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불멸자의 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연재 주기
psw5058
작품등록일 :
2021.03.08 16:34
최근연재일 :
2021.06.03 20:1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522
추천수 :
0
글자수 :
117,111

작성
21.03.13 14:56
조회
32
추천
0
글자
11쪽

2화

DUMMY

엘프의 삶이 인간에게 닿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은 자신의 보금자리인 세계수 근처에서 태어나고 삶을 마치니까. 간혹 인간의 역사에 기록되는 엘프들이 하나같이 특이한 건 다른 엘프들이 모두 따르는 그들의 관습을 무시한 괴짜기에 그런지도 모른다.


엘프 유일란도 그런 괴짜 중 한 명이었다. 다만 그녀는 다른 괴짜와는 달랐다. 바깥세상을 향한 동경. 한순간의 충동 등을 참지 못해 숲을 벗어나면서 괴짜로 불리는 다른 자들과는 달리 그녀는 숲에 있을 때도 유명한 괴짜였으니까.


인간이 육식 몬스터와 싸우며 곤욕을 치른다면 엘프는 세계수의 힘을 노리는 식물 몬스터, 그리고 엘프들의 집을 먹이로 삼는 초식 몬스터와 싸우며 곤욕을 치른다. 많은 사람의 생각과는 달리 대부분의 초식 몬스터는 절대 온순하지 않고 대체로 육식 몬스터보다 더 크다.


그런 몬스터들을 상대로 겁을 집어먹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유일란은 조금 도가 지나칠 정도로 겁이 많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는 상처 입는 것 자체를 무서워했다. 조금이라도 위험한 몬스터는 건드리지 않았고 다른 엘프들이 싸울 땐 뒤로 물러났다. 그런 주제에 마을 안에 가만히 있는 건 싫어했다.


동료들은 그녀에게 겁쟁이라는 모멸적인 호칭을 붙여주었다.


몇 남지 않은 동료의 사냥 참가 제의를 거절한 어느 날. 그녀는 길들인 엘크와 단둘이 숲으로 나갔다.


그녀와 왜 갑자기 거기에 갔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도 다른 엘프처럼 하고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지. 어쩌면 겁쟁이라는 호칭에 드디어 싫증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그렇듯 이유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마음과 각오만으로 사람이 바뀔 수 있다면 세상에 고생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 엘프라고 다를 바는 없었다. 그녀는 어두운 숲에 겁에 질리고 설상가상으로 돌아가는 길조차도 잃어버렸다. 주인이 저러면 엘프가 만든 뛰어난 무구도 그저 장식품에 불과했다.


차라리 동료를 따라가 비웃음을 듣는 게 더 나았겠다고 후회할 무렵. 그녀는 악마에게 공격받고 있는 한 남자를 보게 되었다. 그때 그녀는 무슨 용기가 솟았는지 악마에게 달려들었다.


이때만은 그녀가 용기 있게 나선 것을 보면 남자가 어지간히 반반하게 생겼거나 그녀가 악마에게 심각한 원한이 있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녀는 자기가 겁쟁이일지언정 싸움을 못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듯 악마를 몰아붙였다.


격렬한 전투 후에 그녀는 악마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 남자는 자신을 위대한 태양의 왕이라 칭하며 도움을 준 유일란에게 적에게 굴하지 않는 마음과 새로운 시대를 열 검을 주었다고 한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익숙한 건물의 천장이었다. 얼마 안 되는 그녀의 동료들은 자신이 엘크 위에서 떨어져 기절했다고 말했다. 어떻게 자기가 길들인 엘크 위에서 떨어지냐며 그녀를 비웃었다.


한참을 웃은 그들에게 그녀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들은 조금 전 그녀를 비웃을 때보다 더 크게 웃었다. 멋쩍었던 그녀는 그들보다 더 크게 웃었다. 세상과 자신을 바꿀 것처럼.


얼마 후. 그녀는 용감한 유일란이 되었다.


“···그때 그녀가 얻은 검이 바로 우리가 찾아야 할 여명검이야.”


“새로운 시대를 연다는 건 무슨 뜻이지?”“무슨 헛소리인지는 만나서 물어보면 알겠지.”


“언제 도착하지?”

“내일 점심쯤.”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은 대답을 마지막으로 대화가 끝났다. 생각보다는 훨씬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입에서 나오는 말 대부분이 헛소리인데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그 후로 그들 사이에선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폐건물에서 나는 소리라곤 불이 장작을 집어삼키는 소리와 라라가 부르는 희미한 노랫소리가 다였다.




황제와의 면회를 마친 그들은 하루바삐 첫 번째 목적지인 대륙 동부로 발길을 옮겼다. 뛰어난 신체 능력을 지닌 정수는 쉽게 지치지 않았고 발걸음도 빨랐지만 어쨌든 살아있는 생명. 휴식이 필요했다.


그들은 꽤 먼 거리를 지나왔지만 살아있는 인간은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겨울이 오고 나서 대지는 인간에게 문전박대 수준의 환대를 취하고 있으니 바깥을 돌아다니는 사람 따위 있을 리 없었다. 오히려 이런 날씨에 돌아다니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랬기에 갑자기 나타난 인기척에도 그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눈치챘냐?”

“그래.”


“인내심도 좋은 자들이야. 수도에서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모험가들인가?”


인구가 줄어들고 안 그래도 좁았던 인간들의 활동영역은 이전보다 더 줄어들었다. 도시 대부분은 텅 비었고 기술은 유실되었다. 인간은 오랫동안 무단점거해온 땅을 자연에 돌려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유실된 유물과 기술을 노리는 자들도 있기 마련. 하이에나, 수집꾼. 후보는 많았지만, 사람들은 과거에 쓰던 익숙한 명칭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모험가라는 이름을.


“누군지는 나도 모르지. 우리의 실력을 알아보려고 황제가 보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안부나 전하려고 온 자 일지도 모르지 않나?”

“안부를 전하는데 할버드만 한 것이 없지.”


아브리엘은 겨울보다 차가운 농담과 함께 모닥불에 눈을 끼얹었다. 얼마 안 되는 빛이 사라지고 이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폐허에는 어둠이 찾아왔다.



˟ ˟ ˟ ˟ ˟



“···어디 갔지?”

“불은 켜지 마라. 놈들에게 역으로 잡힐 수도 있어.”


“어떻게 하지?”

“···흩어진다. 너희 둘은 이쪽. 너희 둘은 저쪽. 나머진 날 따라와.”


헬멧으로도 막을 수 없는 추위 사이로 그들이 입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피부가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몸을 감싸고 등과 가슴에는 발열 도구를 꼈다. 이 겨울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다.


그들 곁에는 그런 겨울에 대한 적응을 거부한 자도 있었다. 갑옷과 투구, 검과 방패. 보온이 아니라 방어를 위한 무장을 한 자들은 겨울 이전을 떠올리게 했다.


이 추위에도 거리낄 것 없이 맨살을 바깥으로 드러낸 자들을 사람들은 태양인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추위를 느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상 등의 증상도 겪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무엇이건 아브리엘이 알 바는 아니었다.


목표를 놓친 그들은 초조함에 입을 달싹거렸다. 태양인이고 뭐고. 사람은 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런 세상에 정수의 심장은 큰돈이 된다.


잠깐 숨어있던 것만으로도 그들은 빈틈과 목적을 까발렸다. 저들이 자신들을 곱게 보내지 않으려고 한 건 명백했다.


즉, 이제부턴 정당방위다.


“오늘 밤은 늑대가 포식하겠군.”

“지금 무슨 소리···.”


폐허 바깥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아브리엘이 벽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왔다. 동시에 내리찍은 할버드에 2층 바닥이 요동쳤다. 추위와 어둠에 대한 대비는 꼼꼼하게 해왔는지 몰라도 지진에 대한 대비는 게을렀던 것이 분명했다.


“이게 뭔···.”

“예절 주입기다.”


할버드로 머리를 내리치자 침입자가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사냥꾼이 사냥감으로 전락하는 건 한순간이었다.


기습당하는 그 순간까지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자의 머리를 낚아채 바닥으로 내리찍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헬멧이 부서져 추위에 노출된 그가 곧 죽을 거라는 걸 알아도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놈의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여기다!”

“무슨 일이야!”


은밀 행동과는 담을 쌓은 행동을 했으니 적이 눈치채는 건 당연한 일. 아브리엘은 숨통이 끊어진 시체와 할버드를 집어던졌다. 어설프게 동료를 받아보려고 한 머저리가 시체에 치여 날아갔다.


손을 뻗어 할버드를 회수한 아브리엘은 자신을 막아선 태양인에게 무기를 휘둘렀다. 한쪽 발을 무릎 꿇고 한 손으로 방패를 든 손을 보조하는 최선의 방어. 할버드는 놈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어떻단 말인가.


적의 공격을 막고 반격한다. 여유가 없다면 동료의 공격을 기다린다. 그에게도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브리엘의 공격을 막기 전까진.


인간의 방어술은 인류가 태어난 이후 계속 발전해왔다. 괴물과 인간의 신체능력을 매우는 인간의 지혜. 하지만 그 얕은수에도 엄연히 한계는 있었다. 무슨 짓을 해도 공룡이 짓밟는데 멀쩡할 수는 없을 테니까.


태양인은 한순간 쏟아지는 아브리엘의 참격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하체가 땅에 박히고 방패를 보조하던 오른팔이 부러졌다. 그의 신체가 방패보다 먼저 할버드에 굴복했다. 아브리엘은 기어이 방패를 놈의 몸에 때려 박았다.


“아인타르님!”

“감히 우리의 봄의 사도님께!”


지도자인 태양인이 죽었음에도 그들은 투지를 잃지 않았다. 그들에겐 안타까운 일이요. 아브리엘에겐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일이었다.


상체를 숙여 적의 공격을 피한 아브리엘은 적의 다리를 붙잡고 휘둘렀다. 마치 어린아이가 인형을 휘두르는 것처럼. 장난감은 가끔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곤 하지만 놈은 쓰고 있는 헬멧 덕분인지 그렇게 되진 않았다.


“···으으으으으. 으에에에에에에에에!”


조금 전까지의 태도가 가식이었는지. 엉성한 투지가 사라진 놈은 동료를 버리고 달아났다. 유감스럽게도 움직여줄 발이 잡혀있는 자는 도망칠 수도 없었다. 아브리엘은 그에게 계속해서 바닥과 벽에 만남을 주선해주었다.


한창 그러고 있을 때 아브리엘이 쥐고 있던 발목이 떨어졌다. 동시에 놈의 몸이 그의 손을 빠져나가 벽에 처박혔다. 불행하게도 그는 저승으로 도망치지도 못했다. 실낱같은 생명이 그를 이승에 붙들어 놓았다.


“남길 유언은 있나?”

“보···봄이 오리라···.”

“마지막 호흡을 그렇게 낭비하다니.”


아브리엘은 놈의 두개골을 수박처럼 발로 밟아 터뜨렸다. 바닥을 흐르던 피는 얼마 가지도 못하고 얼어붙었다. 봄을 향한 사람들의 희망처럼.


“애 깨겠다.”

“남은 놈들은?”


“내가 처리했어. 누군가 이들에게 우리들이 정수라는 사실을 흘렸더군.”

“누가 보냈는지는 몰라도 준비운동은 되었군.”


아무리 두신호귀라도 누가 정보를 흘렸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들이 정수인 것을 아는 사람은 한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누가 보냈는지는 불 보듯 뻔하다.


“여기나 저기나 환영받지 못하는 건 똑같군그래.”

“봄의 사도는 무슨 뜻이지?”


“사람들은 저 태양인들이 언젠가 이 겨울을 끝내고 봄을 가져올 거라고 믿더군.”

“지랄도 청산유수군.”


아브리엘은 놈의 몸통까지 짓밟았다. 발이 놈의 몸을 관통할 정도로 세게.


봄을 기다린다니. 봄을 오길 기다린다니. 남의 봄을 앗아간 주제에.


화가 풀리지 않은 그는 할버드로 놈의 몸을 산산 조각냈다. 그는 화를 낼 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인간에게 원한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 여성의 상냥함이 오갈 곳 없는 분노를 막고 있었을 뿐.


봄은 오지 않을 것이다.


설령 와도 거기에 네놈들은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불멸자의 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20화 21.06.03 7 0 11쪽
20 19화 21.05.27 5 0 12쪽
19 18화 21.05.20 5 0 12쪽
18 17화 21.04.29 8 0 12쪽
17 16화 21.04.27 10 0 11쪽
16 15화 21.04.15 13 0 11쪽
15 14화 21.04.13 32 0 12쪽
14 13화 21.04.08 8 0 11쪽
13 12화 21.04.06 18 0 12쪽
12 11화 21.04.03 26 0 16쪽
11 10화 21.04.01 24 0 12쪽
10 9화 21.03.30 23 0 11쪽
9 8화 21.03.27 26 0 13쪽
8 7화 21.03.25 24 0 15쪽
7 6화 21.03.23 23 0 13쪽
6 5화 21.03.20 24 0 13쪽
5 4화 21.03.18 18 0 13쪽
4 3화 21.03.16 31 0 13쪽
» 2화 21.03.13 33 0 11쪽
2 1화 21.03.11 53 0 12쪽
1 프롤로그 21.03.08 112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psw5058'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