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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자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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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w5058
작품등록일 :
2021.03.0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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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0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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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DUMMY

이 땅은 단 한 순간도 인간을 위해 존재한 적이 없었다.


품속에 칼이 필수였던 세상. 사람들은 다른 것을 숭배하며, 자신들을 지켜줄 것을 찾았다. 그런 사람들의 감정 아래 그들은 생명을 얻었다.


토착신, 요괴, 귀신, 영물, 재앙. 다양한 이름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정수라 칭했다.


정수의 무력이 필요했던 인간과 인간의 믿음이 필요했던 정수. 두 종족은 멀어질 이유가 없었다.


끝없는 겨울이 그들을 갈라놓기 전까진.


“세리타님···. 살려주세요.”

“너···너무 추워요.”


겨울바람은 모든 이에게 공평한 시련이었다. 그 시련이 약한 인간에게 더 크게 다가온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이치였다.


정수들은 자신들의 힘이 닿는 한 사람들을 도왔다. 하지만 자신들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지키기에도 벅찼다. 모든 사람을 구할 순 없었다.


영하 90도의 추위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건 모든 게 잘 될 거야 같은 잔인한 희망 한 마디뿐이었다.



인간은 포기하는 능력이 형편없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자들이기도 했다.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정수의 심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인간은 주저 없이 칼을 빼 들었다.




오랫동안 외부인을 막아온 온 결계가 부서지고 숲이 불타올랐다. 결계는 바깥에서 부수긴 어렵지만, 안에서 여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신뢰하던 결계는 배신자의 손에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속임수와 배신, 인해전술. 물러날 곳이 없었던 인간은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다 했다. 그들이 가장 잘하는 짓. 세상에 둘도 없는 비겁의 종족.


그들에게도 각자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박하다고 다른 자의 심장을 뽑으려는 자들의 사정 따위 알 바 아니었다.


“세리타!”


눈에 보이는 인간을 토막 내며 정수 아브리엘은 아내를 찾아 헤맸다. 얼마 전에는 하나밖에 없는 딸도 잃었는데. 그녀마저 잃을 순 없었다.


“ARRRRRRRR!!”


바깥에서는 영웅이라 불리는 자. 역전의 용병. 누구든 그의 앞을 막아서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아브리엘이 든 할버드는 적에게 자비가 없었다.


눈에 띄는 적은 모조리 없애며 아브리엘은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나 피를 뒤집어썼는지 모르고 시체의 산을 세는 것도 잊어버렸다. 그래도 움직이는 걸 멈출 순 없었다. 오직 한 여성을 찾기 위해.


차라리 그가 그녀를 찾을 수 없었다면.

그는 계속 자신을 희망으로 속이며, 적의 손에 목숨을 잃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그녀를 찾을 행운을, 적을 이길 능력을, 슬퍼할 권리를 줬지만, 그녀의 생명까지 주진 않았다.


“···세리타.”

“아브리엘.”


부드러운 갈색 머리는 피로 물들었고 등에는 마력을 무효화하는 검이 꽂혀 있었다. 그녀의 미소는 그대로였지만 사정없이 찢긴 상반신엔 육신을 유지할 3개의 심장이 없었다.


그녀 역시 인간의 무력에 쉽게 당할 자는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지키려던 사람의 검에는 지나치게 약했다.


겨울바람이 아무리 차다 한들 믿던 사람의 배신만큼 매정하진 않으리.


“···그만두세요.”

“세리타?”

“복수는···. 그만두세요.”


당신이 뭘 할지 벌써 알고 있다는 미소로 그녀가 그를 말렸다. 입에서 나온 건 부탁이 아니라 피 한 움큼이 먼저였지만.


살아날 수 없는 본인의 몸보다 자신을 먼저 걱정해주는 그녀의 마음에 아브리엘은 눈물을 참았다.


저들을 원망하지 말아 달라고.

자신들마저 싸운다면 그들도 멈출 수 없게 될 거라고.


어쩌면 한없이 내뱉고 싶었을 저주의 말을 대신해

웃는 모습의 마지막 호흡을 아브리엘의 손에 쥐여 주었다.


그 호흡을 간직하는 것 이외에 아브리엘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녀의 육체는 그 순간을 마지막으로 사라졌으니까.


하늘에 닿을 것 같은 절규가 이젠 텅 빈 보금자리에 울려 퍼졌다.



배신과 고함,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그가 구할 수 있었던 건 작은 요정뿐이었다. 이번 배신의 충격 때문에 말을 못하게 된 시간의 요정 라라.


그녀만을 데리고 아브리엘은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났다. 다른 자들에게 안부도 전하지 않고, 오랜 시간 함께한 보금자리도 버린 채.


세상 밖으로 쫓겨난 개처럼.


상실과 증오를 겨울로 삭히며.



˟ ˟ ˟ ˟ ˟



“엎드려.”


남자의 말에 거대한 늑대는 곧바로 엎드렸다. 엎드렸다곤 해도 머리가 사람 머리보다 위에 있을 정도로 거대한 늑대였지만 어쨌든, 놈의 의사는 확실했다.


“앉아.”


이번 명령에도 늑대는 즉각 반응했다. 앞발을 피고 땅에 궁둥이를 붙인다. 자세는 정갈했지만 반갑게 흔들리는 꼬리까지 멈출 수 없었다.


다만 그 행동에 왠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건 단순한 기분 탓은 아니었다.


“굴러.”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늑대가 바닥을 굴렀다. 조금 전 꼬리를 흔들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흙먼지가 주변에 흩날렸다. 땅의 입장에선 아닌 밤의 홍두깨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늑대는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을 굴렀다.


“악수.”


우뚝.


마치 그 말이 나올 걸 알고 있었다는 것 마냥 늑대는 행동을 멈췄다. 조금 전까지 명령을 따른 게 거짓말처럼 늑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한참 지나 남자가 이게 마지막이니까 라고 말하자 늑대는 마지못해 남자의 손에 앞발을 올렸다.


작지만 확실하게. 몇 번이나 손을 위아래로 흔든 남자는 거대한 늑대를 결계 밖으로 내보내 주었다. 가야 할 때라는 걸 안 늑대도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망설이거나 뒤돌아보면 서로 힘들 거라는 걸 녀석도 아니까.


안주할 자는 안주하고 떠날 자는 떠난다.


“그만 울렴. 라라.”


어깨 위에 있던 작은 요정은 그의 말에도 울기만 했다. 그들이 흘리지 않은 눈물을 대신 흘리려는 것처럼 그녀는 한참을 울었다. 숲의 아침은 그녀가 슬픔을 참는 것으로 시작했다.




세상과 연을 끊은 지 200년. 결계를 만들었지만 만든 보람도 없이 결계 내부에는 잊을 만하면 손님이 찾아왔다.


상처 입은 짐승, 추위를 피하려는 몬스터. 아브리엘은 자신에게 적의가 없는 자들의 상처를 치료해 결계 밖으로 보냈다.


세상엔 여전히 겨울이 계속되고 있다.


200년 이상, 300년은 안 된 기간. 멈추지 않고 계속된 한파에 온 세상이 얼어붙었다. 100년이 안 되는 삶을 사는 인간들에게 사계절이 있었다는 말은 이제 책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겠지.


잊을 만하면 손님이 찾아왔기에 아브리엘은 누군가 결계 내부로 들어와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이번 상대를 보자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아브리엘! 잠···.”


상대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브리엘은 할버드를 집어던졌다. 할버드는 그를 지나쳐 뒤에 있는 나무에 박혔다. 나무가 마치 공성 병기와 키스한 것 마냥 부러졌다


“잠깐만! 잠깐만 기다리게!”


말을 하면서도 아브리엘이 멈출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는지 그는 할버드를 피해 움직였다. 그는 아브리엘이 멈출 걸 확인한 다음에나 멈출 것이다.


“아브리엘!”

“하르타.”


아브리엘이 손을 뻗어 할버드를 회수하며 걸어왔다. 그는 절대 못 맞춰서 그를 안 맞춘 게 아니다. 맞출 생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아내와의 마지막 맹세가 그의 손을 둔하게 만들었을 뿐.


일자로 정리된 백발 머리에 깔끔한 얼굴. 몸에는 두툼한 동물 털가죽을 걸쳤다. 겨울을 대비한 옷만 아니라면 그는 아브리엘이 알던 모습과 똑같았다.


하르타는 정수의 마력을 받아 평생을 함께할 존재가 된 수정식이었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기 위해 정수를 버리고 인간 제국을 섬겼다.


의리가 아니라 목숨을 택한 걸 욕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그 행동에 호감을 느끼라는 건 무리한 요구다.


“여긴 어떻게 찾아온 거지?”

“갑자기 희미하게 자네의 기운이 느껴졌네. 한동안은 자네를 찾아올 이유가 없었지. 하지만 ··· 일이 생겼네.”


“제국을 위한 일인가?”

“···맞아.”

“그럼 일없네. 돌아가게.”


“잠깐만! 조금은 내 말을···.”

“내가 200년간 지켜온 아내와의 약속을 깨뜨리는 게 보고 싶은 거라면 어디 한 번 계속 있어 보게.”

“자네 딸! 죽었다던 자네 딸에 대···. 컥!”


아브리엘은 진심으로 그의 머리를 날려버릴 뻔했다. 대신 그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대체 이 잠깐 사이에 몇 번 충동에 휩쓸리는 건지. 아브리엘은 자신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지금 나를 우롱하는 겐가?”

“아냐! 여기! 사진을 들고 왔···으읍!”


“사진은 마술만 쓸 줄 알면 조작할 수 있다는 건 갓난아이도 알고 있다!”

“아니야! 조작하지 않았네! 황제 폐하의 이름에 걸고 맹세하지!”

“···흥.”


그제야 그를 바닥에 내팽개친 아브리엘은 하르타의 품에서 사진을 빼앗았다. 뜻밖에도 사진은 깨끗했다. 200년간 마술이 발전했지만 조작하고 나서도 이렇게 깨끗하진 못할 것이다.


“언제 찍은 사진이지?”

“지난겨울 축제 때야.”

“얼마 안 지났군.”


사진은 세 사람의 웃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부드러워 보이는 분홍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신비한 녹발 머리를 한 소년. 그리고 그들의 보호자처럼 보이는 갈색 머리의 남자까지.


보호자로 보이는 자의 웃음은 어색했지만 다른 두 사람은 무감정한 사진에 감정을 담고 싶었던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닮았군.”

“그렇지? 내가 이 사진을 보자마자···.”


“하지만 아니야. 이 아이는 내 딸보다 못해도 10살은 더 많을 거다.”

“그. 정수들은···.”


“그래. 나이를 천천히 먹지. 그걸 생각해서 말한 거다.”

“···그래도 찾을 만한 가치는 있지 않겠나?”


아브리엘이 침묵을 지켰다. 긴 세월 세상과 떨어져 산 그가 밖으로 나갈 일이 있다면 그건 딸의 행방뿐이겠지. 그는 이 미심쩍은 거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원하는 걸 말해라.”

“제국의 불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네. 무슨 수를 써도 되돌릴 방법이 없어. 그때 한 떠돌이 예언가가 불꽃을 되돌리기 위해선 4개의 유물이 필요하다고 했지.”


“미치광이의 말을 진심으로 믿는 건가?”

“···그거 말곤 방법도 없으니.”


200년의 세월 동안 모은 정수의 심장 따위는 진작 다 사용했다. 끝나지 않는 기나긴 겨울에 사람은 또다시 매달릴 것을 찾았다.


자신들이 매달릴 존재를 한번 버렸다는 사실을 기억은 하고 있을지.


“유물들에 대해 말해라.”

“여명검. 불사조의 갑옷. 라의 눈동자. 검은 태양의 왕관. 이 4가지 무구가 필요하네.”


“이름만 말해서 알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미안한데 이 유물들의 위치에 대해선 알려진 바가 없어.”


“훌륭하군.”

“대신 하나 더 남긴 말이 있네. 3개의 유물을 모을 자는 하나는 빼앗아야 하고 하나는 찾아야 하며 다른 하나는 양도받아야 한다고 했네.”


“나머지 하나는?”

“···유물이 자네를 찾아올 거야.”


“찾을 수고를 덜었군.”


할버드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다시 그의 손으로 날아왔다. 금방이라도 떠날 것 같은 아브리엘의 등에 하르타가 말을 덧붙였다.


“떠나기 전에 제국을 한번 찾아주지 않겠나?”

“지금 나보고 인간의 땅을 밟으라고?”


“부탁일세. 폐하에게 얼굴 정도는 보여주게. 여행에 도움이 될 말한 것들도 준비해 두겠네.”

“···일주일 후에 찾아가지.”


“믿어도 되겠지?”

“인간도 믿으면서 뭘 못 믿는 건가.”


긍정적인 답을 들었음에도 불안한지 하르타는 그를 마지막까지 흘겨보며 결계를 빠져나갔다. 외부인이 사라지자 숨어있던 라라가 그의 어깨에 올라왔다.


“불안한 거니? 라라?”


그녀는 말을 못하지만, 의사소통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의 말에 그녀는 작은 얼굴을 끄덕였다. 위로가 될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그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제는 온기조차도 담을 수 없는 손에 애정을 담으려고 애쓰며.


미래가 불안한 건 다들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사용했던 보금자리를 정리한 아브리엘은 마지막으로 아내의 무덤에 인사를 한 뒤, 할버드를 짊어지고 오랫동안 은거해 온 결계를 빠져나갔다. 자신의 딸. 마타네아를 찾기 전까진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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