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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자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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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w5058
작품등록일 :
2021.03.0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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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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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DUMMY

입 밖으로 빠져나오려고 하는 숨소리를 필사적으로 억제했지만, 완전히 막을 순 없었다. 턱 밑까지 치고 올라온 가쁜 호흡. 김이 절로 나오는 추운 날씨에 이런 흔적까지 숨기는 건 무리다. 차라리 적에게 들키지 않길 기도하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를 쫓는 발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발소리와 함께 땅을 울리는 진동도.


“ARRRRRRRRRRRRRRR!!”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귀가 멎을 듯한 침묵이 지나고 사람의 긴장이 풀릴 무렵. 뭔가를 열어젖히는 소리가 들렸다. 좀 전까지의 침묵을 깨부수는 비명과 살, 뼈를 씹어 먹는 소리가 숲에 울려 퍼졌다.


하반신을 먹힌 남자아이는 필사적으로 눈밭을 헤집는 헛수고를 반복했다. 두 팔만으론 얼마 기어가지도 못할 것이요. 두 다리가 달렸어도 포식자에게서 달아날 수 없으니.


다시 한 번 터질 듯한 비명이 들리더니 곧 잠잠해졌다. 나무뿌리 아래의 작은 구덩이 안에 숨은 나시프는 제발 포식자가 저걸로 배를 채웠길 바랐다.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그는 살고 싶었다.


그의 보잘것없는 희망은 곧 산산조각이 났다. 곧 다시 땅을 울리는 진동과 뭔가가 질질 끌리는 소리가 계속되었으니.



˟ ˟ ˟ ˟ ˟



어딘가에서 통째로 뽑아온 것 같은 커다란 토템. 입 밖으로 튀어나온 송곳니와 8미터에 이르는 신장. 바위로 된 것 같은 거친 피부. 바깥을 돌아다니고 있는 몬스터는 트롤이었다.


이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소설책에서 트롤은 영웅들에게 토벌되기 바빴다. 조금 강한 주인공이라면 누구나 쓰러뜨릴 수 있는 잡몹. 이제 자신이 강하다는 걸 알려주는 전투력 측정기.


만약 트롤들이 글을 읽을 관심과 지능이 있었다면 그런 취급에 크게 화를 내지 않을까 싶다. 왜곡도 적당히 해야지.


현실은 어지간히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인간도 혼자선 트롤을 쓰러뜨릴 수 없다. 정신이상 마술조차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낮은 지능. 물리적 공격을 대부분 차단하는 피부. 상처를 입어도 곧바로 회복해 버리는 성가신 회복 능력. 거기에 적을 일격에 끝장낼 괴력까지.


그들은 책이 진실만 말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고 그 대가를 비싸게 치렀다.


“ZKKKKKK!!!”

“오지 마!!!!”


“···리린!”


트롤이 또 하나의 먹잇감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먹잇감처럼 순순히 먹혀주지 않았다.


리린이 숨은 곳은 다른 몬스터의 배설물 속이었다. 20미터가 넘는 대형 몬스터의 배설물은 사람 둘, 셋은 숨을 수 있을 만큼 컸다.


배설물은 대부분 딱딱하게 굳었지만 열을 내는 나무인 열화목 근처에 있던 일부는 얼지 않았고 리린은 거기로 파고 든 것이다. 살기 위해서 라곤 하지만 저런 곳에 숨을 생각을 한 그녀의 집념도 보통은 아니었다.


“ZKKKK···.”


트롤은 겨우 찾아낸 먹이를 앞에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트롤은 청결하진 않아도 후각은 좋았다. 먹어봤자 배도 얼마 차지 않을 이 작은 먹잇감을 과연 악취를 감수하고 먹을 가치가 있을지.


생전 고민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트롤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고민한 끝에 결국 리린을 잡아먹는 걸 포기했다. 하지만 못 먹는 먹이를 그냥 내버려 둘 정도로 마음이 곱진 않았다.


“RAAAAAAAAA!!”

“까아아아아아악!”


곁에 있던 바위를 들어서 들어 배설물을 내리찍었다. 딱딱하게 굳은 배설물은 트롤이 휘두르는 바위도 막아낼 정도로 견고했지만, 내부가 부실했기에 오래 견딜 순 없었다. 여기 저기 금이 가고 윗부분이 조금씩 부서졌다.


리린이 할 수 있는 건 비명을 지르며 웅크리고 있는 것뿐이었다. 밖으로 나가면 저 바위가 자신에게 날아올 테니까.


“이쪽이다! 이 괴물아!”

“GAAA?”

“···나시프?”


내가 미쳤지.


호기 있게 뛰어나간 것도 잠시. 그의 머리에 남은 건 후회밖에 없었다. 고함과 함께 날아온 바윗덩이는 사람의 결심 따위는 가볍게 흔들만한 힘이 있었다.


나시프는 그 바위를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피할 수 있었던 건 다른 게 아니라 트롤과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먹을 것을 발견한 몬스터 앞에선 금방 없어질 거리지만.


“ZRRRRRRRR!!!”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나시프는 뒤를 돌아볼 여유 따윈 없었다. 만약 뒤를 볼 수 있었다면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것을 신에게 감사하게 될 것이다. 먹을 것을 발견했다고 함박웃음을 짓고, 침까지 튀기며 뛰어오는 트롤을 본다면 다리에 힘이 풀려버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트롤이 장난감처럼 들고 다니던 토템에 휩쓸린 것이 쓸려나갔다. 나무건 바위건 어느 것 하나 버티지 못했다. 트롤은 폭력의 바람 그 자체였고 나시프는 그 바람에 휘말린 나뭇잎에 지나지 않았다.


과도한 운동으로 관절 일부가 찢어지고 있지만 그런 상처도 초 단위로 회복시키며 트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나시프 생애 최고의 전력질주는 금방 막을 내렸다. 다리에 한계가 찾아오고 호흡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그럼에도 트롤과의 거리는 좁혀지기만 했다. 시야마저 서서히 흐려질 때, 마침내 더는 달릴 수 없다고 깨달은 순간, 보인 건 작은 인형이었다. 날개가 달린.


“어?”


갑자기 나타난 라라의 모습에 놀란 나시프는 발을 잘못 놀려서 눈밭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의 실수였지만 만약 넘어지지 않았어도 라라가 넘어뜨렸을 것이다. 그가 넘어지기도 전에 아브리엘이 할버드를 던졌으니까.


“GRRRRRRRRRR!!!!”


할버드는 정확하게 트롤의 눈에 박혔다. 눈은 다른 부위보다 유독 느리게 재생되는, 트롤의 약점이다. 트롤은 상처 난 눈을 감싸기 위해 양손을 들어 올렸고, 아브리엘에게 하체를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첫 일격은 오른발. 할버드도 돌처럼 단단한 트롤의 피부를 도려내진 못했다. 하지만 그 일격으로 트롤은 균형을 잃었다. 나는 듯이 뛰어오른 아브리엘은 자세가 무너진 트롤의 등 위로 올라갔다.


“AKKKKKKKKKKKK!!!”

“ZKKKKKKKKKK!!”


인간이 아닌 두 존재의 포효가 겹쳤다. 하지만 선공권은 머리 위를 선점한 아브리엘에게 있었다. 할버드를 회수한 그는 그 자리에서 트롤의 머리를 연거푸 내리찍었다.


무식한 돌머리를 증명하듯 트롤의 두개골은 단단했다. 하지만 아무리 단단해도 목을 거꾸로 쑤셔 넣어버릴 듯이 할버드를 찍어대는 아브리엘의 공격을 내버려 둘 순 없었다.


눈의 상처와 다리의 공격, 그리고 머리에 계속 가해지는 충격에 트롤은 대응책을 잘못 선택했다. 아브리엘이 있는 곳. 자신의 등을 향해 토템을 휘두른 것이다. 전력을 다해 휘두른 토템을 슬쩍 피하자 그 일격은 트롤 자신을 향한 공격이 되고 말았다. 어지간히 세게 쳤는지 놈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 사이 아브리엘은 토템을 들고 있는 트롤의 팔을 꺾었다. 잘 잘리지도 않고 잘라봐야 금방 재생되는 트롤을 상대론 절단보단 골절이 유용했다. 그는 아예 트롤의 오른팔을 반대 팔에 닿을 때까지 꺾어버렸다.


“AKKKKKKKKKKK!!!”


트롤은 오른팔의 감각을 잃었다. 그 손에서 토템을 빼앗는 건 어린아이의 손목을 비트는 일보다 쉬웠다. 아브리엘은 자신보다 머리 두 개 이상은 더 큰 토템을 빼앗은 다음 트롤의 머리를 향해 내리찍었다.


손이든 발이든. 다른 상처는 금방 재생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잘난 재생 능력이라도 머리가 날아가면 별수 없다.


트롤의 머리는 무식한 크기의 토템에도 일격에 부서지진 않았다. 부술 방법은 간단했다. 부서질 때까지 내려찍을 뿐. 그저 도구가 할버드에서 토템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ZKKKKKKKKK!!!”

“AKKKKKKKKK!!”


토템을 세로로 고쳐 쥔 그는 절구를 찍듯 트롤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눈에 파묻힌 역겨운 울음소리가 그치는 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 선물을 주듯 아브리엘은 높게 뛰어 놈의 머리에 토템을 쑤셔 넣었다.


숲에 장식물 하나가 추가되었다.



˟ ˟ ˟ ˟ ˟



“···그대들은 이제 다시 추위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요. 이제 다시는 배고픔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요. 이제 다시는 어둠 속에서 떨지 않을 것이니. 그러니 그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게···.”


주변을 둘러봤지만 찾은 거라곤 주인이 다른 팔 두 짝과 신발 한개 뿐이었다. 그런 자그만 신체의 조각이 남은 것도 운이 좋은 편이다. 두신호귀는 얼마 안 되는 삶의 흔적을 불태우며 그들의 안식을 빌어주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감사 인사는 이 작은 요정한테 하게. 먼저 날아가지 않았으면 우리도 몰랐을 테니까.”


두신호귀가 그들에게 진실이 절반 정도 섞인 말을 건넸다. 라라가 먼저 날아가지 않았다면 그들은 두 사람이 궁지에 처한 걸 알아도 구하지 않았을 것이다.


“멍청한 녀석들. 하루만 더 버티면 되었는데.”

“말이 나와서 묻네만. 두 사람은 여기까지 무슨 일로 나온 건가?”

“성인식 때문에요.”


“야. 그걸 말하면 어떻게 해!”

“숨겨봐야 뭐해. 그리고 좀 저리 가. 냄새나잖아.”

“너 지금 말 다 했어?!”


넌 평소에도 이상한 냄새가 났다, 그러는 넌 평소엔 어땠는지 아냐. 두 사람은 항상 해온 것처럼 언성을 높이며 싸우다 곧 그만두었다. 주변의 시선을 느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라진 사람들을 느껴서.


“음. 그···. 준비가 부족했던 것 같다만.”


두신호귀의 말에 그들은 아무런 말도 돌려주지 못했다.


마을을 나왔던 아이들은 한 번도 자기 죽음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설사 진지하게 생각해 본 자라도 몬스터에게 잡아먹힐 것을 생각해 본 적은 없으리라. 그리고 그런 괴물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는 걸 알려준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어른들은 여기에 트롤이 나온다는 걸 알고는 있었을지.


“여러분들은 어디에서 오셨나요?”


분위기가 안 좋아지자 리린이 재빨리 말을 돌렸다. 다행히 두신호귀도 저 화제를 계속 이어갈 생각은 없었다.


“우린 서쪽에서 유일란이라는 자를 찾아왔네. 혹시 알고 있나?”


두 사람이 눈을 마주쳤다. 그런 그들의 행동에 두신호귀는 속으로 웃었다. 저래서야 부정해도 자신들이 뭔가를 알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꼴밖에 안 된다. 그들은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미숙한 아이들이었다.


“네. / 아니요.”


심지어 제대로 부정하지도 못했다.


“싸우지 말게. 두 사람이 이 근처에서 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어떻게 알았나요?”

“장거리 여행을 떠나기 좋은 복장은 아니니까.”


정수의 심장, 제국의 불꽃 등 사람이 추위를 이겨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열화목으로 만든 옷이다.


겨울엔 생명과도 같은 열화목 옷이 두 사람은 너무 조잡했다. 저래서야 떠날 수 있는 장거리 여행지는 지옥뿐이리라.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군. 그래서? 유일란에 대해 알고 있나?”

“···유일란님을 왜 찾으시는데요?”


“이 친구가 예전에 유일란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거든. 그래서 그 답례를 하러 왔네. 이 주변에 있다는 건 아는데 도통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어.”


두신호귀는 숨 쉬는 것처럼 간단하게 거짓말을 지어냈다. 저들의 목소리에서 호의적인 기색을 읽었기에 목적을 감춘 것이다.


그 덕분에 그들의 경계심은 눈에 보이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대답은 그들이 원하던 게 아니었다.


“유일란님은 마을에 안 계세요. 어디 가셨는지도 몰라요.”

“뭐라고?”


불만을 표한 건 아브리엘이었다. 도저히 답례하러 왔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살벌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조금 전까지 냄새가 어쩌네 하던 두 사람은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이 달라붙었다.


“이 사람은 무시하게. 꼭 찾아야 할 이유가 있어서 그러니 아는 바를 말해주지 않겠나?”


“저, 저희도 자세한 건 몰라요! 저희가 태어나기 전부터 유일란님은 마을에 안 계셨어요! 그저 그분이 저희가 살아남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는 이야기밖에 못 들었단 말이에요!”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지?”

“마을 어른들이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실례가 안 된다면 자네들의 나이를 물어봐도 괜찮겠나?”

“올해로 18살이에요.”


18년. 혹은 그 이상.


죽지 않으면 영원히 사는 엘프들에게 그 정도 시간은 그리 긴 시간도 아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짧은 시간도 아니었다.


아브리엘이 두신호귀를 노려봤지만 그라고 없는 정보를 만들어내는 재주는 없다.


“자세한 건 마을에 가봐야 알겠군. 안내해 줄 수 있겠나?”

“···동이 트면 안내해 드릴게요.”


성인식은 이 서식지에서 사흘간 생존하는 것. 아브리엘의 도움이 없었다면 죽었겠지만 성인식에 외부인의 도움을 받으면 안 된다는 조항은 없었다. 이런 당연한 조항이 빠진 건 이 겨울에 외부인을 볼 기회가 좀처럼 없기 때문이리라.


“좀 자두게. 불침번은 우리가 설 테니.”

“···감사합니다.”


어디서 적이 나타날지 모르는 지옥과도 같은 사흘. 안도감에 긴장감이 풀린 그들은 곧 서로의 어깨에 기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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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화 21.04.13 46 0 12쪽
14 13화 21.04.08 13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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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화 21.04.03 36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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