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구정날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예하도.”
“헤헷.”
무수골 집에서 조용히 구정을 맞이했다.
특급 멕시코요리 주방장이 심혈을 기울여 끓여준 떡국을 먹고, 방바닥을 뒹굴뒹굴 굴렀다.
“아. 25살이다. 벌써.”
“난 스물하나. 헤헷.”
“좋겠다.”
“난 빨리 나이 먹고 싶은데. 스물다섯까지만. 거기서 더 이상 나이 먹고 싶지 않아.”
“스물다섯? 왜?”
“여자는 그 나이가 제일 예쁜 거 같아. 일하니까 돈의 여유도 생기고, 화장품 좋은 걸 사니까 예뻐지고. 여자의 소비력이 가장 강한 나이도 스물다섯이래고. 해외여행을 가장 많이 가는 나이라고 하고.”
“그래. 평생 스물다섯처럼 살아. 내가 뒤를 봐줄게.”
“에헤헤헤.”
“오늘은 방송하지 않을 거야?”
“해야지. 이따 트비스타 언니들하고 합방이얌! 새해 인사하고 노닥거려야지. 한복도 준비했지롱.”
예하가 개인방송에 맛 들였다.
한결같은 태도와 밝은 성격 덕에 방송에서만큼은 욕이 줄어들었다.
열혈팬집단이 악플러를 알아서 처단하는 중.
수행비서의 도움을 받아 가족과 사장 형들에게 전화를 돌리는데 특이한 방문을 받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마친 채선화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저 멀리 치웠다.
“혹시 핸드폰에 제가 모르는 도청 장치가 있을까봐 직접 왔습니다.”
채인수의 동생 채선화가 극도로 조심히 입을 열었다.
“FVV 식품과 청한 무역이 최후통첩을 거절했습니다.”
그게 누구지.
“두 회사의 아들들이 자수를 하지 않았기에 법적으로 고발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청한 무역의 사장 마청한이 은밀히 만나자고 제의를 했습니다. 그자의 말에 따르면 조승학을 보호하고 있으며 우리의 죄를 알고 있다고 합니다.”
조승학?
조승학이 그놈들에게?
개새끼를 생각하니 또 피가 솟는다.
“어떻게 거기 가있죠?”
“살살 떠보니까 협박성으로 말하더군요. 우리에 대해 조사하는데 조승학의 사진도 있었다, 아들들이 그 얼굴을 알아봤다, 우리가 무리해서 정신병원에 넣는 걸 보고 데려와 보호했다. 그러더군요.”
“그걸 자기 입으로 말했다고요?”
“허세가 좀 있었습니다. 궁지에 몰린 쥐새끼가 겁에 질려 멍멍 짖는 꼴이었죠.”
“블러핑인가. 하긴 우리의 죄가 뭐가 있다고.”
조승학을 지들이 데리고 있는 거랑 우리의 죄랑 무슨 상관인데.
사장 김상철이 습격 받았음에도 인도적 도의를 위해 변호해줬을 뿐이고, 사형에 처하려고 손쓰지 않았다.
오히려 치료받도록 손을 써줬다.
남이 보기에 수상한 행보였고, 그들도 수상하게 보여서 파고들다가 아들놈들이 조승학임을 알아봤겠지만.
그게 뭐.
저런 소리를 하는 걸 보면 조승학의 정신이 돌아온 건 아닐 것이다.
“개소리 지껄이게 냅두고요 고소하세요. 법에 따라 처벌받게 만들고요, 괘씸죄 적용해요. 돈은 얼마든지 써도 되니까 최대한 조져요. 그쪽 임직원 전원의 위장전입이며 세금 1원이라도 안 낸 거 있으면 탈세신고 하고, 무역이면 외국 쪽 업체의 잘못까지 엮고요, 식품이면 불체자 많이 쓰겠네. 공장 전부 조사해서 돈 못 받은 거 전부 신고하고, 불체자 고용했으면 탈세 엮고, 노동법과 엮고, 모조리 엮어서 아예 숨도 못 쉬게 만들어요. 자금은 걱정 마시고 본사에도 말해둘게요.”
개새끼들이 감히 조승학을 보호하고 있단 말이지?
뒤졌다.
죽기 싫으면 내놔라.
“알겠습니다.”
채선화와 옳은사회만들기시민행동연대는 바로 삼일 후부터 행동에 착수했다.
미래신문과 흥신소 아재들이 발맞춰 움직였다.
미래펀드는 소모되는 돈을 챙기기 위해 얼마 안 되는 공매도 물량을 사들였다.
백기투항은 필요 없다.
아예 대놓고 말했다.
자살한 하지혜양 영상에 등장한 목소리와 두 회사 아들들의 목소리가 동일한 것을 밝히고 시작했다.
제 2의 백제그룹을 떠올린 사람들이 일제히 주식을 뺏고, 두 회사는 3연속 하한가를 맞았다.
우리의 죄를 알고 있다?
뭔데? 무슨 죈데? 지껄여보시지.
조승학의 행방을 알아낸 구정날 오후, 예하는 자기 집으로 갔다.
바로 옆집.
가구는 들여왔지만, 평소엔 사용하지 않는 집.
“안녕하세요. 우리는 트!비스타! 입니다~와아아아아~”
톱스타들이 내 앞에 열 맞추더니 신인마냥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제 이런 인사는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아요? 탑급이신데.”
“에이. 세계 최고의 광고주님껜 공손히 인사드려야죠. 꺄하하하. 막이래.”
“언니~ 광고주님 앞에서 뭐햐?”
“냐하하. 망했다. 청순 고분고분 컨셉이었는데.”
“싸장님~ 우린 광고모델로 안 뽑아주시나요? 제시와의 인연을 생각해서...”
예쁜 여자들이 달려들어 아양 떠는데 기분이 좋아진다.
예하가 가장 예쁘지만, 예하만큼 예쁜 여자는 많다.
특히 얘들은 다 예쁘다.
예하가 센터감이지만, 나머지도 다 개성 있고 예쁘다.
이렇게 예쁘니 탑급 아이돌이 된 거지.
다 예쁘니까 부담스럽다.
“그럼 재밌게들 노세요. 예하야 내일 봐~”
“어~”
예하가 자기의 개인방송에 트비스타를 초대했고, 트비스타가 응했다.
여기엔 소속사의 복잡한 계산도 있었겠지.
“어마. 같이 놀아요. 이왕 정체를 들켰잖아요.”
“그니까요. 우리 제시의 남친이신데.”
“좋겠다, 제시. 우린 남친 있어도 공개 못하는데.”
“언니 입. 입.”
“앗.”
정신없다.
기빨린다.
“다들 너무 예뻐서 제시가 질투해요. 제시한테 미움 받기 싫으니까 빠질게요~ 잘 놀아요.”
슝 나왔다.
“어마마. 제시 너 꽉 잡았구나.”
“역시 여자는 미모가 짱이야.”
“좋겠다 제시~ 부럽~ 부럽~”
“내가 네 살만 어렸어도 확.”
“그런 언니 미자되는데?”
“그걸로 협박해서 꽉!”
문을 닫자 소음이 사라진다.
세상이 다 조용하네.
집에 가니까 너무 조용하다.
예하는 잘 놀려나.
자기를 뒤에서 발로 찬 범인은 잡을 수 있을까?
운동이나 할까 해서 밖에 나왔다.
본관으로 가는 길에 연못의 얼음을 깨는 관리사가 보인다.
“오랜만이네요. 수고하십니다.”
관리사가 잽싸게 카메라를 끄고 말했다.
“아. 사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방송중이셨구나. 네. 양식은 잘 되요?”
“아직 죽지는 않았습니다만......”
200평짜리 연못에 펌프가 50여개 들어왔다.
알 수 없는 기계도 10여개 있다.
여과하는 호스 천만 개가 깔렸고, 0.1도 단위로 온도를 조절하는 장치가 가동 중이다.
내가 양식이란 걸 우습게 본 모양이다.
이 아저씨가 설비투자로 쓴 돈이 몇 달 만에 15억을 넘겼다.
연못의 정취를 깨지 않겠다며 기계를 위장막으로 숨기고, 펌프는 최대한 조용한, 가장 비싼 펌프를 샀다.
덕분에 돈지랄 방송으로 유명세를 타며 구독자 30만 명을 모았는데... 그래도 손해가 막심하다.
물론 그깟 돈 얼마 되지도 않으니.
“돈 신경 쓰지 말고 번식만 되게 해 보세요.”
“크윽. 감사합니다. 사실 이게 자리만 잡으면 우리나라에 천억씩 안겨줄 수산자원입니다. 정말 애국자십니다.”
어. 어. 네. 그래요.
내가 애국자라니.
민망해서 자리를 떴다.
본관 수영장에 가서 거치대의 노트북을 켜고 뉴스를 보면서 수영장를 걷고, 마사지룸에 들어갔다.
“어?”
“마사지사 공은진입니다.”
“어?”
“그... 그게... 마사지 이모들이 휴가를 떠나서요. 한 시간 동안 섭외를 했는데 도저히 구할 수가 없어서......”
“아 그렇구나.”
수행비서가 그래서 고민이 많았나보네.
“오늘 마사지는 건너뛰죠 뭐.”
“아닙니다. 제가 마사지도 잘해요.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됐어요. 괜히 예하가 질투해요.”
“비밀로 할게요. 정말 비밀로.”
이 여자가 왜 이렇게 달려드는 거지.
“저 혹시 2차까지 해주실 생각이세요?”
물어보니.
“그... 원하신다면 최선을 다해......”
이 여자가 진짜.
“이런 말 하면 실례인거 알면서 묻는 건데요. 제 전 재산이 얼만지 알죠? 돈 때문에 그래요?”
진짜 솔직하게 물어봤다.
“아닙니다. 절대. 절대 아니에요. 저. 저는... 루비씨, 빙빙씨, 예하씨까지 구해주신 말씀을 듣고... 곁에서 자기관리 완벽하게 하시는 모습을 보다보니... 반해서... 사장이 아니라 사람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진짜 다른 생각 없어요. 그냥 돕고 싶어요. 오늘 예하씨랑 같이 못 있으시잖아요. 제가 곁에서 하란대로 할게요. 제가 도울게요. 뭐든 시켜만 주세요. 진짜 다른 의도 없어요. 정말로. 진짜 그냥 너무 좋아서 심장이 뛰어서 못 견디겠어요.”
우와.
나에게 여자가 이렇게 간절하게 매달리는 건 처음이다.
꽤 설렜자너.
“그래도 내가 싫어요.”
“네? 정말 괜찮습니다. 문제되면 제가 억지로 달려들었다고 증언할게요. 진짜 마음가는대로 행해주세요. 나중에 문제되면 제가 강간한 걸로 해서 제가 감옥에 갈게요. 제발. 그냥 저 한번만 안아주시면 안 돼요?”
하핫.
이놈의 매력이란.
돈 때문이 아니라 내 인간적인 매력이란 거지?
“그래도 안 돼요. 설계당하면 무조건 져요. 도지사 판결난 거 봤죠?”
“네. 하지만 전.”
“텔레그램 메세지 봤죠? 제가 보기에는 서로 좋아서 사귄 걸로 보이더라고요. 불륜. 잘못이죠. 그런데 성폭행으로 3년 6개월 징역형이 나왔어요. 사랑을 나누는 대화메세지가 있는데도 거부할 수 없는 위계에 의한 강간이래요.”
“전 달라요.”
“제 적이 보기엔 상관없겠죠. 우리 둘 다 아니라고 해도 거부하기 힘든 고용주가 그렇게 길들였다고 끌어가면 당신은 세뇌당해 당한 불쌍한 여자가 되겠죠. 얼마 전에 예하가 받은 제안 알아요? 여성단체를 가장한 사기꾼인데, 예하에게 20조 벌게 해주겠대요. 시나리오 자기들이 짤 테니 일관된 증언만 철저히 연습하면 된대요. 자기들은 1퍼센트만 받으면 된다던데.”
“아...... 그런 적을 상대하고 계시는구나.”
“어쨌든 안 된다는 거 이해했죠? 나가시고, 채인수형 연락해서 불러오세요.”
“네? 저는. 이제 이해했으니 절대 그러지 않을게요. 좋아하는 마음은 진짜입니다. 그냥 옆에서 모실 수 있게만 해 주세요. 제발.”
“그래서 더 위험해요. 본사 비서실로 가시고 비밀유지 잘 해주세요.”
너님 해고.
어쩔 수 없다.
예하가 상처받을까봐가 아니다.
날 지키려면 미리 조심해야 한다.
도지사 성폭행 판결에 따르면, 난 나보다 급이 낮은 여자와 섹스해선 안 된다.
그 어떤 여자를 만나도 억지로 엮으면 위계에 의한 강압적 성폭행이 된다.
- 작가의말
정치적 의도 없고요 양당 다 싫어해요
젠더적 의도 없고요 못된 남자 계속 등장했죠
그럼에도 욕하신다면 악플 달게 받겠습니다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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