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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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KSMHC567
작품등록일 :
2021.02.1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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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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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돌

DUMMY

1904년 10월 16일 종로


아침부터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이 어느덧 수백 명에 달하는 군중으로 변했다. 대부분은 사람들이 모여들길래 뭔가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있나 하고 호기심에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좀 지나갈게요.”

“죄송합니다. 좀 지나갈게요.”


종로 한가운데 길을 막고 서있는 사람들을 뚫고 지나가기 위해 차주민 병장과 정종국 상병 그리고 박현길 일병이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내뱉으며 사람들 사이를 헤쳐나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어째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날만 골랐냐?”

“그러게 말입니다. 뭐하는데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현길아! 빨리 따라붙어라. 괜히 떨어져서 혼자 울지 말고.”

“크크크.”

“정 상병님, 쫄따구 놀리니까 재미있습니까?”


지난 서울탈환작전 때 총상을 입어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박현길 일병은 두 대원에 비해 걷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밖으로 나온 외출이어서 세 사람은 종일 여기저기 구경하며 기웃거리다 부대 복귀 시간이 되어 부대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종국아, 뭐 하는지만 좀 보고 가자?”

“시간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괜찮아. 잠깐만 보고 가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였다면 뭔가 재미있는 거 하는 거 같은데. 현길이도 좀 쉬면서 걸어야 하니까.”

“그러시죠. 현길아, 이쪽으로 가자.”


종로를 가득 채운 군중들 사이로 군복을 벗고 사복 차림으로 외출을 나온 세 명의 전북함 대원들이 사람들을 헤치면 군중 속으로 들어갔다.


“이것들 보시오. 나 일진회 회장인 송병준이외다.”

- 와아아아아!

- 짝짝짝!


단상 아래 모여있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울리며 손뼉을 쳐 군중들의 시선을 그에게 모았다.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오른 것은 세계적인 변화와 추세를 무시한 채 자신들의 권력과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황제 폐하의 눈과 귀를 가로막고 있는 조정의 신료들을 비판하기 위함이오.”

-웅성웅성

“뭔 말이래?”

“누가 황제 폐하의 눈을 가렸다고?”

“끝까지 들어봐.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어.”

“그랴?”

- 탕!탕!탕!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자신에게 집중시키기 위해 단상을 내려쳤다.


“잘 아시다시피 저 멀리 만주에서는 일본과 러시아가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고 있소이다. 얼마 전 요양전투에서 일본이 대승을 거두면서 전세는 일본에게 유리한 상황이외다. 일본은 우리와 같은 황인종으로 러시아 백인종의 침략에 맞서 우리를 대신해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 것이오. 그런데 그러한 일본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뒤에서 헐뜯고 사사건건 트집 잡는 행태를 보시오. 황인종을 대신해 러시아와 싸우는 일본을 위해서 우리 모두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일본을 도와줍시다.”

“옳소!”

“찬성이오!”

- 짝짝짝!


대부분 사람은 시큰둥했지만 단상 앞에 있는 무리는 그의 말이 끝날 때마다 열렬히 환호하며 장단을 맞춰줬다. 그러한 사람들의 모습에 힘을 얻었는지 그는 더욱더 큰 목소리로 열변을 토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서구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본과 함께 가야 할 것이외다. 더는 일본과 싸울 것이 아니라 일본과 힘을 합해 황실과 제국의 안녕을 도모해야 하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일본과 우리는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많은 차이가 나고 있소이다. 본인이 지난 십여 년 간 일본에 살면서 그들을 관찰한 결과 앞으로 동북아시아의 맹주는 청나라도 러시아도 아닌 일본이 될 것 확실하오. 따라서 우리는 일본 편에 서서 그들을 따라가야 할 필요가 있소이다. 더 나아가 그들이 허락한다면 제국과 황실을 보전한다는 조건으로 일본이라는 보호막 안으로 들어가야만 할 것이외다.”

- 우와와아!

“옳소!”

“맞는 말이다!”

- 짝짝짝!


대열의 맨 앞에선 바람잡이 일진회 회원들은 환호성을 울리며 손뼉을 쳐댔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일본의 보호막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서라도 안전을 보호받아야 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이었다.


“와, 송병준 저거 완전 똘아이 아니야?”

“그러게 말입니다. 저거 완전히 개 똘아이인데요. 아주 대놓고 일본 식민지가 되자고 하다니.”

“그리고 저 앞에서 손뼉 치며 찬성하는 미친놈들은 또 누구냐?”

“일진회 회원들 아니겠습니까? 지들 회장이 발언한다니까 바람잡이로 나선 거 같습니다.”


차주민 병장과 정종국 상병은 송병준의 허무맹랑한 연설을 들으며 황당해했다. 아무리 이완용과 친일을 경쟁하는 경쟁자라고 하지만 아직 황실과 대한제국이 멀쩡히 살아있는데도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갈 데까지 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박현길 일병은 아무 말이 없었다.


“현길아? 넌 왜 아무 말이 없냐?”

“그러게. 현길아? 넌 왜···.”


정종국 상병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현길 일병은 바닥에 있던 돌을 주워 들고 단상으로 던졌다.


- 텅!


빨랫줄처럼 날아간 돌멩이는 아쉽게 송병준을 맞추지 못하고 단상을 맞추며 큰 소리를 만들어 냈다. 큰 소리에 송병준은 순간적으로 몸을 움츠리며 단상 밑으로 몸을 숙였다.


“야이, 미친 개새끼야! 아무리 뚫린 입이라고 해도 말을 가려서 해야지. 황후를 살해한 것도 모자라서 황실과 조정을 총칼로 위협해 나라마저 빼앗으려고 한 일본의 보호막으로 들어가자고?”

- 텅!


송병준을 향해 한바탕 욕을 퍼부은 그는 다시한번 돌을 주워 들고는 단상으로 던졌다.


“야! 현길아. 너 왜 이래! 종국아, 어서 얘 좀 말려라.”

“넌 평생을 일본 놈 똥구멍이나 핥고 살을 놈이야! 너 같은 친일파는 모두 돌팔매를 맞아 죽어야 해!”


정종국 상병이 막아섰지만 분노가 폭발한 그를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지난 서울탈환작전에서 일본군 총탄에 맞아 죽음 문턱까지 갔다 왔던 탓에 일본에 대한 적개심은 그를 순식간에 헐크로 만들고 있었다.


- 휙

- 퍼억!

- 아아아악!


또다시 바닥의 돌을 주워 던지자 이번엔 정확히 단상 위로 머리를 내민 송병준의 이마를 정확히 맞췄다. 돌멩이가 그의 이마에 맞는 것과 동시에 시뻘건 피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고 비명이 애처롭게 주변에 울려 퍼졌다.


박현길 일병은 야구로 유명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다 보니 고교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야구를 접하게 되었고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야구 동아리에서 투수를 볼 정도로 일반인에서는 수준급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과거 전력을 가진 그의 돌팔매질에 정통으로 맞은 송병준은 두개골이 깨져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두 수병이 동시에 달려들어서야 그를 제지할 수 있었고 더는 문제가 커지기 전에 그 자리를 벗어났다. 부대로 향하는 도중에도 분이 풀리지 않은 그는 고래고래 욕설을 내뱉었다.


- 텅! 터텅!


세 명의 한국함대 대원들이 빠져나가자 주변에서 연설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박현길 일병의 말에 동조하며 돌을 주워 들어 단상으로 던졌다. 한두 명이 시작하자 순식간에 수십 명이 일제히 돌을 던지기 시작했고 그 수는 수십에서 수백으로 금방 늘어났다.


“친일파는 물러나라!”

“친일파는 당장 사라져라!”

- 아악!

“피해라! 어서 회장님을 안전한 곳으로 모셔라!”

- 퍽!

- 아아악!


분노한 군중들이 던지는 돌팔매질을 몸으로 막으며 일진회 회원들이 송병준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수백 명의 군중으로 주변이 봉쇄되자 그들도 돌팔매질하며 퇴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많은 돌멩이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했고 종로 거리는 돌에 맞아 피를 흘리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송병준과 일진회 회원들이 빠져나가자 그제야 돌팔매질은 멈추었지만 바닥에 어지럽게 널린 돌멩이와 흩뿌려진 핏자국이 분노한 군중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종로에서 발생한 충돌 사건은 한국함대는 물론 대한제국 정부와 일본 그리고 친일파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한국함대는 즉시 사건 발생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세 명의 대원을 사령부로 불러들였고 전 함대원의 외출과 외박을 금지했다.


일본과 일진회는 이러한 충돌 사건을 막지 못한 조정의 무능함을 신문 기사와 시위를 통해 거칠게 표출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최초 사건의 발단 역할을 한 사람이 한국함대원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 한국함대가 아닌 조정에게로 비난의 화살이 돌아갔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과 일진회의 성토는 며칠 뒤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에 게재된 기사로 인해 쏙 들어가 버렸다. 일본의 황무지 개척권 요구와 군용지의 임의 수용 요구 그리고 반일 운동을 군대를 동원해 막으라는 주장이 신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반대로 민중의 거센 저항을 받게 됐다.


특히 일본의 황무지 개척권 요구는 지방의 유생들까지 대규모 상소를 올려 일본 요구의 부당성을 성토했고 이러한 일본의 요구를 받아들인 조정 신료들을 파직하고 유배를 보낼 것을 주청 했다. 지방 유생들의 상소 운동은 보안회의 활동과 함께 일본의 요구를 포기하게 만드는 가장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실제 역사에서는 1904년 7월 13일 일본의 황무지 개척권 요구에 맞서 송수만, 심상진 등이 종로 백목전에서 민중 회의를 열고 보안회를 창설하게 된다. 회장에 신기선, 부회장에 이유인, 대판 회장에 송수만이 추대되어 일본의 황무지 개척권 요구가 취소될 때까지 연설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하여 전국적인 호응을 받게 된다. 이에 호응해 서울의 종로 상가가 문을 닫고 전차 운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일본은 치안 문제를 들어 정부에게 보안회를 해산시킬 것을 요구하며 압력을 가한다. 그러나 집회는 계속되고 일본은 헌병을 출동시켜 집회를 강제 해산시키고 주동자를 체포한다. 그 후 7월 21일에 일본은 대한제국 내 치안을 담당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후 집회 장소인 한어 학교에 진입해 무력으로 집회를 방해하는 등 보안회와 일본과의 충돌이 계속되었다.


결국, 정부가 국민의 반발로 인해 황무지 개척권 요구를 거절할 것임을 공표하고 나서야 보안회는 집회를 중지하게 된다. 이후 보안회는 일본의 감시로 인해 1904년 9월 11일 협동회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을 계속했으나 점차 그 활동이 위축되어 간다.


하지만 한국함대의 출현으로 인해 보안회는 실제 역사보다 더욱 강력히 일본의 황무지 개척권 요구에 맞서 반대 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그들의 연설 운동은 반일 운동으로까지 확대되어갔고 시위는 날마다 계속되어 참여하는 인원이 계속해서 늘어났다. 보안회 간부들이 모두 황제의 측근 인사들이었고 일진회와의 충돌 이후엔 별다른 과격 행동 없이 연설회만 개최하고 있었기에 도성의 경찰들도 그들을 해산시킬 빌미를 찾지 못해 그저 구경만 하고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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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 압록강군 +4 21.09.30 3,240 100 13쪽
212 빌미 +4 21.09.29 3,169 92 14쪽
211 전쟁 준비 +3 21.09.28 3,273 9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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