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장. 천주의 인연-02
경계를 넘는 자들! 타키온
제임스는 조용히 심법을 운용했다.
‘역시, 최고다.’
빠르게 정신이 안정되며 사이킥 에너지가 차오른다.
‘이런! 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심법을 운용하던 제임스의 집중이 흐트러졌다.
예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사이킥 에너지가 차오르고 있었다.
자연의 기운이 증가한 탓이었다.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뭔가 변화가 있었음을 직감할 수 있지만 급한 것은 지금 이었다. 수습을 하지 못한다면 이대로 폭주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다.
정신을 차리고 심법에 집중했다.
의식적으로 외부환경의 변화를 의식하지 않았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식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간신히 대주천을 끝낼 수 있었던 제임스는 곧바로 능력을 발휘했다.
“이럴 수가! 자연지기의 밀도가 몇 배는 높아졌다.”
마치 물속에 들어와 있는 검처럼 주변을 자연지기가 감싸고 있었다.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던 이유를 알 만 했다.
“뭔가 변고가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설마 DG급이 나타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한국에서도 심법을 운용해 본 적이 있었다.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 자연지기가 모이는 스팟이라면 몰라도 평범한 지역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자연지기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은 변화를 주도한 원인이 있음을 말해 준다.
“조금씩 줄어드는군.”
자연지기의 밀도가 점차 낮아지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분출이라도 있었던 건가?”
자연지기가 줄어드는 것으로 봤을 때 한국에서 용맥이라 부르는 곳이 터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줄어든 것이 멈췄다.”
그런 생각도 잠시 뿐이었다. 자연지기가 더 이상 줄어들지 않고 멈췄다.
“이 상태만 하더라도 전에 비해 자연지기가 거의 열배에 달한다.”
더 줄어들 수 있을 여지가 있겠지만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일렁이던 자연지기가 점점 안정적으로 변하면서 고정되는 것을 감지한 때문이다.
“DG급 때문이나, 용맥의 분출한 것 때문이 아니다. 분명 한반도 자체에 변화가 생겼음이 틀림없다.”
제임스는 곧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객실을 나섰다.
‘이 정도라면 셀들의 능력을 몇 배나 끌어 올릴 수 있다.’
복도를 걸으며 단순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자연지기가 증가한 원인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만들고 있는 조직의 능력을 키우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같은 종류의 심법을 익히고 있는 이상 셀들도 엄청난 힘을 얻을 기회였기에 호텔을 나서는 제임스의 생각이 분주해졌다.
* * *
백령도와 개성을 거쳐 공간이동을 통해 도착한 곳은 개마고원의 심처다.
‘결계를 쳐 놓은 것인가?’
북한에 있는 이면조직을 장악하고 있는 이가 거처하는 곳이다.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눈에 기운을 집중시켰다.
계곡 안에 자리 잡은 너와집이 인상적이다.
‘안으로 들어가는 데는 별 문제 없겠군.’
결계가 쳐져 있지만 생로가 보인다.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다.
계곡으로 내려와 암석군을 지났다.
커다란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으로 들어가 결계를 조망했을 때 보았던 생로를 따라 걸었다.
널따란 공터가 나오고 세월이 묻어나는 너와집이 보였다.
“실례하겠습니다.”
“들어 오라우!”
너와집 안에도 들려오는 대답에는 놀란 기색이 없다. 결계를 통과하는 순간 이미 내가 들어온 것을 알았을 것이다.
S급의 능력자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까치머리를 한 중년인이 허벅지를 벅벅 긁으며 자리에 앉는다.
“주무시는데 방해가 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랫녘에서 온 것 같은데 뭔 일로 왔네?”
“성질도 급하시군요, 먼저 인사부터 올리겠습니다.”
양손을 맞잡고 천천히 큰 절을 올렸다.
“날 아네?”
“주작의 백어른신을 모른다면 찾아 올 리도 없지요.”
신광이 번쩍인다. 역시 S급 능력자답다.
“뉘기니?”
“청룡의 손자인 강찬영이라고 합니다.”
“네가 그 새끼 손자니?”
“그렇습니다.”
“뭘로 증명하갔니?”
“여기!”
손바닥을 내밀며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내기를 운기 했다.
푸르게 흘러나오는 기운에 백 어르신이 눈썹을 찌푸린다.
“그 아 새끼래 단맥이 되었지 않니?”
“외손입니다.”
“그 똘망한 애미나이래 아 새끼라고?”
“그렇습니다.”
“기운도 맞는 것 같은데 외손이 이었다고? 그 아새끼래 남녘에 머물지 못하고 떠돌고 있을 긴데 말이야?”
“어렸을 적에 사사했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을 테니 믿갔어. 그런데 어드렇게 왔니?”
“때가 되어서 이렇게 찾아뵙게 됐습니다.”
“때? 말해 보라우!”
자세를 완전히 바로 하는데 신광이 형형하다. 허튼 소리를 말라는 뜻이다.
“머지않아 장막이 걷힐 겁니다.”
“으음.”
놀라운 이야기일 것이다.
거의 600여년 만에 세상에 열리게 되니 말이다.
“헛지랄 말라우!”
쏴아아!
강렬한 기세다. 전에 같았으면 기세를 받아내기는커녕 그대로 골로 갔을 정도로 위력적이다.
의지만으로 살상력을 가지다니 역시 S급 능력자다.
“사실입니다.”
담담히 기세를 받는 것이 놀라웠는지 백어르신의 눈빛이 변한다.
“삼봉선생께서 펼치신 장막이 지금 걷힌다는 말이니?”
“예.”
“하하하하, 되지도 않는 소리구나야!”
무형의 기운이 거세게 방안을 휘돈다. 그만큼 기가 막힌 소리라는 뜻이다.
이번엔 다가 온 기운을 조용히 밀어냈다.
“제법 실력이 되는 구나 야.”
밀려들어오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는 소리다.
“조그마한 성취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내 기운을 밀어낸 놈이 조그마한 성취라. 어디서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고 싶은 이야기나 해봐라.”
사투리를 접었다. 온전한 서울 말씨다. 원래 서울 출신이라더니 맞는가 보다.
정색을 하시니 사실을 전해야 한다.
“어르신 기맥의 봉인이 풀리게 될 겁니다.”
“남녘의 암술이 전부 풀린다는 말이냐?”
놀라시는 눈빛이다.
당연하다. 당신이 그토록 노력했음에도 지금까지 풀지 못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렇습니다. 왜의 무리가 심어 놓은 암술이 이젠 사라질 겁니다.”
“네놈 할아비도 하지 못한 것이거늘. 그것이 가당키나 한 소리냐?”
“역시, 믿지 않으시는군요. 하지만 가능한 일입니다.”
“계속 날 놀리는 구나.”
“어르신 주맥을 막아 놓은 암술을 아직까지도 해결하지 못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하하하, 그럼 네놈이 해결할 수 있다는 소리냐?”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드리도록 하지요.”
“으음.”
내 대답에 인상을 찌푸린다. 믿기 힘든 소리일 것이다.
“예향아!”
잠시 생각에 잠겼던 어르신이 밖에 있는 이를 부른다. 내가 너와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기척을 드러낸 이다.
“말씀 하십시오 스승님.”
“이 아이를 그곳으로 데려가라.”
“스승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니 중요한 곳을 노출하는 것이 꺼림칙한 모양이다.
“해결하지 못하면 제 스스로 그 업을 감당할 터 걱정하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네놈이 해결할 수 있다니 밖에 있는 아이들 따라가거라. 그 괴물같은 놈에게 안내를 해 줄 것이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가볍게 목례를 한 후 밖으로 나섰다.
선머슴 같은 복장의 여인이 밖에서 싸늘한 눈초리로 기다리고 있었다.
“따라 와라!”
“알았소.”
팟!
경공을 시전 한다. 족적을 남기지 않는 것을 보면 선인들이 남긴 것이 분명하다.
예향이라는 여인을 따라 발걸음을 놀렸다.
딴에는 날 떨치려 하는 것이겠지만 그리 쉽지는 않을 터였다.
예향을 따라 30여분 달렸을까 거대한 암석절벽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암술이 펼쳐져 있는 곳은 절벽 안쪽에 있는 동굴이다.”
전력을 달린 것 같은데 가벼운 몸놀림으로 자신을 따라 붙어서였을까. 목소리에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알았소. 금방 끝내고 어르신께 갈 테니 잠시만 기다리시오.”
“할 수만 있다면.”
“후후후, 알았소.”
절벽 아래 짐승의 보금자리처럼 보이는 작은 동굴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공동이 나타났다.
밖에서 보는 거와는 영 딴판이다.
눈에 기운을 불어넣자 전경이 보인다.
공동 안에는 커다란 기둥이 있었다.
한아름이나 되는 청동기둥이다.
“기가 막힌 놈들이다. 저런 식으로 용혈의 대맥을 완전히 막아버렸구나.”
한반도의 척수에 커다란 대침을 박은 모양이다.
청동기둥에 가까이 다가갔다.
“음양문이로군.”
음각과 양각으로 새겨진 기이한 문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음양사들이 사용하는 암술을 펼치기 위한 주문이다.
“으음, 음각으로는 진맥을 양각으로는 허맥을 모두 막아 버렸군.”
정혈이 흐르는 맥은 두 종류가 있다. 진맥과 허맥이다.
대자연을 맥동하게 하는 기운이 지하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순환하고 흐르는 것이 진맥이고, 여기서 빠져 나온 일부의 기운이 땅거죽을 타고 번지듯 사방으로 퍼지는 것이 허맥이다.
진맥은 지구의 순환계에 작용을 하고, 허맥은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에게 작용을 한다.
진맥과 허맥을 관통해 막아놓은 것을 보면 특급에 달하는 음양사가 관여한 것이 틀림없다.
“백어르신이 그동안 해결하시지 못한 것도 이해가 가는구나.”
특급의 음양사는 일반적인 특급능력자와는 다르다. 이들의 능력이 특이한 자들로부터 비롯된 까닭이다.
경외의 세계에서는 네크로멘시라 불리는 이들이 바로 음양사의 원류다.
귀영술이라는 왜 특유의 오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음양술법이다. 그 위에 삶과 죽음에 천착하는 네크로멘시의 비의가 더해졌다.
한낱 귀신을 다루는 귀영술이 고도의 강령술인 음양술로 진화한 후 놀랍게 변했다.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에다가 영체의 힘을 가미했으니 마주 한다면 일반적인 특급능력자는 힘도 쓰지 못하고 패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지금 진맥과 허맥을 막은 청동기둥도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어쩌면 예상치 못한 비밀을 발견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청동기둥은 왜의 것이 아니다.
음양문에 가려져 있지만 분명히 결을 따라 희미한 문자들이 보인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청동을 제작할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일 테지만 틀림없이 문자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쇳물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문자도 그렇고, 각인의 형태로 봤을 때 이 기둥에 이전에도 쓰였던 것이다.
신성한 기운을 품고 있는 기둥이기에 진맥과 허맥을 막은 음양사가 가져가 쓴 것이리라.
‘저 문자는 오직 한곳에서만 쓰였다. 지금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저 기둥은 신시에서 썼던 천주가 분명하다.’
비상하는 삼족오를 지탱하던 것이 천주다. 천주는 솟대를 이루는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기둥의 두께나 크기로 봤을 때 끝에는 상상하지 못한 정도로 큰 삼족오가 매달려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곳과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문자의 형태가 비슷한 것을 보면 천주의 원류가 바로 내가 링크되는 세상일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런 형태의 기둥을 본적이 있다.
세상은 하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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