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불멸자의 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연재 주기
psw5058
작품등록일 :
2021.03.08 16:34
최근연재일 :
2021.06.03 20:1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517
추천수 :
0
글자수 :
117,111

작성
21.03.11 12:01
조회
52
추천
0
글자
12쪽

1화

DUMMY

제국에 가기 전. 나흘 동안 아브리엘은 셀 수도 없이 많은 산을 탔다. 갑자기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보고 싶었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정수들을 찾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200년 전. 상실의 아픔을 겪었을 그들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모습을 감췄으니까.


하지만 방문한 정수들의 보금자리는 모두 비어 있었다. 아무런 흔적이 없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파괴의 흔적과 시신이 난무했다. 사정없이 파괴된 보금자리의 모습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기 딱 좋았다.


인간의 배신에 과연 몇이나 되는 정수가 살아남았을지.


새로운 산을 다 오른 아브리엘은 잠시 숨을 골랐다. 주변 풍경은 인간이 사라졌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었다. 호흡을 어느 정도 가다듬은 그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두-신-호-귀!!”


정수와 인간의 전쟁 시절. 배신과 패배로 점칠 된 그들의 전적에 이질적인 두 정수가 있었다. 하나는 단 한 명의 신도도 포섭하지 못해 격렬한 싸움을 벌인 황녀. 그리고 배신할 신도가 하나도 없었던 두신호귀. 여긴 그 두신호귀의 거처였다.


사람의 집을 찾아다니며 역병을 앓게 하는 정수인 두신호귀는 뛰어난 정보통이었다. 제대로 된 정보도 없는 유물들을 찾기 위해선 그의 도움이 필수적이었다.


몇 개의 흔적을 추적한 끝에 그가 여기 있다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이곳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는 몰랐다. 하지만 그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아브리엘은 그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곳에서 더할 나위 없이 무례한 방법으로 초인종을 눌렀다.


“셋을 셀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이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하나! 둘!”

“···그게 오랜만에 만나는 동료에게 취할 태도냐?”


목소리는 바로 곁에서 들렸다. 관리가 안 된 더벅머리와는 반대로 정리된 한복. 생선처럼 튀어나온 두 눈을 가진 무당. 두신호귀가 그의 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정수들은 기본적으로 세월의 흐름을 잘 안 받지만 두신호귀는 그가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젊어진 것처럼 보였다.


“딸이 네 성격까지 닮지 않는 건 신에게 감사할 일이군. 다른 건 다 참아도 성격까지 닮았으면 데려갈 자가 없을 테니까.”

“···놀라지 않는군.”

“네가 죽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으니.”


그가 방울 대신 들고 다니는 해골들이 웃는 것처럼 달그락거렸다. 아브리엘이 결계 속으로 모습을 감춘 후에는 정보통인 두신호귀도 그의 정보를 듣지 못했다.


하지만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못 들었을 뿐. 죽었다는 말을 들은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자는 살아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 반대. 그러니까 죽었다는 이야기가 들린 자가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작은 것과는 대조적으로 말이다.


“혹시나 해서 묻지만 세리타는? 그녀도 네 곁에 있나?”

“···아니.”


“죽었나?”

“그래.”


“그 이야기만은 사실이 아니길 바랐건만.”


손가락의 해골들만이 외로운 듯이 흔들렸다. 그 뒤로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겨울만큼 길게 느껴지는 침묵을 아브리엘이 끝냈다.


“어디까지 알고 있지?”

“네가 유물이 필요해서 날 찾아왔다는 건 알고 있지.”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쉽지. 정보가 필요하다.”

“마치 어떤 존재가 떨어뜨려 놓은 것처럼 북쪽, 서쪽, 동쪽에 하나씩 있어. 하나. 라의 눈동자는 들어본 적 없군.”


“그렇다면 찾을 것이다.”

“북쪽에는 온갖 괴물들이 있지.”

“내 손에 쓰러지리라.”


“쯧. 세리타는 이런 놈이 뭐가 좋다고.”

“···다른 건 몰라도 내 아내에 대한 모욕은 두 번 봐주지 않겠다.”


어떤 말에도 무표정하던 아브리엘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아내를 잃고 그렇게 긴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는 변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두신호귀는 해골과 함께 웃었다.


“그 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여줘.”

“갑자기 그건 왜 보여 달라는 거지?”

“혹시 그녀에 대한 소식을 내가 들었을지도 모르니까.”

“···아직 딸이라고 판명된 건 아니다.”


본인도 확신하지 못 하는 말을 아브리엘은 내뱉었다. 사진 속의 여성을 보니 두신호귀는 왜 아브리엘이 그 은신처에서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아는 정보가 있나?”

“유감스럽게도 없군.”


두신호귀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만약 정보가 있었다면 아브리엘은 제국으로 가지 않고 곧바로 정보가 있는 곳으로 향했을 것이다. 한 줌만 한 기대는 덧없이 흩어졌다.


“어디부터 갈 거지?”

“동쪽부터다.”

“나도 같이 가지.”


“도움 따윈 필요 없다.”

“하지만 있으면 좋지. 안 그런가?”


“···무슨 생각이지?”


아브리엘의 의문이 가득한 시선에 두신호귀는 다시 침묵과 해골 소리로 답했다. 사실 두신호귀는 그의 질문에 대답해 줄 이유는 없었다. 둘의 관계는 백 보 양보해도 좋다고 말하긴 어려웠으니까. 한 여자를 두고 다툰 두 명의 청혼자. 그게 둘의 정확한 관계였다.


처음에 그에게 답을 준 건 단순한 변덕이었다. 하지만 사진. 마타네아의 사진을 보았을 때. 그는 아직 자신의 마음에 세리타에 대한 사랑이 남았음을 깨달았다.


이제는 기억조차도 잘 나지 않는 옛날. 딸과 남편을 부탁한다는 그녀의 부탁을 그는 웃음으로 받았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하고. 웃지 않으면 그녀에게 화를 낼 것 같았다. 평소에는 가면처럼 짓고 있던 미소가 그때만은 너무나 힘들었다.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던 분노와 질투는 조금씩 사그라졌다. 시간이 그에게 용서와 인내를 가르쳤다. 마침내 그녀에게 가식이 아닌 진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을 땐 그녀가 없었다.


최소한 약속이라도 지키는 것이 그녀에 대한 예의리라.


“···사흘 뒤. 제국으로 출발한다.”

“알겠다. 그때 보지.”



˟ ˟ ˟ ˟ ˟



겨울은 인간이 쌓아 올린 문명에도 영향을 미쳤다. 겨울의 요정이 힘을 쓰는 북쪽. 평생 눈을 볼 일이 없는 남쪽. 양쪽 모두 영하 90도의 추위 따위는 만나본 적도 없었으니까.


선조들이 만들어온 보금자리, 한낱 인간 따위가 사용한 보호 마술이 추위에 무너져 내렸다. 인간들은 오랫동안 사용해 온 안식처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정수들의 심장을 얻는 것만으론 부족했던 인간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겨울에 맞서 싸우려 했다. 신에게 매달리고 스스로 신이 되었다고 부르짖기도 했다.


그런 자들의 말은 대개 광인의 헛소리였지만 아닌 자도 있었다. 구분하는 법은 간단했다. 진짜가 아닌 자들은 모두 겨울의 추위에 얼어붙었으니까.


자신들과의 믿음을 저버린 후에 찾은 게 또 다른 믿음이란 것이 아브리엘에겐 웃기지도 않는 코미디였다.


제국이 겨울을 이겨내는 방법은 불의 힘이었다. 수도의 한복판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거대한 불꽃은 그들이 추위를 벗어나게 해주었다. 불과 천사에 대한 믿음. 그 두 가지가 지금 제국을 지탱하고 있었다.


계속된 겨울에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곤 하지만 아브리엘이 보기엔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사람들의 생활도 아브리엘이 기억하는 것과 똑같았다. 소수 지배자가 많은 사람을 지배했다.


많은 것을 바꾼 겨울조차도 사람의 본성은 바꾸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과거나 지금에나 지배당하는 자들의 얼굴은 거울로 서로 비춘 것처럼 닮아 있었다. 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언 땅에 곡괭이질을 하는 현재 사람들의 얼굴에는 내일을 살아가려는 희망이 없었다.


“추위와 수면만이 저들을 침대로 보낼 수 있겠군.”

“무슨 말이지?”


“사랑을 나눌 여유가 없어 보인다는 말이지.”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워라.”


“아···아브리엘!”


제국의 영지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르타가 그들에게 뛰어왔다. 그에게 목숨을 위협받았을 때와는 복장이 달랐다. 하르타는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직위에 있었다.


“나···난 자네가 여기에 안 올 줄 알았네.”

“할 필요도 없는 걱정을 했군. 황제는 어디에 있나?”

“알현실에 계시네. 그리고 나한텐 뭐라고 해도 좋지만, 부탁이니 폐하 앞에선 말조심하게.”


그들은 황무지나 마찬가지인 땅을 가로질러 주변에서 유일하게 겨울 이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성으로 갔다. 알현실로 가는 내내 하르타는 제국의 예법에 대해 알려주며 황제 앞에선 무례하게 굴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다.


“내가 한 말 다 알겠지?”

“아니. 모른다.”


“그러니까···.”

“모른다고 했다.”

“후···.”


땅이 꺼지라 한숨을 쉰 하르타는 그저 오늘 황제가 기분이 나쁘지 않길 빌며 알현실의 문을 열었다. 두신호귀는 자신까지 부르진 않은 것 같다며 슬그머니 발을 멈췄다.


“폐하···.”

“아브리엘이라는 자가 온 거겠지. 들라 해라.”


현 제국의 황제. 진사리안은 아브리엘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린, 20대 중반 정도의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다부진 체격에 바로 곁에 있는 무구들까지. 그는 생각보다 뛰어난 무인처럼 보였다.


“위대한 검은 태양의 군주이자 제국의 구세주. 불의 지배자인 진사리안님께 충성을 바칩니다. 영원히 제국과 함께하여 주십시오!”

“물론이지. 언제까지나 나태해지지 않고, 나의 당연한 권리에 따라 세상을 다스릴 것이니.”


황제의 답변에 하르타는 바닥에 닿기 직전까지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아브리엘에게도 예를 갖추라고 눈치를 줬지만, 그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브리엘. 자네 정말···.”

“됐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여기까지 온바. 그가 저지른 무례 정도는 모른 척하도록 해라.”


그는 어려 보이는 것 이상으로 자신감이 넘쳤다. 다리를 움직이거나 팔을 휘젓는 동작 하나하나에도 야만인인 아브리엘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물론 그런 건 아브리엘에게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자원봉사를 하러 온 게 아니다. 내 딸에 대한 정보는 확실히 있는 거겠지?”

“물론. 네가 유물을 찾아 돌아올 때까지 이후의 정보를 수집할 것을 약조하마.”

“그래야 할 거다.”


아브리엘의 태도에 하르타는 안달이 났다. 정작 진사리안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됐다. 하르타. 타리쉬에게 이 자가 필요한 걸 전부 제공하라고 전해라.”

“저···. 폐하. 그자는···.”

“아. 최근에 도망쳤다고 했지. 그럼 수고스럽겠지만, 자네가 맡아줘야겠군.”

“명을 받듭니다.”


유능한 자들은 죄다 제국을 빠져나간다며 황제가 과장되게 한숨을 쉬었다. 아브리엘은 왠지 그가 알면서도 저자의 이름을 꺼낸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묻고 싶은 게 있다.”

“발언을 허한다.”


“어째서 당신이 직접 행하지 않는 거지?”

“황제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수는 없지.”

“정말 그것뿐인가?”


아브리엘의 말에 진사리안은 말없이 옅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제국을 지탱하는 불이 사그라지는 건 제국 자체를 뒤흔드는 위험이다. 황제가 자리를 비우는 한이 있더라도 움직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처음엔 그가 약자여서 그런 게 아닐까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 약자를 위한 나라는 없었다. 그는 분명 강자였고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걸 그냥 둘 자가 아니었다.


“계속 여기 있어도 되겠나?”


아브리엘이 뭐라고 해도 그에게서 대답을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사실상 황제의 축객령에 그도 몸을 돌렸다.


“힘내게. 자네라면 유물을 가지고 돌아올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드는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불멸자의 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20화 21.06.03 7 0 11쪽
20 19화 21.05.27 5 0 12쪽
19 18화 21.05.20 5 0 12쪽
18 17화 21.04.29 7 0 12쪽
17 16화 21.04.27 10 0 11쪽
16 15화 21.04.15 13 0 11쪽
15 14화 21.04.13 32 0 12쪽
14 13화 21.04.08 8 0 11쪽
13 12화 21.04.06 17 0 12쪽
12 11화 21.04.03 26 0 16쪽
11 10화 21.04.01 24 0 12쪽
10 9화 21.03.30 22 0 11쪽
9 8화 21.03.27 25 0 13쪽
8 7화 21.03.25 24 0 15쪽
7 6화 21.03.23 23 0 13쪽
6 5화 21.03.20 24 0 13쪽
5 4화 21.03.18 18 0 13쪽
4 3화 21.03.16 31 0 13쪽
3 2화 21.03.13 32 0 11쪽
» 1화 21.03.11 53 0 12쪽
1 프롤로그 21.03.08 112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psw5058'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