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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자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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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w5058
작품등록일 :
2021.03.0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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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18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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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4화

DUMMY

“집이다~.”

“···아직 멀었잖아.”

“기분도 못 내냐.”


성인식이라기에 마을 가까운 곳에서 한다고 생각했지만, 시험장과 마을 사이에는 제법 거리가 있었다. 동틀 무렵에 출발했는데도 점심 무렵이 되어야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으니. 마을과 시험장을 오고 가는 것조차도 하나의 시련이었다.


“···따뜻하군.”


라라가 주변에 있는 꽃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봄에 피는 꽃을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아브리엘은 혹여나 활짝 핀 꽃들을 밟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이 주변은 어떻게 이렇게 따뜻하지?”

“저희도 잘 몰라요. 유일란님이 무슨 마술을 부렸다는 것 말고는.”

“알아볼 게 점점 많아지는걸.”


열화목으로 만든 옷은 벌써 벗었고, 몸은 벌써 땀으로 축축해졌다. 그래도 부지런히 걸은 보람이 있게, 저 멀리에 꽤 커다란 성이 보였다.


겨울이 오기 전까진 인류의 보금자리였던 성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건 잔재뿐이다. 덩굴 식물에 잠기고, 뼈대가 보이기 시작한 성은, 본래의 기능을 완전히 잃었다.


“저런 어설픈 성에서 살다간 몬스터에게 습격받기 딱 좋을 텐데.”

“유일란님이 방어 마술을 사용해놨다고 해요.”

“엘프의 방어 마술이라···.”


마술에 정통한 엘프의 방어 마술이면, 대형 몬스터라면 몰라도 중형 몬스터에게 뚫리진 않을 것이다. 그들의 마을은 그 안에 있었다.


인류가 보금자리였던 성을 버리고 바깥으로 나온 건, 보금자리 안에선 겨울을 이겨낼 방법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자면, 방법만 있었다면 인간은 굳이 보금자리를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수와 함께할 때도, 심지어 겨울이 오기 전에도, 이 땅은 단 한순간도 인간을 위해 존재한 적이 없었다.


“RKKKKKKKKKK!!”


그들이 막 성 안으로 들어갔을 때, 하늘에서 거대한 괴성이 들렸다. 비룡과 같은 몸에 6미터가 넘는 체격. 머리에 닭 볏과 같은 붉은 털을 지니고 있기에 날아다니는 닭대가리라고 불리는 몬스터 코카트리스.


닭대가리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닌 듯 놈은 굉장히 무식하다.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몇 번 부리로 쪼다 보면 마술로 보호되고 있다는 것을 알 법도 한데 놈은 왜 부리가 들어가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그 멍청한 행동은 결국 화를 자초했다. 시끄러운 소리를 들은, 코카트리스보다 상위 포식자인 실브바인이 놈을 낚아채 반으로 찢어버렸다. 모처럼 포식할만한 먹잇감을 잡은 실브바인은, 결계 위에서 게걸스럽게 먹잇감을 뜯어먹었다. 결계 벽을 타고 피와 내장이 흘러내렸다.


“자주 있는 일인가?”

“이틀에 한 번은요.”

“보기보다 강단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군.”


자극도 반복되면 일상이 된다고, 저런 끔찍한 모습을 보고도 놀라는 사람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본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성인식이 끝났는데 나와서 환영하는 사람 한 명 없군.”

“여긴 원래 그래요. 나시프. 밥 먹고 갈래?”

“아니. 난 됐어.”


자신의 집에 도착한 리린은 가족의 품에 안기며 자신이 본래 받았어야 하는 환대를 마음껏 누렸다. 멀리서 그 모습을 나시프는 부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간의 고생을 위로해줄 가족이 그에겐 없었다.


“궁금해하시는 건 안 물어봐도 괜찮아요?”

“나중에 해도 되지. 그보다는 묘지가 있다면 들르고 싶은데.”


“그런 음침한 곳은 왜 찾으시는데요?”

“어제도 봤다시피, 나는 그···. 죽은 자들의 넋을 빌어주는 자거든. 일단 내 본분을 다하고 싶군.”


“이상한 사람이네요. 하지만 잘 됐어요.”



˟ ˟ ˟ ˟ ˟



나시프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먹거리를 구했다. 정수는 음식물을 섭취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도 계속 장을 봤다. 시간이 지나자 두 정수도 그가 뭘 하려는지 알았다.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었는데 부모에서 인사도 안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렇게 하는 게 더 나을 거다.”

“···잘 아시네요?”

“많이 해봤으니까.”


나시프가 다시 봤다는 얼굴로 아브리엘을 쳐다봤다. 아브리엘은 그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정수들은 추위를 타지 않는 것이지 따뜻함을 모르는 자들이 아니니까.


두 정수가 할 수 있는 건 상차림을 돕는 것까지였다. 그들은 때를 맞춰 뒤로 물러나 더는 만날 수 없는 자들의 의식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알아낸 건 있나?”

“이 마을은 유일란이 구한 사람들이 모인 마을이야. 지금까지 겨울에 맞서 온 마을 몇 개를 구원했더군.”


굳이 마을 사람들에게 정보를 구할 것 없이. 두신호귀는 죽은 자들의 입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생전 본인이 두신호귀를 싫어하든 말든. 설사 말을 못 하는 벙어리였다고 해도 두신호귀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마을은 어떻게 이렇게 따뜻하지?”

“사람들은 유일란이 마술을 건 거라고 알더군.”


“진실은?”

“그럴 리가 있나.”


두신호귀가 콧방귀를 뀌었다. 아무리 마술의 대가라지만, 고작 엘프의 마술 따위로 겨울을 이겨낼 수 있었다면, 인간이 그렇게 필사적으로 정수의 심장을 찾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한 거지?”

“지금부터 알아봐야지.”


“유일란에 대한 정보는?”

“약 20년 전에 또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떠났다더군.”


“다른 단서는 있나?”

“···지금 마을 지도자를 하는 자가 있어. 샤를이라는 사람이지. 그 자에게 정보를 구하는 게 가장 빠를 거야.”


“당장은 정보가 하나도 없다는 거군.”

“그 대신이라기엔 뭣하지만, 이 마을. 뭔가 이상한 게 있는 건 확실해.”

“무슨 말이지?”


“리린의 부모님의 얼굴. 봤었나?”

“인간의 외모 따위 관심 없다.”

“보기 드문 미모였어. 리린이 어미를 닮는다면 장래가 기대될 거야.”


“수수께끼 같은 헛소리를 더 지껄일 셈이냐?”

“···그. 부모의 표정이 말이지.”


말하기 전에 두신호귀는 자신의 불확실한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죽은 자의 기억을 읽는 건 익숙하지만 사람의 표정을 읽는 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리린이 보지 못하도록 어깨 너머로 얼굴을 내민 채 짓는 표정을 잘못 볼 리 없었다.


“애써 자식이 성인식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어미란 자가 웃질 않았거든.”



˟ ˟ ˟ ˟ ˟



아브리엘이 원한 바는 아니었지만, 너무 늦은 시간에 찾아가면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할 거라는 두신호귀의 의견에 따라, 그들은 아침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들에겐 다행스럽게도, 마을의 아침은 빨랐다.


이름 아침부터 종소리가 울리고, 집 안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도 거리에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어제 나시프도 가게로 추정되는 집에 들어가서 장을 봤다.


“집 밖으로 나오면 병이라도 걸리는 모양이군.”


샤를의 집으로 향하며 본 거라곤 실패의 잔재들뿐이었다.


어설프게 갈린 밭은 잡초투성이었고, 부서지거나 녹슬어 못 쓰게 된 농기구와 무구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성에 걸려 있는 방어 도구들의 상태는 좋게 말해서 처참했다. 관리할 기술자가 없거나, 방어 마술 때문에 관리할 필요성조차도 느끼지 못했거나.


어느 쪽이든 상태는 심각했다. 하긴 생각해보면, 난민처럼 모인 자 중에서, 필요한 기술자가 딱딱 있으라는 법 따윈 없다.


“이런 마을을 관리하려니 머리가 다 빠지지.”

“저 자인가?”


샤를의 집에 가까워지자, 집 밖에 나와 있던 샤를이 보였다. 곁에서 뭔가를 말하고 있던 한 남자는, 그들의 모습이 보이자마자 자리를 떠났다. 그 청년은 모습을 보이지 않을 생각이었겠지만, 정수의 뛰어난 시력으론 샤를이 한숨을 쉬는 것까지도 잘 보였다.


두신호귀가 말한대로, 샤를은 머리카락이 거의 없었다. 마을을 관리하기도 벅차서, 모발 관리에 소홀해진 게 분명했다. 어쩌면 마을과 마찬가지로, 모발도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덕분에 노인이라고 부르긴 한참 먼, 40대 중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늙고 수척해 보였다.


“자네들이 아브리엘과 두신호귀라는 자들인가?”

“···소식 한번 빠르군.”


“작은 마을에선 말이 빨리 전해지는 법이지. 길에서 더 떠들기도 그러니, 안으로 들어가지 않겠나?”



˟ ˟ ˟ ˟ ˟



마을 지도자답지 않게, 샤를의 집은 검소했다. 장식물이 있지만 최소한이었고, 방도 몇 개 없었다. 특이할만한 점이라면, 이런 곳에선 구하기도 어려웠을 잠금 장치가, 꼼꼼하게 설치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가장 안쪽 방은,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듯, 잠금 장치가 3개나 있었다.


아브리엘은 들어가자마자 유일란의 행방에 관해서 물었지만, 그의 답변도 두신호귀와 같았다. 약 20년 전에 겨울에 고통 받고 있을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났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는 전혀 모른다고 한다.


아브리엘에게는 무척이나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단서가 아예 없단 말인가?”

“···남쪽에선 생존자들을 데려오신 적이 있으니, 남쪽을 제외한 다른 곳으로 가셨을 겁니다.”


무척 고심하며 샤를이 대답했지만, 20년이면 동쪽의 이타카로스 산맥도 왕복할 수 있을 시간이다. 솔직히 말해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예 마을에서 기다리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녀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기다리라고?”


“딱히 다른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동안 저희를 좀 도와주십시오.”

“인간의 시종을 들라. 그런 말인가?”


“정수라고 들었습니다. 믿음이 필요하실 겁니다. 원하는 게 있다면 구해드리죠. 그러니 부디 여기 머물러 주십시오.”

“후후후···.”


인간의 믿음을 잃은 정수의 말로는 뻔하다. 죽음. 육신도 남길 수 없는 소멸.


인간의 도구나 마찬가지인 이런 생명체를 대체 누가 만들었을까.


“너희는 내게 줄 수 있는 게 없어.”


믿음 없이 지낸 지 200년. 아브리엘은 머지않아 소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브리엘은 인간에게 또다시 구걸하며 살 바에 차라리 소멸을 받아들일 것이다.


아브리엘은 곧장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라라도 그런 그를 따라갔다. 방에 남아있는 건 차를 홀짝거리며 마시는 두신호귀뿐이었다.


“더 붙잡지 않아도 괜찮나?”

“···두신호귀님은 저희를 도와주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그럴 것 같았습니다.”


자기라도 이런 제안 같은 건 받지 않을 거라며, 샤를이 의자에 몸을 기댔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마을에 남아달라는 권유를 할 생각이 없었다.


“궁금한 것이 있네.”

“궁금한 것?”

“성인식 말이야. 자네가 구상했나?”


“···저와 마을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퍽이나 잘 만들었더군.”


마을에서 지나치게 먼 시험장. 제대로 된 장비, 정보를 받지 못한 아이들. 상식적으로 잡을 수 없는 수준의 몬스터가 있는 곳에 감독관조차도 없다.


이런 건 시험이 아니다. 차라리 죽으라고 보냈다면 더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차 잘 마셨네. 조금 더 우려 났으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대화가 길게 이어지진 않았군.”



˟ ˟ ˟ ˟ ˟



샤를이 아무런 정보도 없다는 시점에서 예상했지만, 마을 사람들도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진 자는 없었다. 방문하는 집이 늘어갈수록 희망이 사라져갔다.


“이상하지 않나?”

“아는 자가 없다는 사실 말인가?”


“아니. 마을에 노인이 한 명도 안 보인다는 게.”

“쓸데없는 걸 신경 쓰지 말고 단서를 찾을 생각을 해라.”


“여기 계셨어요?”


한창 마을 사람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다가 잠시 쉬고 있을 때, 나시프가 그들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전에는 보여주지 않았던, 애교와 어리광을 섞었다.


사라진 사람들의 빈자리를 잊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를 쓰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좋든 싫든, 사람들은 그렇게 잃어버리는 것에 익숙해진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할 일 없으시면 저희 좀 도와주세요.”

“마을 밖에 있는 식량을 가져와야 하는데, 저랑 나시프가 걸렸거든요.”


마을에 봄이 찾아온 건 좋지만, 덕분에 겨울이라면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을 문제로 고민하게 되었다. 겨울이 온 후, 식량은 어지간해선 부패하지 않았으니까. 덕분에 마을의 식량 저장고는 봄 바깥에 있다.


“어린아이일 땐 이런 거 한 번도 안 했는데.”

“이제 어른이 되었잖아?”

“사회의 부조리야.”


“어려운 것 없지.”

“난 안 간다.”


“아브리엘.”

“안 간다고 했다.”


“까하하. 간지러워.”


리린이 주변을 날아다니던 라라에게 장난을 치자, 작은 요정은 그녀의 머리 위에 앉았다.


아이들은 의외로 영악했다. 그들은 도움을 받기 위해 누굴 먼저 설득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까. 결국 아브리엘은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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