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 에너지2
“어떡하죠?”
-해산 방송 해. 차라리 메타버스로 집회하라고 해야지. 영상 찍어서 나한테 보내줘.
“아깝네. 나를 위해 이렇게 모여준 것도 고마운데 그걸 막아야 하다니.”
-이미 대통령도 나섰지만, 개뿔. 탄핵에 정당해체가 확실한데 사람들이 듣겠냐? 너밖에 없다.
“네. 코로나의 아버지가 될 순 없죠.”
버스가 캠핑장에 도착했고 먼저 와서 놀고 있던 사람들이 모였다.
닥똥가오리. 루비. 내가 챙겨주는 몇몇 사람.
예하의 인맥 트비스타.
“왔다! 고기 굽는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트비스타.”
“아직도 인사해야해?”
“동욱아!”
정신없네.
“안녕하세요. 제가 바빠서... 잠시...”
예하는 저쪽으로 가서 어울리고 난 다른 차량으로 온 비서실에 말해서 방송배경을 꾸몄다.
대략적인 대본이 나왔고, 훑어보며 핵심을 잡았다.
녹화한다.
“윤동욱입니다. 소식 들었습니다. 저를 위해 힘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까지 헛짓거리 하지 않았다고 느껴져서 정말 기쁘네요. 그렇지만 지금은 위험한 시대입니다. 모이지 않아도 마음을 전할 방법은 충분합니다. 동네에서 열 명 씩 모여도 충분합니다. 네트워크 시대잖아요. 코로나 바이러스 없는 메타버스에서 모여도 되고요. 뜻은 충분히 전해집니다.”
내가 집회 해산 방송을 하면 궁지에 몰린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이 기뻐하겠지.
하지만 난 집회를 해산시키고 대신 불을 질러 버릴 거야.
다 타죽어라.
“박송희 총경 말입니다. 곡성 성폭행 무고 사건 때 무죄인 사람을 감옥에 넣었죠. 피해자라던 이가 강간당했다고 주장한 모텔은 해당 날짜에 문을 닫고 있었으니 한번만 가 봤어도 무고임을 입증했을 텐데 최소한의 조사도 하지 않았죠.
그렇게 무고한 피해자를 감옥에 넣은 박송희씨는 나중에 무고가 입증된 후 어떻게 되었죠? 국가에서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 줬는데 이건 우리가 낸 세금, 세금을 준 겁니다. 정작 무죄인 사람을 감옥에 넣은 박송희 총경은 벌금 한 푼 내지 않았고, 징계도 없었고, 경찰의 꽃이라는 총경에 올랐습니다.
무죄인 사람을 막무가내로 감옥에 넣었는데 오히려 칭찬받고 승진했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행동하시겠습니까? 다른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처넣어야죠. 잡아넣고 보니 진짜 나쁜 놈이면? 잘한 거죠. 잡아넣고 보니 불쌍한 사람이면? 피해보상은 우리가 낸 세금으로 하고, 잡아넣은 박송희 총경은 또 칭찬받고 승진하겠죠? 이걸 본 다른 경찰들은? 똑같이 무고한 사람을 감옥에 처넣길 반복할 겁니다.
박송희 총경은 제게 성추행 당했다는 피해자를 만들어 사건을 꾸몄습니다. 어차피 실패해도 칭찬받고 승진할 테고, 피해자의 증언이 가장 강력한 증거기 때문에 날 감옥에 넣는다면 칭찬받고 승진하겠죠.
세상은 단순합니다.
죄 지은 자가 벌을 받지 않으면 더 큰죄를 지어요. 죄 지은 자에게 벌을 줘야 유사범죄가 발생하지 않아요.
생각해보세요. 조두순이 여러분 옆집에 살고 있고, 아무 벌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해보세요. 똑같은 피해자가 계속 생길 겁니다. 그러면 무섭겠죠? 죄인은 벌을 받아야 합니다. 박송희 총경은 처음부터 범죄자를 단정 짓고 최소한의 수사도 하지 않은 채 무고당한 피해자를 감옥에 넣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 죗값을 받아야 합니다. 어, 이건 물론 제가 직접 민사소송을 걸어서 영혼까지 탈탈 털 예정입니다.”
인화점이라는 것도 있다.
자연발화점은 온도가 거기까지 올랐을 때 불이 붙는다.
인화점은 불꽃을 갖다 댔을 때 불이 붙는 온도다.
가솔린은 220도 정도로 데워지면 자연발화한다.
하지만 인화점은 -41도로 그 정도 온도만 되어도 불꽃을 갖다 대면 불이 붙는다.
인화점은 자연발화점보다 훨씬 낮다.
누가 불을 붙여주면 아직 뜨겁지 않은 이도 함께 불이 붙는다.
광화문에 내가 녹화한 영상이 틀어졌다.
해산유도 방송이라고 하니까 전전긍긍하던 정부와 정치계가 쌍수를 들고 환영해 시청과 광화문 주변 건물의 모든 광고판에 영상을 틀었다.
“어? 입장발표다.”
“미래그룹 공식발표래.”
“조용히 좀 해봐!”
“안 들려.”
“핸드폰으로 볼 수도 있대.”
무질서하게 떠들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제가 전하고 싶은 건 다른 이야기입니다. 지금 정의 포상금 덕분에 나라가 시끄럽죠? 제가 간첩죄까지 뒤집어 쓸 정도로 시끄러웠죠. 경찰, 검찰, 정치권은 덮고 싶어 해요. 다들 한 다리 건너 어깨동무한 친구들이니 벌을 주기 싫겠죠. 이걸 누가 수사해야 할까요? 검사의 지휘 하에 경찰이 수사하게 놔둬야 할까요?
곡성 성폭행 피해자의 무고를 누가 밝혔는지 아시나요? 임신 7개월인 딸이 밝혔습니다. 경찰이 방문하지도 않은 모텔에 찾아가 당시 문을 닫았다는 걸 알아내고, cctv를 확인하고, 그 전에도 똑같은 방식의 무고가 있었음을 알아내고, 동네사람들의 증언을 모으고, 무고자의 언니를 설득하고, 임신한 아기가 유산되는 고통을 겪어가면서 직접 수사해서 아버지의 무죄를 입증해냈고, 11개월 만에 석방시켰습니다.
수사는 원래 피해자 스스로 하는 겁니다. 손 놓고 경찰 믿고 있으면 경찰은 사건을 덮어요.
절 위해 300만 명이 모였고, 오늘 중으로 천만 명이 모일 거라고 합니다. 코로나를 피하기 위해 메타버스에 모이실 수도 있고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절 위해 쏟아주시는 게 너무 감격적이고 제대로 살아왔다는 기분이 드네요. 하지만 저를 위해 그 많은 에너지를 쏟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천만 명의 에너지가 구호를 외치는 걸로 끝나는 건 아쉽네요.
내 입장 표명은 시청과 전국의 소규모 집회 장소에 퍼졌다.
집에서 놀고 있던 이들도 본다.
세계 각국에서도 실시간 번역되어 틀어졌다.
-그 많은 에너지를 수사에 써 보심은 어떠실까요? 경찰과 검찰만 수사할 수 있다? 우리가 아무리 증거를 찾아도 검찰이 채택하지 않으면 끝이다? 아니죠. 시대가 바뀌었잖아요. 귄력자가 방송사와 신문사만 통제하면 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제는 미래 커뮤니티에 확실한 증거를 올리면 되죠. 박제하고, 영원히 추적하면 되죠. 국가가 벌을 안 준다? 국민이 기억하면 되죠. 전 국민이 증거를 찾고, 전 국민이 죄를 기억하고 죄지은 자가 지금 어떻게 떵떵거리는지 노려보면 되죠.
절 위해 집회하지 말아주십시오. 제가 지금까지 해 왔던 작업들을 이해하신다면 나라를 위해 에너지를 써 주세요. 나쁜 사람이 벌을 받고 감옥에 가면, 남겨진 착한 사람은 전보다 더 잘살 수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전 한국이 보다 잘 되길 바래서 돈을 썼습니다. 절 이해해주세요. 집회하지 말아주십시오.
집회하지 말고 나가서 증거나 찾아라.
전 국민 수사관 시대를 연다.
-천 만 명이면 한 집당 한 분이네요. 정말 많네요. 그럼 그 중에 부동산 전문가도 많겠네요. 주위를 둘러보세요. 버려진 논밭. 저 땅은 서울 부자 양반이 사 놓은 땅이래. 수근수근. 소문이 나있는 땅. 주인을 찾아보세요. 그거 땅 투기고 농토를 사서 오를 때까지 묵혀놓는 거 불법입니다. 현재 농촌을 죽이고 있는 가장 악질적인 문제고요. 논 1헥타르당 400만원 임대. 주변 사람은 다 알죠. 이거 불법입니다. 가뜩이나 힘든 농사를 더 힘들게 하는 악질적인 범죄입니다. 새로 시작하는 청년층이 농촌에 진입할 수 없게 막는 나라를 망치는 악질적인 범죄입니다.
나라에 맡겼지만 1년 째 진전이 없죠. 이걸 여러분이 잡을 수 있어요. 다른 직업을 가진 부자가 농토를 구매해 묵히거나 임대 주는 것, 이것만 잡아도 한국에 존재하는 비리의 절반을 잡을 수 있어요. 광화문에 모여 에너지를 쓰지 마시고 동네 한바퀴 돌아보세요. 비리는 숨어있지 않아요. 주공 직원들, 당당하게 자기 이름으로 땅투기 하다가 걸렸잖아요. 농지도 대놓고 불법을 저질렀어요. 3살 아이, 고위공무원의 아내 이름으로 땅을 사 뒀어요. 이런 걸 잡아요. 한국 전체를 뒤질 필요 없어요. 동네 한 바퀴만 돌아보면 되요. 그러면 대한민국이 맑아져요.
천만 명의 수사관.
한집 당 한 명.
모든 직업을 가진 수사관.
광화문에서 시청까지, 그리고 주변 종로대로까지 점거한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둘러봤다.
-법을 공부하는 분들. 검사 하나만 콕 찝어서 조사해 보세요. 모든 자료가 공개되어 있습니다. 훌륭한 검사는 훌륭한 판단을 했고, 썩은 검사는 썩어빠진 짓을 했습니다. 박봉의 공무원 월급에 재벌처럼 돈 쓰고 다니는 검사도 많고요. 한 사람이 몇 시간 조사를 하는 것 만으로 썩어빠진 검사를 잡아낼 수 있어요. 행정을 공부하시는 분들. 정부 부처 중 하나만 잡고 매달려보세요. 썩은 고구마 열개씩 캐낼 수 있어요. 세금 수백억이 어떻게 쏟아지고 누구 주머니로 가는 지 다 나와요. 공기업 준비하시는 이들. 원하는 공기업을 조사해보세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예산이 집행되고, 아무 성과 없이 사라져요. 자금흐름을 추적해보세요.
집 근처 수상한 기숙사, 인권의 사각지대에 뭉쳐 사는 불쌍한 불법 체류자를 잡아 고향으로 돌려보내주고, 동네 야산의 고급 별장, 거기서 벌어지는 끔찍한 성접대를 잡아내세요. 모든 비리는 우리 주변에서 대놓고 벌어져요. 천 만 명이 눈에 불을 켜고 카메라를 들이대며 돌아다니면 2~3일 만에 한국이 깨끗해져요.
절 위해 집회하시는 대신 그런 걸 조사해보세요. 썩은 걸 도려내고, 빈자리를 차지하세요. 맑고 깨끗한 나라, 정치인이 만드는 거 아닙니다. 여러분이 만들어야 해요.
“지역 축제... 내가 조사해볼까?”
“어... 우리 동네에 뜬금없이 육교가 만들어져서 사람들 다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그것도.”
“국가 지원금 계주군 공무원끼리 나눠먹었잖아. 난리 났더니 아무 징계 없이 넘어가고. 파봐야겠어.”
“집 주변만 조사한다.”
“내 직업으로 할 수 있는 걸 한다.”
“아 우리동네 외노자들, 조사해볼까?”
“대림동 사람들! 우리 같이 모여서 불체자 한 번 잡아봅시다.”
“진짜네. 우리가 찾아낼 수 있구나.”
-천 만 명의 에너지는 어마어마해요. 뭐든 할 수 있어요. 그 에너지를 이미 죽은 자를 치우는 데 쓰지 마세요. 대통령? 못 버텨요. 하야를 촉구하는 데 천 만 명의 에너지를 쓰지 마시고, 주위를 둘러보는 데 쓰세요.
여러분의 에너지를 좀 더 생산적이고, 즐겁고, 가슴 뛰는 모험에 쓰세요.
저를 위해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했습니다만, 이제 해산해 주세요. 코로나 주의하시고 메리 크리스마스 하세요. 가슴 뛰는 모험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가자! 모험이다아.”
“심장에 흘러오는 이 에너지는 무엇인가.”
“안전하게 해산합니다.”
“불타오르네.”
“뛰지 말아요. 천천히!”
“반가웠습니다. 커뮤니티에서 봐요.”
현명한 사람들은 이 순간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다.
개개인이 조사한 증거를 모아 공개하는 익명 커뮤니티.
증거를 올리고 교차검증하는 익명 사이트.
꼬리 없는 비리는 없다.
주공 직원의 땅투기?
경찰이 수사를 하지 않을 뿐 한 번만 쓱 봐도 지난 70년 간 언제든 잡아낼 수 있는 수준의 비리다.
모든 비리가 그러하다.
잡을 의지가 없었을 뿐.
천 만 명의 에너지를 모으면 모든 비리를 잡을 수 있다.
이미 죽은 대통령을 하야시키고 소멸했을 천 만 명의 에너지에 불을 붙여 방향을 바꾼다.
대한민국 전체를 불태운다.
농지투기, 불체자 기숙사, 지역축제 예산 나눠먹기 등 연료가 끊임없이 생성되어 불이 꺼지기는커녕 더욱 활활 타오르겠지.
도저히 끌 수 없는 불이 나쁜 사람만 골라 태운다.
24시간 녹음기에 녹화장비로 핸드폰 하나 들고 있는 국민이 전국을 들 쑤신다.
전국민수사관 시대가 열렸다.
녹화를 해 전송하고, 캠핑장 테이블에 앉았다.
고기를 굽고, 술잔을 돌리며 방송을 봤다.
“대... 단해.”
“후훗. 오빠므찌나.”
“엉. 진짜.”
후후훗.
에너지 낭비가 싫을 뿐이야.
- 작가의말
50편에 가까웠던 정치챕터의 주제였습니다...
읽고 불만갖고 끝나는 게 아닌 생산적인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었어요 ㅜㅜ
혹시 공지없이 글이 사라진다면 제가 감옥 간걸로... 크흑 사랑했었다
키리취님 매일매일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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