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의 처벌
"라익아, 평소보다 훨 느리다?"
도라익은 최경호의 가르침으로 음식을 꼭꼭 씹어서 삼키는 습관을 들였다. 그래서 식사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편이긴 한데, 지금은 누가 봐도 너무 느렸다.
"달팽이도 달리기가 느려서 그렇지 음식은 졸라 빨리 먹는데."
"형. 아스널전 있잖아."
"응."
"루이스가 고의 반칙으로 레드카드 받았잖아. 분명히 잘못한 일인데, 내가 잘못을 지적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도발에 도발로 갚아준 건 도라익 역시 마찬가지다. 첫 골도 그렇지만, 두 번째 골 역시 굳이 라보나킥으로 처리할 공이 아니었다.
그러나 축구는 어느 정도 쇼맨십이 허용되는 스포츠다. 레인보우 킥으로 돌파하거나 골대 앞에 공을 멈추고 세리머니를 한 다음 골을 넣는다든가 하는 행위는 비난받기도 하지만, 득점이 어려운 스포츠의 특성상 도라익의 골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루이스가 잘못한 게 맞지만, 그게 다 심판 때문이잖아. 찰리가 그렇게 큰 부상을 당했는데 옐로카드가 말이 안 되지."
현재 언론의 논조도 비슷하다. 다리를 높이 든 건 반칙이고 손으로 상대 선수를 민 것도 반칙이다. 그리고 반칙의 결과로 선수가 크게 다쳤다.
명백한 반칙과 명백한 결과가 있으니 당연히 그에 어울리는 벌칙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주심은 등을 민 선수나 찰리를 발로 찬 선수나 고의가 아니라는 이유로 옐로카드만 줬다.
즉, 주심은 찰리의 부상을 '사고'로 판단했다.
"원인이 다른 사람한테 있다고 루이스의 잘못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맞는 말인데, 루이스는 우리 동료고 친구잖아."
"친하다고 잘못을 덮어주는 건 아닌 거 같아."
관심에 대한 욕구는 강렬하나 그에 따른 노력이 부족한 오창범이다. 이는 토마슨 박사의 평가로, 전문가 의견이니 대체로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아 몰라. 구단에서 알아서 하겠지 뭐."
그렇기에 골치 아픈 문제로 머리를 썩이는 걸 거부했다.
"구단의 징계위원회가 곧 열릴 거야. 그리고 난 주장 자격으로 참가할 거야. 그때 나는 루이스를 질책해야 할까 아니면 변호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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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아담은 늑골 골절로 시즌 아웃. 루이스는 고의 반칙으로 반년 출장 정지 및 벌금.
찰리 아담을 도발하고 다치게 한 아스널 선수는 3개월 출장 정지를 받았지만, 발목 부상으로 최소 반년은 치료와 재활에 몰두해야 하기에 출장 정지가 별 의미 없다.
그리고 스토크시티는 구단 내부 징계위를 열어 루이스에 관한 처분을 토론했다. 도라익은 주장 신분으로 징계위에 참가했다.
'이 사람들에게 우린 뭘까?'
회의에 참석한 도라익은 살짝 회의감이 들었다.
이들은 그저 징계의 수위가 어느 정도가 되어야 언론을 잠재우고 스토크시티의 이미지에 타격이 없을지만 고민했다.
선수들의 사기나 팀이 겪을 혼란 등은 염두에도 없고, 당사자인 루이스의 마음이 어떤지에도 꼬물만큼의 관심조차 없었다.
사실 이 자리에 와서도 입장이 정리되지 않았던 도라익이다. 그러나 구단 관리층의 행태를 보니 결심이 섰다.
"발언 요청합니다."
징계위는 도라익의 발언을 흔쾌히 허락했다. 아직 진정한 월드클래스로 인정받기엔 실력도 경력도 다소 부족함이 있지만, 분명한 스토크시티 최고의 스타다. 스토크시티의 인지도와 이미지 향상에 크게 기여했고, 유니폼 판매를 비롯한 수익에도 큰 지분을 차지한다.
특히 오는 이적 시장에 비싸게 팔아야 할 선수여서 좋은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찌라시로라도 도라익과 구단의 사이가 틀어졌다는 소문이 돌면 몸값이 백만 유로 단위로 깎인다.
"우선, 루이스의 행위가 옳지 않음을 명확히 인지했음을 말씀드립니다. 징계도 당연한 일이고, 일벌백계하여 다른 선수가 같은 잘못을 또 저지르지 않게 경고해야 함도 마땅합니다."
모든 사람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도라익의 말을 경청했다.
"그러나 징계를 고민할 때 우린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하나는 과도한 징계로 팀의 단결을 해치는 것입니다. 루이스의 고의 반칙이 잘못됐다는 건 모두가 공감하는 사실이나, 동료를 위한 마음이 지극하여 벌어진 일시적인 충동 행위임도 모두 압니다. 강한 징계로 루이스가 정신적 타격을 입으면 동료인 우리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도라익은 자기 앞에 놓인 홍차로 바싹 마른 입술과 혀를 살짝 적신 다음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하나. 루이스한테 기회를 줘야 합니다. 징계로 루이스의 선수 커리어가 끝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이번 일을 어떻게든 극복해 본인의 선수 커리어를 이어가는 건 오롯이 루이스의 몫입니다. 그러나 구단이 과한 징계로 그럴 기회를 애초에 앗아가는 건 절대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우 개인 생각인가? 아니면 선수단의 공동 의견인가?"
"제 개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다들 저와 같은 마음이라고 믿습니다. 루이스는 팀의 모든 선수와 친하게 지내고 모든 사람에게 친절합니다. 경기장에서 다소 거친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그건 루이스의 축구 스타일일 뿐입니다."
"하나 묻겠습니다. 루이스에게 우리 팀에서 계속 뛸 기회를 준다고 가정했을 때, 이번과 같은 사고가 다신 없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루이스는 악한 사람이 아닙니다. 이유 없이 누군가를 해치고 즐거워하는 사이코패스가 아닙니다."
작은 웃음이 곳곳에서 터졌다. 도라익의 한국 별명이 영어로 번역하면 사이코라는 사실을 징계위에 참석한 대부분 사람이 알고 있던 탓이다.
"이유가 있다면 또 같은 사고를 반복할지도 모르겠군요."
"인간은 실수를 통해 뭔가를 배웁니다. 루이스가 이번 과오에서 긍정적인 부분을 배우도록 구단에서도 돕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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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는 리저브 팀으로 시즌이 끝날 때까지 강등하는 처분을 받았다. 원래는 시즌이 끝날 무렵에 리그에 복귀할 수 있었지만, 구단의 자체 징계로 그럴 기회조차 사라진 셈이다.
그러나 리저브 팀에서 훈련할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루이스는 감지덕지했다.
루이스는 구단 관계자와 함께 아스널의 부상 선수를 찾아가 진심으로 사죄했고, 자발적으로 계약서에 한 번만 더 폭력 사태를 일으키면 구단의 어떠한 처분도 받아들인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그리고 도라익과 산체스의 조언을 받아들여 보육원 봉사, 유기견 봉사 등 활동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가족과도 사이가 나빠서 마음 붙일 데 없는 루이스에게 마음을 기탁할 만한 곳이 하나라도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루이스의 일은 일단락되었지만, 스토크시티의 고난은 이제 시작이었다.
먼저 홈에서 도르트문트를 맞이해 4:0의 점수로 패배했다.
리그에선 원정에서 위건과 0:0의 무승부를 낸 다음, 맨유를 만나 0:5로 대패했다. 맨유 킬러로 불리던 도라익은 경기 내내 슈팅 3에 유효슈팅 0의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홈에서 웨스트 브로미치에 1:0 승리를 거두긴 했으나, 도라익이 넣은 페널티킥이 구설에 올랐다.
그리고 원정에서 인터 밀란에 0:5로 패배했다. 홈에서 아쉽게 진 것과 대조되게 경기 내내 움츠린 채 얻어맞으며 일방적으로 당했다.
홈에서 괜찮은 컨디션을 보이며 리그 6위인 헐 시티 상대로 1:1 무승부 경기를 펼쳤다. 이어서 원정에서 역시 근황이 안 좋은 뉴캐슬과 2:2 무승부를 냈다.
그러나 홈에서 바르사를 맞이한 경기에서 0:5 참패를 당했다. 키퍼와 두 센터백을 빼고 모두 후보로 출전한 바르사지만, 어떻게든 좋은 모습을 보여 주전 경쟁에서 점수를 따려는 후보들의 필사적인 플레이를 스토크시티가 감당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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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바로 전날 저녁에 스토크시티는 홈에서 풀럼과 0:0 무승부를 냈다. 아스널을 이기며 3연승을 한 후, 6경기 1승 4무 1패의 성적을 낸 것이다.
솔직히 찰리 아담이 빠지고 루이스의 징계로 팀 분위기가 뒤숭숭한 상황에 이 정도 성적이면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챔피언스리그 0골 전패의 성적 때문에 알론소 감독에 대한 불신은 리그에서 연패하여 강등권에 머무르던 때보다 훨씬 깊어졌다.
"미스터 알론소. 오늘은 질책이 아니라 해결책을 위한 자립니다."
만약 윌슨이 사임하지 않았다면 스토크시티는 기존 전술을 그대로 사용했을 것이다. 비록 윌슨의 전술보다 알론소의 전술이 파괴력이 더 강하지만, 안정적인 면에선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전술 이해가 부족하여 상대가 강할수록 약한 모습을 보인다. 약팀들 상대로는 괜찮은 모습을 보였지만, 강팀 상대로는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많은 사람이 전임 감독과 비교하면서 안 좋은 소리를 하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저는 알론소가 우리 팀에 적합한 감독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습니다."
"좋게 평가해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해결책이라고 하면 혹시 선수 영입에 관한 건가요?"
"아닙니다. 아쉽게도 스토크시티의 재정 상황으론 찰리나 루이스를 대체할 만한 선수를 영입하기 어렵습니다."
기대가 크지 않았기에 실망도 작았다.
"대신, 선수의 유실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겁니다."
알론소의 눈이 번쩍 뜨였다. 사실 여름에 계약할 때 겨울 이적 시장에 도라익을 내보낼 가능성이 크다는 언질을 받았다. 전반기에 도라익이 훌륭한 모습을 보이도록 전술적으로 밀어준 것도 다 그 이유 때문이다.
축구 선수는 남은 계약 기간이 짧을수록 몸값이 떨어진다. 바이아웃이 없는 보호 계약을 체결했기에 도라익의 계약 기간은 3년이다. 도라익이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해도 시간이 흐를수록 이적료가 낮아진다.
설사 재계약을 한다고 해도 문제다. 스토크시티는 도라익에게 5년 계약을 줄 수 있으나 주급은 높이 주지 못한다. 보호 계약이 아니기에 도라익은 바이아웃을 요구할 수 있고, 바이아웃은 주급에 따라 상한선과 하한선이 정해진다.
스토크시티의 주급 체계로는 도라익의 바이아웃이 최대 5천만 유로다. 현재 도라익의 몸값이 7천5백만 유로인 걸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손해다.
즉, 여러모로 따져봤을 때 이번 겨울 이적 시장이 도라익의 몸값을 최고치로 받을 수 있는 적기다.
그러나 부러진 늑골이 횡격막과 폐를 손상하는 바람에 회복에 시간이 걸리는 찰리 그리고 아주 뛰어나진 않아도 스토크시티에 매우 중요한 선수인 루이스의 부재로 구단이 생각을 바꿨다.
도라익을 팔아서 얻는 수익보단 팀을 프리미어리그에 잡아 두는 게 훨씬 이득이다.
"제 역할이 뭔가요?"
"도우를 설득하세요. 도우가 이적을 결심하면 구단은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도우랑 자주 대화하는 것 같던데, 설득하는 방법도 가장 잘 알 거로 믿습니다."
계약이 있기에 겨울에 도라익을 붙잡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러나 같은 결과여도 과정에 따라, 모양새에 따라 이후의 흐름이 크게 달라진다.
"도우가 이적하려는 데 구단이 억지로 잡는 형태가 아니라, 도우가 자원해서 팀에 남는 방식으로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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