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술로 세조를 참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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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이니고
작품등록일 :
2021.03.02 14:57
최근연재일 :
2021.11.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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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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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사람1_손중락의 행방불명

DUMMY

캄란 항.


주월 한국군 헌병대 지프에서 호송대와 손중락 중령이 내렸다.

중락을 호송하는 헌병은 장교를 포함하여 모두 3명이었다.

중락은 손목에 수갑을 차고 포승줄로 꽁꽁 묶여 있었다.

계급 견장과 부대 마크도 없는, 낡은 군복을 입은 중락은 그 사이 얼굴은 까칠했고, 수염은 덥수룩했으며, 몹시 피곤하고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중락의 양 곁에서 두 헌병이 팔을 끼었다.

호송책임 장교인 서동훈 중위가 헌병을 향해 명령했다.


“가지.”


서 중위가 앞서 걷기 시작했다.

그들이 출항 준비를 하고 있는 해군 수송선 LST 제811함을 향해 걸어갈 때, 그들의 앞에 그림자 하나가 나타나더니 호송대의 앞을 막아섰다.

주월 육군 제9보병사단 백마부대 부대장 민기식 준장의 부관 박상길 대위였다.

서 중위가 걸음을 멈추고, 박 대위를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박 대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수고가 많군. 다름 아니라..... 출항 시간이 좀 남은 걸로 아는데, 부대장님께서 잠시 면회를 바라시네.”


박 대위가 턱으로 다른 쪽을 가리켰다.

서 중위가 고개를 돌려 오른편을 바라보았다.

기다란 항만시설 옆에 백마가 그려진 사단 깃발을 단 지프가 한 대 서 있었다.

앞좌석에는 선글라스를 낀 백마부대 부대장 민기식 준장이 앉아있었다.

서 중위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시간을 많이 드릴 순 없습니다. 저희 사정도 양해해 주십시오.”


박 대위가 마른 미소를 지어보였다.


“알았어. 지체시킬 정도로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서 중위가 뒤를 돌아 헌병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표정한 헌병 두 사람이 손 중령의 팔에 낀 손을 풀며 뒤로 물러섰다.

중락이 고개를 들어 다가온 박 대위를 바라보았다.

박 대위가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나직하게 말했다.


“부대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중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박 대위가 결박당한 중락을 지프로 데려갔다.

민 준장에게 다가가는 동안 중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중락이 다가오자, 민 준장은 선글라스를 벗고 굳은 얼굴로 지프에서 내렸다.

중락은 경례를 하지 못하는 처지라, 묶인 채로 발을 모으고 차렷 자세를 취하더니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민 준장이 탄식을 내뱉었다.


“허참, 인생 정말 세옹지마로군. 베트남전쟁의 영웅이 하루아침에 이런 죄수의 몰골이 되다니.....”


민 준장의 탄식에도 부동자세인 중락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중락이, 자넬 보자고 한 건..... 면목 없다는 말을 직접 전하고 싶어서네.”


민 준장이 중락의 곁에 섰다.

두 사람의 시선은 바다를 향해 있었다.

항구에 정렬되어 있는 크고 작은 군함들과 군함들 위를 어지럽게 배회하는 갈매기들이 보였다.

군함들이 분명했지만, 긴장된 모습이 아닌 평화로운 정경이었다.


“나로선 어쩔 수가 없었네. 사령관은 정말 이판사판이었어. 자네에게 소명의 기회를 주지 않은 것처럼 우리에게도 보고나 발언할 기회조차 주지 않더군. 여차하면 나와 윤 대령까지 처넣을 기세였어. 이 정도면 말 다한 것 아니겠나.”


민 준장의 변명에도 중락은 여전히 바다만 바라보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민 준장이 고개를 돌려 중락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자넨 원망 한 마디 하지 않을 작정인가.”


중락은 잠시 바닥을 내려다보았다가 이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말이 없었다.


“사령관의 부당한 명령에도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내 태도가 자네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만, 마음을 달리 먹었네. 귀국하면 자네를 위한 구명에 노력을 아끼지 않을 참이야. 나도 이참에 아예 들어가려고 해. 귀국해서 열리는 군법회의엔 내가 잘 아는 후배를 변호인으로 붙일 테니 너무 염려 말고.”


"부대장님."


드디어 중락이 입을 열었다.


“부대장님의 마음 잘 압니다. 일부러 제대하시고 애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봐, 손 중..... 중락이. 정말 자네 앞에 면목이 없어. 하찮은 변명 같지만, 나도 윤 대령도 최선을 다했어. 헌데, 제기랄..... 이 지옥 같은 곳에선 또 다른 모습의 악귀가 될 뿐이군.”


중락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민 준장을 바라보았다.

민 준장의 이마에 핏줄 하나가 불끈 솟아오른 것이 보였다.

중락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지,만 눈길은 바다와 같았다.

민 준장이 조금 다가왔다.


“한 마디라도 무슨 말을 해주면 안 되겠나?”


민 준장의 눈길을 의식한 중락이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미소조차 잠시뿐이었다.

중락의 눈길은 다시 무심한 눈길로 무심한 바다를 향했다.

하지만 중락이 다시 입을 열었다.


“부대장님.”

“어, 그래.”

“처음으로, 그저 맨 처음으로 되돌리고 싶은 마음만 듭니다.”


민 준장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고, 묶여있는 중락의 팔을 잡았다.


“처음으로?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사령관께 나와 함께 가세. 함께 가서.....”


중락의 턱 근육이 불끈 움직였다.


“제 신상 얘기가 아닙니다. 이 전쟁과 역사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힘에 굴종하여 명분 없는 전쟁에 뛰어든 일,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상처와 흉터투성이의 악귀들이 되어버린 이 현실. 이런 것들을 처음으로 되돌리고 싶다는 말씀입니다. 역사와 후대 사람들은 분명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겁니다. 그 추궁에 우린 변변찮은 변명이라도 있을까요? 그래서 저 또한 구차한 변명삼아 처음으로 되돌리고 싶다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중락의 얘기를 들은 민 준장이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갈매기 한 마리가 쏜살같이 바다를 향해 하강하고 있었다.


“현실적인 얘기는 아니군.”

“힘을 사랑하고 힘을 원하는 것.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결국 힘 앞에 고개를 숙이고, 힘의 울타리로부터 내처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이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이겠지요. 죄송합니다, 부대장님. 이쯤 되고 보니, 생각만 많아지고 쓸데없는 말만 주절거리게 되는군요.”


중락은 민 준장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는 묶인 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부대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민 준장이 중락의 몸을 일으켰다.

중락의 눈에서 물기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정말..... 정말 미안하네. 힘내. 나도 조만간 귀국할 것이고, 서울에 가면 자넬 찾아볼 거야. 앞서도 말했지만, 내 최선을 다해 자네를 도울 거야.”

“현실을 되돌리는 꿈만 꾸고 있을 텐데, 부대장님을 만나 뵐 수 있을지. 솔직히 그건 장담할 수가 없군요.”


중락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몸을 돌렸다.

중락이 헌병대가 기다리고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가 우뚝 멈추더니 몸을 되돌렸다.

그가 다시 민 준장을 향했다.

중락의 눈이 흐릿했다.


“부대장님, 외람되지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민 준장은 선글라스를 끼다 말고 손 중령에게 다가섰다.


“말해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돕겠네.”


중락이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저..... 아내에게는 제가 임무 중 행방불명이 됐다고 전해주실 순 없겠습니까?”

“뭐? 이봐, 손 중령! 식구들한테 돌아갈 생각을 해야지,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돌아갈 땐 돌아가더라도 지금은..... 지금은 이 소식이 아내에게 나을 성싶습니다.”

“허, 이런.....”


이해 못할 말은 아니었지만, 그리도 강건하던 사람이 삶을 포기한 듯한 약한 소리를 하는 게 안타깝게 여겨졌다.


“자네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닌데.....”

“최근 편지에 아내가 재수술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아마 귀국하는 그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큰 용기와 의지가 아내에게 필요한 시점이죠. 늘 엄마와 아빠를 위해 기도하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이거 참.....”

“체포와 군법회의 회부, 영창에 갇힌 제 모습은 아내와 아이들이 억지로라도 만들어내고 있는 용기와 의지를 무참히 꺾는 일이 될 겁니다. 어차피 알게 될 일이지만, 지금은.....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민 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세. 지금은 식구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하세. 식구들은 여전히 자네가 잘 복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 거지. 급히 장기 작전을 나갔다고 하겠네. 굳이 실종으로 전할 건 무언가.”


중락은 미소인지 흐느낌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더니 곧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갔다.


“아내에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재수술할 때는 꼭 찾아간다고 약속했습니다. 아이들한테도 전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너희들과 떨어지지 않겠다고요. 그동안 가족들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켜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번만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키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게 이젠 죽기보다 싫군요. 거짓말이라도 하는 이유는 마지막 희망을 꺾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아내의 성격은 제가 잘 압니다. 제가 곁에 없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아내는 슬퍼하겠지만, 더 강한 용기와 더 굳은 의지를 가질 입니다. 어쩌면 아이들을 돌볼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여길 테니까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망하고 무서워서 울지 모르지만, 아이들도 엄마를 생각하며 용기를 낼 겁니다. 저는 오직 그것만 바라고 있습니다.”


민 준장이 눈가를 훔치다가 서둘러 선글라스를 꼈다.


“알겠네. 자네 말대로 그렇게 전하지. 하지만 전사 통보는 아니니까 꼭 살아서 돌아올 거라는 말은 꼭 전하겠네. 다른 누구도 아닌, 베트남전쟁의 영웅 손중락이니 말이야.”

“감사합니다, 부대장님.”


중락은 재차 민 준장에게 인사하고는, 헌병 호송대가 기다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중락이 호송대에 이끌려 수송선에 오르는 모습을 민 준장은 끝까지 바라보았다.


“중락이, 자네는 꼭 돌아올 거야. 자네는 불사신이지 않나.”



***



열흘 후.

부산항에 도착한 해군 수송선 LST 제811함에서 손중락 중령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호송 책임자인 서동훈 중위는 밤새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보고했다.

그의 보고는 사실이었다.


군의 기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부대의 명령위반 및 사령관의 명령 불복종으로 헌병대에 긴급 체포되어 강제 귀국조치된 파월 제9보병사단 백마부대의 특임대대 특수작전 책임자 중령 손중락은 군법회의에 회부되는 것을 불명예이자 치욕이라 여기고 귀국조치를 행하는 해군 수송선 제811함이 필리핀 해협을 지날 무렵, 태풍을 뚫고 가는 수송선의 위급 상황 시에 수송선의 배수 작업을 돕던 헌병 호송대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결박당한 채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졌다. 수송선 안에서 발견된 그의 물품은 색이 바란 가족사진 한 장 뿐이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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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수양을 참수하라 (3) 21.10.06 134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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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최후의 목표, 수양 (3) 21.09.26 129 2 16쪽
182 최후의 목표, 수양 (2) 21.09.25 125 3 19쪽
181 최후의 목표, 수양 (1) 21.09.24 127 4 21쪽
180 탈출과 구출 (4) 21.09.23 124 3 16쪽
179 탈출과 구출 (3) 21.09.21 125 4 18쪽
178 탈출과 구출 (2) 21.09.20 114 4 19쪽
177 탈출과 구출 (1) 21.09.18 157 4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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