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구현에 환장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도철
작품등록일 :
2021.02.2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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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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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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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DUMMY

#


소란스러웠던 사건이 지나고,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자 난쟁이들은 수민과 정후를 손님으로 대접하였다.


피와 먼지로 뒤범벅인 모습은 거지도 이런 상거지가 없었다. 오랫동안 씻지 못해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하였고, 난쟁이들은 코를 틀어 막으며 우선 씻는 것을 강력하게 권했다.


여행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갖는 여유. 난쟁이들이 데핀 따뜻한 물로 수민은 쌓여있는 피로를 풀며 전신에 가득한 때를 벗겨내었다.


쏴아아


피와 먼지로 가득한 몸은 몇 번이나 물을 쏟아부어야 본래의 피부를 찾기 시작했다.


첫 휴식. 잦은 노숙과 영양적으로 부족했던 식사는 알게 모르게 수민의 피로를 가중시켰던 것이다.

정갈하게 씻고 나자 비로소 드러난 사람다운 모습. 거울을 바라본 수민의 몸에는 새로이 생긴 상처들이 눈에 띄었다.


벼락을 맞아 새까맣게 타들어간 상처. 긴 발톱이 할퀸듯한 칼자국. 깊게 남은 화인. 아직까지 살아있는게 용한 듯 수민의 몸은 상처와 고름투성이였다.


새살이 돋고 머리가 다시 자라는 환골탈태를 이루었지만 초월적인 존재들이 남긴 상흔들만은 회복되지 않았다.

그들의 원한이 상처에 깃들 것일까, 깊게 패인 상처는 너무나도 아파보였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문 앞에는 마을에서 준비한듯한 옷이 가지러니 놓여 있었다.

수민과 정후의 넝마가 된 옷이 무척이나 거슬렸던 듯 대머리 난쟁이에게 혼나던 모발이 풍성한 난쟁이가 갈아입을 옷을 가져온 것이다.


머리에 묻은 물기를 한바탕 털어낸 이후 입은 옷은 조금 큰 듯 했으나, 놀랍게도 옷이 자연스럽게 수민의 체격에 맞게 줄어들었다.


밖으로 나오자 정후는 이미 다소곳이 앉아서 주섬주섬 다과를 먹고 있었다.

수민의 등장으로 장내의 시선이 집중되었고, 부담스러운 관심을 받으며 수민은 그녀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우선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온 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수민은 머리를 푹 숙이고 시선을 내리깔며 미안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그녀 또한 수민의 반응을 살피고 같은 자세로 미안함을 표했다.

”마을에 소란을 일으키게 되어 미안합니다.“


처음과 다르게 서로가 서로를 조심스럽게 살피는 상황. 촌장으로 보이는 대머리 난쟁이가 경계심을 풀고 그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곳에는 어떻게 들어온 거요? 여긴 강력한 마법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밖에서는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오.“

마을의 촌장으로 보이는 대머리 난쟁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묻자 정후가 다소곳이 앉아 대답했다.


”협곡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웬 산이 하나 있더군요. 그냥 쭈욱 산을 타고 올라왔죠.“

그녀는 정말로 벌거 아니었다는 듯 담담하게 대머리의 물음에 답하였다.


”거기는··· 괴물이 있는데? 정말 쎈데··· 그놈.“


대머리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다른 난쟁이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 소리가 마을을 뒤덮었다.


처음에 봤던 적개심은 어디로 사라진 건지 난쟁이들은 굳은 표정을 풀고 이 놀라운 사실에 기뻐하기 바빴다.


”우오오오오!! 굉장하지 않은가!“

”그 번갯불 비둘기가 드디어 잡혔다고?!!“

”자유다아아아아아아!“

”건배~~~~~~~~~~~~“

”쿠오오오오오오 믿고 있었다고!“

”호에에에엥 멋진것이와요.“

”대다내~~~~~~~~~~!“


숨겨놓은 술을 꺼내며 연신 건배를 외치는 난쟁이들. 협곡이 흉조로 인해 막혀있어서 그동안 갇혀있었다며 그들은 수민과 정후를 행가레 치기 시작했다.

산의 중턱에 위치한 마을, 뒤는 협곡으로 막혀있고, 앞을 가로막은 숲에는 사람을 홀리는 미지의 존재가 있기에 고립되어 있던 것.


”저 빌어 처먹을 비둘기 새끼를 소멸시키다니 정말 고맙네 자네들은 우리의 영웅일세. 아무리 우리가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한들 모두가 이곳을 벗어나기에는 너무 늙어버렸단 말이지. 우리쯤 되면 워프 마법에도 몸이 버티지 못한다네.“

순간 대머리의 머리가 반짝하고 빛났다.

머슥한 표정을 감추며 고개를 숙인 탓에 그의 머리가 전구처럼 반짝이기 시작했다. 진지한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난쟁이의 빛나는 머리에 수민은 대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어느새 처음의 경계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마을은 축제의 분위기가 되었다. 오늘만은 망치와 모루를 놓겠다는 듯 마을 한가운데 모여 연회를 시작하는 난쟁이들.


감정의 기복이 매우 심한 듯 보이는 마을의 분위기에 수민은 실소를 흘렸다.


”우연히 마주친 마을이지만 정말 신기한 곳이야 그지?“

정후는 시끌벅적한 마을을 감상하듯 바라보며 수민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렇네. 난쟁이가 존재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지만, 이들도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아. 좋은 사람들이네 이 사람들.“


흉조로 인해 갇혀있었다면 외부와의 접촉이 전무 했을 것인데,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극진히 대접하는 모습에 수민은 가슴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


”으헤헤헤헤 거기서 뭐하고 있는겨, 우리 마을의 영웅들이 축제에 빠지면 쓰나.“

이미 만취해 눈의 초점조차 흐릿해 보이는 모발이 풍성한 난쟁이가 수민과 정후를 이끌고 축제의 중심으로 향했다.


”오오오오오오!!“

”호에에에에에엥“

”오늘의 주인공이 왔드아아아아“

”우효오오오오오오!!“


수민과 정후가 다가오자 바다가 갈라지듯 중심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조금 부담스러운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그녀의 말소리는 콘서트장에 온 듯한 함성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그런 그들의 앞에 입에선 알콜 냄새가 가득하고 얼굴이 붉게 상기된 대머리 난쟁이가 그들의 손을 부여잡고 연신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어지는 대머리의 연설.


”어려부우우우운!“


”행복하십니까~~!“


주름이 가득한 얼굴이 무색하게 난쟁이는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런 난쟁이의 외침에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즐겁게 웃으며 대답했다.


”행보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자유를 안겨준 영웅들을 위해 건배!“


”건배~~!“


결국 여기까지 데려온 것이 같이 술을 마시자는 말이었던가. 그 뜨거운 열기에 수민과 정후도 끝까지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기는 하루를 보냈다.


#


대낮부터 시작된 축제는 해가 저물고, 밤이 깊어질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분위기는 점차 무르익었고 흉조와의 일전을 묻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수민은 밤새 무용담을 펼쳐야 했다.


그만큼 흉조 때문에 고립되었던 시간이 길었기 때문일까 몇몇 사람들은 눈물을 글썽이고 코를 훌쩍이며 무용담을 들었다.


”아니 글쎄 이곳에 갇힌 지도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르겠어···“

그렇게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며 하나 둘 씩 잠에 빠져들자 촌장은 수민의 옆으로 다가와 마을의 숨겨진 비사를 말해주었다.


뇌제와의 인연. 흉조를 협곡에 봉인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마을의 비밀. 이를 위한 한 남자의 희생.


”사실 그 검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네. 뇌제의 후인이라는 것을. 그렇게 투명하면서 예리한 기운을 내보이는 건 뇌제의 유리검(琉利劍) 뿐이지.

뇌제는 우리의 절친한 친우였다네. 그 친구의 후인이라면 당연히 우리의 친우이지 않겠나.“

”흉조가 이곳에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목숨은 풍전등화와 같았지. 그는 그런 우리의 위기를 외면하지 못하고 싸운 것이야.“

어느샌가 촌장에 눈에 어린 취기는 사라지고 아련한 기억만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 유리검(琉利劍), 내가 만든 것이라네. 오색 빛의 별빛과 뇌전의 정령을 담아 백일동안 단조한 것이지.“

”나 같은 늙은이들은 잘은 몰라도 너희들이 거대한 운명과 함께 한다는 것 정도는 보이기 마련일세. 부디 이 혼탁한 세상에서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촌장. 한순간에 많은 심력을 소모한 듯 그의 모습은 어느새 폭삭 늙어 얼굴엔 주름이 가득하게 되었다.


인연. 운명. 인간의 인지를 벗어난 초월적인 것들이 우리를 향해 있었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흐릿하게나마 우리는 그것들을 인지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


수민과 정후가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잠에 빠진 새벽. 마을엔 일찍부터 쇳소리가 가득하였다. 전날의 숙취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 쇠를 두드리는 것 만이 인생의 숙제인 것 같이 마을 사람들은 새벽부터 뜨겁게 불타올랐다.





취이이이익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 수민은 눈을 비비며 마을을 한번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어제는 몰랐지만 하나 하나 자세히 보니 농기구, 검, 갑주 등 굉장히 다양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무기만 만드는 건 아니었나, 농기구도 품질이 매우 우수해 보이는데 만들어서 어디에 납품하는거지?“

전날 술을 그렇게 좋아하던 모습과는 달리 이들이 불길 앞에서 땀을 흘리며 작업하는 모습은 경건한 신부와도 같았고, 그렇게 완성되는 물건들은 가히 작품이라고 칭할 수 있을 만큼의 품격을 자랑했다.

과연 이 많은 물건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는 것인지 궁금증이 생길 무렵 촌장이 헐레벌떡 수민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자네··· 헉··· 헉 여기 있었구먼. 아침부터 안 보이길래 혹시 떠났나 놀랐잖는가.“

쉬지 않고 달려온 듯 촌장은 숨을 격하게 내쉬었다.

”마을을 한번 둘러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어제는 정신이 없다 보니 구경할 틈이 없어서요.“

”이 사람아 그럼 말을 하지. 아침도 아직이지 않은가. 아내가 아주 기깔나게 맛있는 한 상을 차려놓았네. 먹고 마을을 같이 둘러보세.“

침을 튀기며 숨도 쉬지않고 말하는 촌장의 말에 수민은 고개를 계속해서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집으로 도착하니 한 상 가득히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정성이 가득한 음식들을 보며 수민은 감사를 표하며 자리에 앉았다. 정후는 이미 부인과 수다를 떨고 있는 중이었고, 이어서 촌장이 마저 앉자 화목한 아침식사가 시작되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들 들어요.“

아침 일찍부터 음식을 준비하느라 고생한 티가 팍팍 나는 음식들을 앞에 두고 그녀는 정말로 별거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정말 맛있어 보이네요“

”와 음식들이 너무 예뻐요. 어머님 음식솜씨가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수민과 정후는 집밥이 생각나는 밥상을 보고 즐거운 식사를 시작했다.


”어휴 이 계란말이 좀 봐, 이렇게 안 부서지고 예쁘게 나오기가 쉽지 않은데 비법 좀 알려주세요.“

정후의 콧소리 섞인 반응에 그녀는 반색하며 하나 하나 알려주기 시작했다.


수민은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과연 자신에게도 이렇게 행복할 자격이 있을지를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이전에 빙의했던 자신의 피해자들의 기억과 감정만이 수민을 괴롭힐 뿐이었다.


언젠가 이 모든 게 끝나고 나면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각오가 무뎌졌다는 것이겠지. 지금의 감정은 속죄와는 무관한 사치일 테니.

”자네 왜 그리 못 먹나. 혹시 맛이···없는 건가?!“

촌장이 설마 맛이 없어서 못 먹는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이 수민의 눈에서는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자자자자 자네 우나? 그렇게 맛이 없었나? 여보!!“

밥을 먹다 말고 눈물을 흘리는 수민을 보며 정말 맛이 없었구나 싶어서 촌장이 부인에게 뭐라 하려는 사이.


수민은 다들 밥을 먹다 말고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며 눈물을 훔쳤다.


”정말··· 맛있어서요. 이런 밥을 먹어본 게 얼마 만인지 참. 너무 맛있어서 아버지와 함께 먹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잠시나마 꿈꾸었던 행복한 미래를 다시 집어넣는다. 이제 막 한 걸음을 디뎠을 뿐이다. 정신 차리자 정수민, 너의 본질은 저들과는 달라.

너의 추악한 과거를 알게 되어도 저들이 네 곁에서 웃어줄 것 같아? 정의라는 가면을 쓰고 세상에 나온 이유를 잊지마. 너는 속죄해야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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