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백일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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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민창
작품등록일 :
2021.03.0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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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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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4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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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백일홍전 03

DUMMY

기이한 일이었다. 저런 거대한 몸집의 괴물이 자기 모습을 드러내다니.


괴물들은 바다와 산, 강물, 어디에나 살고 있지만 이렇게 대놓고 존재를 나타내는 일은 없다. 반신이 그렇듯이 괴물도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기 때문이다.


저 괴물이 바다 위로 올라온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도망치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는 서둘러 소원이의 눈앞에 손바닥을 펼쳤다.


최면을 깨우기 위해 괴물과의 의식 연결을 단절시키고, 소원이의 머릿속에 침투한 괴물의 의식을 찾아 뽑아냈다.


그러자 차차 소원이의 눈에서 짙은 어둠이 걷혔다. 다시 흰자가 보이고, 눈동자가 초점을 찾는다.


“뭐, 뭐야. 나 지금 뭐하는 거지?”


제정신을 찾은 소원이가 어리둥절해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최면에서 깨어난 것이다. 나는 겨우 한숨을 놓았다.


치유술은 그나마 내가 자신 있는 분야라서 다행히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저게 뭐야? 용이야?”


하지만 정신이 돌아온 소원이는 눈앞의 정체불명의 생물체를 보고서도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척 놀란 표정이긴 했지만 겁을 먹기는커녕 흥미진진한 것을 보는 듯한 얼굴이다. 그러더니 가방을 뒤져 카메라를 꺼내는 것이다.


“야! 너는 저걸 왜 찍어!”


규빈이가 소원이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그러자 소원이는 카메라 렌즈를 바다를 향해 들며 소리쳤다.


“용이잖아! 저걸 어떻게 안 찍어?”

“너는 진짜 정신 나갔냐?!”


규빈이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소원이의 팔을 끌어당겼다. 나도 합세해서 소원이의 다른 쪽 팔을 붙잡았다.


나와 규빈이는 일단 해안가에서 떨어지기 위해 소원이의 양손을 한쪽씩 잡고 달렸다. 소원이는 저항했지만 남자 둘이서 잡아끄니 어쩔 수 없이 끌려왔다.


“멈춰라!”


그때, 뒤에서 번개가 내리치는 듯 찢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 목소리, 뭐지?”


이 소리를 규빈이도 들은 것 같다. 소원이는 듣지 못했는지 우리를 번갈아볼 뿐이었다. 설마 괴물이 말을 걸었나.


나와 규빈이는 달리던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랬더니 세상에, 괴물은 우리의 바로 뒤에 있었다.


아까 분명히 수평선 근처에서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는데,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해안가에 와 있는 것이다.


가까이서 보니 그 거대함에 말문이 막혔다. 고개를 전부 젖혀야 괴물의 눈이 겨우 보인다.


우리는 달리던 것도 멈추고 뒷걸음질 쳤다. 이미 괴물의 그림자 안에 갇혀 주위가 어둡고 서늘하다.


“규빈아 저거... 뭔지 알지?”


나는 잘 떨어지지도 않는 입술로 겨우 말했다. 내 물음에 규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눈앞에서 보고 나서야 이 괴물의 정체를 알았다.


용에 필적할 정도로 거대하고, 몸을 감싼 비늘 또한 용의 그것처럼 단단하고 빛나지만, 날 줄을 몰라 승천하지 못하는 비운의 괴물.


이무기다.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빗속으로 보이는 이무기의 형상은 확실히 용보다 뱀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커다란 크기에 압도되어 용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이무기는 우리를 노려보았고, 나와 규빈이는 소원이를 호위한 채 멈추어 섰다.


아니, 멈추어 섰다기보다는 움직일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이무기의 새카만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광은 우리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한 발짝이라도 움직이면 우리에게 달려들 것 같았고, 등을 보인 순간 저 커다란 입에 씹어먹힐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 소원이는 이무기를 빤히 보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것이다.


“뭐야, 용이 아니라 뱀이네.”


물론 용은 아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저 크기의 괴물을 앞에 두고 지금 이게 할 소리인가.


하지만 소원이의 어이없는 한 마디에 나는 약간 긴장이 풀린 느낌이 들었다. 딱딱하게 굳었던 몸이 말을 듣는다. 그건 규빈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물러서!”


규빈이가 품 안에서 흰 부채를 꺼내며 말했다. 부채가 한 번 펄럭이자, 수십 개의 팔뚝만한 칼날이 부채에서 튀어나가 이무기를 공격했다.


공격술로 이름난 가문의 후계자가 쏘아낸 기습 공격은 유효했다. 이무기가 등을 돌리며 방어를 한 것이다.


규빈이가 말했다.


“내가 막을 테니까 너희는 도망쳐!”

“어떻게 그냥 가!”


소원이가 소리쳤다. 나 또한 친구를 두고 혼자 내뺄 마음은 없다. 나도 부채를 꺼내어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규빈이 만큼은 못해도 허접하게나마 공격술이 가능하니까 말이다. 규빈이와 나는 신호를 교환한 뒤 동시에 칼날을 날렸다.


아까보다 두 배의 숫자로 늘어난 칼날은 이무기에게로 날아갔지만, 두꺼운 비늘을 관통하지 못하고 우수수 바다에 떨어져 사라졌다.


이번에 이무기는 방어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의 요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다 간파한 것처럼, 이무기는 방어를 하려는 생각도 없이 목을 길게 빼어 우리를 위협했다.


이무기는 당장 우리에게로 달려들 기세였다. 그때 규빈이가 앞으로 나서며 부채를 길다란 장검으로 바꾸었다.


그리고는 검을 들고 이무기를 견제하며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규빈이는 우리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얘들아, 내가 셋을 세면 마을로 뛰어.”

“규빈이 너도 뛰는 거지?”


소원이가 묻자 규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하지만 이무기는 우리가 도망치려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무기가 길게 울음을 울자 갑자기 날카로운 폭풍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바람이 몸에 스치자 옷과 살갗이 찢어지며 피가 흘렀다.


나는 허겁지겁 소원이를 감싸안았고, 내 앞에서 규빈이는 장검을 세워 들고 이무기의 바람을 막았다.


검기로 바람의 방향을 꺾는 것인데, 규빈이 혼자서 막아내기 벅차 보였다.


일단 덩치 차이부터 너무 어마어마하고, 내가 알기로 이무기는 거의 신수에 가까운 급의 강력한 괴물이다.


열여덟 살 먹은 반신이 혼자서 상대하기 만만한 상대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규빈이를 도와 바람을 막는 일도, 아니면 공격을 한 번 더 해보는 일도 할 수가 없었다.


피부가 찢어지고 고통이 느껴지니 아무것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나는 벌벌 떨면서 소원이를 안고 있을 뿐이었다. 규빈이가 싸우는 것을 쳐다 볼 엄두도 나질 않는다.


“규빈아! 규빈아!”


소원이가 목청이 떠나가라 규빈이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규빈이가 무사하기만을 빌 뿐이었다.


“으아아아!!”


그때, 규빈이가 검을 허공에 높이 띄우며 나와 소원이를 감싸안았다. 쨍 하고 쇠 부딪치는 소리가 고막을 찢는 것처럼 날카롭게 울렸다.


그 정체모를 굉음이 지나가고 나서, 우리는 한참 동안을 끌어안은 채 서있었다.


어깨를 잔뜩 움츠린 채 이어질 비극을 기다리는 것처럼 굳어있던 우리는, 주위가 잠잠해진 뒤에도 움직이지 못하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살았다."


소원이가 참았던 숨을 내뱉듯 말했다. 이무기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안심이 되어 다리가 풀릴 뻔했다.


그런데, 규빈이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규빈아!!"


소원이가 쓰러진 규빈이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무기의 공격에 다친 것인가. 단순히 그런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이지만.


규빈이의 손끝이 검게 변했다.


폭주의 증상이다.


요력 폭주. 육체가 버틸 수 없을 만큼 요력을 과다하게 사용했을 때 육체가 붕괴해버리는 현상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규빈이가 자기 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요력을 사용한 것이다.


“규빈아, 정신 차려!”


내가 소리치자 규빈이는 힘겹게 기침을 토해냈다. 입에서 피가 쏟아졌다. 장기에 손상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규빈이의 가슴에 손을 대어 몸속에서 일어난 출혈을 멈추었다. 임시방편이긴 해도 얼마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응급처치를 끝내고 나는 규빈이를 들쳐 업었다. 한시가 급하다. 당장 아버지한테 데려가야 한다.


요력 폭주는 인간의 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다. 오직 반신의 치유술로만 고칠 수 있고, 이 정도 상처는 나 같은 애송이의 요력으로는 택도 없다.


나는 아버지 병원으로 정신없이 뛰었다.



***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규빈이는 인공호흡기를 쓰고 수술대에 올랐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달린 나는 수술실 앞에 주저앉았고, 곧 규빈이의 부모님이 달려오셨다.


수술실 문밖에는 나와 소원이만 남았다. 우리는 의자에 나란히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원이는 적잖이 혼란한 얼굴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이무기를 코앞에서 보고, 나와 규빈이가 요력을 쓰는 것을 보고, 규빈이가 크게 다쳐 쓰러졌다.


소원이는 한참을 아무런 말이 없다가, 나에게 물었다.


"규빈이가 우리를 구한 거지?"


소원이는 요력에 대해 모르지만, 규빈이가 우리를 보호하려다가 다친 것을 직감한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까지 된 이상 소원이에게 사실을 숨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응."


하지만 요력에 대해 자세히는 말할 수 없어 단답으로 대답을 끝냈다. 그러자 소원이가 말했다.


"규빈이의 검이 그 날카로운 바람을 막았어.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바람이 검에 맞고 튕겨나갔어."


소원이는 모든 것을 똑똑히 본 것 같다. 만약 여기에서 더 자세히 물어온다면 어떻게 대답을 해야할지 앞이 캄캄했다.


다행히 그때, 수술실 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걸어나왔다. 나와 소원이는 벌떡 일어났다.


"규빈이는 괜찮다. 걱정 안 해도 돼."


나와 소원이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는 다시 수술실로 들어가셨고, 긴장이 풀린 우리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소원이의 하얀 팔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무기의 바람칼에 베여 군데군데 핏자국이 선명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위에 손을 올려 상처를 아물게 해 주었다.


말끔해진 팔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원이가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역시 너희는 나랑 다른 사람인 거야."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역시 라는 말은 짐작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어렴풋이 느꼈거든. 이제 확실해져서 개운하네."


소원이는 이렇게 말하고서 더는 묻지 않았다. 그래서 도리어 내가 소원이에게 물어야 했다.


"뭘 느꼈는데?"

"너희는 높다란 담장 같았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도 따라잡을 수가 없었지. 내가 밤새서 공부를 할 때 너희는 독서실에 있지도 않았어."


그건 사실이다. 나와 규빈이는 시험기간에 학교 독서실에 남아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너희가 집에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었잖아. 너희들 집은 항상 불이 일찍 꺼졌어."


소원이는 우리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티를 안 냈을 뿐.


"나만 아등바등 노력해야 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았네."


이렇게 말하며 소원이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후련함과 허탈함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그런 소원이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해?"

"우리 정체를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이해해. 초능력자라는 걸 얘기하고 다녀서 좋을 게 없겠지."


소원이는 우리를 초능력자라고 불렀다. 사실 뭐라고 부르든 상관이 없다.


반신이든 천재든 초능력자든, 인간에게는 똑같이 낯설고 두려운 존재다. 소원이는 우리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버렸고, 그것은 우리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는 뜻이다.


나는 소원이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가 친구인 건 그대로인 거지?"


그러자 소원이는 나를 보며 웃었다.


"그럼. 변한 건 아무것도 없어."


그리고는 수술실로 시선을 옮겼다.


"규빈이가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규빈이를 걱정하는 소원이의 말에, 나는 동조하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소원이와 함께 수술실을 바라보지는 못했다.


규빈이 걱정으로 가득한 소원이의 눈을 봐버린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차가운 병실 바닥만 내려다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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