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불법체류자
미래쇼핑 발표 이후 전세계가 격동했다.
거침없이 하락하던 코인 가격들이 한차례 점프하고, 모든 코인이 우리에게 협업을 요청해왔다.
당연히 모조리 거절했다.
카드사가 나락으로 갔다.
그들에게 남은 길은 현재의 과도한 수수료 시스템을 고치거나 망하거나 둘 중 하나뿐이다.
이베이 아마존, 옥션 등 온라인 쇼핑몰 또한 날벼락을 맞았다.
부랴부랴 수수료를 낮추겠다고 발표하고, 구매고객 이벤트를 준비한다는데 최소 며칠은 걸릴 것이다.
은행사는 폭락했다가 폭등했다.
폭등하는 건 예상치 못했다.
당장 사람들이 은행에 달려가 돈을 예치하고 미래블록을 가져갔는데 저 돈이 은행의 신뢰를 올려준 것이다.
중간 유통사, 온라인 쇼핑몰에 상품을 올리는 유통사의 주가가 폭등했다.
수익률이 개선될 테니 당연한 수순.
상품제조사의 주가도 상승했다.
유통마진이 줄었고 직접 뛰어든다면 현재보다 수익이 두배 이상 늘어날 거란 관측이다.
일부 섹터는 폭락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주식시장 전체가 상승했다.
이건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권순진이 물었다.
-이번에 얻을 자본은 어떡할까?
미래펀드 수익 2조 외에 내 돈 4조원이 추가된다.
권순진은 이제 내 예측력을 100% 신뢰하고 있다.
“일단 롱 포지션에. 반도체 위주로 넣어주세요. 곧 빼야 하니 최대한 분산시켜주고요.”
-그래, 한 미 대만에 고루 퍼트려놓을게.
이 자금은 전부 본사 자금, 자산운용사와 상관없이 움직인다.
물론 운용은 같이한다.
일주일 동안 공매도 포함 6조원의 수익을 올렸다.
한국에만 공매도를 때리기엔 금액이 너무 커서 전 세계 주식시장에 분산해서 공매도를 쳤고 엄청난 외화를 벌었다.
이쯤 해줬으면 나라에서 애국자라고 훈장 줘야 하는데.
[늘어난 공매도 수량, 미래쇼핑의 발표와의 상관관계는?]
미래쇼핑의 발표 1주일 전부터 온라인쇼핑몰과 카드사에 공매도 수량이 늘기 시작했다. 과연 여기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미래그룹이 주가조작에 개입했는지 당국에선 철저한 조사를 해야 한다. 일설에 의하면...
-공매도 개새끼들
-공매치는 놈들때문에 주가가 안오른다
-이거 주가조작 아니냐?
[공매세력의 미소와 개미의 눈물]
카드사 주가 폭락으로 개미들이 눈물짓고 있다. 한편 공매도로 수천억의 수익을 벌어들인 미래펀드는 성과급을 풀며 돈잔치를 하고 있다. 어렵게 입수한 내부관계자의 제보에 의하면...
-아놔 내거 반토막남
-ㅋㅋㅋㅋ 그냥 미래펀드에 맡기지 왜
-사기꾼새끼들 다 죽여버려
[금융의 혁신인가? 사기인가?]
코인 가격이 1/30로 떨어진 요즘, 미래그룹은 열심히 코인을 팔아제끼고 있다. 현금을 지불하고 미래블록을 산 수많은 서민들이 나중에 1/30으로 떨어지게 된다면... 한편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스테이블 코인요 가격변동 없어요
-ㅈㄹ 다른건 그럼 왜 떨어지냐
-아재요 까려면 공부좀 하고 까
기사가 교묘해지고 있다.
모든 신문사, 방송사와 척을 진지라 감당해야 하지만, 이것들이 대놓고 악담을 쏟아내고 있다.
아마도 카드사 등에게 돈을 받아먹고 쓰고 있겠지.
그러면서도 고소당하지 않도록 교묘한 문장으로 책임은 회피하고 있다.
이것들은 이미 중립적인 언론의 기능을 잃었다.
물론 이건 신문사가 정치참여를 한 순간 끝났지만.
우리도 인방과 신문을 통해 반박기사를 쏟아내고 있지만 화력이 딸린다.
아무리 어처구니없는 거짓말도 100번 반복해서 들으면 사실이 되며 100번 반복해서 듣는 것보다 10명에게 똑같이 들으면 더욱 효과적이다.
사람들이 악의에 찬 선동에 세뇌되고 있다.
“안녕하세요. 스물네 살 나선혜입니다.”
잔뜩 긴장한 지원자가 최대한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긴장한 모습과 달리 이력서는 더없이 화려하다.
토익 930, 3.9 학점, 한국대 비서과 졸업, 자격증 9개.
이게 가능한건가.
게다가 꽤 예쁘다.
키크고 늘씬한 커리어우먼 스타일.
“지원 동기는 혁신 기업의 발전을 도우며 저 자신의 성장과 회사의 성장을 동시에 도모하기 위함입니다.”
적당한 야망을 드러내되 회사에 충성한다는 것을 내비친다.
면접가이드에 나온 모범답안 그대로다.
달달 외웠는지 곧장 답변이 나왔다.
“미래블록과 이오스 코인의 차이는...... 차이는......”
준비하지 못한 질문인가보다.
울려고 한다.
괜한 질문을 한 채인수를 쏘아보고, 입을 열었다.
“대답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스케줄 비서가 뭐하는 거예요?”
이건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다.
“모시는 분의 일정과 놓치기 쉬운 인맥관리를 하는 직업입니다. 주위 사람과 그 가족의 기념일을 챙겨 선물을 미리 준비하고, 전화연락을 받아 겹치는 일정을 관리하며 모시는 분이 최대한 편안하고 효율적으로 시간을 쓸 수 있도록 일정을 짭니다.”
음...
모르겠다.
비서실에서 전화받는 사람인가.
꼭 뽑아야 하나.
내가 입을 닫자 채인수가 재차 물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비서 일을 하다보면 어떤 형태로든 꺼림찍한 지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럴 땐 어떡하시겠습니까?”
“그......”
답이 안 나온다.
모범답안이 있을 텐데.
잠시 괴로워하던 지원자가 답변했다.
“상황에 따라 제 양심이 허가하는 한 따르겠습니다.”
이건 좀 참신한 답변이네.
앞선 지원자들은 전부 회사의 지시가 최우선이라 했는데.
서른일곱명의 스케줄 비서 면접을 보고, 이제 수행비서 차례.
수행비서는 따라다니면서 그림자처럼 행동하는 게 일이라 했다.
여기도 정말 화려한 이력서를 가진 이들이 줄을 이었다.
젊은이들은 4개 국어가 기본이고, 나이 좀 있는 사람은 대기업 기획실이나 비서실이 기본이며 심지어 MBA 출신도 있다.
여자는 다 예쁘다.
비서가 예쁜 건 패시브인가.
비서학과는 뽑을 때 얼굴점수도 있나.
저런 사람들이 왜 비서를 하려고 하는 지 참.
나중엔 할 말이 없어서 그냥 지켜보고만 있었다.
“어때? 누구 맘에 드는 사람 있어?”
“다 대단해요. 참 대단한 사람이 많네요.”
“그래서 누구?”
“딱히. 비서로 써도 되나 싶어서 고르기 힘드네요.”
“그만큼 스펙 경쟁이 심하다는 거지. 저 정도 되야 면접장소까지 올 수 있다는 뜻이야. 물론 미래그룹 사장급 비서에 연봉 6000이상을 보장했으니 많이 몰린 것도 있지.”
“뭐랄까. 씁쓸하네요. 사람은 알아서 뽑아주세요.”
“그래. 뽑아서 기본적인 교육까지 현재 비서실에서 맡아서 해 둘게.”
비서를 뽑는 건 내 의지가 아닌 채인수의 의지였다.
코인이나 비슷한 것에 집중하면 진동상태인 전화를 잘 안받기에 비서라도 뽑아서 연락 좀 빨리 하고 싶어서.
난 귀찮기만 한데.
“맘대로 하세요.”
“그래.”
비서진과 개인 관리팀, 머리, 옷, 건강 등을 챙길 관리팀이 조직되었다.
이제 적으로 돌릴 상대는 불법체류자다.
미래그룹과 상관없는 미래일보에서 특집기사를 줄지어 내보냈다.
[불체자의 실태]
인구소멸단계의 어촌에 가 봤다.
공식적 마을 주민 130명인 이 마을에 가장 젊은이는 56세다.
인근 마을을 뒤져봐도 40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도시 내에서 20대를 쉽게 볼 수 있다.
전부 동남아인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누구도 신분증을 갖고 있지 않다.
본 기자는 그들 중 비자를 받아 들어온 10여명을 찾아냈고, 비자가 만료된 채 살고 있는 70여명의 주거지를 확인했다.
이에 증거자료를 모두 관할 경찰서에 넘겼으며 불법체류자를 모두 송환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언론의 순기능.
불체자에 대한 취재를 하고 그들이 사는 곳을 밝혀 쫓아내도록 도와준다.
미래그룹에서 돈을 써 조사를 하고 국가기관이 해야 할 일을 쉽게 할 수 있도록 숟가락으로 떠먹여준다.
기사가 나가자 강렬한 반응이 왔다.
[한국에 15년째 살아온 무하마드 씨. 모든 걸 빼앗기고 쫓겨날 판]
[피부색이 다를 뿐입니다. 한국말 잘해요.]
[세상에서 가장 잔혹한 범죄, 인종차별]
[미래그룹은 무엇을 원하는 가]
[인종차별 반대시위 확산]
강한 비판의 기사가 줄을 잇는다.
[외국인 노동자가 떠나면 공장은 망한다]
[농촌어촌의 생산력이 70% 감소될 것]
[한국인이 일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외국인노동자가 필요하다]
그들을 고용하는 사업주의 고충 또한 이야기 된다.
인터넷 반응도 매우 안 좋다.
-솔까 배를 탈 사람이 없잖아. 70대 할아버지 혼자 그물 올리라고?
-짱깨새끼들 다 쫓아내라
-너 그게 인종차별이야. 너 미래그룹이지?
-벼농사도 외노자 없이 안 된다
-배추값도 세배 오를걸. 미래새끼들 때문에.
불체자가 단체로 사는 곳을 지목하고 증거를 모아 경찰서에 가져다 줘도 잡으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정부에서도 딱히 잡아내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농어민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지방 경찰서는 아예 기자를 쫓아내기까지 한다.
인종차별 반대 시위와 인종차별 금지 시위가 줄을 잇고, 100여개 시민단체에서 6000여명이 모여 성수동 본사를 둘러싸고 시위중이다.
사원이 아예 출근할 수 없을 정도로 길을 막았고, 경찰에 말해도 한시간만에 출동해 길을 열라고 한마디 하고 돌아갈 뿐이다.
회사가 마비되었다.
다른 빌딩들이 있기에 어떻게든 일은 할 수 있지만, 업무효율이 확실히 떨어졌다.
조용히 자기 영역을 지키던 황영석이 대화를 요청했다.
무수골 집에서 술상을 봐 놓고 면담 비슷한 훈계를 들었다.
“동욱아. 혹시 PC라고 아니? 컴퓨터 말고.”
“대충은 알아요. 정치적 올바름인가. 그런 거죠.”
“그래. 차별에 대한 경계. 이렇게 시작된 운동이야. 여기서 주모할 것은 이걸 따르지 않는 건 되지만, 피씨에 어긋날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장애인을 도웁시다, 라고 말하지 않는 건 괜찮아도 장애인을 돕지 맙시다, 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해. 소외노인과 불우아동을 돕지 맙시다, 이런 말도 위험하지. 왜겠어?”
“인성쓰레기로 욕을 먹겠네요.”
“그래. PC를 같은 방식으로 확장해보자. 기자회견장의 모범답안이라 생각하면 편하겠다. 기자 앞에서 가장 이득이 될 만한 대답, 이것도 똑같아.”
“기자회견이요?”
“예를 들어 국대 선수가 ‘일본전 어쩔 겁니까?’ 라는 질문을 들으면 ‘다리가 부러지더라도 싸워 이기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게 낫지. 속마음은 ‘이기든 지든 내 몸값을 위해 뛴다,’ 여도 그렇게 대답하면 안 되겠지. 아이돌이 팬에게 ‘나한테 돈이나 바쳐라 개돼지야,’ 라고 하지 않고, ‘당신들 덕에 내가 있어요, 사랑해요,’ 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이치고.”
“괜히 건드릴 필요 없다는 건가요?”
“그렇지. 굳이 불체자를 건드려서 좋은 건 전혀 없어. 네가 네 돈을 써서 그 일을 한다 해도 네가 얻을 건 없어. 고마워할 사람도 없지. 대신 지금까지의 안정된 생활을 잃게 된 누군가는 널 저주하게 돼. 목숨 바쳐 널 죽이려 들 수도 있어.”
“그러겠네요.”
나도 두 번째 삶이지만, 삶의 총량은 황영석이 더 길지.
미래를 안다고 깝죽대기엔 세상에 현명한 사람이 너무 많다.
“대체 왜 불체자를 건드린 거지? 얻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안선생님을 닮은 황영석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채인수는 모든 일에 관여하니 목표를 스스로 알아냈는데 황영석은 거기까지 읽진 못했나보다.
잠시 황영석의 백발을 보다가 말했다.
“쾰른 성폭행 사건 아세요? 재작년 일인데.”
“음. 글쎄.”
독일에서 있었던 일이라 모르나보다.
“쾰른의 새해맞이 축제 때 폭주한 남자들에 의해 성폭행, 강도 등이 1200건 이상 발생한 사건이예요. 당일 무슬림에 의한 집단 성폭행이 20건 이상이라고 하고요. 형이 말한 피씨가 이때도 작용한 것 같네요. 불쌍한 무슬림 난민을 보호해야 한다는 피씨 때문에 당시 배치되어 있던 경찰들이 구조신고를 묵살하거나 눈앞에서 여자가 끌려가도 구하지 못하고 상부의 지시를 기다렸대요. 당시 독일은 이슬람 난민을 보호하고 아껴야 한다는 포지션이 강했대요.”
“음. 그런 일이 있었네. 몰랐다.”
나도 몰랐다.
불체자에 대한 계획을 짜면서 조사해서 알게 된 것이다.
- 작가의말
이 글을 쓰면서 계속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PC.
정치적 올바름
처음 구상할 때부터 이런 말은 넣지 앟는게 좋은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런거 다 빼고 나면 너무 터무니없는 개소리가 되니 어떻게든 예쁘게 포장해 순화해 넣으려고 방향을 잡았고, 동정값이니 학연지연혈연을 못잡는 이유같은 쓸데없는 말들이 잔뜩 들어가버렸어요
사회현상을 좋은 말 행복한 말로 웃어 넘기는 대신 현재의 잔인한 면을 최대한 솔직하게 직시해 진솔하게 미래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되 유료화는 포기하자, 네 그렇게 된 거죠
담부턴 진짜 오직 재미만을 위한 글 쓸거임 진짜임 이번글까지만 좀 봐줘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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