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왕
31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도라익이 1도움을 기록하며 1:0으로 크리스털 팰리스를 이겼다.
득점 31개와 도움 11개로 도라익은 정식으로 득점왕과 도움왕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한국 빼고 이를 조명하는 언론이 별로 없었다.
연속으로 1:0 승리를 거둔 것 때문에 스토크시티는 오히려 언론의 질타를 받아야 했다.
어느새 득점이 스토크시티를 1개 초과하고 실점은 7개 적은 토트넘이 언론에 의해 강제로 왕좌에 앉았다.
"병신들, 오히려 우릴 돕는 건데."
2위보다 6점 앞선 1위가 오히려 노출이 적은 괴이한 상황이 되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갖춘 사람은 당연히 의아했고, 스토크시티 팬이 아님에도 스토크시티를 성원하고 토트넘을 질타했다.
그저 열심히 뛰어 2위를 차지했을 뿐인 토트넘 선수들로선 정말 억울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언론의 부추김 때문에 남은 7경기를 모두 이겨야 한다는 커다란 압박이 생겼다. 구단에서 준 압박도 아니고 팬이 준 압박도 아니고, 도라익을 매도하려는 언론의 허튼수작으로 생긴 압박이었다.
반면, 부족한 실력에 1위를 하고도 스토크시티는 별 압박을 받지 않았다. 언론의 매질은 1위를 차지하고도 승부욕이 사그라지지 않게 돕는 훌륭한 촉매였다.
언론의 자충수는 32라운드에 증명됐다.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토트넘이 원정에서 리버풀과 무승부를 냈다.
스토크시티 역시 무너질 뻔했지만, 다행히 지금이나 그때나 언론은 스토크시티보단 다른 팀의 우승 가능성에 점수를 후하게 주며 스토크시티를 압박하지 않았다.
32라운드의 마지막 경기에서 도라익은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덕분에 도움왕 단독 선두를 차지하게 되었고, 토트넘과의 점수 차이도 8점으로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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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다 채웠다."
리그가 6경기 남은 상황에, 도라익은 자신이 시즌 초반에 세웠던 개인 목표들을 점검했다.
31골로 득점왕은 확실하다. 언론들이 최근 도라익이 도움만 기록하는 것으로 득점력이 하락했다고 난리를 치곤 있지만, 남은 6경기에 찰리는 11골, 베르딩요는 13골을 넣어야 도라익을 따라잡는다.
도움왕은 12개로 아직 방심할 수준은 아니다. 11도움의 선수는 한 명뿐이지만, 9도움은 7명이나 된다.
9도움 중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선수도 있어 경쟁 상대가 매우 많은 건 아니지만, 도움왕 타이틀은 아직 확고하지 않다.
그러나 도라익은 자신 있었다. 발제르와 토미는 물론, 다비드도 득점 능력이 괜찮아 도라익이 도움을 추가로 기록할 여건이 충분하다.
"이달의 선수 5번도 달성."
전반기에 3번, 후반기에 2번 해서 이달의 선수 5번을 달성했다. 이러면 올 시즌 MVP도 확실하다. 이달의 선수 5번에 득점왕만으로도 MVP가 확실한데, 도움왕 타이틀도 있고 팀도 1위로 달리고 있다.
"회사도 3개로 늘었고."
도라익은 엘이 전속모델로 있는 회사에 투자해 대주주가 되었다. 그리고 자연에서 추출한 재료로 화장품을 만드는 회사에도 투자했다.
돈은 신발과 의류 회사가 벌지만, 도라익이 가장 좋아하는 건 천연 재료로 화장품을 만드는 회사다.
수익률은 매우 낮지만,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재료 수집을 위해 수천 명 사람을 고용했고, 고용 숫자를 늘려가는 중이다.
'태아도 건강하고.'
쌍둥이는 엘 안에서 잘 크고 있다.
"형. 우리 같이 놀자."
엘을 돌보러 어머니가 막내를 데리고 영국에 왔다. 쌍둥이여서 그런지 엘은 먹고 싶은 게 첫 임신 때보다 훨씬 많았다.
엘과 무지는 도라익을 지탱하는 큰 기둥이기에 한국으로 보낼 수 없어 결국 어머니를 영국으로 모셨다.
아직 어머니의 돌봄이 필요한 나이인 라유도 함께 왔고, 라유와 무지는 삼촌과 조카라는 커다란 신분의 벽을 넘어 편한 놀이 친구가 되었다.
"알았어."
너무 행복해서 불안했지만, 도라익은 곧 불안을 지우고 라유와 무지와 함께 즐거운 장난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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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우, 얼굴이 왜 그래?"
"내 얼굴이 어땠는데?"
"세상 다 산 노인 같았어."
제임스의 말에 도라익은 잠깐 고민했다.
"팀이 1등이고 난 득점왕 확실하고, 도움왕이랑 MVP도 별문제 없을 것 같고. 그래선지 조금 힘이 빠져."
"언더독 증세야."
"그게 뭔데?"
"약자의 위치에 있을 때 오히려 강한 그런 성격을 말하는 거야."
"이거 심각한 거야?"
"심각한 병인지 모르지만, 치료는 쉬워."
제임스의 말에 도라익이 반색했다.
"어떻게 하면 되는데?"
제임스는 전화기를 꺼내 최근 기사들을 보여줬다. 언론은 우승을 위해 1:0의 실리만 취하는 스토크시티를, 최근 도움만 기록하고 득점이 저조한 도라익을,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노동력을 착취하는 도라익의 화장품 회사를, 신발 및 옷을 비싸게 파는 신발과 패션 브랜드를 비난했다.
"뭔 개소리야? 상대가 공격할 생각은 안 하고 수비만 하는데 1:0도 대단한 거지. 그리고 나 도움왕 하려고 일부러 패스를 늘렸어. 화장품 회사는 돈 거의 안 번다고. 다른 데보다 월급 3배나 줘. 신발이랑 옷 우리가 비싸게 파는 게 아니라 산 사람이 비싸게 되파는 거잖아. 아직 기계나 인력이 부족해 많이 만들지 못한단 말이야."
행복한 상황에 만족하고 잠에 빠졌던 투지가 활화산처럼 터져 올랐다.
"언론들 진짜 양심이 1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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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시작됐다. 선덜랜드는 홈 경기임에도 일찌감치 라인을 내렸다.
원래부터 속도 빠른 두 공격수를 앞세워 반격을 일삼는 팀이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현재 리그 18위로 1점도 아쉬운 상황이기에 현재 리그 1위에 득점 2위인 스토크시티 상대로 수비 태세로 나오는 건 당연하다.
스토크시티는 바로 줄리엔을 포워드로 올렸다.
- 도라익 선수 컨디션이 좋은데요.
- 이대로는 4월 이달의 선수도 도라익이 되어 신기록을 세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 팀은 연승이고 본인도 경기마다 득점 포인트를 기록하니 당연히 줘야지 않을까요.
제임스의 치료가 직방이었다.
- 도라익 선수, 왼쪽에서 공 잡습니다.
왼쪽 윙 자리로 간 도라익은 선수 두 명을 돌파한 다음 크로스를 올렸다. 스미스가 뒤에서 보호하고 토미 역시 패스를 받으려고 계속 근처에서 뛴 바람에 선덜랜드 선수들은 도라익을 수비하는 데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최근 몇 경기 도움왕을 노리느라 패스 위주로 경기를 풀며 돌파를 자제한 덕분이기도 했다.
줄리엔의 헤딩은 안타깝게도 골대를 맞췄다. 흘러나온 공은 발제르가 잡아 슈팅했는데, 키퍼의 손에 맞은 다음 또 골대에 거부당했다.
크로스를 올린 도라익은 바로 중앙으로 갔다.
그러나 방금의 2골대 기억 때문에 선덜랜드는 수비진을 좁히지 못했다.
토미나 스미스는 물론, 오창범이나 산체스 역시 크로스가 뛰어난 선수다. 최근 '득점이 저조한' 도라익 때문에 측면 수비를 포기하기엔 방금 공격이 너무 위협적이었다.
- 제임스!
선덜랜드가 측면 수비를 강화하자 스토크시티는 공을 중앙에서 돌렸다. 줄리엔이나 발제르 모두 패스 잘하는 선수가 아니어서 선덜랜드의 수비 전술이 먹히는 듯싶었으나, 순간을 포착하는 남자 제임스가 물결이 잔잔한 상황에 송곳 같은 패스를 찔렀다.
공을 잡은 도라익은 고개를 들어 먼 골대를 바라봤다. 아쉽게도 줄리엔은 찰리가 아니어서 도라익이 원하는 위치에 나타나지 않았다.
선택 여지가 없었던 도라익은 가까운 포스트를 공략해 골을 넣었다.
- 도라익 선수 시선 페이크 훌륭했습니다.
- 바로 슈팅했어도 100% 들어가는 상황인데, 도라익 선수는 120%의 확실함을 노렸습니다.
- 저런 작은 습관이 월드 클래스와 도라익 클래스의 차이를 만드는 겁니다.
도라익이 굳이 패스 가능성을 검토하지 않고 바로 슈팅했으면 군더더기 없는 자신감 넘치는 골이었다고 분칠했을 둘이다.
- 32골 12도움.
- 득점왕과 도움왕.
- 오랜만에 프리미어리그에 쌍왕이 탄생하나요?
1:0으로 앞선 스토크시티는 줄리엔을 수비진으로 복귀시키고 라인을 적절히 내렸다.
앞선 팀들은 한 골 먹은 상황에도 라인을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선덜랜드는 선택 여지가 없었다.
다른 팀들은 세트피스 득점이라도 노릴 수 있어 경기 막바지가 아니면 공격을 서두르지 않았는데, 선덜랜드는 세트피스 득점이 저조한 팀이다.
키가 작고 속도만 빠른 두 공격수의 득점에 의지하기에 라인을 내린 스토크시티 상대로 득점 가능성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라인을 올린 선덜랜드 상대로, 테일러는 전반전 30분에 우디르를 올려 발제르를 교체했다.
- 페데리치 바로 속공!
문전에서 우당탕하며 흘러나온 공을 잡은 페데리치는, 대부분 선수가 공을 찾아 헤매는 사이에 공격을 발동했다.
도라익은 속도를 늦춰 달리면서 수비수와 몸싸움을 벌였다. 힘에서 밀린 수비수가 손을 써서 반칙했지만, 강한 투지에 보호받는 도라익의 진로를 방해하지 못했다.
속도가 아닌 힘으로 수비수를 떨군 도라익은 급가속하여 공을 잡았다. 키퍼 앞에 남은 마지막 수비수가 어정쩡한 자세로 도라익을 수비했다.
도라익은 오른쪽에서 달린 우디르에게 패스할 것처럼 페이크를 줬다. 마침 도라익에게 밀린 수비수도 도착해서 정면에서 수비하던 선수의 집중력이 살짝 흔들렸다.
도라익은 바로 공을 골라인 쪽으로 치고 가속했다. 키퍼가 나오며 슈팅 각도를 좁혔다.
도라익은 속도를 줄이며 플리플랩을 펼쳤다. 선 자리에서 펼치기도 어려운 기술인데, 속도를 줄였다곤 하나 도라익은 달리면서 성공했다.
플리플랩으로 키퍼를 속인 도라익은 편하게 오른발로 공을 밀었다.
잔발로 보폭을 조절한 우디르가 빈 골대에 공을 집어넣었다.
- 32골 13도움.
- 최근 수비 압박이 심해지면서 모든 득점에 도라익 선수가 관여하고 있습니다.
- 스토크시티가 도라익 선수의 덕을 보는지, 도라익 선수가 스토크시티 덕을 보는지 논란을 종결해도 될 것 같습니다.
- 논란이었나요? 답은 처음부터 정해진 거 같은데요.
전반전은 2:0으로 끝났다.
"괜찮지?"
도라익은 전반전에 교체당한 발제르를 위로했다.
"괜찮아. 전술상 나일 수밖에 없는데 뭘."
발제르가 담담하게 말했다. 2부리그에서도 뛰어난 활약을 한 적 없었기에 지금 스토크시티에서 이룬 모든 게 감사하기만 한 발제르였다.
'난 감사하는 마음이 별로 없었구나.'
오늘 이룬 모든 게 도라익 혼자 잘나서는 분명히 아니다. 도라익이 엄청난 노력을 한 건 맞지만, 그 노력만으로 모든 게 이뤄지진 않았다.
'결국 마음가짐이네. 내가 감사한 마음이 부족해서 언더독인지 뭔지 병이 생긴 거야.'
예전엔 고마움을 많이 느꼈다. 그러나 큰 아픔을 어렵게 극복한 후 자기 연민에 빠져서 감사한 마음이 덜했다.
'나이 먹으면 나아져야지. 옛날보다 부족하면 어쩌자는 거야.'
- 도라익 선수, 프리킥 득점에 성공합니다.
- 33골 13도움.
- 공격 포인트론 이미 프리미어리그 신기록입니다.
- 올해 리그위원회 사람들 참 편하겠네요. 굳이 MVP 누구한테 줄지 고민 안 해도 되니깐요.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도라익이 직접 프리킥으로 득점했다. 선덜랜드의 투지를 완전히 꺼트린 골이었다.
라인을 내려도, 라인을 올려도, 내리지도 올리지도 않아도 도라익은 늘 방법을 찾아 골을 만들었다.
- 제임스!
후반 65분. 제임스가 또 송곳을 날렸다. 공을 잡은 도라익은 공을 한 번 꺾어 각을 만든 다음 편하게 득점했다.
- 음. 제임스 선수 어느새 10도움 달성했습니다.
- 적은 늘 내부에 있었군요.
- 제임스 선수 이제부턴 득점에 집중하길 바랍니다.
- 이제 5라운드 남았네요. 이제부터 도라익 선수의 득점 하나하나가 기록입니다.
4:0의 대승을 거둔 스토크시티는 맨유를 3:0으로 이긴 토트넘과 여전히 8점의 점수 차이를 유지했다.
해트트릭을 기록한 찰리 역시 도라익의 해트트릭 때문에 여전히 11골 차이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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