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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자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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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w5058
작품등록일 :
2021.03.0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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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2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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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8화

DUMMY

한창 성인식을 하고 있을 그녀가 갑자기 들이닥쳤는데도, 샤를은 놀란 기색도 없었다. 그저 올 게 왔다는 듯.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을 뿐이다.


잘 보관된 그림처럼 바뀐 것 없던 마을과는 달리, 샤를은 그녀에게 세월을 자각시켰다. 유일란을 보며 얼굴을 붉히던 청년은, 현실을 배운 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직후 그는 인상을 찡그린 늙은이가 되었다.


케일리는 더 말할 것도 없다는 듯 그를 벽에 때려 박았기 때문이다. 최근 잘 못 먹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성인 남성인 샤를을 케일리는 가볍게 들어올렸다.


그녀는 그 수많은 괴물들이 날뛰는 서식지에서, 운으로 지금까지 혼자 살아남은 게 아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어머니의 옷이랑 여명검이 대체 왜 여기 있어.”

“···폭력적으로 변했구나.”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묻는 말에나 대답해.”


한껏 신경이 날카로워진 그녀의 행동은 난폭했다. 다른 아이에게 상처도 잘 입히지 않던 아이를, 이렇게 만들고 말았다.


“마지막 원정을 떠나려던 그녀를, 우리가 죽였다.”


그 때면 케일리는 아직 성인식을 떠나기도 전이었다. 남의 어머니를 죽여 놓고, 그 딸을 웃으며 만났다는 거다. 상상도 못할 역겨운 연기에 케일리는 절로 손에 힘이 들어갔다.


“커···커억.”

“왜 그랬어. 수호자라며. 마을을 구한 영웅이라며? 그런 어머니를 대체 왜 죽였냐고!”


“···그녀는 너무 선했으니까.”


책임질 수 없으면 구하지 마십시오.


그게 샤를이 유일란에게 했던 마지막 말이었다. 비명에 가까운 포효나 자신도 모르게 냈던 울음소리를 제외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뭐 어쨌든.


유일란의 선행에는 계획이 없었다. 물자보다 인명을 중시했고 사람을 가리지도 않았다. 몸을 가눌 수 없는 노인, 노동력을 기대할 수 없는 아이들.


마을 사람들은 약자에게 아낌없는 선행을 베풀었지만, 약자는 약해도 선하진 않았다.


그들은 곧 다른 자들의 선행을 당연하다는 듯 누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자신만 알고 있는, 농기구를 제련할 방법이나, 의술 등을 공유하지 않았다. 작은 마을에서 지식은 힘이었고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을 나눠 버렸다.


어쩌면 그들도, 자신이 쓸모없어지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번 따뜻한 내부로 들어온 그들은, 두 번 다시 겨울로 쫓겨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냥 그런 이유를 빌미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떻든, 마을 사람들과 지식을 가진 자의 불협화음은 갈수록 심해졌다. 그럼에도 마을은 위태위태하게나마 돌아갔다. 다른 자들이 몸을 아끼지 않은 덕분이었다.


그러던 중 누군가 입을 열었다. 이러려고 여기에 온 게 아니었다고.


샤를은 몇 번이나 유일란에게 사정을 설명했지만, 그녀는 마을 사람들의 불화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말을 해줘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겨울에 사람이 살아남을 방법은, 살아갈 수단을 서로 빼앗는 것뿐이라는 걸, 엘프인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유일란이 또 다른 약자들을 데려왔을 때, 샤를은 이들의 일부라도 살리기로 했다. 사람을 구하는데 이종족보다 사람이 먼저 싫증냈다는 웃기지도 못할 일을 그는 받아들였다. 이 일로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그럼 난 왜 바깥으로 쫓아낸 거야?”

“마을을 오면서 보지 못했니?”


약자와 최강자를 물리친 마을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걸었다. 한번 맛 본 나태의 맛은 기분 나쁘게 그들을 중독 시켰고, 노약자를 처리하며 필요한 기술마저도 잊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따뜻한 봄을 찾아 온 강력한 몬스터들 때문에, 마을 바깥으로 제대로 나가지도 못하게 되었다.


마을에는 여전히 수호자가 필요했다.


“그때 누군가 너에 대해 이야기했다.”


유일란 같은 엘프를 만들게 아니라, 인간에게 복종하는 엘프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다. 사리분별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어린 엘프를 괴물과 싸우라고 보냈고, 그녀의 사상을 바꾸겠다며 온갖 불쏘시개들을 은신처에 때려 넣었다.


그 하찮은 작전의 성공 가능성이나, 그녀가 몬스터에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마을에서 이대로 죽으나, 그녀가 실패하나, 마을에서 굶어 죽으나, 어느 쪽이든 매한 가지였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남아서 다행이었겠네.”


케일리의 말과 말에 담긴 감정은 전혀 달랐다. 사정을 들으면 들을수록, 자신이 고작 이런 것에 묶여 있었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다. 눈앞에 있는 상대방보다, 자기 자신에게.


“···사실, 난 몇 번 너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난 아이면 몰라도 어른이랑은 만난 적 없는데?”


“먼발치에서 보기만 했지.”


“그걸로 용서해달라는 거야?”

“그런 건 아니다. 그냥··· 미안했다는 거지.”


샤를이 한숨을 쉬었다. 얼굴을 볼 생각을 못한 건, 그 이상 케일리의 얼굴을 보며 거짓말을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을의 수호자를 배신하고, 마을의 책무를 그 딸에게 떠넘기고도, 마을의 상황은 차도되지 않았다. 이 끝없는 반복에 그는 결국 지쳐버렸다.


“커억!”

“···꺼져.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마.”


그녀는 샤를을 자신이 들어온 곳 반대편으로 던져버렸다. 고작 그걸로 화가 풀렸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리도 사람을 지키고 싶어 했던, 어머니의 유해 앞에선 피를 뿌리고 싶지 않았다.


샤를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며 나갔고, 케일리는 전투복 옆에 있는 유골함을, 품 안에 들어올 그리움을 끌어안았다. 긴 세월 알아차리지 못한 진실을 사과하듯.



˟ ˟ ˟ ˟ ˟



“두신호귀.”

“응? 컥!”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복도로 튕겨 날아갔다. 그들은 방 바깥에서 사건이 일단락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많이 참았다.


“이게 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브리엘이 추가타를 가했다. 복도에 걸린 액자나 장식용 화분들이 흔들리다 떨어졌다. 폭력은 복도 벽이 부서지고 두신호귀가 날아가고 나서야 멈췄다.


최근 두신호귀는 여러 가지로 아브리엘의 기분을 상하게 한 건 사실이지만, 그런 사소한 이유로 주먹을 휘두르는 건 아니었다.


아브리엘은 분명, 케일리를 만나기 전에 분명 그에게 경고했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넌 처음부터 여명검이 여기 있는 것을 알고 있었지?”


“···그래.”

“그렇다면 사과할 필요는 없겠군.”


아브리엘은 뛰어가서 그의 멱살을 잡았다. 육탄전으론 상대가 안 되는 두신호귀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네 놈은 여기 놀러 왔는지 몰라도 난 내 딸의 행방을 찾아야 한다.”

“나도 알지.”


“낭비할 시간 따윈 없단 말이다.”

“나도 알지. 그런데 어쩌겠어. 나는 이런 정수인걸.”


두신호귀는 인간과 정수와의 전쟁에서, 배신할 신도가 단 한 명도 없었기에 선전했다. 그전에도 신도를 받지 않았고 그 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믿음이 사라지면 소멸하는 정수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두신호귀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주변엔 그의 신자들이 잔뜩 있었다.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들이지만.


망자의 소원을 들어주고 믿음을 얻는다. 그게 바로 두신호귀였다.


만약 두신호귀가 처음부터 사실을 말했다면 아브리엘은 다른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여명검을 집어 들었을 것이다. 방해되는 자들은 모조리 토막 냈을 것이고 이후에 마을이 어떻게 되는지는 신경도 안 쓰겠지.


하지만 첫날 만났던 죽은 자, 나시프의 아버지는 그의 하나뿐인 아들이 마을을 벗어나기를, 이후에도 살아남길 바랐다.


이를 위해 두신호귀는 일부러 그에게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앞으로도 이따위로 협력할 건가?”

“어쩔 거야. 정보는 내가 쥐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텐데.”


“목숨과 열 입만 남아 있어도 여유를 부릴 수 있나 볼까?”

“그런 방법도 있군. 어떤가? 한번 해볼 텐가?”


아브리엘이 말없이 할버드를 쥐었다. 두신호귀의 손가락에 있는 두개골들이 덜덜덜 떨리며 합창을 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땅에서 발을 떼고 있는 게 아니고서야 그들이 싸우는 걸 알아채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한창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있던 케일리가 바깥으로 나오자, 두 정수도 싸움을 멈췄다. 그들은 어린 엘프를 앞에 두고 싸울 정도로 이성을 잃진 않았다.


최소한 아직은.


“앞으로는 최대한 협력하지. 정보도 숨기지 않고, 바라는 바가 있으면 직접 말하지.”

“어디 두고 보지.”


“싸울 거면 다른데 가서 싸워.”

“볼 일은 다 본 겐가?”

“그렇게 시끄럽게 싸우는데 어떻게 그러겠어.”


겨우 주변이 조용해졌으니, 케일리는 다시 어머니의 유골을 어디다 둘지 고민했다. 두신호귀가 툭 내뱉은 말만 아니었다면 이 마을에 묻었을 것이다.


“분위기를 깨서 미안하지만, 유골이 있으면 엘프는 되살릴 수 있네.”

“···뭐?”


“사람을 부활시키는 마술도 있는데. 엘프라고 살아나지 못할 건 없지.”


이 세상의 강력한 존재들은 육신을 잃는 것 정도론 소멸하지 않는다. 엘프도 마찬가지. 모든 엘프들의 고향. 세계수의 뿌리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다 잠에서 깨어나듯 다시 살아난다.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있어?”

“속고만 살았나.”


“언제?”

“세계수 아래에서···.”


봄이 오면 새싹이 피듯 되살아난다고 말하려고 했던 두신호귀는 말을 얼버무렸다. 봄이라니. 대체 언제 봄이 온단 말인가.


세상에 봄이 사라진 지 300년이 다 되어 가는데.


두신호귀의 말은, 기나긴 겨울에 정수들이 사람들에게 했던 말과 같았다.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잔인한 희망. 사람들은 그 말뿐인 희망을 믿지 못해 전쟁을 선택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붙잡을 게 필요했다. 그 잔인한 희망이라도.


“떠날 이유가 생겼네.”


“엘프들의 숲은 대륙 남부에 있어. 최남단. 긴 여행이 될 거야.”

“그게 무슨 상관이야.”


유골함과 검을 쥔 그녀가 일어났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오랫동안 어린아이인 척 했다. 더는 어리광을 피울 순 없다.


“둘의 목적은 어머니가 아니라 이 검이지?”

“눈치챘나?”


“바보가 아니라면 눈치채겠지. 다만 궁금한 게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왜 여기에 검을 그냥 박아둔 거야? 증거 인멸만 잘 했어도 난 끝까지 몰랐을 텐데 말이야.”


“아브리엘에게 잠시 검을 넘겨보게.”


케일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에게 검을 넘겼다. 아브리엘은 검을 받지 못하고 땅에 떨어뜨렸다. 잠깐 손댔을 뿐인데,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손이 화끈거렸다.


“···두신호귀.”

“보시다시피, 다른 자들은 저 검을 집을 수가 없거든. 그러니 그렇게 내버려둘 수밖에 없지.”


“왜 그런 거야?”

“진정한 무구는 주인을 선택한다고 하지.”


“주인을 바꾸는 방법은?”

“나도 모르네.”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네.”

“뭐지?”


“당신들이 나와 함께 가는 거지.”


엘프들의 숲을 마지막 여정지로 함께 움직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며 케일리가 웃었다. 유일란을 부활시키면 그들에게 여명검을 양도해 주겠다고. 분명 최선의 방법이었지만 아브리엘은 할버드를 힘껏 쥐었다.


“방법이 없어서 참는다만···.”


한시라도 빨리 딸을 찾아야 할 이때. 아브리엘은 짐이 될 게 분명한 미숙아를 데리고 다닐 생각이 없었다. 여명검의 소유권이 넘어온다는 확신만 있었으면 당장 그녀의 목을 쳤을 것이다.


“조건이 있다. 지키지 않을 거라면···.”

“따를게. 뭐야?”


“첫 번째. 앞으로의 여행에서 내 말에 복종할 것.”

“좋아.”


“두 번째. 시간이 있을 때 나에게 가르침을 받을 것. 짐덩이를 데리고 다닐 생각은 없다.”

“그것도 좋아.”


“마지막으로 세 번째. 높임말을 써라.”

“···높임말은 왜?”


“싸우는 법을 가르쳐 주는 자에게 예우도 갖추지 않을 셈인가?”

“···좋아요. 스승님. 제가 당신 실력을 뛰어넘으면 다시 말을 놓을 거예요.”

“알아서 해라.”


강압에 가까운 대화인데도 그녀는 옅게나마 웃었다. 얼굴 근육이 웃는 것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 했지만 그렇진 않았다.


“난 네 부모가 아니다. 봐줄 거라 생각하지 마라.”

“그거 참 다행이네요.”


“유골함은 내가 맡아주지.”

“고마워.”


“높임말을 쓴다고 안 했나?”

“너한테 쓴다고 한 적은 없잖아.”


그녀가 혀를 내밀었다. 두신호귀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저는요?”

“더는 여기 남아있을 이유는 없지. 제국으로 데려다주마.”


다른 자들에게 잊힌 듯, 한참 대화에 끼지 못했던 나시프는, 모처럼 긍정적인 대답을 얻었기에 환하게 웃었다. 케일리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녀가 성인식에서 벗어난 것도 입가에 미소를 더했다


“내일 아침에 떠날 테니 준비해둬라.”

“리린도 데려가 주시는 거죠?”

“그래.”



˟ ˟ ˟ ˟ ˟



“샤를. 어떻게 되었나.”

“다 털어놨어.”


“다 털어놨다고?”

“그래.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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