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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자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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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w5058
작품등록일 :
2021.03.0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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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3.30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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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DUMMY

두신호귀는 믿음을 얻었고, 아브리엘도 여명검을 얻었으니, 마을엔 더 볼일이 없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들에게 볼일이 많았다.


검, 방패, 활. 밤을 수놓는 횃불들과 함께 마을 사람들이 나타났다. 녹 쓰고 날이 나간 무구들 사이에서 그나마 멀쩡한 것들을 들고 왔다. 잘 쓰지도 않던 무구들을 있는 대로 가져온 걸 보면, 차나 마시자고 온 건 아닐 것이다.


“네가 마을 사람들에게 말해 송별회를 준비한 건가?”

“아니. 그런 적은 없어. 세리타의 이름에 걸고 맹세하지.”

“누구 마음대로 남의 아내를 걸고 맹세하는 거지?”


“이렇게 될 거라고 하지 않습니까?”

“까놓고 말해서 이렇게 될 거라곤 안 했지.”

“네. 솔직히 일이 이렇게까지 심하게 꼬일 거라고 예상하진 못했죠.”


마을 사람들도 갑자기 와서 유일란을 찾아다니는 그들을 경계했다. 별일 없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과 혹시 그들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한 헛된 희망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동안 속인 걸 사과하러 왔어?”

“설마.”


선두에 있던 몇몇이 웃었다. 그렇게까지 대놓고 속인 사정을 다 들었는데, 사과해봤자 진심이 담기지 않을 것이요,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해도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케일리의 앞에 한 사람의 수급을 집어던졌다. 지금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샤를의 목. 어떻게 속일 노력도 하지 않고 모든 비밀을 털어놓은 데다, 자신들의 힘으로 겨울을 이겨내자는 그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두말하지 않고 샤를을 찔렀다.


협박의 의미로 던졌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제 효과를 발휘하진 못했다. 아니. 차라리 안 던지느니만 못했다.


“···왜 그랬어?”

“떠나는 건 막지 않겠네. 대신 검은 두고 가게.”

“왜 그랬냐고.”


“그 검이 이 일대에 봄을 가져왔다.”

“···마지막 비밀이 거기 있었군.”


그들이 처음 검의 비밀을 눈치챈 건 유일란이 케일리를 벴을 때였다. 아무리 유일란이라고 해도, 아이를 벤 채로 바깥을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그녀가 마을에 머무르며 몸 관리를 하자, 정확하게는 여명검이 마을에 머무르자 일대에 봄이 왔다. 생전 겪어보지 못했던 따스함을, 사람들은 잃고 싶지 않았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누군가가 겨울이 사람들을 바꿨다고 했다.

그럼 봄도 사람을 바꿨을까.

아니면 겨울 이전으로 다시 되돌려놨을 뿐일까.


케일리는 고통으로 부릅뜬 샤를의 눈을 감겨주었다. 그는 분명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죽어도 될 사람도 아니었다.


“스승님.”

“왜 그러지?”


“부탁이 있어요.”

“말해라.”


“인간쓰레기들을 처리하는 법을 알려주세요.”


아브리엘은 한동안 일을 안 한 할버드를 고쳐 쥐었다. 협박이 통하지 않자 사람들은 애원으로 작전을 바꿨다. 누군가가 그 검을 가져가면 우리는 다 죽을 거라느니, 한 번만 다시 생각해보라느니.


저런 동정과 애원에 귀를 기울였다가 무슨 일을 당했는지, 아브리엘은 잊지 않았다. 애초에 말을 듣지 않으면 무력행사도 불사하겠다는 듯, 무기를 지참한 시점에서 협상은 물 건너갔다.


“어리석긴. 이 많은 사람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것치곤 움직일 생각을 않는군.”


아브리엘이 한 발짝 나서자 마을 사람들은 뒤로 물러났다.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된 그들도 알았다. 아브리엘과 자신들에겐 감히 메울 수 없는 격차가 존재한다는 걸.


터무니없는 강자와 싸울 때, 앞선 자들은 대개 죽는다. 하지만 그들도 물러날 곳은 없다.


“···공격 개시!”


한 자가 목숨을 버릴 각오로 앞으로 나서자, 다른 자들도 뛰어들었다. 지금 모인 자들의 수는 어림잡아도 50. 마을에서 싸울 수 있는 자들은 다 나왔다. 이런 자들이 조직적으로, 차륜전으로 힘을 빼고 빈틈을 찌른다면 아브리엘 같은 자라도 쓰러뜨릴 수 있다.


최소한 이론상으론 그렇다.



˟ ˟ ˟ ˟ ˟



처음에 뛰어들었던 자는 모두의 예상대로 할버드에 두 동강이 났다. 예상하지 못한 건 한 명만 동강 난 게 아니란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뭔가에 이렇게 필사적으로 달려든 게 얼마 만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이 마을에 들어온 게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함께 이 겨울을 이겨내 봐요.


유일란이 사람들을 데려오고, 힘들 때마다 버릇처럼 내뱉던 말이다. 사람들은 그 말을 그다지 믿지 않았다.


그저, 그런 따뜻한 위로를 말해주는 자가 그녀밖에 없었다. 어쩌면 지금보단 나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이 그들을 움직이게 했다. 그런 그들은 도를 모를, 자살에 가까운 선행에 함께할 생각 같은 건 조금도 없었다.


부족해지는 자원을 대신에 사람들은 불만을 쌓았다. 결계를 두드리는 몬스터에 대한 공포. 날이 갈수록 부족해지는 물자.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겨울. 세상의 모든 잘못이 전부 그녀의 탓인 것 마냥 사람들은 유일란을 혐오했다.


케일리가 태어나고 나서 부쩍 웃음이 많아진 유일란. 그 미소조차도 사람들은 미웠다.


다른 자를 증오할 땐 이유 같은 건 필요 없었다. 싫어하는 자의 모든 행동이, 증오할 이유가 되니까.


내 아이가 얼마 전에 죽었는데.

마을이 이 지경이 된 게 다 너 때문인데.

내가 이렇게 힘든데, 너는 그렇게 행복하다고?


생각해보면 이 겨울에 힘들지 않은 자는 없었고, 그들을 이끄는 그녀는 더 힘들었을 테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자는 없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노약자와 일이 이 지경이 된 원흉을 처단한 그들은 이제 진정으로 겨울을 이겨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기회도 요새도, 남들로부터 빼앗았을 뿐이지만, 자신들이야말로 이 요새를 지배하기 적합하다며. 신이라도 된 양 까불었다.


사실 천천히 죽어가고 있을 뿐인 현실을 그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넌 너무 난폭하다.”

“스승님이 할 말인가요? 완전 야만인이시던데.”

“내가 야만인이라면 넌 그냥 짐승이다. 몸을 사리는 법을 배워라.”


정신을 차렸을 땐 싸움은 이미 끝나있었다. 팔과 다리를 잃은 마을 사람들은 어느새 눈밭에 뻗어 있었다.


요새의 운명을 건 결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당사자들의 체감과는 달리 싸움은 지독히도 시시했다. 그녀를 배신한 이유처럼.



˟ ˟ ˟ ˟ ˟



요새를 떠날 때, 나시프와 리린은 혹시 같이 떠날 자가 있으면 데려가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이전에도 마을에 정은 없었고, 실제 사정을 알고 난 후에는 더욱 그랬지만, 마을에 나쁜 기억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마을을 떠나려 하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싸울 각오조차도 없던, 요새에 있던 자들은 모두 자신의 영지에 남는 걸 택했다.


한번 누렸던 권리를 놓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게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하지만 이제 그들에게 남은 거라곤, 한때 자신들이 배척했던 자들과 같은 늙은 몸뚱이밖에 없었다. 지배할 것을 잃은 지배자, 안주할 땅이 사라진 정착민, 빼앗을 것이 없어진 인간. 그들의 말로는 뻔했다.


200년도 넘게 이어진 겨울.

누군가는 이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도 이겨냈을 겨울을, 그들은 이겨내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아직은 날 수 없다는 어미 새의 충고를 무시한 새들의 비상은 추락으로 끝을 맺었다.



˟ ˟ ˟ ˟ ˟



“하하하하하하하하!”


제국의 황제, 진사리안은 그들이 첫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걸 크게 기뻐했다. 비록 아브리엘은 그 만남이 썩 반갑진 않았지만.


“대단하군. 대단해. 내 밑에 인재랍시고 모여 있는 자들이 몇 년간 해결하지 못한 걸 자네는 불과 8주 만에 해냈군. 내 밑에서 일할 생각 없나?”


“인간에게 고개를 조아릴 생각은 없다. 그보다 내가 말한 건 잘 알았겠지.”

“어려운 것 없지. 나시프와 리린이라고 했나? 두 사람이 원하는 건 내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들어주지. 여명검도 이후의 여정에 계속 들고 다녀도 좋아.”


의외로 그는 그토록 손에 넣고 싶어 했던 여명검을 들고 다니는 것도 간단하게 허락했다. 무구의 주인을 바꾸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 보내지 않거나, 최소한 케일리를 제국에 남길 거라 생각했던 아브리엘에겐 뜻밖의 일이었다.


“앞으론 이런 쓸데없는 자리는 안 만들었으면 좋겠군.”

“난 자네가 좋아할 줄 알았는데.”


“정수 보는 눈이 없군.”

“내가 가져온 정보를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본래 세상은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는 법이지.”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브리엘이 몸을 일으켰다. 그가 무엇보다 원하는 것. 딸에 대한 행방.


“먼저 말해두겠네. 열심히 수소문하고 있지만 지금 자네 딸이 어디에 있는지 찾진 못했어.”


진사리안이 그답지 않게 딴청을 피우며 말했다. 아주 우연한 계기로 하르타는 그 사진을 손에 넣었다. 한창 유물을 수색할 사람을 찾고 있던 제국은 옳다구나 하며 그에게 일을 맡겼다. 생김새를 아는 상대방을 찾는 건 주머니의 물건을 꺼내는 것만큼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으니.


최소한 그땐 그랬다.


“지금 나와 장난하자는 건가?”

“미안하지만 농담이 아니야. 겨울 축제 이후로 땅에 꺼졌는지 하늘로 솟았는지. 자네 딸로 추정되는 인물과 그 일행은 갑자기 모습을 감췄네.”

“그럼 이 거래는 끝이군.”


“성질 급하군. 사람에겐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앉게. 앉으면 이야기를 마저 해주지.”


할버드를 꺼낼지, 그냥 자리를 박차고 나갈지, 잠자고 이야기를 들을지. 여러 가지 선택지를 두고 한참을 고민하던 아브리엘은 결국 자리에 앉았다. 어떤 행동을 하든 일단 이야기를 들어본 다음이다.


“제국의 연락망은 아주 넓어. 유명무실해졌지만 동맹국 이사벨도 있고, 남부의 아카이튼, 서쪽의 오세우스까지. 발길이 안 닿는 곳이 더 적지.”

“그 넓은 연락망으로 사람 하나 찾지 못한 게 자랑은 아닐 텐데.”


“그래. 본론을 말하지. 제국의 정보망이 안 닿는 곳은 손꼽을 정도란 말이네. 콕 집어 말해서 단 두 곳이지. 서쪽 끝의 도우라도스. 그리고 북쪽의 대산맥 너머.”


뭐 정보통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건 따져봐야 큰 의미는 없을 거라는 말을 덧붙였다. 감히 제국의 황제 앞에서 거짓말을 할 간 큰 정보통은 잘 없을 것이고.


“거기서 찾아뵈란 말인가?”

“그래. 그리고 자네 딸을 못 찾았다고 했지만 아주 단서가 없는 건 아니야.”


그렇게 말하며 그는 한 사진을 꺼냈다. 그 사진에는 마타네아와 같이 찍혔던, 보호자처럼 보이던 자가 찍혀 있었다.


“여긴 어디지?”

“북쪽 대산맥 근처야.”


아브리엘은 곧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등을 돌려 나가는 그에게 진사리안이 입을 열었다. 소리는 작았지만, 정수의 귀에는 잘 들렸다.


“혹시 모르니 서쪽 끝과 북쪽의 다른 곳에도 사람을 보내 놓겠네. 이번에도 행운을 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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