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이적
도라익의 재계약은 스토크시티에 커다란 활력을 불어넣었다. 같이 뛰는 선수는 물론이고, 구단 스텝들도 축제 분위기였다.
팬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소식이 전해졌다.
[찰리 아담, 7천만 + 4천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토트넘 이적.]
이적료 7천만에 옵션 4천만짜리 계약이 체결되며 찰리 아담이 토트넘 선수가 되었다. 영국 대표팀 주전을 경쟁하는 찰리기에 언젠간 빅클럽으로 이적할 거란 마음의 준비는 있었지만,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이적이 결정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이 사태의 주범인 토트넘은 처음부터 도라익을 영입할 계획이 없었지만, 도라익의 계약 진행을 누구보다 관심 깊게 지켜봤다.
도라익을 영입하는 구단이 스토크시티의 입맛에 딱 맞는 선수를 보유했다는 보장은 없다. 토트넘의 구두쇠 구단주는 도라익의 이적을 협상하는 두 구단 사이에 껴서 선수를 받고 내줄 계획이었다.
그 과정에 레체르트를 영입하려는 속셈도 있었는데, 도라익이 이적을 포기하고 재계약하는 바람에 찰리 아담을 영입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리고 언론에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찰리를 보내며 네이선 콜린스라는 18세 어린 센터백을 받았다. 신장이 193인 헤딩 잘하는 선수로, 몸매가 호리호리하여 파워가 부족한 약점이 있다.
그러나 이제 18세여서 충분히 벌크업으로 부족한 파워를 보충할 여지가 있다.
"네이선, 환영해."
도라익이 주장 신분으로 새로운 환경 때문에 한껏 위축한 네이선을 맞이했다. 몸싸움이 약한 편이고 실전 경험이 너무 부족한 걸 빼면 남은 스텟 모두 괜찮은 네이선이기에 구단에선 리저브나 유스 팀으로 보내는 대신 선수 키우는 재주가 뛰어난 알론소한테 맡기기로 했다.
토트넘에서 유스 선수로 지내던 네이선으로선 정말 황송한 상황이었다.
"환영해줘서 고마워, 도우. 너랑 같은 팀이라니, 진짜 영광이야."
"나도 동갑내기 친구가 생겨서 정말 기뻐."
네이선은 거의 두 달 가깝게 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눈앞의 선수가 자신이랑 같은 나이임을 깨닫고 새삼스럽게 놀랐다.
"먼저 키퍼랑 수비수부터 소개할게."
도라익은 네이선을 데리고 선수들한테 일일이 인사시켰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기로 한 리엄이 가장 반갑게 맞이했다.
"스리백에 관한 이론은 타이먼이 최고야. 이론적인 건 타이먼한테 배우고, 실전은 레체르트한테 배우면 돼. 그리고 리엄한테서 포백에 관한 것도 배워. 당장은 스리백이 유행이어도 언제 포백으로 바뀔지 모르잖아."
"명심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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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의 환송회는 꽤 가벼운 분위기에서 진행했다. 아직 18세여서 몸이 가벼운 네이선과 달리 런던으로 가는 찰리는 짐이 많았다.
그래서 네이선이 팀에 오고 이틀이 지나서야 찰리의 환송회가 열렸다.
"도우, 나도 너랑 같은 마음이야. 네가 월드컵을 생각해서 스토크시티에 남은 것처럼 나도 월드컵을 생각해서 토트넘으로 가는 거야."
술에 취한 찰리가 커다란 손으로 도라익의 어깨를 부여잡고 푸념했다.
"나도 월드컵에서 주전 뛰고 싶다고. 유로컵에서 난 두 경기밖에 못 뛰었어. 월드컵은 모든 경기에 선발로 뛰고 싶어."
프리미어리그는 20팀이다. 그리고 리그 기간은 보통 38주 정도다. 38주에 38경기를 뛰는데, 문제는 유럽 리그, A매치 데이, 리그컵, FA컵 일정이 있다. 그러니 대충 5일에 한 경기를 뛴다고 보면 된다.
대표팀 감독으로선 이렇게 많은 경기를 모두 지켜보지 못한다. 그러면 당연히 맨유나 첼시 등 대표팀 선수가 많은 팀 위주로 직관할 수밖에 없고, 스토크시티에서 뛰는 찰리는 감독의 눈에 들 기회가 자연스럽게 적어진다.
더구나 스토크시티는 도라익의 존재 때문에 찰리의 활약이 묻히는 감이 있다. 사실 팀의 중심을 잡는 선수는 여전히 찰리인데, 언론의 포커스는 늘 도라익에 맞춰 있다.
대표팀 주전이 되는 데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이미지나 언론의 평가도 중요하다.
"내가 이적했으면 넌 남았겠네?"
"내가 이적하고 싶어도 구단에서 날 안 보냈겠지. 그래서 네가 남은 게 고마워. 사실 난 런던 출신이라 늘 돌아가고 싶었거든."
이적하면 하는 대로,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도라익은 어느새 결정 하나하나가 주변에 영향을 끼치는 그런 대단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난 공만 차고 나머지는 다 경호 형한테 맡기는 건 무책임한 짓이야.'
책임감을 느낀 도라익은 이후 뭔가를 함에 있어서 좀 더 신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술에 취한 찰리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내가 가면 2주장 자리는 누가 하지? 난 추천하고 싶은 선수가 있는데."
"누구?"
"루이스. 난 루이스가 나 대신 2주장이 됐으면 좋겠어."
태클 사태 이후 과묵해진 루이스다. 지금도 구석에서 혼자 주스를 홀짝이며 분위기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동의."
도라익이 찰리의 발언에 힘을 실었다.
"반대하는 사람 있어?"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반대하고 싶어도 그럴 분위기가 아니고, 루이스는 대부분 사람과 사이가 좋았다.
"그럼 본인 의향이 중요한데, 루이스, 네 생각은 어떤지 궁금해."
도라익의 말에 루이스가 우물쭈물 입을 열지 못했다. 예전엔 분위기 상관없이 본인이 흥이 나면 아무 대화에나 끼어들던 그 루이스가 아니었다.
"루이스. 네가 잘했다고 주장 하라는 게 아니야. 우린 네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야."
맞은 놈은 발 뻗고 자지만, 때린 놈은 아니라는 말이 있다. 그날 홧김에 살인 태클을 날렸지만, 자신이 만든 참상을 확인한 루이스는 큰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내게 자격이 있을까?"
루이스가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했다.
"난 뭐 자격이 있어서 주장이야?"
도라익의 말에 선수들이 하나같이 킥킥거렸다.
"진짜 궁금한데, 그때 왜 나한테 투표했어?"
"재밌을 거 같아서."
제임스의 말에 바로 곁에 앉은 맥자넷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페어린던은 찰리 찍었어."
"미스터 최가 만든 밥이 맛있어서."
타이먼과 쇠렌센이 솔직하게 말했다.
"난 찰리보다 도우가 더 친해서."
페데리치가 말했다.
"내가 그때 도우에게 투표한 건."
리엄이 입을 열었다.
"잘할 것 같아서야. 자신에게 엄격한 사람이 주장이 되면 팀에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 바로 그거야."
리엄의 대답에 도라익이 외쳤다.
"루이스, 네가 2주장이 되면 팀에 좋을 거 같아."
그렇게 찰리가 떠나며 공석이 된 2주장 자리는 루이스가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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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돼요?"
녹화 들어가기 전 진행자가 엘에게 질문했다.
아직 모델로선 이렇다 할 입지가 없는 엘이다. 특히 강렬한 인상이 필수인 모델에게 귀엽고 부드러운 엘의 인상은 결코 장점이 아니다.
그러나 도라익의 여친으로 알려진 지금, 그 어떤 슈퍼모델보다 주가가 상승세를 치고 있다.
"긴장은 안 되는데. 솔직히 별로 할 얘기가 없어요. 그게 걱정이에요."
"사귄 지 1년 반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얼굴 본 건 일 년에 채 열 번이 안 돼요."
'재밌겠어.'
엘은 얘깃거리가 적다고 걱정이지만, 오히려 이런 특이한 케이스가 방송국 놈들 입맛에 딱 맞는다.
"자. 오늘은 도우의 여자친구로 알려진 엘사를 모셨습니다. 엘사, 시청자들한테 인사하시죠."
"안녕하세요. 모델 엘사입니다. 엘이라고 불러주세요. 엘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자꾸 웃거든요."
"알았어요. 엘. 그럼 먼저 도우를 어떻게 알게 됐는지 얘기해 주실래요."
엘은 뉴스에서 도라익의 기부 사실을 우연히 본 일. 궁금을 못 이겨 직접 찾아갔던 일. 도라익에게 고백했다가 거부당한 일. 다시 찾아가서 고백해서 성공한 일 등을 담백하게 말했다.
"그럼 이걸 질문할게요. 성추행 사건으로 떠들썩할 때, 엘은 도우를 믿었나요?"
"그럼요. 저는 도우가 절대 그럴 리 없다고 굳게 믿었어요. 다만."
"다만?"
"신고자가 도우일 줄은 몰랐어요. 평소 엉뚱한 짓을 많이 하긴 하는데, 그 정도일 줄은 저도 상상 못 했어요."
방송을 진행하던 진행자가 결국 못 참고 고개를 돌려 킥킥 웃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네요. 저도 신고자가 도우일 거란 생각은 단 한 번도 떠올린 적 없었습니다. 그런데, 도우를 믿는 건 단지 사랑하고 잘 알기 때문인가요?"
"아니요. 도우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그 확신의 근거가 뭐죠?"
엘은 잠깐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정식으로 사귄 지 1년 반 되지만, 아직 우린 섹스를 안 했어요."
녹화장이 고요해졌다. 비록 유럽인의 심미 기준엔 조금 덜 부합할지 몰라도 엘은 객관적으로 대단한 미인이다. 모델답게 키도 크고 비율도 좋다.
그런 여친을 두고 섹스리스라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 발언이었다.
"플라토닉 러브 같은 건가요?"
"그것도 아니에요. 만날 때마다 키스만 한 시간씩 하거든요."
"그럼 이유가 뭐죠?"
"도우가 그랬어요. 성인은 최소한 자기 자신을 책임지지만, 미성년자는 자기 자신조차 책임지지 못한다. 그러니 미성년자로서 성인의 일인 섹스를 자제해야 한다."
"되게 교과서적인 발언이네요."
"그냥 말뿐이 아니에요. 저는 처음에 축구 선수여서 술을 전혀 안 마시는 줄 알았는데, 저도 못 마시게 하더라구요. 도우는 뭐랄까, 도덕 기준이 아주 높은 사람 같아요."
"잠시만요. 그런데 지금은 둘 다 만 18세잖아요. 법적으로 미성년자가 아니잖아요."
엘의 얼굴이 어색하게 변했다.
"그 이유가 뭔가요?"
"1월에 도우의 생일이 있거든요. 그날을 기점으로 우리 둘 다 성인이잖아요. 그래서 섹스를 해도 괜찮지 않냐고 했는데."
"했는데?"
"1년 더 기다려야 한다고 그러더군요."
"왜요?"
진행자가 버럭 화냈다.
"성인 영화가 19금인 건 만 19세부터 성인이기 때문이라고 그러더군요. 그게 아니면 왜 18금으로 정하지 않았냐고 하는데, 도무지 설득할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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