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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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4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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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6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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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06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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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검기

DUMMY

“자...남궁린도 갔고.”


비무대 한가운데 서서 천하가 중얼거렸다.


그 소리가 낮게 울려서 사람들의 귀에 파고든다.


마치 짐승의 소리처럼 오싹한 목소리. 듣는 이를 본능적으로 공포에 빠뜨리는 목소리다.


“이 창천무관엔 이제 나 혼자인데....어쩔거냐?”


천하가 물었다.


모든 문하생들이 천하를 보았다.


누군가 물었다.


“무엇을...말입니까?”

“날 죽이려면 지금이 적기가 아닌가 싶어서.”


대가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놈들이라면 그러지 않는 게 당연하겠지만.


이놈들은 초절정의 고수가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고,


권력이 얽힌 일에 인간은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이놈들이 지금껏 내 앞에서 개기고 남궁린한테 아부한 것처럼.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남궁문에서 오신 분에게...저희가 어찌.”

“지금까진 인정 못하겠다고 덤비지 않았나?”

“그, 그건...”

“뭐, 됐다.”


덤벼들면 그건 그것대로 좋았다. 그걸 핑계로 다 죽여버릴 수 있으니.


안 덤벼도 상관은 없고.


“아무튼 지금부턴 내가 관주다. 내가 이 창찬무관의 주인이고 너희들의 스승이다.”

“...아직 관주님을 이기시진 않으셨잖습니까.”

“피한 건 너희 관주다. 이제 이건 내 당연한 권리고 의무지.”


천하를 어깨를 으쓱였다. 어디 성과를 좀 볼까.


“다시 말하지만 배우는 쪽의 자세도 중요해. 너희들도 일단 남궁문이 긁어모은 인재들이 아니냐.”


이건 빈말이 아니다. 결국 남궁세하는 남궁세가를 만들었다. 창천은 남궁세가에 이름을 남겼다.


“나는 내 자격을 충분히 증명했다. 그럼에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어쩔 수 없지. 하지만 진정으로 자신의 경지를 높이고 싶다면...때론 무릎을 굽힐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천하는 비무대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본다.


자신의 한계를 봤고, 그 너머로 가는 방법을 봤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도 봤다.


왜 검강과 검기를 쓰지 않았을까.


놈들을 굴복시키려면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렇게 굴복시킬 순 있어도 따라오게 만들 수는 없기 때문에.


그런 초능(超能)을 다루는 거라면 굳이 술법을 안 배우고 무공을 배울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자신 따위가 닿지 못할 만큼 어려운 건 똑같을 텐데?


하지만 천하는 그들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수준으로 겨루어줬다.


실제로 이 많은 문하생들이 천하를 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달려들었다.


그만큼 천하와 자신들의 차이가 적었고, 해볼 만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걸 의도한 건 천하 자신이었다.


이룰 수 없는 희망을 따르는 것만큼 미련한 건 없기에.


물론 그 중엔 결국 같은 경지에 오르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걸 위해 다른 놈들의 인생도 같이 갈아넣어야 하는 거고.


“나를 창천무관의 관주로 인정할 수 있는 놈들은...무릎을 꿇어라. 지금부터 날 자신의 목표로 삼고 내 말을 진리로 여길 수 있는 자들만 나에게 머리를 숙여라.”


천하의 말이 끝난 순간,


툭. 누군가의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그런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머리를 숙인 문하생들의 정수리가 보였다.


사범과 대사범, 그리고 부관주까지.


꿇지 않은 건 관주와 몇몇 사범들 뿐이다.


“좋다. 그럼 지금부터 호흡법을 전수하겠다.”

“...뇌룡의 호흡법을 말씀이십니까?”

“호흡법, 이라고 했다. 그걸 뇌룡의 호흡법이니 뭐니 바꿔 부르는 놈이 있다면 그자는 물과 친해지게 될 것이다.”


천하가 으름장을 놓았다. 순간 터져 나오는 살기에 문하생들은 창백한 얼굴로 끄덕였다.


곧이어 호흡법을 전수했다.


“호흡이란 우리의 몸을 유지시키기 위한 일종의 내공 같은 거다. 그래서 호흡법을 단련하면 자연스럽게 내공을 다루는 것도 쉬워지는 거지. 내공을 다루듯 호흡해라.”


먼저 가르친 건 호흡의 중요성과 호흡을 하며 스스로의 몸을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금 뒤 관주...이젠 전 관주인 순양이 말을 걸었다.


“왜 그러지? 비무할 준비라도 됐나?”

“그게 아니라,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어째서?”


순양은 문하생들을 스윽 둘러봤다. 더 이상 그들의 관주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들의 스승이었다.


다른 관주를 모신다고 해서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부상자들이 많은데다 식사를 하지 않은지 오래되었습니다.”


비무가 끝난 직후 수행을 시작한 터라, 문하생들의 육체와 정신은 한계에 가까웠다.


깨달음을 바로바로 정리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러다 병나지 않도록 조절해주는 게 스승의 역할이었다.


천하는 순양의 의견을 받아들인 뒤, 머릿속으로 오늘의 일을 정리했다.


문하생들의 지지도 얻었고 호흡법의 기초도 가르쳤다.


이 이상의 고급기술을 가르치기보단 오늘 배운 걸 다듬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남궁세하를 통해 각성한 식욕이 위장을 씹어대고 있었다.


순양의 의견을 수용하는 게 좋다는 결론이 나온다.


“좋다. 사범들은 집합하도록.”


아직까지 창천무관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다.


자신의 지식보단 이곳에서 먹고자는 사범들에게 일을 맡기는 편이 나을 거다.


그쪽이 더 편하기도 하고.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식사를 준비해라...주변에 객잔이 있나?”

“객잔이요? 어...저희들은 무관에 따로 식당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숙수도? 따로 식사당번 같은 건 없는 건가?”

“예.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아니. 됐어.”


역시 규모가 규모인지라 보통 무관하고는 달랐다.


‘진짜 하나의 성이나 세가라고 취급해야겠군.’


그 생각이 옳았다. 부상자들도 자기들끼리 부축하기보단 무관에서 고용한 시종들이 알아서 모셨다.


다들 귀하신 몸이다.


“오오...”


식당이란 곳에서 주문을 한 뒤, 그 결과물 확인했다.


형태와 향, 촉감이 예술품처럼 완벽했다.


더 이상 식욕을 참지 못하고 수저를 놀렸다.


한 입 먹은 순간 깨닫는다.


‘내가 남궁문에서 먹었던 건 쓰레기였군.’


남궁세하는 자신에게 쓰레기를 먹였다.


남궁세가에 대한 증오가 깊어진다.


“이, 입맛에 맞으신지요...?”


숙수들이 천하의 옆에 줄서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들 입장에선 하루 아침에 고용주가 바뀐 상황이다. 긴장하는 게 당연했다.


“아주...아주 만족스러워.”


벽곡단이랑은 비교할 수가 없다.


이걸 매일매일 처먹었을 창천무관의 문하생들을 생각하니 배가 아팠다.


왜 후손들은 그런 쓰레기를 먹어야 했던 걸까?


‘역시...남궁린 때문인가.’


범인으로 확정된 건 아니었지만 의심을 거둘 수 없다.


뜨거운 눈빛으로 식사를 이어가는 천하를 본 숙수들이 그제야 안심했다.


“다, 다행입니다.”

“다른 자신작도 있으니 그것들도 맛봐주시길.”


뒤이어 숙수들이 물러가고, 누군가 천하의 앞에 앉았다.


천하는 눈앞에 보이는 식판을 보자 눈살을 찌푸렸다.


딱 봐도 몸에는 좋지만 맛은 없는, 그런 영약식이 보였기 때문이다.


미식도美食道를 추구하기로 결심한 천하에겐 그야말로 사도 중의 사도.


천하는 무림의 사파무리를 보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왜 얼굴을 찌푸리는 것이오?”


부관주, 태정이 말했다.


“뭐냐. 왜 갑자기 시비를 거는 거지?”

“시비라니? 그냥 말만 걸었을 뿐이오만...”

“그런 맛대가리 없는 오물을 내 앞에 가져왔으니, 이건 나를 암살하겠다는 의도로 봐도 무방하다.”

“오물이라니...이건 내 몸을 위한 영양식이오. 정정하시오.”

“영양?”


천하는 다시 한 번 태정의 저녁을 확인했다.


“음. 무리.”

“...당신이야말로 그런 기름진 음식을 먹고도 전성기를 유지할 수 있겠소? 사람의 몸은 한 번 무너지면 회복하기 어려운 걸 모르오? 그러고도 초절정의 무인이라 할 수 있겠소?”

“멍청하긴. 나 정도 되는 고수는 체내의 불순물을 체외로 배출하는 게 가능해. 그래서 술을 마셔도 결코 취하지 않지.”

“무공으로 그런 것도 가능하단 말이오?”

“당연히. 상식이다.”

“허허...당신을 보고 있으면 내가 몰랐던 무공의 방향성에 눈을 뜨게 되는 느낌이군.”


태정이 재수없게 웃었다.


그륵. 그르륵. 식판에 남은 찌꺼기마저 탐욕스럽게 긁어내던 천하에게 그가 물었다.


“검기가 무엇이오?”


죽일까?


밥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웬 미친놈이 질문을 하니까 문득 살인충동이 일어났다.


대답하기 전 자신의 텅텅 빈 밥그릇을 내려다보았다.


다 먹은 줄 알고 물어본 건가? 그럼 아직 살려둘만 하군.


숙수를 불렀다.


“이거랑 이거 하나씩.”

“예.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주문을 마친 뒤 태정을 보았다.


“검기가 뭐냐고 물었나?”

“그렇소. 검기는 우리 무관의 오랜 과제였으니. 하지만 정작 우리들은 검기가 무엇인지도 몰랐소.”

“아예 모르진 않았을 거 아니냐? 뭘 모르는지보단 뭘 알고있는지부터 말해봐.”


아마 그게 더 빠를 것 같다.


“으음...검기란 체내의 기운을 체외로 방출하여 검에 덧쒸운 것...아니오?”

“아니오? 확실하게 아는 거 맞아?”

“사실 이것도 추측이오. 당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적어서...”


부관주 태정이 한숨을 내쉬었다.


“누군가는 검기가 말 그대로 검에 있는 기운을 일으키는 것이라 말하고, 누군가는 기운을 검처럼 압축한 걸 검기라 말하고 있소. 무엇이 옳은지는 우리도 모르오. 직접 본 적이 없으니까.”

“전 관주는?”

“순양 관주님? 그분이라면 비무가 끝난 뒤 폐관에 들어가셨소.”


지금 막 절정에 오를지도 모르는 놈은 폐관에 들어갔다. 설명해줄 만한 사람은 자신밖에 없었다.


‘검에 있는 기운을 일으키는 게 검기라...’


어처구니가 없다. 과연 이 시대는 이 정도의 지식조차 알려지지 않은 건가.


아니면 저런 지식이 당연한 세상인 건가.


“굳이 따지자면 검기는 체내의 기운을 검에 흘려넣어 방출시키는 거야.”

“그렇소? 초절정의 고수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태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하는 머릿속에서 검기와 관련된 지식들을 끄집어냈다.


“근데 이건 반만 맞는 소리지.”

“반만?”

“그래. 많은 사람들이 내부의 기운을 외부로 방출시키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건 일류 수준에서도 가능한 거거든?”


그리 말하면서 천하는 손을 뻗었다.


파앙! 시원하게 날아간 장풍이 태정의 머리카락을 훑고 지나갔다.


이 녀석. 이마에 탈모가 좀 있군.


그런 맛대가리 없는 가축사료나 처먹으니 머리가 벗겨지는 게 분명했다.


“이것도 공기에 기운을 섞어 날린 방출의 일부고 따져보면 검에 기운을 넣는 것도 방출이지. 검을 내몸처럼 다룬다고 해서 진짜 내 몸인 건 아니잖아?”


체내의 기운을 체외의 검으로 이동시키는 것도 방출이었다.


즉, 검을 내공으로 강화시킨 시점에서 방출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럼에도 검기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그렇군. 그러면 왜 나는 검기를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이오?”


태정이 간절한 시선으로 묻는다.


검에 내공을 불어넣어 강화시키는 건 가능했다. 하지만 검기를 만들어본 적은 없었다.


기를 외부로 뽑아내는 게 가능하다면 왜 검기를 만들 수 없단 말인가.


“검기를 만들 때 중요한 건 방출이 아니라 감응이라서 그래.”

“감응?”


태정이 고개를 갸웃했다.


“내부의 기운과 외부의 기운을 감응시켜서 연결하는 거지. 검기는 그렇게 만드는 거야.”

“...이해가 잘 되지 않소.”

“저도 잘 이해가 안 됩니다.”

“감응을 어떻게 하는 겁니까?”


어느새 문하생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그들에게 검기란 신기루와 같은 도달점이었으므로.


지금 막 그 비밀이 풀어헤처지려 하고 있다.


“자, 자. 일단 좀 꺼져봐 멍청이들아.”


천하는 젓가락을 휘둘러 사람들을 떨어뜨렸다.


천하에게 가까이 접근했던 문하생들이 기겁하며 물러섰다.


그가 휘두르는 젓가락에 푸른 검기가 서려있었으므로.


그들은 검기가 무엇인지 본 적은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그 위험을 간파하고 물러섰다.


“자, 이게 검기다.”


젓가락으로 검기를 일으키며 말한다.


“이게...검기?”

“젓가락인데?”

“진짜 빛이 나는구나.”

“파란색이네. 왜 파란색이지?”

“나는 파란색 말고 무지개색 검기를 일으키고 싶은데...”


문하생들이 많아서 그런지 한마디 씩만 해도 소리가 꽝꽝 울렸다.


“입 다물고 듣기나 해. 봐라. 내가 지금 검기를 일으킨 건 보이지?”

“잘 보이오. 아주...신비롭군.”


태정이 홀린 듯 말했다. 그가 대표라는 듯 다른 문하생들은 입을 닫고 있었다.


“그럼 내가 지금 젓가락...검 바깥으로 기운을 방출시키고 있다는 건데...그럼 지금 이 검 안에는 내공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검기를 내부의 기운을 외부로 방출시킴으로써 구현하는 것이라 정의했을 때,


검기를 일으킨 이 시점에서 검 내부에 내공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검기를 일으켰는데 굳이 검 안쪽에 기운을 담을 필요가 있소? 중요한 건 검의 내구도가 아니라 검기의 절삭력이 아니오?”


태정의 물음에 문하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정은 정확히 문하생들의 궁금증을 풀어서 질문해주었다.


중요한 건 검기지 검이 아니다.


어차피 검기로 벨 건데, 굳이 검에 내공을 넣어 소모할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외부로 방출하는 검기에 더 내공을 투자해 위력을 강화하는 게 맞지 않을까?


‘방출’에만 집중한다면 그 말이 맞다.


“너희들이 기운을 방출할 때, 검기가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다. 흩어지기 때문이지. 너희들의 내공은 외부로 방출된 순간 급속도로 흩어진다.”


유지력이 부족하다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진법(陣法)처럼 한 번 만들어놓으면 두고두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용자의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 검기고 검강이고 빠르게 사라진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흩어지기 때문이다.


“내공이란 건 애초에 자연의 기운을 인간의 입맛대로 바꾼 거야. 그래서 인체에서 벗어난 내공은 빠르게 흩어진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엔 흩어지지 않는 검기가 있소.”


천하의 검기는 너무나도 선명해서 눈으로 차분히 관찰할 수 있을 만큼 훌륭했다.


검기라는 기술을 완벽하게 구사하고 체득했다는 증거다.


초절정의 고수란 그런 것이다.


“맞아. 그래서 필요한 게 바로...이 검 안에 남아있는 내공이지. 애초에 검도 외부이긴 하지만 내공은 기체, 액체, 고체 순서로 흩어지는 속도가 빠르거든.”


천하는 검기의 통제를 풀었다. 그 즉시 검기는 아지랑이처럼 흩어진다.


하지만 검 안쪽에 있는 내공은 아직 남아있다.


“그래서 일단 검 내부에 있는 내공은 다루기가 비교적 쉬워. 이 내공을 이용하는 거야. 자, 봐. 이건 단순한 절정고수들은 보여줄 수 없는 묘기다.”


천하는 반대편 손을 들어 거기에 내공을 띄웠다. 푸른 빛의 구체가 만들어졌다. 외부로 방출된 내공. 그것을 천하는 자신의 의지로 붙잡았다.


검기를 일으키는 것 하나만으로도 벅찬 수준 낮은 놈들은 흉내도 내지 못하는 방법이다.


천하는 그 구체를 자신의 기운을 담은 젓가락에 가져갔다.


그러자, 구체의 푸른 기운이 점점 젓가락에 흡수되듯 달라붙었다.


“이게 감응이다. 검 내부의 기운과 외부로 방출된 기운이 서로 감응함으로써 연결되는 거지.”


그렇게 손을 때어냈고, 젓가락엔 다시 검기가 씌워져있었다.


“외부로 방출된 기운을 내부의 기운으로 감응시켜 잡아둔다. 이게 검기를 일으키는 공식이라고 할 수 있어.”


지금 젓가락 외부의 기운과 내부의 기운이 서로 감응하며 그 경계면에서 달라붙고 있었다.


그렇게 검기가 형성된다.


“과연...그런 거였군.”


태정이 감격한 듯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평생 볼 수 없었던 경지가 지금 눈앞에서 선명하게 보여지고 이해되고 있다.


“방법만 알면 나머진 쉬워. 애초에 같은 기운끼린 쉽게 공명하게 되거든. 괜히 한종류의 기운만 체내에 담으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야.”


그것으로 설명을 끝마쳤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천하는 다른 고수들과는 다르게 어릴 적부터 남궁세가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육체적, 기술적인 것뿐만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완벽에 가깝다.


다른 고수들이 본능적으로만 펼칠 수 있는 것들을 천하는 확실하게 머리로 이해하며 지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왜 남궁린 신선께서 당신을 관주로 임명하셨는지 알 것 같군. 당신에겐 그럴 자격이 있소.”


태정은 천하를 인정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젠 다른 문하생들도 반박할 수 없다. 그들은 이제 경외심 섞인 눈으로 천하를 보았다.


‘뭐지. 이 바보들은.’


뭔가 감격한 거 같긴 한데...


‘고작 검기 좀 이해했다고 저딴 표정을 짓다니. 심각한 놈들.’


놀리려는 게 아니다. 진심이다.


검기를 만드는 건 기본이다.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고 모르면 병신취급 받는다. 남궁세가에선 그렇다.


검기를 전제로 해서 펼치는 기술이 수만가지였다.


이제 검기의 속성, 형태변화, 초식, 다른 무공과의 연계 등등. 배워야 할 게 산더미였다.


이걸 모르는 놈과 아는 놈의 차이가 다시 천지차이다. 모르면 죽는다.


수천 년의 세월동안 축적된 무수한 살인기예들이다.


같은 경지라도 일방적으로 썰리는 수가 있다. 그게 기술이고 명문세가의 우월함이다.


‘뭐...다 가르칠 수 있을진 모르겠는데...’


애초에 다 가르칠 마음도 없었다.


창천무관은 어디까지나 남궁세하한테 인정받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배울 놈은 배우고 안 될 놈은 안 되겠지 뭐.’


이런 놈들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하고 싶지도 않았다.


‘남궁세가 체험판’정도로만 설명하고 나머진 알아서 하도록 해야겠지.


아, 그러고보니까 자신도 물어볼 게 있었다.


“너희들...신선에 대해서 아는 거 있냐?”

“신선...말이오? 뭐...아는 만큼은...”


태정이 조금 불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중에선 그나마 신뢰가 가는 놈이었다. 비무 때 부적까지 응용한 놈이었으니.


“그...신선이 되는 방법이라던가...검기나 검강처럼 신선만의 특수한 능력이던가...아나?”


천하의 질문에 태정이 눈가를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신선이 되려면 영맥(靈脈)을 타고나야 한다고 들었소. 그게 없으면 제아무리 뛰어난 공법을 익혀도 신선이 될 수 없다더군.”

“입문하기가 어렵단 건가?”

“어렵다기 보단...입문하는 것 자체에 재능이 필수적으로 들어간다고 봐야하오. 영맥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도 없고, 아예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야 하는 것이니.”


그럼 내가 신선이 못 될 수도 있다는 거군.


‘음...그래도 일단 내가 그놈들 후손인데...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왜 자신의 시대엔 술법의 입지가 그토록 좁아졌는지 의아했다.


남궁세하가 딱히 술법을 홀대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뭐, 이 영맥을 판단하는 거나, 공법에 대해선 남궁린 신선께 듣는 편이 더 나을 것이오.”

“그렇겠네.”

“그리고 특수한 능력이라면...”

“술법?”


솔직히 술법이야말로 무인과 신선을 나누는 가장 큰 경계일 것이라 생각했다.


신선이 무공을 모르고 무인이 술법을 모르는 것처럼.


“그것도 있소만 사실 신선과 범인을 나누는 절대적인 격차는 술법이 아니오.”

“응?”

“선역仙域이란 것이 있소. 모든 신선이 가지고 있는 것이지. 이걸 통해 신선들은 술법을 쓰지 않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사람들을 몰살할 수 있소.”


처음 듣는 개념이다. 일단 후대에는 절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술법과 주술강의를 들을 때 한 번도 못 들어봤으니까.


“선역이 있는 한 보통의 사람들은 절대로 신선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소.”

“어, 난 되던데?”

“음? 그게 무슨 소리요?”

“그러니까 내가 남궁린이랑...”


정확한 설명을 듣기 위해 잠시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로 했다.


중요한 개념인 것 같아서.


적당히 각색을 한 뒤 자신과 남궁린의 전투를 설명했다.


그러자,


“꺄아아아아악!”

“어떻게! 어떻게 그런 짓을!”

“신선모독이야아아앗!”

“우리 모두의 어머니를!!”

“아니. 이것들아. 내가 먼저 공격을 당했다니까?”


어이가 없다. 나한테 무공을 배웠으면 내 편을 들란 말이다.


“허허...어찌 남궁린 신선께 그런 몹쓸 짓을...”

“부관주 너마저? 대체 남궁린이 너희들한테 뭐길래?”

“남궁린 신선은...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어줄 지도 모르는 여성이오.”

“미친놈아 거울 좀 보면서 살아. 남궁린이 널 아버지로 모셔도 모자를 상판인데.”

“허허. 외적인 미모는 중요하지 않소. 내가 처음 이 무관에 버려졌을 때도, 남궁린 신선은 지금 그대로의 모습이였으니. 어린 날 잘 챙겨주셨지.”


태정은 그리운 과거를 회상하듯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 안에서 어릴 적 그의 모습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살짝 궁금해졌다.


“남궁린 나이가 대체 얼만데?”

“백 스물...은 넘은 것으로 알고 있소.”

“내 할머니보다 나이가 많잖아? 그럼 어머니가 아니라 할머니 아닌가?”

“그 외모로 어찌 할머니라 부르겠소?”

“어머니는 되고? 미친놈들.”


때마침 주문한 음식이 왔다. 이번에도 천하일미(天下一味)였다.


이 무관에서 건질 만한 건 삼시세끼 이 끝내주는 식사가 나온다는 것밖에 없다.


...그래. 이거면 충분해.


그 후로도 다른 문하생들한테 이것저것 질문하면서 이 세상에서의 상식을 배워나갔다.


문하생이 천 명이 넘으니까 알 수 있는 것도 많았다.


늦은 밤. 자신의 새 방으로 들어온 천하는 가만히 앉아 명상했다.


‘선역. 신선의 영역.’


남궁린과 있었던 모든 전투와 행동들을 되새겼다.


‘뭔가 잡힐 듯 안 잡히는 감각이...경험이 부족한가.’


짐작이 가는 건 있었지만 정확히 뭔지는 감이 안 온다.


정보의 주체도 신선이 아닌 문하생들이라 정확도가 떨어진다.


‘다시 남궁린을 만나봐야겠는데. 아니면 다른 신선이라던가.’


그렇게 이틀 정도, 문하생들을 가르쳤다.


그럭저럭인 놈들이었다. 너무 뛰어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못나지도 않은.


-뇌룡의 호흡 제1형! 뇌룡일섬!


“방금 뇌룡의 호흡 어쩌구 한 놈은 와서 물 채운 항아리에 머리를 박도록.”


평화로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드디어 놈이 찾아왔다.


“비무를 신청하오.”


전 관주, 순양이었다.


작가의말

당분간 다양한 시간대에 올려볼 생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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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신화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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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경매(2) +6 21.08.06 192 9 13쪽
25 경매 +2 21.08.05 139 8 30쪽
24 신선으로 대련(2) +4 21.08.03 162 8 13쪽
23 신선으로 대련 +1 21.08.02 136 4 15쪽
22 비검(3) +2 21.07.31 202 6 21쪽
21 비검(2) +3 21.07.30 176 11 20쪽
20 비검 +3 21.07.28 185 14 20쪽
19 내공과 선기(2) +1 21.07.27 197 14 18쪽
18 내공과 선기 +2 21.07.26 220 13 16쪽
17 화산파의 신선(3) +3 21.07.23 290 15 13쪽
16 화산파의 신선(2) +2 21.07.23 236 12 12쪽
15 화산파의 신선 +2 21.07.21 259 14 14쪽
14 선인(4) +1 21.07.21 229 13 17쪽
13 선인(3) +1 21.07.20 267 12 17쪽
12 선인(2) +2 21.07.09 286 11 16쪽
11 선인 +2 21.07.08 286 12 19쪽
10 검기(2) +1 21.07.07 274 12 17쪽
» 검기 +2 21.07.06 320 14 23쪽
8 창천무관(4) +3 21.07.04 371 10 21쪽
7 창천무관(3) +2 21.07.03 364 13 27쪽
6 창천무관(2) +3 21.07.02 423 13 16쪽
5 창천무관 +2 21.03.02 614 14 25쪽
4 첫 번째 수업 +1 21.02.28 789 11 16쪽
3 아주 먼 옛날(2) +4 21.02.26 1,020 19 14쪽
2 아주 먼 옛날 +3 21.02.24 1,264 20 13쪽
1 서장 +6 21.02.24 1,777 2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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