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적시장
2032년 1월 1일.
이적시장이 열렸다.
[레알 마드리드 - 도라익에게 주전 자리 내줄 수 있다.]
[바르셀로나 - 베르딩요의 공백을 메꿀 공격수 찾고 있다.]
[아스널 - 도라익을 줄곧 지켜보고 있다.]
[토트넘 - 찰리 아담과 도라익의 동시 영입 고려 중.]
"비열한 새끼들."
런던으로 향하는 구단 버스에서 수석 코치가 욕설을 퍼부었다.
[아스널 스토크시티에 찰리 아담과 도라익 이적 관련해 정식 오퍼 제출.]
당장 오후에 스토크시티는 원정에서 아스널과 경기를 벌인다. 사전에 아무런 접촉도 없던 상황에 정식 오퍼를 보내는 건 두 선수를 흔들겠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멍청이들, 우리 도우를 뭐로 보고."
제임스가 낄낄 웃었다. 아직 축구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도라익은 오퍼가 들어왔다고 흔들릴 사람이 아니다.
또 다른 흔들기 대상인 찰리는 스페인으로 휴가를 떠났다. 맨유 경기가 끝나고 윌슨과 독대한 후 도라익이 12월에 그랬던 것처럼 10일 휴식기를 얻었다.
과연, 도라익은 흔들림 없이 아스널 경기를 정상적으로 뛰었다. 그러나 찰리 아담과 페어린던의 결장으로 스토크시티의 화력이 너무 죽어 결국 0:2의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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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일.
한국의 모 스포츠 토론 프로그램.
"다들 오해하는 부분이 있어요. 골든 보이는 가장 잘한 어린 선수한테 주는 상이 아니에요."
김상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늘 각을 세우는 오태범도 다른 일정으로 참가하지 못했기에 훨훨 날아다니는 중이다.
"예전엔 그랬어요. 그런데 골든보이 3위 안에 든 선수 중에 월드 클래스로 성장한 선수가 드물어요. 그래서 몇 년 전부턴 당장의 퍼포먼스보다 장래성을 더 보는 거로 심사 기준이 바뀌었거든요."
"김상현 평론은 도라익 선수의 성장이 멈출 거라고 생각합니까?"
"제가 쓴 글에서도 몇 번이나 강조했거든요. 도라익 선수는 플레이 스타일이 간단하고 전술 이해도 부족해요. 어느 정도 분석이 되니 벌써 리그에선 골을 잘 못 넣잖아요. 스피드와 순발력 덕분에 여전히 나쁘지 않은 모습이지만, 지난 시즌과 비교해 보세요. 아마 하반기 그리고 다음 시즌엔 득점 수치가 더 하락할 거예요."
"여기서 성장을 멈춘다고 해도 이미 대단한 선수 아닐까요?"
"그렇긴 한데."
김상현이 찌푸려진 얼굴을 억지로 펴며 말했다.
"몇 년 뒤에 다른 선수들이 훨씬 나은 모습이 될 거라고 전문가들이 판단한 거겠죠."
"그럼 빅클럽들이 도라익 선수를 영입하려는 움직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적 시즌마다 언론들이 판매 부수와 조회 수를 올리는 수작이죠. 장담컨대, 도라익 선수는 이적하지 못할 겁니다."
"김상현 평론은 도라익 선수가 골든 보이를 받지 못한 게 당연하다는 의견이네요?"
"그럼요. 그게 아니면 선수 본인이 벌써 항의했겠죠. 이 상황이 가장 억울한 건 본인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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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도라익은 펍 하나를 통째로 빌려 선수단을 소집했다. 유로파리그 토너먼트 1라운드의 추첨이 있는 날이다.
스페인 여행을 떠난 찰리 아담을 비롯해 몇몇 선수가 안 보였다.
"페어린던은 왜 안 왔지?"
최근 몸도 마음도 지친 선수가 많아 영상 분석으로 훈련을 대체했다. 페어린던은 맨유 경기 이전부터 말도 없이 안 나왔고 오늘 모임에도 불참했다.
"이적 제의 들어온 것 같아."
맥자넷이 대답했다.
"진짜? 어디서?"
추첨 시작까지 10분 정도 남았다. 기다리기 지루했던 선수들은 맥자넷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웠다.
"나랑 페어린던은 같은 에이전트였거든. 그런데 얼마 전에 페어린던이 새 에이전트랑 계약했어."
에이전시 계약은 선수가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있다.
"그래서 어딘지 몰라?"
"확실한 게 아니라서."
"확실하지 않은 거기가 어딘데?"
제임스가 꼬치꼬치 캐물었다.
"리버풀."
의외의 대답에 선수들 모두 침묵했다.
부족했던 크로스를 채운 페어린던은 반 시즌 동안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 수비 능력이 부족하고 몸싸움도 별로지만, 공격적인 면만 볼 땐 전반기 프리미어리그 최고였다.
"그래서 맨유랑 아스널 경기에 출전하지 않은 건가?"
맨유 경기에서야 부족한 수비 실력으로 출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스널 상대로는 오히려 톰 에드워즈보다 속도가 빠른 페어린던이 더 어울린다.
"도우, 너도 이적 제의 들어온 거 없어?"
"몰라. 에이전트 보고 알아서 다 거절하라고 했거든."
선수들이 안도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에드워즈한테는 미안하지만, 페어린던이 이적하면 우리 팀 공격이 지난 시즌 전반기처럼 될 거야."
지난 시즌 전반기엔 주로 샘 앨런이 있는 왼쪽을 이용해 공격했다. 제임스가 공격 때문에 수비를 소홀히 하거나 수비 때문에 공격에 제때 가담하지 못하는 바람에 스토크시티는 외발로 쩔뚝이며 22경기 11골의 초라한 성적을 냈다.
객관적으로 훨씬 훌륭한 선수인 톰 인스를 산체스로 바꾼 다음 스토크시티가 오히려 강해진 건 좌우의 균형이 어느 정도 맞춰진 덕분이었다.
이번 시즌 페어린던 쪽으로 공격이 더 집중되긴 했지만, 맥자넷의 돌파와 크로스 역시 자주 결정타가 되어줬다. 맥자넷의 존재 덕분에 페어린던이 더 활약할 수 있었고, 페어린던이 활약할수록 맥자넷에게도 좋은 기회가 생겼다.
페어린던이 리버풀로 이적한다면 맥자넷의 부담이 커지며 오히려 전반기보다 활약하지 못할 것이다.
걱정이 쌓여갔지만 누구도 페어린던을 설득하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더 좋은 팀으로 가거나 더 많은 주급을 주는 팀으로 가는 동료는 축하하고 축복해줘야 한다.
"내가 아는 구단주라면 페어린던을 팔 거야. 지금 리버풀이 오른쪽 풀백 부상으로 성적이 저조하잖아."
리버풀은 리그 1위인 아스널과 9점 차이가 난다. 이러한 성적을 저조하다고 표현하는 건 좀 그렇지만, 지난 시즌 후반기 연승 가도를 달리던 리버풀을 생각하면 저조한 게 맞다.
물론, 초호화 스쿼드로 리버풀보다 2점 적게 기록하며 리그 5위에 머문 맨시티보다는 훨씬 낫다.
"찰리랑 도우는 그냥 루머일 거야. 찰리는 몸값이 최소 6천만 파운드인데 그만한 이적료를 낼 팀이 아직 없어."
찰리를 영입하려면 먼저 이적료를 마련해야 한다. FFP 규정을 어길 경우 최악으로 하위 리그로 강등시킬 수 있다. 그게 아니어도 유럽 경기 출전 금지, 리그 벌점, 선수 영입 금지 등 훌륭한 제재 수단이 수두룩하다.
프리미어리그의 중상위권 팀들 모두 재정이 간당간당하여 찰리를 영입하려면 우선 6천만 파운드어치의 선수를 팔아야 한다.
"대형 이적이 먼저 터져야 찰리나 도우가 가능성 있는 거야."
"난 왜?"
"넌 바이아웃도 없잖아. 구단이 부르는 게 값이거든."
겨울 이적시장은 자금 규모가 여름 이적시장보다 현저히 작다. 그나마 봄에 시즌을 시작하는 아시아와 남미 덕분에 어느 정도 여름과 비벼볼 수 있는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정말 초라했을 것이다.
"리버풀처럼 주전 풀백과 백업 풀백이 동시에 시즌 아웃 당하지 않으면 대형 계약이 잘 안 터지지."
"구단주가 이 기회에 리버풀 등골을 뽑겠군."
톰 인스에 천만 파운드를 얹어서 세 선수를 데려왔다. 그래서 산체스를 비롯한 세 선수의 몸값이 정확히 매겨지진 않았지만, 페어린던이든 맥자넷이든 이적료가 천오백만 파운드 정도일 것으로 추정한다.
페어린던이 전반기에 보여준 뛰어난 경기력과 아직 젊은 나이인 점, 크로스도 되고 컷 플레이도 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최소 3천만 파운드 이상의 이적료를 기대할 수 있다.
'누군가 떠날지도 모르는데 다들 덤덤하네.'
샘 앨런이 떠날 때 며칠 섭섭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캠벨이나 클루카스야 은퇴해도 유스 코치로 있어 원하면 볼 수 있지만, 다른 팀 그것도 2부 리그로 가버린 앨런은 가끔 통화로 목소리 듣는 거나 가능하다.
그러나 도라익보다 고작 몇 살 더 많은 쇠렌센이나 타이먼도 무덤덤한 모습이었다.
"시작한다."
추점 방송을 시작하자 선수들은 잡담을 멈추고 화면에 집중했다. 그러나 같은 국가의 팀은 서로 상대하지 않고 어쩌고 하면서 룰을 설명하는 바람에 김이 팍 샜다.
다른 팀에서라도 유로파리그나 챔피언스리그를 경험한 선수가 없기에 정식 추첨까지 시간이 꽤 남았다는 사실을 누구도 몰랐다.
그래서 언제 시작하나 기대하며 화면에 계속 집중했다.
"F조 1위, 프리미어리그 소속 스토크시티 FC. 어웨이 퍼스트."
절반 정도 팀이 뽑히고 드디어 스토크시티가 나왔다. 선수들은 손에 든 맥주나 음료 혹은 간식을 내려놓고 화면에 집중했다.
"D조 2위, 수페르리가 엘라다 소속 아리스 테살로니키 FC. 홈 퍼스트."
"어디 팀이야?"
"그리스 리그야."
도라익은 리모컨으로 TV를 꺼버렸다.
"도라익을 보유한 스토크시티는 맨유처럼 강한 상대도 이길 수 있지만, 우리보다 순위가 낮은 팀한테도 패배한 적 있음을 잊지 말자."
선수들이 우 소리로 비난했다.
"1월 말까지 누가 떠나고 누가 올지 모른다. 그러나 누가 떠나도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도록, 누가 와도 서먹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
연설을 끝낸 도라익이 해산을 선포했다.
"도우. 원래 이런 기회에 다트도 던지고 당구도 하고 카드 게임도 하면서 노는 거야."
"미안. 나 더 베스트 FIFA 풋볼 어워즈에 참석해야 해."
프랑스 파리가 먼 도시는 아니지만, 시상식에 참석하는데 그냥 갈 수는 없다. 옷도 맞춰야 하고 머리도 세팅하고 화장도 해야 한다.
"푸스카스 네가 받는 거야?"
로잔과 벌인 경기에서 세 번째로 넣은 골이 푸스카스 후보에 올랐다.
"아직 몰라. 나 말고 다른 후보들도 다 참석하는 거로 알아."
도라익만 빠지고 남은 선수들은 간만에 생긴 기회에 여러 가지 게임으로 친목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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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이거 나 아닌 거 같아요."
최경호와 함께 파리에 도착한 도라익은 어렵게 예약한 샵에서 단장했다. 그런데 얼굴을 하얗게 만들고 눈썹과 입술을 칠하니 도라익이 아닌 기생오라비가 거울 안에 있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미용사가 온갖 도구로 도라익의 얼굴을 도화지 삼아 뛰놀았다.
"어떤 색이 잘 먹히는지 확인하면서 조금씩 고쳐가는 거예요."
그렸던 눈썹을 지우고 다시 그리기도 하고, 입술에도 십수 가지 색을 시도했다.
"하수들은 그저 적합한 색을 찾아 얼굴에 칠하죠. 그런 화장은 강한 조명이나 자연광에 들통난답니다. 그러나 저는 최소 세 가지 색을 얼굴에 얇게 칠해 층을 만드는 거로 어떤 상황에서도 티가 안 나게 해요."
미용사의 호언장담대로 시간이 흐르면서 도라익의 얼굴이 강인한 전사로 변했다. 짙은 색조와 옅은 색조를 번갈아 칠하는 거로 강한 빛에도 화장이 들키지 않았다.
얼굴을 다 칠한 미용사는 목에도 했다.
"이건 색소가 전혀 안 들어간 가루예요. 물로 씻어도 되고 옷에 묻을 경우 그냥 털면 된답니다."
화장을 마친 도라익은 양복을 차려입고 넥타이도 맸다. 거기에 멋진 구두까지 맞춰 신으니 당장 장가가도 될 모습이었다.
- 작가의말
도라익이 골든 보이를 못 받아서 신난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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