절반이다.
채팅이 너무 많아져서 비제이가 내 말을 놓치면 그 시선을 뺏으려고 후원한다.
큰 후원에 반응을 해주니 그 반응이 고마워서 자꾸 후원하게 되고, 텅빈 통장을 보면서 후회하면서도 다음날 다시 마른 걸레 쥐어짜서 후원하는 게 후원의 참맛 아닌가.
그런데 후원도 막고 채팅도 막았다.
컨텐츠도 돈 번 이야기.... 뉴스 보는 것 같다. 음. 아나운서보다 예쁜가.
어라 코인수익률 저건 좀 부럽네. 어떻게 저렇게 딱딱 들어갔다 나오지. 1억이 순식간에 1000억으로 늘어나는데 부럽다.
돈이 많아서 후원을 막은 건가.
-... 아깐 갑작스러워서 터진 거겠죠. 재시도 해봐요. 네. 채팅 켜주세요. 여러분 조용히 채팅해요.
조용히 채팅해요가 뭘까, 라고 생각할 때 방송 채팅창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ㅗㅜㅑ를 누르고 엔터를 치는데.... 또 느려진다.
“또...터져욧!”
방이 또 사망하셨다.
1분정도 지나니 최신개설방에 제시의 얼굴이 떠올랐다.
방을 누르고 진입광고를 보고 들어갔다.
-팝플레이어 빼고 전부 사망했네요. 팝플레이어만 컴퓨터가 좋은가 봐요.
BJ제시는 또 초보적인 무지를 보여주는데 귀엽다.
“그게 아니라 거긴 사람이 없어서 안 터진 거지.”
채팅을 쳤는데 전해지지 않는다.
팝플레이어만 채팅이 올라온다.
-ㅋㅋㅋㅋㅋ
-컴구린놈들
-팝플레이어는 컴이 좋은 사람만 할 수 있습니다
저런 혹세무민하는 고얀놈들.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하는데 한쪽만 말하니 너무 답답하다.
초보 미녀는 그 말이 사실인 줄 아는 것 같고.
억울하다.
“원정을 떠날 시간인가.”
이용자가 없는 팝플레이어를 깔고 진입했다.
바츠해방을 위해 모여든 내복단처럼 수많은 난민이 팝플레이어로 원정을 왔다.
잠시 후 팝플레이어까지 폭발했다.
“터트렸다.”
모여든 원정대가 흐믓하게 미소 지으며 해산했다.
예하는 당황했다.
“방이 자꾸 터져요. 편집 힘들겠네요. 채팅 보면서 하고 싶은데. 에... 유료채팅이요? 그런 것도 있어요? 아아 돈 내고. 음 사장님?”
“그깟 돈 필요 없는데. 쯧. 그래.”
내 말은 예하 귀로만 들어간다.
잠깐사이 또 팝플레이어가 터졌다.
방이 터지면 새로 만들길 반복하니 짜증난다.
민지민지의 기술팀이 모여 정신없이 회의하더니 후원만 열자고 한다.
꺼놨던 후원기능을 활성화하되 음성기능은 없앴다.
후원을 해도 소리로 알람이 오지 않는다.
최소 단위는 1만원.
문자 하나 보내는데 만원이다.
코 묻은 돈 뺏을 생각은 없지만 단위가 낮으면 또 개판될까봐.
“우와아 보여요. 글이 올라오니까 기분 좋아요. 아깐 사막 한가운데 혼자 있는 줄 알았어요. 네. 반가워요. 노래 한곡 더요? 신청곡이요? 흐음. 오늘 준비한 거 다 하고 한곡 할까요? 괜찮아요 사장님? 끝나고? 네. 그럼 다시 숙제 끝내고 놀게요. 후원하지 마요. 채팅 안 봐요.”
인증창을 열고 비썸에서 돈을 긁어모으던 걸 보여준다.
“여기서 두 배로 늘리고, 내렸다가 퀸텀이 다섯 배 점프하기 직전 옮겼죠? 당일의 차트를 보면 이래요. 3일간 다섯 배로 불렸다가 내리고 리플로 갈아탔네요. 히잉. 제가 아니에요. 전 코인 뭔지도 몰라요. 회사에서 한 거래요. 전 모른대요.”
가난한 개드리퍼들은 예하의 미모에만 관심이 있지만, 제목을 보고 들어온 진성코인종자들에게 여자는 화면 속 계집일 뿐이다.
하락세가 이어지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던 이들이 부러움과 질투를 만원문자로 토해내고 있다.
“후아. 다 왔네요. 지난주네요. 700만원 찍을 때 진입했어요. 에... 대본에 적혀있길 절망에 사라. 그날 절망적이었나 봐요. 전 모르겠네요. 회사에선 700만원에 사서 1300만원에 내렸네요. 예. 잘했나봐요. 전 아무것도 몰라요. 네? 리플 오르냐고요?”
후원 질문에 예하가 날 봤다.
한 때 4000원을 넘겼던 리플.
난 고개를 저었다.
걘 가망이 없다.
“네. 사장님 말로는 아니래요. 또 속지 말래요.”
영웅담은 언제나 인기 있는 소재다.
그리고 코인하는 사람에겐 코인으로 돈 번 사람이 영웅이다.
바로 며칠 전 이벤트.
수많은 방송존문가들이 시드 절반을 날리고 잠수하는 요즘, 하락장에서도 두 배씩 수익을 거둔 건 엄청난 영웅담이다.
예하의 미모에 끌려온 부나방들의 눈에 숫자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비썸의 1300억이 2000억이 되었네요. 지난주에만 700억 벌었어요. 네. 제가 아니지요. 전 월급쟁이에요. 힝. 자본주의의 노예.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 후원도 주지마세요. 회사가 후루룹짭짭해요.”
채팅을 보면서 적당히 대답하고, 그러면서도 재밌게 진행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부러움을 폭발시키고.
유료채팅만 켜서인지 쾌적한 방송이 진행되었다.
익명의 가면 뒤에 숨어 개드립이나 섹드립을 날리는 쓰레기는 많지만, 만원을 내고 섹드립을 날리는 머저리는 거의 없다.
-누눈나나좀 님이 10달러를 후원했습니다. 쥬~주지가 이상해.
-누눈나나좀 님이 차단되었습니다.
물론 만원씩이나 내고 헛소리를 하는 놈도 있긴 하다.
후원과 동시에 차단.
그리고 너 고소.
채팅이 켜져 있다면 ㅋㅋㅋ 가 천만 개 올라오지 않았을까.
- 작가의말
리플.... 3년전 4000원에 물리신 분... 아직 버티셨으려나...
그분은 현재 -70% 찍혀있겠네요
알트코인들이 3년전 고점 근처도 못 온 걸 들어 아직 시작도 아니라는 희망론이 갂므 보이기도 합니다만 더 오를지 내릴지 아무도 몰라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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