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의 무게
- 샘 클루카스가 주장 완장을 도라익 선수 왼팔에 감습니다. 가슴이 벅차오르네요.
- 도라익 선수는 파격의 신이 총애하는 것 같습니다.
- 카메라가 완장을 크게 비춥니다. 완장 하단에 작은 태극기 문양이 보이네요.
- 깜짝 이벤트가 아닌지 의심했습니다만, 아무래도 도라익 선수가 새 시즌 스토크시티의 주장이 된 것 같군요.
샘 클루카스가 교체되고 몇 분 안 지나 전반전이 끝났다. 윌슨이 간단한 지시를 내린 후 벤치 선수들은 그라운드로 나가 워밍업을 하고 주전들은 바나나나 초콜릿을 먹으며 열량을 보충했다.
"도우, 조용히 얘기하자."
샘 클루카스가 도라익을 끌고 으슥한 곳으로 갔다.
"주장 되니까 어때?"
"갑자기 몸이 무거워진 것 같아."
도라익의 대답에 클루카스가 피식 웃었다.
"넌 버틀랜드를 닮았으니까 좋은 주장이 될 거야."
"모르겠어. 그냥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혹시 오늘 포메이션을 보고 이상한 점을 못 느꼈어?"
"페데리치가 갑자기 주전이 된 거랑 루이스 샤우브가 벤치에서 시작한 거."
"그럼 그 이유는 알았고?"
"아니. 아직 몰라."
"감독의 결정이 이상하다고 느끼면 주장이 찾아가 질문해야지. 이유가 합당치 않다면 반대 의견도 내고."
"지금 가서 물어볼까?"
"아니. 그냥 내가 알려줄게. 다음부터는 미리 감독한테 어떤 포메이션과 전술을 사용할지 알아보는 거 잊지 말고. 감독 전술을 잘 알아야 경기가 진행될 때 빠르게 반응할 수 있어. 감독은 경기장 밖에서 전체적으로 볼 수밖에 없기에 작은 변화는 감지하지 못해. 그런 작은 변화를 감지하고 빠르게 대처하는 게 주장의 역할 중 하나야."
도라익은 왼팔이 점점 무겁게 느껴졌다.
"토미 어때?"
"잘하는 거 같아. 드리블도 훌륭하고 패스 타이밍도 좋아."
"수비는?"
"수비 위치로 돌아가는 게 조금 느린 것 같긴 하지만, 그건 훈련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들어. 제임스와 토미는 비슷한 유형이야. 둘 다 공격 성향이 너무 강해. 공격 성향이라는 게 공격 상황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야. 수비할 때 보면 제임스도 토미도 위험을 무릅쓰고 적극적인 수비를 해. 성공하면 좋은 반격 기회지만, 실패하면 수비가 무너질 수도 있는 모험이라고."
"조금 그런 느낌이 들긴 했어."
"내가 있을 땐 그래도 괜찮아. 그런데 산체스 역시 수비보다는 공격에 더 어울리는 선수란 말이지. 공격 성향의 미드필더만 있다면 수비가 어찌 될까?"
도라익은 잠시 고민하고 대답했다.
"미드필더가 치고 올라오면 공격진도 앞으로 갈 수밖에 없고, 수비진도 함께 라인을 올려야 하겠지?"
"맞아. 감독의 전술이나 필드의 상황과 관계없이 무조건 압박인 거야. 그렇게 되면 체력 소모가 심할 뿐만 아니라 같은 약점을 지속하여 노출해 상대에게 틈을 내준다고. 라인을 올릴지 말지, 포메이션을 넓힐지 좁힐지 등은 그날 전술과 상대 특성 그리고 예측할 수 없었던 변수들을 통합해 결정해야 하는 거라고. 전술을 탄력 있게 사용하는 팀이 승리하는 거야. 강팀은 그걸 곧잘 하는 팀이고."
"그럼 감독은 왜 미드필더에 셋을 함께 올렸어?"
"상대가 약하기 때문이지. 공격적인 선수 셋이 있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약하니까. 아마 후반전엔 더 많은 골을 넣을 거야. 대신 실점 가능성도 크게 올라가겠지."
"그러니까 상대가 약해서 이런 포메이션을 정했다는 거야?"
"그게 전부는 아니야."
클루카스는 열정과 의욕만 넘치는 스토크시티의 꼬마 주장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제임스와 토미 둘 중에서 누굴 선발로 올려야 할지 고민하는 거야. 루이스가 수비적인 선수지만, 감독 전술에 대한 이해나 프리미어리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당장은 나처럼 제임스와 토미를 동시에 감당할 순 없지. 공격 능력도 좋고 수비 능력도 나쁘지 않으며 안정적이기까지 한 산체스가 한 자리 차지할 거야. 그럼 남은 한 자리는 제임스와 토미가 경쟁하는 거지."
도라익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경청했다.
"제임스는 공격과 수비 모두 위협적이야. 문제는 상대 팀에만 위협이 되는 게 아니라 우리 팀에도 위협이야. 토미도 수비가 부족하긴 하지만, 제임스보다는 안정적이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제임스 폭탄을 안고 갈 건지, 위력은 약하더라도 예측 가능한 토미를 쓸 건지 감독도 골치 아플 거야."
"그럼 오늘은 제임스 빼고 루이스 넣겠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상대가 약하니까. 굳이 모험할 필요 없잖아."
질 가능성이 높은 경기라면 제임스가 훨씬 적임자다.
"반대야. 오늘 제임스의 활약이 너무 적다고 생각 안 해?"
"확실히 그런 감이 좀 있어."
"토미가 너무 공격적으로 나가니까 나름대로 수비한다고 했던 거야. 미드필더진에서 나이나 자격이나 다 제임스가 최고참이니까. 그리고 부끄럼을 타는 산체스나 애송이 토미보단 제임스가 수비진하고 대화도 잘 통하고."
"샘은 그런 게 다 보여?"
도라익이 감탄했다.
"그래서 경기 중엔 내가 주장 역할을 한 거야. 버틀랜드나 톰 인스는 선수들을 그러안는 역할이거든."
샘 클루카스는 시계에 눈길을 한 번 주고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페데리치는 당분간 주전으로 뛸 거야."
"왜?"
"톰 미켈이 너와 찰리 아담이 주장이라는 데 불만을 품었고, 그걸 공공연하게 스텝과 일부 선수한테 토로했어. 감독은 당분간 페데리치를 주전으로 쓰는 거로 톰 미켈을 징계할 거야."
도라익은 열정과 의욕만 넘쳐 무조건 열심히를 외치는 주장이었다. 찰리 아담은 전보다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긴 하지만, 타고난 성격이 어딜 가지 않아서 여전히 선수들과 하나로 뭉치지 못했다.
그리고 톰 미켈은 도라익의 훈련 클럽에도 불만이 크다. 제임스에 이어 우디르까지 합류하여 인원이 8명이나 되기에 마당이 비좁을 지경이다. 내년 1월 초에 완공되기까지는 새로운 선수를 받지 않고 8명으로 운영하기로 했기에 톰 미켈 외에도 불만을 품은 선수가 꽤 있다.
"꼭 그래야 해?"
"응. 우리 팀에서 가장 스타인 톰 인스를 팔아버린 걸 보면 몰라? 톰 인스를 팔아버려 감독의 위상이 높아진 덕분에 지난 시즌 강등을 면할 수 있었어. 넌 잘 실감 나진 않겠지만, 톰 인스를 이적시킨 후 선수들이 훨씬 고분고분해졌어."
아주 확실하게 이해한 건 아니지만, 도라익은 팀에서 위계질서가 매우 중요함을 새롭게 깨달았다.
"그럼 난 미켈을 어떻게 대해야 하지?"
"굳이 뭘 하려고 하지 마. 괜히 틀린 지시를 내리고 하면 오히려 위신이 깎일 뿐이야. 확실한 일에만 나서고 열정과 책임감을 지속해서 보여줘. 미켈도 멍청하지는 않으니까 곧 깨달을 거야. 네가 스토크시티 주장의 최적임자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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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어린던이 안쪽으로 드리블하면서 생긴 공간에 산체스가 침투합니다.
- 페어린던이 제임스한테 패스하고 제임스가 바로 산체스한테 찌릅니다.
- 크로스!
- 골입니다. 찰리 아담이 헤딩으로 한 골 추가합니다.
후반전이 시작하고 채 2분도 안 되어 찰리가 득점에 성공했다. 가까이 있던 도라익과 토미가 가장 먼저 달려가서 찰리를 얼싸안았다.
- 안타깝습니다. 스토크시티가 연속으로 실점합니다. 이로써 후반 55분에 점수는 4:2가 되었습니다.
윌슨 감독이 교체를 결정했다. 루이스에 교체되어 내려오는 토미는 즐거운 얼굴이었다. 오늘 경기가 이번 시즌 자신이 얼마나 자주 출전할지 결정하는 시험대라는 사실을 모르기에 그저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는 것에 흥분했다.
- 제임스의 스루패스. 침투한 도라익이 원터치로 패스합니다. 먼 포스트에서 공을 받은 찰리 선수가 가볍게 골대로 밀어 넣습니다.
루이스 덕분에 해방된 제임스가 날뛰기 시작했다.
- 카메론 맥자넷 선수의 크로스.
- 도라익 선수가 헤딩으로 패스합니다.
- 찰리가 편하게 헤딩하여 득점합니다.
- 페어린던의 크로스는 머리에 잘 맞히지 못하고 맥자넷 선수의 크로스는 몇 번 헤딩 슛을 시도했으나 키퍼의 수비에 막혔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슈팅 대신 패스를 선택했습니다.
- 제임스가 과감히 찌릅니다.
- 정말 놀라운 선숩니다. 저 혼란한 틈에 공을 찔러넣을 생각을 하다니.
- 제임스도 제임스지만, 그 패스를 받은 도라익 선수 역시 대단합니다. 공을 잡은 도라익 선수가 바로 패스하여 찰리 아담의 골을 돕습니다.
- 경기 65분, 도라익 선수 교체됩니다.
- 11번 우디르 자카 선수가 도라익 선수 대신 투입됩니다.
- 유로파리그 데뷔전에서 도라익 선수는 3도움을 기록합니다.
- 주장 완장은 찰리 아담 선수 차지입니다.
경기는 8:2로 끝났다. MOM은 6골 1도움을 기록하며 풀타임을 소화한 찰리가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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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2차전에 왜 주전을 절반이나 뺍니까?"
도라익이 윌슨한테 따졌다.
"11일 우린 홈에서 지난 시즌 6위를 하고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깊게 난 맨시티를 상대해야 한다."
"저는 모든 경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도우 너나 가능해. 대부분 선수는 1년에 40경기 소화하는 것도 힘들어."
도라익과 찰리 등은 뱅고어로 가지 않았고, 8월 6일 원정 경기에서 스토크시티는 2:1 승리를 따냈다.
- 작가의말
샘 클루카스가 도라익을 끌고 으슥한 곳으로 갔다.
클루카스 : 가진 거 얼마 있어?
도라익 : 돈 없는데요.
클루카스 : 뒤져서 나오면 백 원에 한 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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