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불멸자의 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연재 주기
psw5058
작품등록일 :
2021.03.08 16:34
최근연재일 :
2021.06.03 20:1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514
추천수 :
0
글자수 :
117,111

작성
21.03.20 14:49
조회
23
추천
0
글자
13쪽

5화

DUMMY

성 바깥에도 사람의 흔적은 많았다. 마을 사람들 입장에선 슬프게도, 흔적만 있었다. 수호자가 사라진 사람들에겐, 바깥 생활이 허락되지 않았으니까.


사라져가는 사람들의 흔적을, 몬스터들이 대신해 갔다.


“부서졌네요. 이거.”

“놀랄 일도 아니지.”


성 안에서도 보였던 여러 부지들은 방치되어 있었고, 침입을 막기 위한 함정은 박살나 있었다. 작은 몬스터라면 모를까, 5미터가 넘는 중형 몬스터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함정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성에서 식량 저장고로 향하는 이 짧은 순간조차도 안전하지 않지만, 아브리엘이 있기 때문인지 몬스터들도 함부로 달려들지 않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향했던 저장고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다 털렸네요.”

“이건 퀘베인의 흔적이로군.”


“그게 뭔데요?”

“만나면 몇 초 동안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몬스터지.”


“···예전에는 그런 몬스터는 없었는데.”

“사람만 봄을 원하는 건 아니지.”


두신호귀가 씁쓸하게 말을 마쳤다. 주변에 있는 무수한 몬스터들의 흔적은, 사실 다른 곳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먹잇감을 쉽게 찾을 수 없으니 포식자들은 자연스레 넓은 영역을 가져 밀집도가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봄이 온 여기는 다르다. 따뜻한 곳을 찾아 사방에서 몰려온 몬스터가, 서로를 노리며 숨죽이고 있다. 그리고 포식자들이 모인만큼, 먹이감은 빠르게 사라질 것이다.


퀘베인이 인간들의 먹이창고를 노린 것도, 단순히 불쾌한 일로 치부하고 넘길 수 없는 일이다. 놈은 중형 몬스터. 그것도 20 미터 가까이 되는, 대형 몬스터 못지않은 덩치를 가진, 먹이사슬 꼭대기의 포식자다.


그런 놈이, 성에도 차지 않을 인간의 식량 저장고를 턴 건, 주변에 정말로 먹을 것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였다.


곧 포식자들은 서로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자신보다 약한 자들을 잡아먹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견고한 엘프의 방어 마술마저도 부술 능력이 있는 괴물 중의 괴물은, 떡하니 있는 인간 도시락을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사냥감이 부족해져 먹을 구하지 못해 굶어죽거나, 굶주린 외부의 공격자에게 피식자가 되거나.


어느 쪽이든 마을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것뿐이지만, 수호자도 없는 마을 사람들이 무사히 이주할 수 있을지.


“다행히 여기는 멀쩡하네.”


조약한 지도 하나만 보고, 감춰져 있는 식량 저장고를 찾는 건 상당한 고역일 텐데도, 나시프는 제법 잘 찾아냈다. 막 성인이 된 두 아이는, 무사한 식량 저장고에서 정해진 만큼 식량을 꺼낸 후에야 마음을 놓았다. 아직 돌아갈 길이 남았지만, 어느 정도 여유를 가져도 될 것이다.


“유일란님에 대한 단서는 찾으셨나요?”

“···아니.”


상황은 객관적으로 봐도 희망이 없었다. 쉽지 않은 여행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단서가 없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신령님이면 뭔가 아시지 않을까?”

“그거 네가 지어낸 말 아니야?”

“아니라니까!”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해줄 수는 없겠나?”


오래전. 나시프는 밖에 나갔다가 다른 사람들과 떨어지고, 설상가상으로 길까지 잃어버려서 꼼짝없이 죽겠다 했을 때, 한 여성에게 구조 받았다.


나시프는 그녀를 신령이라고 불렀다.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되게 신기한 금발에 귀가 긴···.”

“귀가 길다고?”

“네. 확실히 길었어요.”


“나시프. 중요한 거라 한번 더 확인하겠네. 귀가 얼마나 길던가?”

“어···. 잘 기억나진 않지만 뒤통수 가까이 닿을 정도로요?”


영문을 모르는 나시프에게 그 정도로 귀가 긴 종족은 엘프뿐이라고 말했다. 그들도 그제야 유일란을 찾고 있을 뿐. 유일란이 엘프라는 걸, 엘프가 어떤 종족인지 설명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유일란에 대해 들은 적은 있어도, 본 적은 없는데 말이다.


“낫 놓고 기역 자도 몰랐구만.”

“그자와 접촉할 방법이 있나?”


“모르겠어요. 지난번에 만난 것도 우연히 만났어요.”

“상황이 어땠지?”


“저녁에 혼자 길을 잃고 고블린들한테 둘러 싸였죠.”

“그럼 그때와 똑같이 해보면 되겠군.”


“···네?”



˟ ˟ ˟ ˟ ˟



“위험하면 꼭 도와주셔야 해요!”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았으면서도 불안한 나시프가 소리쳤지만 대답은 없었다. 까마귀와 늑대 소리만이 반겨주는 어두운 숲을 그는 홀로 거닐었다.


제대로 될지 모르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데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자들에게 목숨을 맡기는, 제대로 정신이 박힌 자라면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일을 나시프는 수락했다.


일에 성공하면 부탁을 하나 들어주기로 했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 대비 보상이 맞지 않았다. 수락했으니 아브리엘에겐 아무래도 좋은 문제였지만.


“두신호귀.”

“왜 그러지?”


그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마을에 식량을 가져다주고 나서, 리린은 이 위험한 일에 참가하지 않았고, 라라는 심심한지 주변을 돌아다녔다.


“마을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했을 때, 이 신령이라는 자에 대한 말을 해주는 자가 있던가?”

“내 기억에는 없군.”

“나한테도 없었다.”


확실하지 않은 뜬소문이라 그들에게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꽤 많은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그들 중 단 한 명도 말하지 않은 건 부자연스럽다. 그것도 유일란과 같은 종족인 엘프를.


의도적으로 그들에게 정보를 숨기고 있을 확률은 꽤 높다고 봐도 좋다.


“두신호귀.”

“왜 그러지?”


“난 딸의 행방을 찾아야 한다.”

“알고 있지.”

“잊어버렸을까봐 말해봤다.”


두신호귀가 얻는 정보는 정확하다. 죽은 자는 두신호귀에게 거짓말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죽은 자에게서 정보를 들은 두신호귀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불청객이 왔군.”


옅은 초록빛이 느껴지는 회색 피부에 튀어나온 송곳니. 조잡한 무구에 겨울이 왔는데도 달라진 게 없는 물량, 싸움은 좋아하지만 정작 겁은 많은 성격. 나시프의 시야 밖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오크였다.


오크는 자신보다 약한 몬스터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인, 명실상부한 약체 몬스터다. 그렇기에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되는 자들을 집요하게 노린다. 주식은 고블린, 그리고 인간.


대부분의 적에게 통하지 않을 어설픈 은신과 추적 능력은, 아직 미숙한 나시프에게도 간파당할 정도였다. 하지만 나시프도 적이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그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을 뿐.


“감이 좋군.”

“안 도와줘도 되겠나?”


“아직 그 신령이라는 놈이 나타나지 않았다.”



˟ ˟ ˟ ˟ ˟



“거짓말쟁이!”


나시프는 고작 하루 만에 생애 최고의 전력 질주를 갱신했다. 처음엔 기분 탓으로 넘긴 수상한 기척은 점점 더 가까워졌고 많아졌다. 지금은 보이지만 않을 뿐, 적은 아예 기척을 숨기려고도 안 했다.


하루 동안 쌓은 신뢰는 순식간에 바닥났고, 구조를 청하는 것보다 산소를 폐에 집어넣는 게 더 급했다.


“WAAAAAAAAAA!”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충분히 거리를 좁혔다고 생각했거나, 더 식욕을 참지 못한 대장 오크가 뛰어들었다. 할버드를 던질 타이밍을 재고 있던 아브리엘의 반대편에서 누군가가 뛰쳐나왔다.


흰색에 가까운 금발에 투명해 보이는 녹색 눈. 그리고 뒤통수 너머까지 길게 뻗은 귀. 숲에 산다는 신령.


포효와 함께 조잡한 병장기가 서로 맞부딪쳤다. 힘에서 밀린 신령의 병장기 이음새가 날아갔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놀랐지만, 오크는 곧 전리품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기뻐하며 망치를 휘둘렀다. 주변에 있는 오크들도 자신의 몫이 조금이라도 늘어난 걸 환영했다.


“ZERRRRRRRRR!!”


고통 받은 영혼이 이럴까 싶을, 비명에 가까운 포효를 내지르며 신령이 거리를 좁혔다. 중형 몬스터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소형으로 한정하면 오크는 수위권을 다투는 육체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괴물이 휘두르는 망치를 신령은 피할 방법이 없었고, 피할 생각도 없었다. 한쪽 팔을 대가로 직격만은 어떻게 피한 신령은 반대 손으로 방어구 사이로 노출된 오크의 배를 쥐어뜯었다.


그 오크가 평소에 부하들에게 조금만 더 먹을 것을 양보했다면, 전리품을 조금만 덜 뺏었다면 방어구 밖으로 살이 삐쳐 나올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부하가 반란을 일으킬 거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그랬지만 그 대가는 다른 곳에서 돌아왔다.


“WAAAAAA!”

“죽어! 죽어! 죽어!!!!!!”


기세를 잡은 신령은 맨손으로 오크의 방어구와 속살을 헤집었다. 놈이 고통에 몸부림칠 때 눈에 부서진 병장기의 손잡이를 쑤셔 넣고, 상처를 입으로 물어뜯기도 했다.


신령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오크 대장을 해체했다. 악덕 대장이 죽는다고 비웃고, 이제 자신이 대장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하면 오크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서렸다.


“다음은 누구냐! 죽고 싶은 놈이 더 있냐!”

“ZRKKKKKK!!!”


말은 통하지 않지만, 겁 많은 오크가 저런 모습의 적에게 덤벼드는 일은 없다. 오크들은 눈에 발자국도 남기지 않을 기세로 도망쳤다. 오크들이 도망치는 걸 끝까지 지켜본 후에야 신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 신령님.”

“···너.”


신령은 본인의 공격으로 엉망이 된 손과 오크 대장에게 공격 받은 옆구리를 움켜쥐었다. 예정에도 없는 부상이었지만 신령의 눈에 원망의 빛은 없었다.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두 정수를 보기 전까진 말이다. 숲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은 자답게 눈치도 빨라서, 이 일련의 일이 자신을 끌어내기 위해서라는 것도 알았다.


“···정말 엘프였군.”

“너!”

“죄송해요.”


“···목적이 뭐야?”

“묻고 싶은 말이 한가득 있지만 일단 자리를 피하는 게 먼저겠군. 지금 이 소란을 듣고 다른 몬스터가 몰려오고 있을지도 모르니.”


“난 마을엔 못 들어가.”

“실례가 안 된다면 우리들을 자네의 집에 초대해 주면 고맙겠는데.”

“이렇게 무례한 방문객은 처음이네.”


생각 같아선 그냥 떠나고 싶었지만, 이런 번거로운 작업을 한 자들은 이후에도 자신을 찾을 거라 생각한 그녀는, 마음에도 없는 허락을 꺼냈다. 거기에 지금 그녀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따라와.”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더라도 이름 정도는 알려주는 게 어떻겠나? 이후에도 계속 신령이라고 불리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야.”


“···케일리.”

“그래. 케일리. 원한다면 부축해 줄 수도 있다만.”

“필요 없어!”


신령은 뭔가 성스러운 이미지가 있었지만, 그녀의 성격은 상당히 왈가닥이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이럴지도 모르겠지만.



˟ ˟ ˟ ˟ ˟



그녀의 은신처는 생각보다 훨씬 멀리 있었다. 절벽에 뚫린 꽤 커다란 동굴. 지금처럼 어두울 땐 보이지도 않고 가까이 있는 나무를 타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다.


나무는 사다리였고 동굴을 감춰주는 생명줄이기도 했다. 그 몸 상태로도 어떻게든 도움을 받지 않고 은신처에 들어온 그녀는 팔에 부목을 대고 못 다한 상처를 수습했다.


“능숙하군.”

“익숙하니까.”


완쾌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여기서 할 수 있는 걸 다 한 그녀는 주변에 잔뜩 쌓인 책을 치우며 자리에 앉았다. 지식이 담긴 전문 서적이 아니라, 요새는 읽는 자가 없어진 장르 소설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둘은 누구고, 왜 나를 찾은 거야?”

“우리들은 유일란을 찾아서 여기까지 왔네. 이 주변에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와 보니 자리를 비웠다고 하더군. 혹시 어디로 갔는지 아는 자가 있나 했을 때, 자네 이야기가 나왔네.”


“남의 어머니를 왜 찾아?”

“유일란의 자식이었나?”


사실, 가능성은 꽤 높았다. 어지간해선 세계수 근처를 벗어나지 않는 엘프가 한 지역에 여럿 있을 땐 서로 연관이 있기 마련이다. 어린 엘프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 유일란을 직접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그러네.”

“어머니는 나를 샤를에게 맡기고 다른 자들과 함께 떠나셨어. 어디로 가셨는지는 모르지만.”

“···다른 자의 손에 맡기고 갔다고?”


아무리 괴짜라지만 기억도 못 할 정도로 어린 엘프를 다른 자에게 맡기고 가는 엘프는 좀처럼 없다. 상대가 어지간히 신뢰할 수 있는 자거나,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자네는 마을에 안 가고 왜 이런 곳에 있나?”

“난 지금 성인식 중이거든.”


“저 아이들은 3일 만에 끝난 것 같다만.”

“엘프가 어떻게 인간이랑 똑같은 성인식을 치러.”


고작 100년을 사는 인간과 영원을 사는 엘프가 같은 성인식을 치를 수는 없다. 말은 그럴 듯 했다.


그 성인식이란 게 마을에 일정 주기로 식량을 바치는 게 아니었다면, 어린아이 정도는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불멸자의 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20화 21.06.03 7 0 11쪽
20 19화 21.05.27 5 0 12쪽
19 18화 21.05.20 5 0 12쪽
18 17화 21.04.29 7 0 12쪽
17 16화 21.04.27 9 0 11쪽
16 15화 21.04.15 13 0 11쪽
15 14화 21.04.13 32 0 12쪽
14 13화 21.04.08 8 0 11쪽
13 12화 21.04.06 17 0 12쪽
12 11화 21.04.03 25 0 16쪽
11 10화 21.04.01 24 0 12쪽
10 9화 21.03.30 22 0 11쪽
9 8화 21.03.27 25 0 13쪽
8 7화 21.03.25 24 0 15쪽
7 6화 21.03.23 23 0 13쪽
» 5화 21.03.20 24 0 13쪽
5 4화 21.03.18 18 0 13쪽
4 3화 21.03.16 31 0 13쪽
3 2화 21.03.13 32 0 11쪽
2 1화 21.03.11 52 0 12쪽
1 프롤로그 21.03.08 112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psw5058'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