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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자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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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w5058
작품등록일 :
2021.03.0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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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3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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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6화

DUMMY

“내가 깨웠니?”


해가 뜨기도 전. 나시프는 불편한 잠자리에서 눈을 떴다. 주변에서 부스럭대는 소리도 있었지만 본래 일어날 시간이기도 했다. 나시프는 고개를 저어 그녀의 말을 부정한 다음 졸린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령님.”

“케일리라고 불러. 말도 편하게 하고.”


“어···. 그럼 케일리.”

“왜?”


“다른 두 분은 어디 갔어?”

“동굴이 좁다며 바깥에 나갔어. 그 뒤론 어디 갔는지 모르겠고.”


“돌아오신데?”

“네 부탁을 들어줘야 한다고 했으니 돌아오겠지.”

“다행이다.”


눈 뜨니 두 정수가 안 보이기에 도망쳤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어제 오크에게 쫓기며 쌓인 원망이 조금 사라졌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사냥 준비.”

“ZGGGGGGGGG!”


그녀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케일리의 손에 있는 몬스터, 레드실이 버둥거렸다. 성치 않은 몸으로도 놈을 아무렇지도 않게 붙잡은 그녀는 동굴 바깥으로 나갔다.


나시프도 서둘러 일어나서 그녀를 따라나섰다. 혼자 있어 봐야 할 것도 없고, 토벌 작전이야 몇 번 해봤지만, 식량을 위한 사냥은 처음이었다.


케일리는 따라오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따라올 수 있도록 천천히 걸었다.



˟ ˟ ˟ ˟ ˟



인간의 팔꿈치 정도의 크기에, 자신의 몸집 절반 정도의 큰 귀를 가진, 토끼가 인간이 된 것 같은 몬스터 레드실. 그들은 약하지만 가공할만한 번식력을 가지고 있고, 바보 같을 정도로 가족애가 깊다.


그 말은 즉, 어린아이도 사냥에 성공할 만큼 만만한 몬스터란 뜻이다.


“HRRRRR···.”


사냥법도 별거 없다. 구덩이를 파고, 밧줄로 한 마리를 묶어놓고 기다리기만 하면 끝. 어디선가 기어 나온 레드실은 미끼를 내버려 두지 못하고 주변을 서성이다 한 놈씩 구멍에 빠진다.


“정말 멍청한 것들이야.”


어지간한 야생 동물도 같은 함정이 여러 번 통하는 경우는 없는데, 이놈들은 이 한 가지 방법에 몇이나 당했는지 모른다. 가끔 너무 많이 빠져서 구덩이 위로 빠져나올 때도, 걸려 있는 한 마리를 버리지 못해서 사냥꾼의 손에 잡히곤 한다.


그렇게 놈들은 이 기나긴 겨울에서, 다양한 존재들의 안정적인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 왔다. 나시프도 마을에서 먹어본 적 있었다.


다른 고기는 너무 비싸서 그가 입에 넣을 수 있는 고기는 저런 거밖에 없었다. 맛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저것만 먹다 보니 질렸고, 그렇다 보니 좋은 감정은 안 들었다.


“좀 도와줄래?”

“뭘?”

“손질하는 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케일리가 레드실의 목을 부러뜨리고 가죽을 벗겼다. 얼마 전 트롤이 자신들을 토막 낼 때와 비슷했다. 그는 곧 자신이 이런 비유를 했다는 걸 저주했지만.


“따뜻할 때 가죽을 안 벗기면 잘 안 벗겨지니까 빨리하는 게 좋아. 제일 좋은 건 살아있는 상태로 벗기는 거고.”

“우윽···.”


이 겨울에는 모든 것이 소중했고 가죽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온전히 벗기려면 칼보단 몽둥이를 쓰는 게 좋지만 그렇게 공을 들일 시간은 없었다.


“요령 같은 거 있어?”

“등에 칼질하고 잡아 뜯어.”


이렇게. 라고 말하듯 케일리는 아주 쉽게 가죽을 벗겨냈지만 이런 걸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나시프는 당연히 제대로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아무리 몬스터라지만 가죽을 뜯기는 게 너무 불쌍했다.


사람을 채식주의로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짐승을 가공하는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빨리해. 종일 있을 거야?”

“···최선을 다하고 있어.”


어제 다친 상처가 아픈지 케일리는 계속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래도 나시프보단 훨씬 빨랐지만.


“쉬는 게 낫지 않아?”“···못 쉬어.”


손님이 온 것을 고려해도, 이렇게 많은 레드실을 잡는 건 마을에 바칠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아프다고 놀면 모을 수 없는 양.


솔직히 말해서 혼자 모으긴 버겁다.


“···잠깐. 멈춰.”

“왜?”

“디노라야.”


절반 정도 레드실의 가죽을 벗겼을 때 케일리가 말했다. 서둘러서 고기와 가죽을 가져온 주머니에 집어넣고, 아직 살아서 버둥거리는 레드실을 숲 가까이에 집어 던졌다.


그 즉시 커다란 입을 가진 몬스터가 튀어나와 레드실을 물어뜯었다. 이에 질세라 몇 놈이 더 튀어나와 왜 너만 먹냐는 듯 입을 놀렸다. 던져진 레드실은 곧 두세 조각으로 찢어져 놈들의 입에 들어갔다.


무식하게 튼튼한 앞다리. 갈기처럼 난 가시와 악어보단 뭉뚝하지만 길쭉한 입. 사냥에 성공하면 어떻게 아는지 다가와 서서히 압력을 가하는 몬스터 디노라. 사냥에 성공했지만 다쳤거나, 체력이 빠진 사냥꾼은 놈에게 다잡은 먹잇감을 넘겨줄 수밖에 없다.


“이길 수 있어?”

“셋까진 어떻게든 이겨. 넷부턴 반반이고. 그 이상은 져.”


지금 있는 디노라는 세 기. 하지만 이후에 몇 기가 더 올지 모르고, 애초에 놈들과 싸우는 것도 하책이다. 디노라가 왔다는 건, 곧 다른 사냥꾼들도 온다는 뜻이니.


“아주 재미 들렸어.”

“뭐가?”

“지난번에 왔던 놈들이야.”


자신을 알아본 게 기쁜 듯 놈이 입을 딱딱거렸다. 잘 보니 눈가에 흉터가 있다.


“튀자.”

“애써 사냥한 걸 주게?”

“본래 사냥한 것에 반만 가져간다고 생각해야 해. 게다가 다른 놈들에 비하면 나아.”


실제로 디노라는 조금씩 압박만 가할 뿐, 눈이 돌아갈 정도로 배고픈 게 아니라면 사냥꾼을 노리진 않는다. 놈들이 다른 약탈자들과는 다른 점이다.


그런 점 덕분에 놈들은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케일리는 레드실 몇 마리를 더 던져주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곧 무시무시한 살 뜯어 먹는 소리가 눈밭에 울려 퍼졌다.



˟ ˟ ˟ ˟ ˟



“빌어먹을.”

“왜?”

“걸렸어. 따라와.”


디노라 근처를 벗어나 겨우 한숨 돌릴 무렵, 흔들리는 얼음덩이를 본 케일리가 다시 뜀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영문을 몰랐지만 나시프도 그녀를 따라 뛰었다.


“대체 왜 그러는데?”

“잠자코 따라와!”


그녀는 말할 시간도 없다는 듯 입을 꾹 다물고 숲을 주파했다. 마을 사람들 기준으로, 나시프는 제법 몸이 날쌘 편이다. 특히 이런 숲에서의 질주 실력은 몇몇 어른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그런 실력도 케일리보단 한참 떨어졌다. 심지어 레드실 고기가 든 주머니를 들고 있는데도 그보다 훨씬 빨랐다. 둘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나시프의 다소 부족한 실력을, 흔들리는 지축과 포효 소리가 보충해 주었다. 나시프는 곧 그녀 못지않게 숲을 주파할 수 있게 되었다. 위기가 사람을 키우는 법이다.


“어디까지 가!”

“거의 다 왔어!”


“KAAAAAAAAAAAA!”

“히익!”


숲을 빠져나오자 과거에 사람이 살았던 도시가 나타났다. 그들에 이어 추적자도 숲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커다란 입에 긴 꼬리. 무식할 정도로 큰 두 발로 직립 보행 하는 뱀. 앞발과 날개가 없는 퇴화한 드래곤 린드부름.


사실 놈은 드래곤이 아니라 석형족의 하위 생명체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을 모르고, 무식할 정도로 식욕을 가졌다는 사실에 비하면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쪽이야!”


그녀는 미리 은신처로 물색해놨던 커다란 건물로 뛰어 들어갔다. 나시프도 아슬아슬하게 타이밍에 맞춰서 들어왔다. 곧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땅이 울리고, 건물도 두려움에 떨었다.


“무너지는 거 아냐?”

“괜찮아.”


“ZRRRRRRRRRRRR!!!”


밖에서 린드부름이 온갖 짓을 다 했지만, 건물은 흔들리기만 할 뿐 부서지진 않았다. 추위는 피할 수 없지만, 꽤 튼튼하고, 약하지만 방어마술도 걸려있는 커다란 건물에 그녀는 여러 번 도움을 받았다.


“요샌 계속 쫓기네.”


긴장이 풀린 나시프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긴장의 끝을 놓긴 조금 일렀다. 놈이 좁은 입구를 향해 길쭉한 입을 쑤셔 넣었으니까.


나시프의 어깨높이 정도 되는 커다란 입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손만 뻗으면 닿을 정도까지 다가왔지만 닿진 않았다. 그게 너무 분한 듯 콧김을 내뿜은 놈이 입을 뺐다.


“괜찮아?”

“···아니.”


긴장뿐만 아니라 다리에 힘까지 풀린 그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소변을 보지 않았다면 분명 바지를 적시고 말았을 것이다.



˟ ˟ ˟ ˟ ˟



혹시 자신들보다 먼저 들어온 자가 있나 싶어 건물을 둘러봤지만, 다행히 그런 자는 없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케일리는 땀범벅이 된 옷을 갈아입었다.


“평소 사냥도 이렇게 스릴 넘쳐?”

“이 정도면 양호하지.”


몬스터에게 쫓기기야 했지만, 상처를 입지 않고 사냥에 성공했으며, 그 고기를 많이 빼앗기지도 않았다.


아예 정보가 없었던 성인식 초기에는, 식량을 구하긴커녕 살아남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씹어.”

“뭐야? 이건?”


“점심.”

“RKKKKKK!!”


자신의 운명을 짐작한 놈이 그녀의 손에서 조금씩 버둥거렸다. 뿌리에서 흙이 조금씩 떨어지고, 줄기가 느리게나마 그녀의 손을 때렸다. 움직이는 식물 몬스터였다. 무척이나 못생긴.


“이름은 없어?”

“있겠지. 하지만 나는 몰라.”


입 다물고 빨리 씹기나 하라며 그녀가 재촉했다. 성화에 못 이겨 입에 넣은 식물 몬스터는 영양을 생각한 맛이었다.


즉, 더럽게 맛이 없었다.


“빨리 씹어. 좀 있으면 더 맛없어지니까.”

“···지금보다 더?”

“지금보다 더.”


“그냥 레드실을 구워 먹으면 안 돼?”

“다른 몬스터들에게 나 여기 있소 라고 알리고 싶다고?”


“···어. 미안.”

“알았으면 조용히 먹어.”


케일리 본인도 맛으로 먹는 건 아닌지, 어떻게든 씹어 먹으면서도 인상을 썼다. 이 식물 몬스터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땅에서 뽑는 순간부터 몸을 경질 시켜 맛과 영양을 떨어뜨린다. 그렇기에 뽑은 직후에만 먹을 수 있다. 이후엔 도저히 입에 넣을 것이 못 된다.


성인식 초기, 쫄쫄 굶는 게 예사였을 때 몸으로 배운 정보였다.


“음.”

“왜?”

“평소 음식에 불만을 토로한 걸 반성하고 있어.”


마을의 배식은 어떻게 포장해도 좋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뭐가 나와도 이것보단 훨씬 나았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마을의 의식주는 바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다른 것도 바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최근 마을은 어때?”

“변한 거 없어.”

“최악이란 말이네.”


케일리의 말을 나시프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가 어떤 대답을 원해서 그런 말을 꺼냈을지, 나시프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할 말이 없던 그는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언제 나갈 수 있어?”

“두 시간 정도 있다가 나가면 돼.”


린드부름이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지만, 오래 있진 않을 것이다. 다른 사냥꾼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서식지에서, 한 표적을 오래 노리고 있는 멍청이는 없다. 애초에 석형족은 식욕이 강해 오래 기다리질 못한다.


그때까진 쉬고 있자며 케일리가 몸을 눕혔다. 나시프는 조금 전부터 신경 쓰였던 것을 그녀에게 물었다.


“저거 뭔지 알아?”

“피아노.”


“그게 뭔데?”

“악기.”


“악기?”

“뚜껑을 열고 건반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거야.”


이 건물은 겨울이 오기 전에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고, 그들이 남기고 간 것이 많이 남아 있었다. 바깥 생활에 흥미가 많은 나시프에겐 보물창고나 마찬가지였다.


건반이 뭔지 몰랐지만, 뚜껑만 열면 바보라도 뭘 눌러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밖에 몬스터를 불러들일지도 모르니 함부로 누를 수는 없었지만.


오랜 세월 방치되어 있던 악기를 눌러봤자 소리가 나진 않았을 것이다. 어려운 삶에 잊어버린 여유만큼 방치된 피아노를 그는 신기하다는 듯 쓰다듬었다.


그 후에 관심을 가진 건 그 마을에 살았을 사람의 수기였다. 상당한 악필로 쓰인 내용은, 바로 요전번에 트롤을 만났던 나시프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케일리! 옆 마을에 트롤과 결혼한 사람이 있었대!”

“···봤어.”


“대체 어떻게 트롤과 결혼했을까?”

“트롤이 자신을 잡아먹으려고 뛰어오지 않았나 보지.”


아니면 자기가 트롤과 결혼하지 않으면 결혼을 못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나. 어느 쪽이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였다. 그리고 어느 쪽이든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이야기다. 트롤과 인간. 다른 두 종족간의 사랑.


“세상엔 정말 신기한 일이 많네.”

“그러게.”


그녀는 한쪽 팔로 눈을 가렸다. 눈 돌릴 수 없는 사실이 팔로나마 가려지길 빌며.


“나도 좀 그런 세상에서 살아봤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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