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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KSMHC5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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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18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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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츠머스조약 1

DUMMY

1905년 8월 14일 포츠머스


1905년 8월 10일 1차 회의를 시작으로 8월 29일 마지막 회의까지 양국의 종전 협상은 총 십여 차례의 본 회의와 수많은 비밀회의를 통해 간신히 합의에 이룰 수 있었다. 양 측의 전권 대사는 영토 할양과 배상금 등 주요 안건에 대한 조건이 변경될 때마다 본국의 훈령을 받을 정도로 신중하게 협상을 진행했다. 그만큼 전쟁을 시작하는 것보다 끝내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일본은 종전 협상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영일동맹을 갱신하기 위한 협상도 병행했다. 이는 영국으로부터 대한제국에 대한 배타적 지배권을 인정받기 위함이었다. 1902년 1월에 체결된 제1차 영일동맹에서는 대한제국의 독립을 명문화했었다. 그렇기에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대한제국을 보호국화 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내용을 개정해야만 했다.


실제 역사에서는 1905년 8월 12일 제2차 본회의가 열리는 시점에 제2차 영일동맹이 체결된다. 이의 주요 내용은 1차와 달리 일본은 대한제국을, 영국은 인도를 보호국화 하는 것을 동의하고 양측이 다른 국가와 전쟁을 하면 동맹국이 참전하기로 하는 공수 동맹으로 변경되게 된다.


이로써 미국과는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영국과는 제2차 영일동맹으로 대한제국을 보호국화 하는 것을 인정받게 되고 마지막으로 포츠머스조약으로 러시아로부터도 동의를 받게 되자 곧바로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강요하게 된다.


하지만 한국함대로 인해 미국과의 사전 협상에서 동의를 얻지 못했고 영국과의 동맹 개정에서 종전 협상에서 러시아의 승인을 받는 조건을 달아 승인함으로써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한국함대가 미처 영국에까지 작전을 벌이지 못하고 있었는데 영국이 본의 아니게 그들을 도와주자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 이유가 밝혀졌을 때 이 모든 것이 자신들 덕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단 한 푼의 배상금도 줄 수 없으며 단 한 뼘의 영토도 넘겨줄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말입니까?”

“그래요? 우리는 언제라도 전쟁을 재개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사할린이 완전히 점령당해야 정신을 차리겠다는 말입니까?”

“사할린이요? 지금 사할린이라 했소이까? 겨우 남쪽 끄트머리를 점령하고서는 큰소리치기는. 당장에라도 연해주의 병력을 보내고 싶지만 협상을 위해 참고 있다는 것만 아시오!”


양측은 한 치의 양보 없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팽팽한 상황은 한국함대의 간섭으로 인해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3차 회담이 끝난 직후 러시아는 일본 측에 비밀 회담을 요청했고 그 자리에서 종전 협상이 계속해서 지지부진할 경우 전쟁을 재개할 것이며 흑해함대를 주축으로 한 제2 원정 함대를 보내겠다고 일본 협상단을 압박했다. 이에 연합함대의 괴멸 사실이 유출될 것을 우려한 일본 측이 전쟁 배상금 부분은 양보할 수 있다고 한발 물러나며 협상은 지속하게 된다.


하지만 비밀 회담이 끝난 이후 일본 내부로부터 균열이 일어나며 협상의 주도권은 완전히 러시아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이 일의 시작은 오사카 아사히 신문(大阪朝日新聞)에서 전쟁 배상금을 획득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특종 기사가 호외로 터져 나오면서 시작됐다.


이는 협상 내용을 철저히 검열하고 통제하는 일본 정부의 눈을 피해 현지 특파원을 통해 작성된 것으로 일본 국내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고 각종 단체가 전국 각지에서 종전 협상 양보 반대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러한 일본 국내 사정은 협상단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어 제대로 된 협상을 진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역효과만 일으키고 있었다.


결국, 양측은 이러한 외부 여건 탓으로 이후 계속된 회의에서도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8월 18일 제7차 본 회의도 아무 소득 없이 무산되자 루스벨트가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그는 8월 21일 러시아 황제에게 더 이상의 전쟁은 서로에게 피해만 강요할 뿐 무의미한 것이므로 이제 끝내야 한다고 설득하는 친서를 주러 미국 공사를 통해 전달한다.


그리고 일본 대표를 포츠머스에 있는 자신의 숙소로 불러 설득을 시작했다. 이때 루스벨트는 일본 연합함대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한국함대로부터 관련 정보를 받았고 이 정보는 일본의 최대 우방인 영국 해군으로부터 간접 확인까지 받은 상황이었기에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러시아가 저렇게 강하게 나오니 일본 쪽에서 일부 조건을 포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각하도 잘 아시다시피 저희는 이번 전쟁에 엄청난 전비를 사용했고 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습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가 전쟁을 다시 하겠다고 하면 더할 여력은 있습니까?”

“그것은···.”

“그것 보시오. 더는 전쟁을 이어 가는 것이 불가능하니 적정한 선에서 타협을 해야 합니다.”


그는 일본의 전권공사인 고무라 주타로에게 전쟁 배상금의 포기해야만 협상이 진행될 수 있다고 설득했다.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은 일본이 무리한 요구를 굽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신문 기사가 연일 터져 나오는 상황이어서 여론도 일본에 불리한 상황이었기에 너무 욕심을 부리면 오히려 화를 입을 수 있다며 일본을 다독였다.


“각하, 국내 여론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전쟁 배상금은 빼고 만주 지역의 이권과 요양 반도 및 사할린 남부를 할양받는 선에서 합의하자는 것이오.”

“전쟁 배상금을 제외한다면 대한제국에 대한 우선권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어허, 배가 덜 고프신가 봅니다.”


냉정함을 유지하던 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연합함대에 뭔가 큰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로서는 일본의 행태가 짜증스럽기 그지없었다. 영국에 이어 최대 우방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들에게 진실을 숨긴 채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려는 모습에 그동안 일본에 가졌던 우호적인 감정이 싹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네? 각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그동안의 귀국과의 관계를 생각해 양국 간 원만한 협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중재하는 것인데 귀국이 그렇게 나온다면 앞으로는 알아서 러시아와 협상을 마무리해야 할 수도 있소이다.”


루스벨트의 마지막 말은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였다. 일본이 전쟁 배상금과 대한제국에 대한 우선권을 계속 요구하면 미국이 종전 협상 중재를 더는 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생각 같아선 연합함대에 생긴 문제를 지적하며 서둘러 협상을 마무리하라고 하고 싶지만 그동안의 정이 있어서 참고 있는 중이었다. 더는 전쟁을 지속할 여력이 없는 일본으로서는 청천벽력이나 마찬가지였다.


루스벨트의 중재 노력에도 불구하고 8월 23일과 26일에 열린 제8차, 9차 본 회담도 성과 없이 끝나고 말았다. 일본으로서는 전쟁 배상금과 대한제국의 지배권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전쟁을 지속할 여력도 없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시간만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결국, 협상 대표인 고무라 쥬타로는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본국에 훈령을 내려 달라고 요청했고 8월 28일 도쿄에서는 이 안건과 관련해 일왕이 참석하는 어전 회의가 열리기에 이르렀다.


“결국, 협상의 열쇠는 전쟁 배상금, 영토 할양에 달렸다는 말인가?”

“그러하옵니다만 한 가지 더 조선의 지배권에 대한 문제도 첨예하게 대립 중입니다.”

“조선까지? 이놈에 조선은 대체 언제까지 발목을 잡는단 말인가?”


메이지 일왕은 전쟁 내내 자신들의 발목을 붙잡는 대한제국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전쟁 초반 만주에 집중하느라 조선을 놔둔 것이 두고두고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조선에 대해선 남 일처럼 행동하던 러시아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단 말인가?”

“협상 초기부터 조선에 관한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막는 바람에 논의에서 빠져있었습니다.”

“결국, 확실히 얻을 수 있는 것이 여순항 일대와 만주 지역의 이권뿐이란 말인가?”

“현재는 그러합니다만 아직 협상이 끝난 것이 아니기에···.”


가쓰라 수상은 말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수십만의 젊은이들을 전장에 갈아 넣고도 최악의 경우 얻을 수 있는 것이 고작 이것뿐이란 말을 꺼내기가 민망했기 때문이었다. 일왕을 비롯해 회의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청일전쟁 때처럼 막대한 전쟁 배상금을 받아내 그동안 고통을 감내했던 국민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어야 하는데 빈손으로 종전을 맺는다면 모르긴 몰라도 혁명이라도 일어날 기세였다.


어전 회의가 열리기 나흘 전에 있었던 도미즈 사건으로 이제는 국민뿐만 아니라 지식인들도 들고일어나는 분위기였다. 도쿄 제국대학 법학과 교수인 도미즈 히로토가 종전 회담에 반대하는 논문을 발표했고 이로 인해 강제 휴직에 처하자 그와 의견을 같이하는 교수들이 들고일어나며 지식인 사회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일반 국민뿐만 아니라 지식인들까지 들고일어나는 상황이었기에 그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종전 회담이 시작될 때 일본은 강화 조건으로 12가지를 제시했다. 이중 만주 지역에서 러시아군의 철수 및 여순, 대련 등 러시아가 획득한 이권과 영토 양도, 일본 점령 지역의 청국 반환, 동청철도 본선의 상업적 목적 사용 조건으로 러시아가 보유 운영한다는 사항은 회담 시작부터 양국 간 이의가 없는 사항이었다.


또한, 일본 점령 지역의 철도와 그 지선 그리고 이에 부속된 일체의 권익, 재산 등의 양도, 러시아의 극동 방면 해군력을 증강 금지, 러시아 연안(동해, 오호츠크해, 베링해)에 대한 어업권 허용 등은 조건부로 인정하여 어렵지 않게 합의에 도달했다.


그러나 대한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 인정, 사할린 및 그 부속섬 할양, 전쟁 배상금 지급, 중립국 항구로 도주한 러시아 해군 함정 일본 양도 등에 대해서는 첨예하게 대립했다.


하지만 이 당시 대한제국은 완전히 일본 손아귀에 있었으며 일본이 추천한 외교 고문이 외교에 대해 조언을 하고 있었기에 일본의 허락이 없이는 다른 나라와 조약을 맺을 수 없는 상태임을 들어 러시아를 설득시켰다. 그리고 중립국 항구로 도주한 러시아 함정의 양도도 직접 명기되지 않는 조건으로 동의를 이뤄냈다. 영토 할양과 전쟁 배상금만 남아 치열하게 협상을 벌이게 된다.


실제 역사에서 1차부터 5차까지 회담에서 영토 할양과 전쟁 배상금을 제외한 나머지 사항들의 합의가 끝났고 이후 6차부터 10차 회담까지 오로지 이 두 조건에 대해서만 협의를 지속했다. 하지만 한국함대로 인해 바뀐 역사에서는 대한제국의 지배권 문제까지 더해져 더욱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일본 대표단은 일왕의 결단으로 협상을 마무리 짓기 위해 관련 사항에 대한 훈령을 요청했으나 어전 회의에서도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전쟁 배상금은 포기하더라도 영토 할양과 조선에 대한 지배권 인정은 반드시 획득하시오.”


일왕은 고심 끝에 결론을 내렸다. 전쟁 배상금을 포기하고 만주 지역과 조선의 지배권을 확보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경영하면서 발생할 이익으로 어느 정도 충당할 수가 있었다. 만주는 자원 공급처이자 장래 식량 공급처로 활용하고 조선은 자국의 상품을 자유롭게 팔 시장의 역할로 활용하면 전쟁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사할린 전체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사할린 남부 지역과 부속 섬들에 대한 할양은 얻어 내야 국민의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오. 알겠소이까?”

“명심하겠습니다. 폐하!”

“그리고 조선에 대해서는 일체의 양보가 없소이다. 영국과의 동맹 개정 조건을 다들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메이지 일왕은 한반도를 절대 포기할 수가 없었다. 제2차 영일동맹에서도 종전 회담에서 러시아의 승인을 받는 조건으로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은 것이었기에 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들이 대한제국을 손에 넣지 못한다면 만주 경영에도 차질이 발생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러시아와의 전쟁이 끝나면 다음 차례는 조선이다. 철저히 짓밟아 버리겠다.’


그는 속으로 대한제국에 복수를 다짐했다. 전쟁 내내 눈엣가시처럼 자신들을 괴롭히던 대한제국을 군사력으로 쓸어버릴 계획을 세웠다. 갑자기 입장을 바꿔 대한제국의 병합을 반대한 미국도 군사력을 동원해 신속하게 점령하면 결국에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러시아에 못 받아 낸 전쟁 배상금을 한반도에서 뽑아내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생각이 한낱 꿈에 불과했음을 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희망에 가득 찬 그의 계획을 가차 없이 걷어차 버릴 우울한 소식이 회의장으로 달려오고 있음을 전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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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제1차 한일전쟁 2 +2 21.10.04 3,341 97 12쪽
214 제1차 한일전쟁 1 +3 21.10.01 3,750 98 13쪽
213 압록강군 +4 21.09.30 3,240 100 13쪽
212 빌미 +4 21.09.29 3,169 92 14쪽
211 전쟁 준비 +3 21.09.28 3,273 99 15쪽
210 귀향가도(歸鄕假道) +5 21.09.27 3,281 104 14쪽
209 만주선후 조약 +3 21.09.24 3,729 95 17쪽
208 화폐 개혁 +4 21.09.23 3,421 104 16쪽
207 제국 순방단 +2 21.09.22 3,423 93 18쪽
206 작전명 반복창 +6 21.09.21 3,466 98 13쪽
205 환희 or 대혼란 +4 21.09.20 3,542 99 12쪽
204 포츠머스조약 2 +8 21.09.17 3,656 95 18쪽
» 포츠머스조약 1 +4 21.09.16 3,448 101 13쪽
202 종전 협상 +3 21.09.15 3,446 93 13쪽
201 가쓰라-태프트 밀약 +5 21.09.14 3,518 9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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