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먼치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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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나스
작품등록일 :
2021.02.22 17:47
최근연재일 :
2021.04.14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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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2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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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선택의 결말

DUMMY

친구가 먼치킨

선택의 결말

by 마로나스









더 이상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전처럼 그저 무력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도 계속. 마찬가지겠지.


단 하나.


힘이 없는 그대로라면 말이다.


람이는 말했다.


싸울 수 없다면 돌아가라고.


눈 앞에 있는 것은 A랭크의 네임드 스켈레톤.


상식을 초월한 강함을 가진 A랭크의 계약자가 넷이 모여야 퇴치가 가능한 강적이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강자만이 설 수 있는 전장이라는 말은 결코 틀리지 않았다.


건물이 부서지는 굉음.


지면을 흔드는 묵직한 발소리.


폭발과 함께 느껴지는 강렬한 열기.


날카로운 바람이 몰아치는 회색빛 폭풍.


그리고 그 전부를 견디며 발악하는 A랭크의 괴물.


숨을 깊게 내쉰다.


조용히 정면을 바라본다.


그 어떤 때보다도 무력한 상황 속에서 주어진 선택지는 단 하나 뿐이다.


회색 아카데미의 앞에 A랭크의 바이러스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조금 더 감정의 정리가 된 이후에 고를 수 있었을 터다.


하지만 A랭크의 바이러스가 등장하고.


수세에 몰리고.


먼치킨인 친구놈조차 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내가 유일하게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다.


지금의 상황에서 악마의 유혹보다도 달콤하고.


이미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결과를 상상하게 만드는 선택지가 말이다.


"화이트. 보고 있겠지?"


보고 있기만 할까.


듣고 있기도 할 것이다.


폭풍으로 학생들이 있는 아카데미의 시설을 지키고 있기는 했어도.


애초에 그녀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저 스켈리톤과 동족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은.


아니 동일한.


A랭크의 바이러스이자 네임드.


'화이트 아웃'.


새하얀 순백이니까.


"이런 상황이야. 네가 바라던. 엿 같을 정도로 최악의 기분이지만. 그런 내 기분과는 달리 네 기분은 참으로 좋겠다?"


개같다.


엿같다.


나를 약자라고 단언하며 돌아가라는 람이의 외침에 내 기분은 나락까지 떨어졌다.


바닥의 바닥으로 떨어진 기분은 짜증에서 이윽고 분노로 변질되고.


한탄이 되어 절로 튀어나온다.


"왜냐하면 드디어. 드디어! 네가 바라던 계약을 맺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외치고 또 외친다.


이렇게 발악하듯 외치는 내 모습에.


얌전히 돌아가서 지킴이나 받으라고 외쳤던 람이조차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뭐. 됐어. 아무래도 좋아."


힘이 없다.


나약하다.


무력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힘만으로는 결국 지금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친구놈이 먼치킨이 되어 영웅이 되가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 아무래도 좋은 거야. 화이트 아웃."


스켈레톤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염제의 공격에도.


람이의 견제에도.


학원장의 방해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나를 보고.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명백하게 나를 위험한 대상이라고 생각한 탓인지. 그것도 아니면 단지 괴물에게 사랑이라도 받는 체질인 탓인지는 몰라도 나를 향해 뻗는 손이 참으로 징그러웠다.


"한바다! 도망치라고 했잖아!!'


그리고 람이의 외침이 들려오고.


나는 허탈한 한숨과 함께 작게.


아주 작게 말을 이었다.


"내 마음의 일부를 너에게 주마."


그러니.


"계약하자."


힘을 내놔.


"당신이 바라는 대로."


새하얀 괴물은 눈 앞에 있었다.


처음부터 그 장소에 있었다는 듯이.


그 존재가 확정되지 않은 유령보다도 공포스럽게.


하지만 너무나 새하얗기에 더욱 선명한 소녀가 무표정하게 다가와 내게 안겼다.


스켈레톤의 거대한 손이 뻗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차가운 감촉에 몸이 굳어졌다.


그리고 곧 새하얀 괴물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기꺼이 그 힘을 내어드리겠어요."


차가운 손이. 내 등을 끌어안았고.


차가운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당신의 감정을. 대가로서."


계약자라고 불리면서 단 한 번도 계약을 해보지 않았기에.


그 감각은 무척이나 소름돋고 생소한 것이었다.


입술을 통해 느껴지는 차가움은 금방 사라졌다


가슴의 깊은 안쪽에 문신이라도 새겨지는 감각은 신기하면서도 짜릿한 쾌감을 가져다 주었다


그 쾌감은 더없이 만족감에 가까운 형태였으나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행복한 기분에 취했을 때와 닮았다.


마약 따위 사용해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약에 취한 것 같았다.


"나를 사랑해줄 당신에게 주어지는 나의 모든 힘의 이름은."


하지만 무언가가 '완성되었다'고 자각한 순간―.


"하얀 공백(White crass)."


나는 새하얗게 물든 세상에 서 있었다.









***









눈이 내린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로 눈은 아니었다.


환상의 일종이며 현상의 일종이었다.


화이트와의 계약이 맺어짐과 동시에 펼쳐진 세계는 전부 백색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화이트와의 계약이 맺어짐에 따라 능력이 발현되었고 그에 따라 주변의 모든 것이 멈춘 것이다.


그리고 계약을 맺고 나서야 깨달았다.


화이트의 능력은 얼음을 만들어 조종하는 능력 같은 게 아니었다.


얼린다라는 특유의 현상도 결국에는 능력이 발현되었을 때 일어나는 과정에 불과했다.


화이트의 진짜 능력은 '얼린다'가 아니라.


'멈춘다'였다.


자신을 중심으로 펼쳐진 세계에서 모든 것이 느려지고 결국에는 극점에 이르러 멈춘다.


멈추고. 그것이 생명이라면.


생명활동조차 멈추고 죽는다.


지극히 당연하지만. 그렇기에 납득이 가능한 절대적인 힘임을 이해했다.


화이트가 처음 등장했을 때 계약자고 뭐고. 전부 일순간에 사라졌던 것은 이와 같은 능력에 당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능력이 바이러스를 상대로 얼마나 유효할까.


직접 써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판단이 들었다.


정면으로 보이는 스켈레톤의 거대한 손이 보인다.


분명 나를 향해 뻗어진 손일 텐데. 그 손은 나를 붙잡지 못하고 코 앞에서 멈추어 있었다.


그 손을. 나는 아주 가볍게.


톡하고.


건드려보았다.


바삭.


과자가 부서질 때. 혹은 신문지가 구겨질 때와 비슷한 소리가 나면서.


순식간에 스켈레톤의 거대한 팔이 눈송이로 변해 휘날리며 사라졌다.


"어떤가요. 제 힘은."


그에 나는 고개를 돌려 화이트를 바라보았다.


수줍게 웃고 있는 그 모습이 가증스러웠다.


하지만. 하지만.


계약의 대가이기 때문일까.


아주. 정말로 아주 조금.


그 미소가 귀엽다고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생각을 강제로 끊고 고개를 돌렸다.


눈 앞에 보이는 거대한 괴물. 스켈레톤.


그리고 나를 향한 A랭크 계약자 셋의 시선.


친구놈과 람이. 학원장까지.


당황, 경악, 혼란. 여러가지 감정을 담은 채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할 수 있는 건 하겠어."


그리고 말한다.


"그러니까 집중해."


이 전장에서 본래 내가 해야 할 역할을 상기시키며 나는 고개를 들고 정면을 향해.


스켈레톤을 바라보았다.


쿠궁···!!


스켈레톤의 거체가 움직인다.


아무리 본능 뿐이라고 하더라도. 아니 오히려 본능 밖에 없기 때문에 그것은 자신의 위기를, 죽음의 공포를 깨달은 듯했다.


휘두른 팔 하나가 바스라진 상황 속에서 용케 균형을 유지한 채 몸을 일으킨 바이러스가 다른 한 손으로 바닥을 쓸었다.


일어나는 먼지와 강한 바람에 시야가 차단되고.


친구놈과 람이를 날려버리기 위해 빠른 속도로 다가왔으나 그보다 빨리.


나는 손을 뻗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생겨난 거대한 얼음기둥이 그대로 거대한 손을 막아내자 람이를 중심으로 거대한 마법진이 펼쳐지더니 학생들을 보호하고 있던 폭풍의 장벽이 더욱 강해졌다.


그와 동시에 이 타이밍만을 기다렸다는 듯 친구놈이 대검을 양손으로 붙잡아 새웠다.


친구놈의 손에 쥐어진 저 대검은 사실 무기가 아니다.


내가 이전에 사용하던 창과 똑같이. 초능력에 반응하는 광석으로 만든 물건으로.


그 불꽃의 위력을 증폭시켜주는 장치의 일종이었다.


화르르륵!!


불꽃이 타오른다. 그 후끈한 열기가 순식간에 호흡을 힘들게 만들 정도였다.


그러나 불꽃의 화력은 더욱 높아져가기만 했다.


최대의 화력으로.


스켈레톤의 몸체를 소각한다.


간단하면서도 간단하지 않은 방법.


하지만 우리 '파란 하늘' 팀이 항상 해왔던 방식이기에 실패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콰아아아앙!!


바람은 불꽃과 만나 화력과 위력을 상승시킨다.


그리고 동시에 바람의 장벽이 주변의 피해를 최소화 시키고.


확실하게 공격을 성공시키기 위해 내가 염력으로 그 행동을 제약한다.


이것이 우리 파티의 기본 방침이었고 그렇기에 아까 실패해버렸던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멈춘다'라는 능력의 특성은 이전의 염력을 사용할 때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저 거대한 스켈레톤의 행동을 방해할 수 있었다.


휘둘러지는 공격 방향마다 치솟는 얼음 기둥이 공격을 방해하고.


스켈레톤의 거체에 능력을 집중시켜 그 행동을 한없이 느리게. 느리게. 느리게.


그리고 극점에 다다라 완전히 멈추게 만든다.


그에 따라 만들어진 확실한 기회를.


"간다."


친구놈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


불꽃의 대검을 통해 증폭된 불꽃이 허공에 인공적인 태양을 만들었고 움직임이 완전히 멈춘 스켈레톤을 향해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명백한 최후의 일격.


처음과는 다른 전력이 담긴 불꽃의 해방이었다.


태양과 충돌한 스켈레톤은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지르며―.


소각되었다.


저항은 없다. 불가능하다.


완전히 정지된 새하얀 백색의 세계에서 움직이는 것이 허락되는 건 내가 그것을 허락한 이들 뿐이었다.


그르르르륵!


거대한 태양이 닿아 만들어낸 동그란 모양의 구멍이 지글지글하고 소리를 내며 끓어올랐고.


거대한 태양이 사그라듬과 동시에 그 강대한 열기를 하늘로 날려 여파를 최소화시켰으나 그럼에도 남아있는 열기에 갈증이 났다.


"하아."


목 위의 넥타이를 끌어내리며 한숨을 내쉰 나는 고개를 돌려 친구놈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괴물 같은 녀석이다.


그 정도의 화력을 끌어냈으면서 땀 한 방울 안 흘리는 걸 보니 역시나 괴물보다 괴물 같은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으. 더워. 목 말라."


람이의 말에 나는 차원 장갑에서 물을 꺼내주었다.


물론 남아있는 열기가 워낙 강해서 미지근한 물이었지만.


그조차도 감지덕지라는 걸 몇 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람이는 망설임 없이 그 물을 받아마셨다.


"후. 고마워."


"차가운 물이 아니라서 미안해."


"이 상황에서 차가운 물을 바라는 건 사치지."


람이는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열기에 녹아 사라진 것들을.


학생들의 대피가 끝나서 다행이었지.


아카데미 부지의 절반이 날아가 있었다.


스켈레톤이 나타난 것에 비하면 초라한 피해지만.


그 부지의 절반이 친구놈의 공격 한 번에 날아간 것이다.


소멸되었다. 아니 소각되었다.


지면도. 건물도. 전부. 깔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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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네가 거기서 왜 나와 21.03.15 184 10 12쪽
13 #네가 거기서 왜 나와 21.03.12 174 1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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