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플랫폼
도요타의 신년사는 널리 퍼졌고, 모든 기관과 회사가 미래자동차의 정체와 파티에 대해 추측했다.
테슬라가 핵심 파트너가 된다는 루머부터 구글 마소의 비중이 크다는 팩트까지 온갖 소문이 난무했다.
1월 3일 장이 열리기 전 테슬라 지분 10%가 20% 할인된 가격에 블록딜 되었다.
테슬라 가격은 10% 하락된 가격으로 시작해 -50%까지 갔다가 -30%에서 멈췄다.
장내 매도는 2%.
아직 8% 남았다.
테슬라에서 빠져나온 자금은 관련 부품기업에 투자했다.
테슬라가 폭락하면서 전기차 관련사들이 함께 폭락한다.
이걸로 손해를 만회한다.
-미래그룹은 테슬라에 대해 한마디도 안했는데 50%폭락하는 위엄
-아놔 당연히 테슬라랑 손잡고 가야지. 바겐세일이니 빨리 주워라
ㄴ네 다음 테슬라주주
-나 윤동욱인데, 우주산업할래
ㄴ우주산업전부폭락. 미래우주 독식
-나 윤동욱인데, 당구장사업할래
ㄴ당구장 다 망함 미래당구장 독식
-나 윤동욱인데 정치할래
ㄴ모든 정치가 떡락 윤동욱 우주대통령됨
ㄴㄴ혼자 뭐하냐?
ㄴㄴIP봐라 ㅋㅋㅋㅋ
ㄴㄴ나 윤동욱인데 이거 입에 딱 달라붙네
-테슬라 제낄 수 있나? 기술축적자체가 다르잖아
ㄴ이건 윤형 말도 들어봐야 한다
댓글창만 봐도 혼란으로 가득하다.
기다 아니다로 설왕설래가 오갔다.
덩달아 세계는 미래그룹의 공식발표를 기다렸다.
[문어발 경영 미래그룹. 모든 영역에 다 발을 뻗는다]
미래펀드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투자를 하는 회사다. 리스크 회피를 위한 최소한의 햇지도 없이 주식담보대출을 늘려 풀배팅을 한다.
미래그룹의 기적적인 성장 뒤엔 이러한 올인 전략이 있다. 27세 청년의 패기 때문인지 언제나 모든 것을 거는 올인을 한다. 포커판에서 뒤가 없는 풀배팅을 연속으로 하고 연속으로 승리했기에 3년 만에 세계 최고의 그룹이 될 수 있었다.
다만, 영원한 승리는 없다. 단 한 번의 패배로 지금껏 쌓아올린 모든 점수를 잃을 수 있다. 본인의 실수가 아닌 패가 붙지 않는 약간의 불운만으로도 수천 조에 달하는 재산을 한방에 모두 잃을 수 있는 것이다.
미래자동차 플랫폼. 아직 정체는 모른다. 다만 수백조를 넣어야 한다는 것만 안다.
미래그룹이 지난 해 사들인 회사들의 지분가치는 3600조. 대금의 30%를 지불했고, 앞으로 70%를 4년에 걸쳐 지불해야 하며, 이게 다 빚이다.
이미 빚을 잔뜩 지고 있는 회사가 자동차사업까지 확장하는 건 자칫 자금경색으로 인한 흑자도산의 위험이 있다.
대마불사? 미래그룹을 살리기 위한 대출? 알다시피 미래그룹은 너무 크다. 미래그룹이 휘청일 경우 국가가 휘청인다. 미래그룹을 살릴 수 있는 국가는 없다.
올인 전략. 심지어 대출까지 늘려 올인 이상의 수익을 거둔 그룹. 언제까지 이길 것인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
단 한 번의 패배로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패배? 그게 뭐지?
-윤형 사전에 패배란 없다
-솔까 패기 오졌다리오졌다
-근데 자동차는 무리 아니냐? it기업이 왜 자동차를?
ㄴ애플카는?
ㄴ구글도 뛰어들려고 하던데
ㄴㄴ 내가 자동차에 대해 모르고 있는건가
ㄴㄴㄴ 어 니가 모르는 거임
꽤 객관적인 기사다.
햇지 없는 투자는 사장들이 항상 걱정하며 제발 채권 좀 사자고 하는 부분인데, 정확히 꼬집었다.
미래에서 오지 않았다면 절대 이런 투자를 할 수 없긴 하지.
기사를 보며 정면을 봤다.
예하와 모닥불과 민지민지 셋이 나란히 앉아 떠들고 있다.
성수동 스튜디오에서 송출하는 공식방송이다.
“이번엔 4번 모델을 볼까요? 메신저 특화폰입니다.”
“어. 제시씨. 이건 차이가 뭐야?”
“미래블록 거래가 많고 거래대금이 큰 분들을 위한 보안폰이에요. 스파이웨어 깔리는 걸 원천 차단해요. 다만 미래메신저 내부 기능은 다 사용할 수 있는데, 외부 앱들은 사용제한이 많아요. 사시는 분들은 이걸 꼭 기억해야 해요.”
미래스마트폰이 공식 출시 되었다.
예약자들에게 320만 대가 배달되었고, 계속 제조되고 있다.
“그게 장점이야? 기능이 제한되는 데?”
“대신 싸잖아요. 반값이에요. 반값.”
“아하. 보안 기능이 강화되고 반값이라는 거지?”
“네.”
민지와 예하가 떠드는 동안 모닥불은 핸드폰을 뒤집고 뜯다가 켰다.
“제시. 제시. 켰는데 설치가 안 돼. 뭐 눌러야 해?”
“최초화면에 여섯 개 화면이 있죠? 안드로이드, IOS, 미래, 미래-상섬-지엘 합작인 MSG, 미래-마소 합작인 FM. 각자 다른 운영체제예요. 그 중 하나 골라서 설치하면 되요.”
“응? 애플 IOS도 깔 수 있어?”
“네. 운영체제를 선택하는 건 소비자의 마음이죠. 우리가 어떻게 소비자에게 운영체제를 강요할 수 있겠어요?”
공명정대한 미래그룹.
이 말을 듣는 애플은 짜증이 나겠지.
점유율이 올라가는 일이니 참여하긴 했는데 이러면 결국 자기네 폰도 열어야 한다.
IOS 독점으로 돈을 갈퀴로 쓸어 모으는 애플에게 가장 아픈 부분을 찌른다.
“운영체제를 깔고 나면 모든 기능을 쓸 수 있어? 조금씩 다르지 않을까?”
“조금씩 다르죠. 그래도 보안과 메신저 사용이라는 특성에 맞춰져 있어요. 그 차이는......”
미래 스마트폰의 최저가에서 최적가폰까지 다양한 모델을 소개하는 자리.
오늘 또 장시간방송이다.
여자 셋이 떠들며 놀며 설명하는 걸 보다가 다시 뉴스를 뒤적거렸다.
[혁신 없는 혁신기업 미래]
미래IT의 혁신엔 혁신이 없다. 말장난 같은가? 그렇다면 미래IT의 혁신을 찾아보자.
그룹의 핵심인 미래메신저. 왓츠앱과 MSN, 그 외 몇 개 메신저의 장점을 모았다. 그 뿐이다.
미래 뮤직? 스트리밍을 위해 3초 이상 광고를 보며 기다려야 하며 음질 면에선 오히려 뒤쳐진다.
미래 영상? 안정적 스트리밍을 위해 시드를 받는 시간 30초 이상이 필요하며 이 시간에 광고를 봐야 한다.
미래 방송? 느리다. 스트리머와 시청자가 다른 시공간에 사는 것처럼 서로간의 대화가 늦게 전해진다.
미래 쇼핑? 출시 2년이 넘었건만 미국에선 아마존의 물류에 의지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타 기업의 유통망에 기생할 뿐이다. 기존 인터넷 쇼핑업체와 똑같은 구조에 이렇다 할 혁신이 없다.
......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미래 그룹은 껍데기뿐이다. 미래그룹 어디에도 혁신은 없고, 보유한 원천기술은 돈으로 사들인 것뿐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태풍을 버티지만, 뿌리가 없는 풀은 가벼운 바람에도 날아간다. 미래그룹은 아직 바람을 맞아보지 않은 새싹이다. 잔바람만 불어도 훅 꺼질 촛불이다.
-ㅋㅋㅋㅋ올해들은 최고의 개소리ㅋㅋ
-취재비주셈꿀꿀. 안줘? 악플써야쥨ㅋㅋㅋ
-근데 맞는 말 아님?
ㄴ다 원래 있는 사업 뺏은거잖아
ㄴ멀쩡한 기업들 죽이고 뺏기ㄷㄷㄷ
-응 나 혁신없이 세계1위기업
-미래블록이 혁신이지 미래뮤직은 뮤지션에게 두배 수익을 주고 미래 영상도 제작자에게 두 배 수익을 주고 이게 혁신이지
ㄴㅇㄱㄹㅇㅃㅂㅋㅌ
ㄴ핵심 빼놓고 핵심없다고 한 기사였네ㅋㅋ
교묘하게 욕하는 기사들.
북극곰 숫자가 늘고 있지만 북극곰이 불쌍하다고 선동하는 류의 핵심 없는 기사.
댓글의 절반은 뭐가 문젠지 이해하는 것 같고, 절반은 속아서 함께 욕한다.
댓글을 보다가 옆을 봤다.
40대 인도 아저씨 칼바 고다마.
까무잡잡하고 둥글둥글한 게 석유부자처럼 생겼다.
인도의 중급 스마트폰 회사 회장이었는데 이번에 회사를 인수하면서 미래스마트폰 사장 자리를 줬다.
“아재요. 이 기사 보실래요?”
중간에 앉은 통역사 채인수가 통역해줬다.
기사 링크를 넘겨받은 칼바는 구글번역으로 읽은 후 싱긋 웃었다.
“맞는 말이네요. 껍데기뿐이라는 말.”
어... 맞아.
미래스마트폰은 껍데기뿐이다.
운영체제도 오픈소스에다 모든 운영체제가 들어올 수 있게 만들었고, 앱시장 독점을 통해 수수료 30%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부품조차 다양한 모델마다 회사를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서 하청조이기가 불가능하다.
미래스마트폰은 이름만 미래그룹일 뿐 수많은 부품기업이 각자 이윤을 창출하는 장터다.
“그게 최대 장점인 거죠.”
칼바는 자기 말에 내가 기분이 나빴을까 봐 걱정되는 지 부연설명을 했다.
“네. 맞아요. 그럼 3년 후 신규폰 점유율을 몇%까지 올릴 수 있으십니까?”
“60%. 최소 60% 점유율을 달성하겠습니다.”
한 점 망설임 없는 대답.
“좋아요.”
패기가 마음에 든다.
악수.
미래그룹의 중요한 한 축이 될 미래스마트폰.
이 형과도 자주 만나야 한다.
기사를 보며 대화를 좀 더 나누다가 메인작가를 불렀다.
기사 링크를 전해줬고, 몇 가지 말을 했다.
작가는 들고 온 노트북에 빛의 속도로 타자하고 작가진에게 가 대본을 만들었다.
“후아아. 6번째 모델의 장단점을 살펴봤어요. 그럼... 다음 폰으로 넘어가기 전에 다른 일 하라내요. 회장 지시래요.”
-윤형! 보고 있었구나!
-사랑해요 윤동욱
-1019대대 참기름 훔쳐먹는 맹천학 중사 짤라라
-제시 남편 떴다
-일하는 여자 구경하는 남자 최고의삶
-ㅋㅋㅋㅋㅋ
방송 화면에 기사가 송출되었다.
[혁신 없는 혁신기업 미래]
너 박제야 임마.
평생 고통받아라.
“자, 기사를 해부해볼게요.”
“일단 기자만 모르는 우리의 혁신! 미래블록!”
까고 또 까고 계속 깐다.
기자놈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깐다.
해부가 끝나자 모닥불이 모니터에 뜬 대본을 읽었다.
“그런데 옳은 말도 있네요. 미래 그룹은 껍데기 뿐이다. 어? 이게 옳아? 나 회사 욕했다고 짤리는 거 아니야?”
“언니는 지난주에 사표 던지고 놀러갔잖아.”
“그거랑 이거랑 다르지. 맨날 나한텐 악역만 시켜.”
대본읽어대본!!!
메인 작가의 분노의 타이핑이 모니터에 떴다.
“어... 미래그룹은 껍데기뿐인 게 맞대. 그런데 여러분은 조립식 컴퓨터 살 때 껍데기를 고민해서 골라? 아니면 내부 부품을 고른 후 거기에 어울리는 껍데기를 대충 골라잡어?”
-ㅋㅋㅋ내회사는내가깐다ㅋㅋㅋ
-닥부리는악역이지
-컴터케이스 말하는 거지? 제일 싼거면 되지 않나?
-암거나 상관없지 껍데기 따위
모닥불의 뒤를 이어 민지민지가 말했다.
“비욘드 어스. 대기권 밖 생태계. 미래그룹의 비전이죠. 이걸 드디어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네요. 우린 계란의 수정체를 감싼 계란 껍질처럼 지구 주변에 만들어진 껍데기가 맞아요.”
“이걸 영어로 뭐라 하냐면요. 플랫폼이라고 한대요.”
“어? 제시 영어도 알아?”
“몰라요. 1도 몰라. 대본에 적혀있어. 힝. 딱불언니 미워.”
또 갑자기 만담으로 가네.
이게 개인방송의 묘미기도 한데.
모닥불보단 제정신인 민지민지가 모닥불의 대사를 대신 읽었다.
“플랫폼. 기차역은 존재하기만 하면 되요. 중요한 건 승객과 기차죠. 저희는 사람들이 기차를 안전하고 편하게 탈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에요.”
“미래뮤직에 혁신이 없다? 우리는 1%의 영업이익만 받아요. 혁신이 없다고요? 고객이 기꺼이 지불한 금액은 노래를 듣기 위해 지불한 돈이에요. 그걸 플랫폼기업이 절반 챙긴다고요? 이상하잖아요. 우린 껍데기일 뿐이고 플랫폼일 뿐이에요. 고객이 지불한 돈을 아티스트에게 최대한 넘겨주는 것 자체가 혁신이죠.”
“미래웹툰, 미래영상, 심지어 미래핀테크까지. 우리가 이토록 빠르게 성장한 근본적인 이유가 뭘까요?”
“껍데기일 뿐이라서 그래요. 1%의 영업이익만 추구하니까 그래요. 수십조를 벌고 영업이익이 50%가 넘는 카드사, 동영상회사 등과 달리 우리는 고객이 지불하는 돈을 낮추고, 컨텐츠나 상품을 제공하는 공급자에게 최대 이익이 가도록 유도했기 때문이죠.”
“세상은 알아요. 플랫폼기업으로 이토록 빠르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원동력. 우리가 시장을 장악하니 고객은 쓰는 돈이 줄어들고, 공급자는 얻는 수익이 많아져요. 우린 단순한 껍데기로써, 단순한 플랫폼으로써 최소이윤만을 얻으며 최대한 편의를 제공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빨리 성장했죠.”
모닥불은 치우고 예하랑 민지 둘이 대사를 쳤다.
“우리의 혁신이 뭘까요? 욕심내지 않는 게 혁신인 거죠. 껍데기가 돈을 다 가져가면 이상하잖아요.”
나는 겸손하다.
나는 욕심이 없다.
물은 항상 자신을 낮추기에 가장 넓은 바다가 된다.
- 작가의말
기업 이야기 하면서 판타지를 넣는 건 글의 목적에 어긋나고, 주인공은 성장해야 하고 이 딜레마 때문에 영업이익만 보고 있어요. 들이는 노력 대비 돈을 쓸어담는 산업에 끼어들어 뺏어먹는 게 주가 되는데... 뭔가 번뜩이는 그런 게 없어서 실망하신 분들껜 지송요
키리취님 매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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