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불멸자의 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연재 주기
psw5058
작품등록일 :
2021.03.08 16:34
최근연재일 :
2021.06.03 20:1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518
추천수 :
0
글자수 :
117,111

작성
21.04.06 20:52
조회
17
추천
0
글자
12쪽

12화

DUMMY

“라라님. 여기요.”


이 추위에 어떻게 찾은 건지. 케일리는 라라에게 작은 과일을 건넸다. 라라는 한껏 기뻐하며 과일을 안아 들었다.


“부탁이 있어요.”


무슨 말이든 해보라는 듯, 라라가 웃었다. 그런 라라를 앞에 두고 케일리는 양손으로 합장을 했다.


“저를 과거로 보내 주세요. 제발요.”


고개를 숙인 케일리는 보지 못했지만, 라라는 케일리가 할 말을 알고 있었다. 다른 자들이 시간의 요정을 찾는 이유는 정해져 있다. 그리고 돌려줄 수 있는 답변도 한결같았다. 라라는 평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숙한 얼굴로 작지만, 확실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달라는 건 뭐든 해드릴게요. 제발···.”

“소용없다. 라라는 지금은 시간여행을 할 수 없다.”


그 모습을 뻔히 보고 있던 아브리엘이 입을 열었다. 인간에게 배신당한 날, 라라는 목소리와 함께 능력도 잃었다.


“그래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할 수 있었다면 내가 먼저 갔겠지.”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걸.”


그녀가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던 희망이 사라졌을 때의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비록 그 희망조차도 착각이었지만.


“어차피 과거로 돌아가는 것만으론 과거를 바꿀 수 없다. 포기해라.”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시간여행을 하는 것만으론 과거를 바꿀 수 없다.”

“그러니까 왜요. 왜 바꿀 수 없는데요?”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선 과거로 돌아갔다는 인과가 필요하다. 미래로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능한 한 쉽게 설명했지만, 그녀에겐 뜬구름 잡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지만 아브리엘은 두신호귀와 같은 말재주가 없었다. 결국 그는 예를 들어주기로 했다.


“과거로 돌아가면 뭘 할 거지?”

“여명검을 가져간 그 새끼를 족쳐요. 그 후엔 부모님을 만나겠죠. 과거의 저를 만나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뒤의 말은 예상했었지만 앞의, 특히 경박한 말투를 예상하지 못한 아브리엘은 그답지 않게 머리를 싸맸다. 그래도 아브리엘은 그녀의 말투까지 교정할 생각은 없었다.


사람은 말로 바뀌지 않는다. 엘프도 마찬가지. 그는 그걸 아내에게서 배웠다.


“예전에 넌 미래의 자신을 만난 적 있나?”

“그럴 리 있나요.”

“그러니 안 된다는 거다.”


과거의 자신을 만나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과거의 자신이 미래의 자신을 만났다는 인과가 필요하다. 그리고 과거로 가서 했던 행적도, 이미 현재에 반영되어 있다.


“시간조차도 극복한 괴물이라면 어쩌면 과거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일반인이 과거를 바꾸는 건 불가능하다. 그게 신의 섭리일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죠?”


“만약 네가 자유롭게 시간여행을 해서 과거를 바꿀 수 있다고 치자.”

“좋아요.”


“한번 시간여행을 해서 과거를 바꾸지 못했다. 혹, 바꾸었더라도 마음에 드는 과거가 아니었다면, 그럼 어떻게 하지?”

“···글쎄요? 다시 하겠죠?”

“그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모두가 그렇게 하겠지.”


언제까지 반복할까. 간단하다. 원하는 미래가 올 때까지.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올 때마다, 손바닥을 뒤집듯 몇 번이고 시간 여행을 할 것이다. 주변이 어떻게 바뀌든, 얻을 수 있는 모든 이득을 손에 넣을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과거를 못 바꾼다고 생각하고 있는 지금도 갈 수만 있다면 과거로 가고 싶을 때가 있는데.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몇 번인들 못할까.


“그럴 때마다 과거가 바뀌면 세상은 엉망이 될 거다. 내가 관리하는 자라도 바꾸지 못하게 할 거다.”


그러니 할 수 있으면 과거를 바꿀 생각하지 말고 현재를 열심히 살라고 아브리엘은 말을 끝냈다. 그 말은 평소의 아브리엘처럼 확신에 찬 대답이었으며, 평소의 그답지 않게 힘없는 대답이었다.


“스승님.”

“왜 그러지.”

“스승님은 과거에 시간 여행을 해본 적이 있죠?”


케일리의 말에 아브리엘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아도 답은 정해져 있었다.



˟ ˟ ˟ ˟ ˟



대산맥의 중반을 넘어서면 사람의 그림자가 적어지고 그 자리를 몬스터들이 채운다. 약한 인간을 노릴 필요가 없는 강자와 그런 강자를 노리는 괴물들이 판치는 곳.


그 중에는 아브리엘이 떠날 때부터 지금까지 생존한 괴물도 존재한다. 아브리엘의 기억과 두신호귀가 얻은 정보에 의지해, 그들은 가능한 몬스터와 마주치지 않고 움직이려고 했다.


썩 성공적이진 못했지만 말이다.


“ZKKKKKKKKKKK!!”


등에 여러 개의 눈을 달고 있는 거대한 전갈 몬스터. 아즈마달이 울부짖었다. 대부분의 생물이 정면에 눈을 달고 있는데, 대체 이 몬스터는 왜 등에 눈을, 그것도 여럿 달고 있는지는 미스터리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별을 잘 보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썩 믿음이 가는 답변은 아니었다. 사실 이유 따위 아브리엘에겐 아무래도 좋았다.


“RKKKKKKKKK!!”


포효와 함께 아브리엘이 아즈마달의 등 위로 뛰어 올랐다. 눈은 모든 생명체의 약점이고 아즈마달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아브리엘의 입장에서 놈은 등에 약점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멍청한 몬스터에 불과했다.


“겁먹지 마라! 균형을 잡아!”

“말은 쉽죠!”


유감스럽게도 아브리엘의 조언은 케일리에게 그다지 와 닿지 않았다. 그에겐 놈이 약점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몬스터에 불과하겠지만 그녀에겐, 아니 다른 자들도 기피하기 바쁜 혐오의 대상이었다.


인간보다 훨씬 큰 아즈마달의 약점을 노리기 위해선 놈의 등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올라가는 순간, 방패 정도 크기의 눈들이 일제히 자신을 노려본다. 핏발이 선 눈들의 시선을 강탈하는 건 생각보다 끔찍한 일이다.


“으으으으···.”


몸이 굳어버린 그녀는 아즈마달 거센 저항에 균형을 잃고 위에서 떨어졌다. 등에는 손이 닿지 않는 아즈마달이지만 아래에는 강한 집게발이 있다.


무식하게 튼튼한 갑각엔 할버드도 먹히지 않는다. 아브리엘은 할버드를 아래로 던지고 괴력을 발휘해 놈의 집게발을 위로 꺾었다.


“ZRRRRRRRRRR!!”

“움직여라!”


낙법을 취하며 할버드를 집어든 케일리는 그대로 아브리엘이 꺾은 집게발을 도려냈다. 갑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속살은 연한 순두부나 다를 바 없었다. 아브리엘은 잘려 나간 집게발로 놈의 눈을 찌른 다음 아예 등에 쑤셔 박았다.


집게발이 놈의 등부터 배까지 관통했다. 아즈마달은 최후의 단말마를 마지막으로 삶을 마감했다.



˟ ˟ ˟ ˟ ˟



“UAAAAAAA!!”

“ARRRRRRRRR!!”


아즈마달 다음에 만난 건 한 하이에나의 얼굴을 한 인간형 몬스터. 놀이었다. 무리를 지어 다니고, 평범한 인간보다 강하다.


놀이 다른 몬스터와 다른 점이라면, 자신만의 무기를 구하는 성인식을 치르기에, 무장 상태가 다른 인간형 몬스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다는 것이다.


빼앗긴 여명검 대신에 사용하고 있는, 제국에서 가져온 예비용 무구들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꽤 괜찮은 무구지만, 본격적으로 쓰기엔 한참 부족했다. 너무 세게 휘둘러서 날이 나가는 건 예사고, 부러진 것도 적지 않았다.


예비용 무구도 슬슬 다 떨어져 가기에, 아브리엘은 아예 괜찮을 무구를 얻을 요량으로 놀 무리의 습격을 받아들였다. 실제로 놀 부족장쯤 되는 개체는, 대체 이런 무구를 어디서 구했나 싶을 정도로 뛰어난 무구를 가지고 다니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예상하지 못한 거라면, 놀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는 것과, 놈들의 무장이 말도 안될 정도로 좋았다는 것이다.


“이런 개 같은 거!”


조금 전부터 불안 불안하던 예비 무구가 결국 완전히 부서졌다. 반면 놀이 쓰는 무구는 날이 나가지도 않았다. 부족장도 아니고 평범한 놀인데 대체 어디서 이런 무구를 구했는지.


무구가 부서진 후론 피하기 급급한 케일리의 뒤편에서 할버드가 날아왔다. 놀은 용케 그 공격을 방패로 막았지만, 뒤이은 케일리의 공격까지 막아내진 못했다. 케일리는 아브리엘이 던진 할버드로 놈의 머리를 찍어 버렸다.


아브리엘은 할버드 없이도 잘만 싸웠다. 그의 온 몸이 흉기나 마찬가지였고, 손에 집는 건 뭐든 무기가 되었다. 무기 신세가 된 불쌍한 놀은, 동료의 병장기에 부딪쳐 삶을 마감하고 난 뒤에도 한참을 무기로 써먹혔다.


아브리엘과 이름 모를 마술사가 지적한대로, 그녀는 저런 무식한 전투법을 사용할 수 없다. 엘프의 육체능력이 좋아봤자, 인간형 몬스터와 비슷한 수준밖에 안 된다.


그렇기에 아브리엘은 그녀에게 기교가 섞인 싸움법을 가르쳐왔다. 지금까지 익혀온 싸움법과는 완전히 다른 싸움법을, 그녀는 계속 거부해왔다. 그 이름 모를 마술사에게 지기 전까진 말이다.


패배에서도 배울 건 있다.


할버드로 놀의 공격을 막은 다음, 바닥에 떨어진 무구를 아무거나 주워 놀의 눈에 쑤셔 박았다. 고통에 울부짖는 놈의 중검을 뺏어 목을 쳤다. 일격에 깔끔하게 목이 베인 걸 보면, 나쁘지 않은 무구다. 최소한 제국에서 가져온 잡동사니보다는 훨씬 좋다.


“성인식이 무구를 구하는 거라고 해도, 애들 무장이 너무 좋은 거 아냐?”

“주변에 있던 마을을 몇 개 털었겠지.”


잠깐 딴 생각을 한 탓인지, 케일리는 다른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다른 놀의 절반밖에 안 되는, 갓 성인이 되었을 녀석은 한 손엔 소검, 반대 손에는 단검을 쥐고 있었다.


“몬스터 주제에 쌍검?”

“KAAAAAAAA!!”


분명 말을 못 알아들을 텐데도, 그녀의 의문이 어지간히 기분 나빴는지, 놀은 앞뒤 가리지 않고 돌진했다. 무시무시한 기세를 제외하고도, 놈의 기교는 상당했다. 상대적으로 긴 병장기인 할버드를 활용하기 어렵게 거리를 좁히고, 절대로 거리를 벌리지 않았다.


생전 처음 상대해보는 쌍검 전술에 그녀는 막기 급급했다. 그녀의 방어 일변도는 손이 빈 두신호귀가 그녀를 도와주면서 끝났다. 할버드 한방에 놈은 두 동강 났지만, 놈의 싸움법은 그녀의 머리에 오랫동안 남았다.



˟ ˟ ˟ ˟ ˟



“대산맥엔 본래 몬스터가 이렇게 많아?”

“이 정도는 일상이지.”

“이게 일상이라고?”


케일리가 진절머리를 쳤다. 마을 주변도 몬스터가 많은 축에 속했지만, 대산맥은 다른 곳과는 아예 차원이 달랐다.


“몬스터가 이렇게 많은데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잘 살아남네.”

“그야 몬스터들은 인간 따위 안중에도 없으니까.”


“마을을 습격하잖아?”

“그건 먹이를 구하는 거지. 적대하는 게 아니잖나.”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지만, 몬스터들의 적은 동급의 몬스터뿐이다. 인간과 신경전을 벌이는 자, 놀처럼 성인식에 인간의 무구가 필요한 자, 아예 뱀파이어처럼 인간의 피를 마셔야만 생존할 수 있는 자. 인간과 관계를 가지는 몬스터는 많지만 대놓고 적대하는 몬스터는 적다.


인간이 지금처럼이나마 살아있는 건, 그 몬스터들이 서로 싸우기 때문이다. 만약 몬스터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뭉친다면 인류 따위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부서질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정작 인류조차도 몬스터라는 적을 두고 서로 싸우기 바빴으니까.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관이나 끄집어내라.”

“말씀하신대로 합죠.”


그들이 도착한 마을은, 그들이 오기 전부터 텅 비어있었다. 도대체 뭐에 습격을 받았는지, 시체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히 무덤까지 건들이진 않았기에 팔자에도 없는 도굴꾼 신세를 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시체도 안 남은 걸까?”

“폭력의 흔적을 보면 대피한 건 아닐 테니, 흑설사도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지.”


“흑설사도?”

“다른 차원의 생명체일세. 300년 전 쯤 대산맥에 나타났지.”


“그런데 우린 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

“이제부터 알아봐야지.”


흑설사도들이 지배하는 땅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그들이 대산맥을 뒤진 기간을 생각하면 못 만난 게 이상했다.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유가 있는 법이다.


“기억을 읽고 나서 잡담을 하면 안 되겠나?”

“벌써 읽었어. 이 마을에도 드래곤이 찾아왔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불멸자의 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20화 21.06.03 7 0 11쪽
20 19화 21.05.27 5 0 12쪽
19 18화 21.05.20 5 0 12쪽
18 17화 21.04.29 7 0 12쪽
17 16화 21.04.27 10 0 11쪽
16 15화 21.04.15 13 0 11쪽
15 14화 21.04.13 32 0 12쪽
14 13화 21.04.08 8 0 11쪽
» 12화 21.04.06 18 0 12쪽
12 11화 21.04.03 26 0 16쪽
11 10화 21.04.01 24 0 12쪽
10 9화 21.03.30 22 0 11쪽
9 8화 21.03.27 25 0 13쪽
8 7화 21.03.25 24 0 15쪽
7 6화 21.03.23 23 0 13쪽
6 5화 21.03.20 24 0 13쪽
5 4화 21.03.18 18 0 13쪽
4 3화 21.03.16 31 0 13쪽
3 2화 21.03.13 32 0 11쪽
2 1화 21.03.11 53 0 12쪽
1 프롤로그 21.03.08 112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psw5058'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