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구현에 환장했습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무협

도철
작품등록일 :
2021.02.22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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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0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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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DUMMY

#


스스로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한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수민은 고요한 산속에서 관조를 시작했다. 초월경 이라는 건 인간을 벗어나기 시작하는 첫걸음.


쉽게 말하면 인간이라는 틀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원하는 바를 행할 수 있는 경지이다. 강하게 소망하면 세상이 호응하며 뜻을 펼치도록 하는 것.


결국 초월경이라는 것은 인간의 틀을 벗어나는 경지라 말할 수 있겠다. 인간일 때와는 운용하는 힘의 격이 다르다.


의념


아직은 의념으로 단순한 것들만이 가능할 뿐이지만 이번 수련을 통해 의념을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의념(意念)이라는 건 뭘까. 분명 네임드와 랭커를 구분 짓는 기준 그 이상의 의미가 존재할텐데.’


흉조와 싸우며 펼쳤던 심상세계. 마음이 동하기 시작한 순간 이미 의념은 발현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자.“

수민은 생각을 계속하기보다 다시 한번 의념을 펼쳐보는 것을 택했다.


휘이이이잉


수민의 곁을 맴도는 바람의 소용돌이.


무의식적으로 형성된 것일까, 이번에도 수민의 세계는 복숭아 꽃으로 물들어 있었다. 차근차근 주변을 바라보며 이 모든 것을 느끼는 수민.


복숭아 꽃으로 가득 찬 이곳은 단순히 기억을 재연한 곳이 아니었다. 이곳은 지금까지의 수민을 구성하는 것들이었다.


화려한 색으로 물들어 있는 것들은 버리지 않은 수민의 기억. 흑백사진과 같이 빛이 바래며 만질 수 없는 흐릿한 형체들은 수민이 버려온 기억들이었다.


회색빛 기억의 강. 추억은 눈물이 되어 흘렀고 수민의 슬픔에 호응하듯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수민을 이루는 모든 것이 이곳에 있었다.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이별도 행복도 불행도. 흑백의 기억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수록 색을 잃어가는 추억들. 흑백 기억의 끝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공간 속.


또르륵


수민의 뺨을 타고내리는 한줄기 뜨거운 눈물. 기억해보려 아무리 애써도 결코 돌아오지 않는 기억을 바라보며 수민은 슬픔을 목놓아 울었다. 텅 빈 가슴, 누구도 알지 못하고 알아줄 수 없는 아픔.


공허함만이 가득한 빛바랜 기억들과는 대조적으로 대다수의 기억은 찬란한 오색 빛을 뽐내고 있었다.


”아버지···“


기억이 강렬할수록, 소중할수록 밝게 빛나는 기억들. 그곳엔 형준이 인자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핑크빛으로 물든 화원. L.C 이전의 세상.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마지막으로 정후가 그곳에서 빛나고 있었다.


흑과 백의 기억이 모여 지금의 수민을 구성한 것이다. 필요 없는 기억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초월경에 이르러서야 깨달았다. 사라진 기억은 수민의 인간성을 좀먹어가는 중이었다.


하지만 수민의 심상 그 어디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밝게 빛나야 할 본인이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수민이 스스로를 어떻게 여기는지를 알 수 있게 하였다.


수민이 꿈꾸는 미래에 자기 자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뒤틀린 이상(理想). 이것이 수민의 행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그리 좋은 결말을 가져올 것 같지는 않다.

#


한편 수민이 산속에서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는 동안 정후는 자신의 부족한 무력을 채우기 위해 산의 정상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그녀가 유리검을 쥐고 강하게 염원하자 꿈속의 세상과 같은 곳에서 뇌제를 만났다. 뇌제가 후인을 위해 남긴 사념. 그곳엔 뇌제의 심득이 기록되어 있었다.


#


뇌신무 雷神舞

칠선(七善)의 일좌를 차지한 뇌제의 무공.

번개의 신을 표현한 이 무공은 거창한 이름답게 그 초식 또한 화려하고 강맹하였다.


그녀의 세상 속에서 뇌제는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검무를 펼쳤다.


제 일형 第一形

몰아치는 천둥


천둥의 검이 밤하늘을 가르며 푸른 불꽃을 꽃 피운다. 푸른 불꽃이 지나간 자리는 별들조차 빛을 잃었다.


제 이형 第二形

광휘의 파도


검을 휘감았던 푸른 불꽃은 더욱 뜨거워진다. 새하얀 불길이 검으로부터 방출되며 눈부신 백열과 함께 어두운 세상을 광휘로 덧칠한다.


제 삼형 第三形

열사의 폭풍


눈부시게 빛나는 뇌광이 지면을 휩쓸자 산천초목이 메마르고 생명의 불씨가 꺼져간다. 사막의 모래폭풍처럼 쏟아지는 벼락은 모든 것을 앗아간다.


제 사형 第四形

그림자가 없는 낮


눈부시게 빠른 검격은 그림자조차 삼켜버린다.


제 오형 第五形

마른 하늘의 날벼락


인지조차 할 수 없는 고요함 속에서 침묵의 검이 상대를 꿰뚫는다.


제 육형 第六形

천뢰


뇌정을 깨우친 자는

하늘의 뜻을 노래한다.


제 칠형 第七形

뇌신


스스로 뇌신이 되어 벼락의 춤을 춘다.


#


뇌제가 펼친 일곱 가지 검무는 그녀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초식을 완전하게 펼치기 위해서는 초월경을 전제로 하는 극악의 검무. 하지만 이를 완전하게 펼칠 수만 있다면 그 위력은 가히 절대자(絶對子)를 논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루


이틀


반복되는 수련


그녀의 일과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었다.

꿈속에서의 대련과 현실에서의 수련. 대련을 통한 미흡함을 현실에서의 수련으로 매꾸고, 기본기를 다지며 그녀는 뇌단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


뇌신무는 그 자체로도 절세의 무공이지만 벼락을 다룰 수 없다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초인의 벽을 넘어 수민이 있는 초월경으로 다가서기 위해서 정후는 뇌기가 가득한 협곡으로 향했다.

협곡의 주위로 남은 흔적들을 통해 지난번의 싸움이 얼마나 경천동지 했었는지를 되새기며 그녀는 각오를 다졌다.


또옥




그녀를 반기는 듯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며 어느덧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하였다,


쏴아아아아


쏟아지기 시작한 빗줄기.


콰과과광


빗속에서 내리치기 시작하는 천둥 번개는 때가 이르렀음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딸깍


정후는 폭풍의 한 가운데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목함을 열었다.

그 안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뇌단. 이 세상 모든 뇌기를 모아놓은 듯한 모습을 바라보며 정후는 손에 힘을 꽉 쥐고 뇌단을 삼켰다.


”쓰다.“


전설 속 여의주가 이러할까. 순수한 벼락의 정수만을 모아놓은 뇌단은 인간의 몸으로 소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노력과는 달리 뇌단은 그녀의 몸을 좀먹기 시작했다.


손끝부터 시작한 고통은 손등을 타고 전신으로 퍼졌다. 뇌기의 정수가 그녀에게 흡수되기 시작하자 협곡의 모든 벼락이 피뢰침과 같이 그녀에게 이끌리기 시작했다. 감당할 수 없는 뇌전의 홍수.


작은 컵에 넘치는 물과 같이 뇌기는 그녀의 통제를 벗어나 몸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 곳곳에 새겨지는 화인(火印).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정후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악!!”


고통에 가득 찬 절규가 협곡에 메아리쳤다.

누구도 도울 수 없는 혼자만의 싸움. 이 고통을 견디지 못한다면 결국 남는 건 죽음 뿐이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그야말로 뇌제의 재림이 분명한 상황.


고통과 원망, 자책,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그녀의 뇌리를 가득 채웠지만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의지가 그녀와 함께했다.


‘이 정도의 고통··· 그 녀석이 겪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강해지고 싶어 지금보다 훨씬 더.’

수민과 함께한 시간 동안 그녀는 수민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 결연한 의지마저도.


주륵


두 눈을 똑똑히 뜬 채로 그녀는 입에서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었다.


그녀의 몸을 녹여버릴 듯한 뇌기는 어느덧 몸속에 가득한 탁기를 불태웠고 정후의 육신을 불태우던 기운은 점차 갈무리되어 그녀의 아랫배에 자그마한 핵을 이루었다.


비록 하단전의 핵은 아직은 다루는 것이 미숙하겠지만 익숙해질수록 뇌제와 같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었다.


#


정후가 뇌제의 후인으로서 진전을 잇는 사이, 수민은 점차 능숙하게 의념을 다루는 것에 대해 익숙해져 갔다.


창끝에서 피어오르는 꽃 한 송이.

천지를 매우던 도화(桃花)는 사라지고 수민의 손끝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 송이가 피어난다.


천화령의 초입에 들어선 것이다.


수민의 의지에 따라 복숭아 향이 그윽하게 퍼지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난다. 메마른 대지에서 생명이 싹트고, 날씨가 맑아지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어루만지는 손길처럼 수민의 의지가 향하는 길에는 요동치는 생명의 태동이 가득하다.


초월경은 세상의 법칙마저 바꿀 수 있는 것일까. 수민의 모습에서 인간의 모습이 아닌 신선의 면모가 보이는 듯 하였다.


#


수민과 정후가 수련에 매진하는 동안 바깥의 정세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었다.

시체들이 되살아나고, 가장 깊은 어둠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대지는 피로 물들고 괴력난신이 세상을 활보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혼돈에 빠지자

서울, 인천, 부산, 대전, 대구, 광주, 울산. 일곱 대도시가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야욕을 드러낸 것은 서울. 가장 많은 랭커들이 즐비한 서울은 흩어진 클랜들을 하나로 모아 인접한 인천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김형을 필두로 한 랭커들의 공세는 이상하리만큼 은밀하고 날카로웠고, 인간이 아닌 듯한 스산한 분위기의 대군은 인천의 거점들을 조금씩 갉아먹으며 침식하기 시작했다.


인간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 이성을 가진 대 요괴들이 무리를 짓기 시작했다. 대 요괴들의 화합은 마수들의 군집을 의미했고 이는 요괴들이 군단을 이룬 것이다.


#


“흉조가 소멸했다?”

어두운 방 안 걸걸한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믿을 수가 없군, 아무리 봉인이 덜 풀렸다지만 그놈도 우리 중 하나인데.”

살짝 격양된 목소리.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란듯한 반응을 내비치며 흔들리는 그림자.


원탁의 주변을 둘러싼 다섯 그림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그분의 뜻대로.”

가장 농밀한 어둠이 감도는 그림자로부터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칠선은 그 빛을 잃었다.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지.”

가장 덩치가 큰 그림자가 오만하게 읊조렸다.


“...”

침묵으로 일관하는 한 명.


“흉조를 잠재웠다면 어설픈 견제는 의미가 없지. 우선은 인천을 장악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놈은 환마(幻魔)에게 맡긴다.”


이들의 수장으로 보이는 그림자가 옥좌에 앉아 말했다.


“모든 것은 그분의 뜻대로.”

의견이 수렴되자 그림자들이 일제히 복창했다.


#


시간은 빠르게 지나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이제는 하산할 때임을 직감한 그들은 마을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 동안 수민과 정후는 겉으로 보기에도 많은 변화를 보였다.

스스로의 기운을 제어하지 못하고 폭주했던 전과 대조적으로 지금 그들의 기도는 완벽하게 갈무리 되어 잔잔한 호수와도 같았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촌장은 준비된 선물들을 전달했다.


“실버 드래곤의 비늘로 만든 갑주일세. 평상시에 입고 다니기에 꽤나 화려하다고 생각한다면 혁대 중앙에 위치한 흑요석에 마나를 주입하게. 그리하면 자연스럽게 갑주가 사라지고 나타날 걸세.”


은빛으로 빛나는 갑주는 비늘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수민의 몸에 달라붙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착용감은 범우가 왜 마스터 스미스라고 불리우는 지를 증명했다.


은은하게 풍기는 드래곤의 마나. 웬만한 마법적 공격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의 항마력이 비늘 곳곳에 깃들어 있었다. 또한 일반적인 갑주와 다르게 두께가 매우 얇아서 움직임에 전혀 지장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 귀한 물건들을 만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유용하게 잘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상서로워 보이는 귀물들에 수민은 고개를 깍듯이 숙이며 진심 어린 감사를 표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정후의 머리를 살포시 눌러 인사를 하게끔 하자 그 모습에 범우는 호탕하게 웃으며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이제 시작일 뿐인데 벌써 감사하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자네의 손을 보니 꿰뚫린 흉터가 있길래 건틀렛을 하나 만들어봤네. 순수하게 강도에만 집중한 물건이라 별다른 기능은 없지만, 그 강도로는 따라올 것이 없을 것이네.”


“마지막으로 이어링인데 이건 한 쌍으로 제작했지, 자네는 귀를 뚫어야 하네! 한달에 단 한번이긴 하지만 이어링을 한 사람의 곁으로 공간이동을 할 수 있는 주술이 깃들어 있네. 물론 지금은 에너지를 충전중이라 사용할 수는 없다네”


수민을 위한 세 가지 장비들이 나열되었고 수민은 그 자리에서 곧장 착용해보았다. 장비에 익숙하지 않아 거추장스러울까 걱정했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무척이나 편했다. 잡스러운 기능 없이 순수하게 방어력에 집중한 장비들은 앞으로의 길에 제 몫을 다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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