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불멸자의 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연재 주기
psw5058
작품등록일 :
2021.03.08 16:34
최근연재일 :
2021.06.03 20:1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544
추천수 :
0
글자수 :
117,111

작성
21.04.08 20:30
조회
8
추천
0
글자
11쪽

13화

DUMMY

그날도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


몬스터들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숨을 죽이며 숨고, 온종일 먹을 것을 구하고, 변이된 자들의 헛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든다. 언제 죽거나 변이될지 모르는 이 생활도, 바깥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사는 것이야 다를 바 없지만, 살을 에는 추위가 덜했으니.


본격적인 몬스터의 습격을 막을 수 없으니 뭉치면 안 되고, 교류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니 멀어져도 안 된다. 대산맥의 마을들은 그런 애매한 간격을 유지한다.


사람들이 모이면, 비명과 헛소리를 낼 때 외엔 쓸모가 없는 입을 바삐 연다. 대산맥에 사는 사람들이 살아있다고 느낄 때는 이때뿐이니까.


잊을 만하면 오는 바깥사람들이 제국의 불꽃이니, 오세우스의 신살자니 하는 이야기를 전해주곤 한다. 그들 곁에 있으면 추위 따윈 걱정할 필요 없다고.


그들이 하는 말은 분명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몬스터의 밭을 뚫으면서까지 가고 싶어 하는 자는, 진작 짐을 꾸러 떠났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대산맥으로 온 그들이지만, 역설적으로 지금 그들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바깥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고, 죽을 용기조차 없어 계속 살아갈 뿐. 그 지긋지긋한 하루가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그게 오기 전까진 말이다.


하늘에 태양이 잡아먹히고, 일대가 어둠에 잠겼을 때, 사람들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괴물이 찾아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몬스터가 올 때마다 향하는 대피소는, 다른 날보다 더 보잘것없어 보였다. 도시락 안에 든 밥풀의 기분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대피소의 지붕이 날아갔다. 그 몬스터의 입김에.


자기 딴에는, 안에 있는 밥풀들이 상하지 않게 조심한 모양이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대피소 천장보다 더 큰 눈동자가 그들을 내려다봤다.


그렇게 그녀는 그와 만났다.



˟ ˟ ˟ ˟ ˟



마을의 기억은 대체로 비슷했다. 죽지 못해 날아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날아온 어스름 드래곤. 바라는 건 뭐든 이룰 수 있는 태고의 괴물이 요구한 건 한 여인이었다. 자신의 연인 환생이라는.


마을의 대응은 조금씩 달랐다. 예물이라며 가져온, 어차피 쓰지도 못할 드래곤의 보물을 탐내 여인을 떠넘긴 자들도 있고, 어려운 형편에 입 하나를 줄일 기회를 잡은 마을도 있었다. 걔 중에는 예물 대신 마을을 보호해 달라고 요구한 곳도 있다.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는 같았다. 드래곤은 새로운 여인을 신부로 맞았다.


“찾아낸 마을만 해도 이런데. 못 찾거나 사라진 마을도 포함하면 대체 몇 명의 신부를 맞이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군.”

“드래곤도 하렘 습성이 있어?”


“···개체별로 차이가 있으니 그런 괴짜가 없다고 장담은 못 하겠군. 일반적으론 그런 습성은 없고, 하렘 습성이 있는 괴짜라면 한 명만 데려가는 것도 이해가 안 되는군.”


겨울이 오기 전에도 추웠던 이곳은 시체가 좀처럼 부패하지 않는다. 조사했던 시체 중에는 천년 넘게 남아있던 것도 있다. 그 긴 기간 동안 드래곤은 한 번의 원정에 단 한 명의 여성만 데려갔다.


정말 어지간히 괴짜가 아닌 이상, 이 드래곤은 정말로 연인의 환생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을 데려갔을 가능성이 크다.


“내가 기억을 읽었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이 진짜일 줄은 상상도 못 했군.”

“로맨틱하고 좋은데?”

“인간과 이종족간의 사랑은 환상일세.”


“그래서, 드래곤은 어디로 있지?”

“···북쪽에 있을 것이네.”


여기서 드래곤의 위치에 대한 정보는 얻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두신호귀는 어스름 드래곤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었다.


단순하게 소거법이다. 아브리엘이 알던 곳과 지금까지 조사한 곳을 종합해보면, 놈이 있을 만한 곳은 북쪽밖에 남지 않는다.


북쪽은 흑설사도가 지배하는 땅이다.


“이 앞에는 흑설사도들의 요새가 있을 텐데.”

“돌아갈 수 있나?”


“사흘 정도 헤매면 가능하겠지.”

“그럼 돌파한다.”


“잠깐만. 좀 작다고 해도 요새다.”

“돌파한다고 했다.”



˟ ˟ ˟ ˟ ˟



약 300년 전. 한 미치광이가 다른 차원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고, 그때 넘어왔다고 전해지는 자들.


다른 차원에서 왔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놈들은 검은 눈을 몸에 두르고 다녔다.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도 그들 곁에만 오면 검게 물든다.


언데드라 고통도 느끼지 않고, 지치지도 않으며, 쉴 생각 따윈 없고, 상처 입은 적을 언데드로 감염시킨다.


말만 들으면 주변의 모든 생명체를 언데드로 바꿔버릴 성가신 자들 같지만, 그렇게까지 번성하진 못했다.


감염 능력은 자신보다 강한 적에겐 통하지 않고, 흑설사도로 변한다고 없던 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흑설사도가 끌어들일 수 있는 건 주로 인간이었고, 인간 정도는 박살 낼 몬스터가, 대산맥에는 지천으로 널렸다.


그래도 변한 자들끼리 제대로 연계를 갖추면, 오합지졸인 인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해지는 건 사실이기에, 적지 않은 몬스터를 퇴치하며 대산맥에 자리 잡았다.


요새로 향하며, 아브리엘은 놈들과 싸울 방법을 셀 수도 없이 많이 궁리했다. 요새를 관찰하는데 시간을 쓰더라도 사흘을 헤매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런 그의 계획은 쓸데가 없었다. 더욱이 요행으로, 목표로 하고 있던 어스름 드래곤도 포착할 수 있었다. 대산맥을 헤맨 지 3개월만이었다.


안 좋은 점은,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 다다.


케일리는 드래곤을 본 적 없었다. 이야기를 들은 것도 유일란이 해준 이야기가 전부였다. 보물과 여자를 좋아한다느니, 집보다 크다느니, 지상 최강의 생물이라느니.


케일리에겐 유감스러운 일이겠지만, 유일란의 말엔 진실이 적었다. 민간 이야기와는 달리 드래곤은 보물이나 여자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만큼이나 강한데, 약점조차도 없다는 걸 인정하기 싫은 약자들의 환상이 아니었을까.


집보다 크다는 말과 지상 최강의 생물이라는 말은 틀린 건 아니었다. 그녀가 살았던 도시보다 크고, 옆에 있는 산보다도 컸지만.


배경이 통째로 다가오는 비현실적인 광경 후에, 시간이 멈춘 듯 일대가 조용해지고, 곧 가공할만한 충격이 그들을 덮쳤다. 한 생명체가 하늘에서 내려와 땅을 디뎠을 뿐인데.


본래 산이었던 곳은 드래곤이 내려앉은 곳에서 자리를 비켰고, 깊이 파진 구덩이 때문에 주변이 산처럼 보였다. 그 중심에 있던 요새는 진작 부서졌고, 생존자도 몇 안 남았지만, 놈은 단 한 놈도 살려둘 생각이 없다는 듯 사방에 얼음 숨결을 뿜어댔다.


움직일 때마다 대지가 비명을 질렀다. 숨결은 폭풍이요. 분노는 천둥일지니.

만약 재앙에 형태가 있다면, 분명 드래곤의 형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왜 흑설사도를 못 봤는지 알 것도 같군.”

“저 드래곤이 그 순정 드래곤이야?”

“드래곤이 자주 태어나는 개체도 아니고. 그럴 가능성이 높지.”


“···저거랑 싸워야 돼?”

“아니.”

“절대 싸워선 안 되지.”


추위가 아닌 것에서 오는 떨림을 케일리는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그들이 있는 위치에선, 엘프와 정수의 뛰어난 시력으로도, 요새는 보이지도 않을 거리다. 그럼에도 저 괴물이 뿜어대는 마력의 파동이 피부에 전해졌다.


원근법 따위 씹어 먹는, 문자 그대로 산만한 덩치에서 나오는 물리력, 이제는 유실된 마법에 근접한 마술, 태초부터 이어진 신비.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치트인 능력을 드래곤은 모두 가지고 있다. 육해공을 가리지 않는 지상 최강의 생명체. 그게 바로 드래곤이다.


저런 괴물과는 싸운다는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본래도 싸울 생각은 아니었다만···.”


사실 드래곤의 강점은 저 무시무시한 전투력이 아니라 지혜에 있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힘을 알고, 과한 피해가 나지 않도록 스스로를 절제한다. 자신보다 작은 요새 하나 부수자고 전력을 다하는 머저리가 아니란 말이다.


드래곤이 저런 행동을 하는 건 저 요새에 어지간히 깊은 원한이 있거나, 그런 걸 생각할 수 없는 개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기에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도 대화를 시도해 볼 텐가?”

“···아니. 일단 놈이 서식하고 있을 곳을 조사한다. 대화는 최후의 보루로 하지.”


아브리엘조차도 저런 상태의 드래곤과 대화할 용기는 없었다. 설사 용감한 유일란이 살아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 ˟ ˟ ˟



“오늘은 더 못 움직이겠군.”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날씨는 더욱 변덕이 심해졌다. 오늘은 햇살이 나겠다고 말한 지 5분도 되지 않았는데, 어느 새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곧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폭설이 쏟아졌다.


추위야 괜찮지만, 이렇게 시야가 나빠선 움직여봐야 길만 잃을 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아예 나무뿌리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뿌리를 정리하자, 성인 남자 다섯 명은 들어갈 넒은 공간이 나왔다. 안에서 불만 피우면 충분히 쉴만한 공간이 나온다.


“이런 날에도 훈련을 해야 해요?”

“눈이 오면 밥을 안 먹나?”


반박할 수 없는 아브리엘의 말에 케일리도 무구를 들었다. 놀과의 싸움으로 잔뜩 구한 여분의 무구 중에서 그녀는 중검과 소검을 집어 들었다. 그 쌍검을 든 놀의 싸움법을 떠올려보려고 애썼지만, 큰 도움은 안 되었다.


“쌍검을 가르쳐 줄 수 없나요?”

“···갑자기 왜 그런 것에 관심을 가졌지?”


“멋있잖아요?”

“거울 보며 적과 싸울 셈인가.”


양 방향 공격, 빠른 연타 등 쌍검이 가지는 장점은 환상. 무기가 서로 공격을 방해해서 경로도 제한적이고, 힘을 제대로 실을 수도 없다.


“훈련을 하면 되잖아요?”

“그 시간에 하나에 집중하는 게 더 낫다.”


단적으로 말해서, 두 개의 무기로 무쌍이 가능한 달인이라면, 하나만 쓸 땐 그보다 더한 괴물일 것이다.


그래도 아브리엘은 이번에 쌍검술을 가르치기로 했다. 양 손에 하나씩 무기를 든 자가 진정 무서운 이유는, 그런 적을 상대로 싸운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그녀가 일방적으로 밀린 이유기도 하다. 알아두면 후에 도움이 될 것이다.


쌍검을 가르쳐준다는 말에 그녀는 냅다 양손에 하나씩 장검을 들었다. 그게 멋있으니까. 아브리엘은 말없이 할버드로 그녀의 장검을 쳐 날렸다.


“제대로 쥐고 있지도 못할 무기는 방해밖에 안 된다.”

“스승님이 너무 세게 쳐서 그래요.”

“적이 네 사정을 봐가며 싸워줄 것 같나.”


아브리엘이 당연한 사실을 지적했다. 게다가, 몬스터 중에는 아브리엘보다 더 괴력을 발휘하는 적도 많다.


“···상대법을 배우는 거라고 했잖아요. 만약 적이 장검 두 자루를 든 적이 나타나면 어떻게 하죠?”

“인간이 아니라면 도망쳐라.”


사실 진짜 무시무시한 강적은, 무구 따위 들지 않는 적이라고 두신호귀가 끼어들었다. 칼싸움, 주먹다짐. 언제부터 이딴 걸 잘하는 게 강한 것이라는 편견이 생겼는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불멸자의 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20화 21.06.03 7 0 11쪽
20 19화 21.05.27 8 0 12쪽
19 18화 21.05.20 5 0 12쪽
18 17화 21.04.29 9 0 12쪽
17 16화 21.04.27 11 0 11쪽
16 15화 21.04.15 14 0 11쪽
15 14화 21.04.13 34 0 12쪽
» 13화 21.04.08 9 0 11쪽
13 12화 21.04.06 19 0 12쪽
12 11화 21.04.03 26 0 16쪽
11 10화 21.04.01 24 0 12쪽
10 9화 21.03.30 24 0 11쪽
9 8화 21.03.27 26 0 13쪽
8 7화 21.03.25 29 0 15쪽
7 6화 21.03.23 25 0 13쪽
6 5화 21.03.20 24 0 13쪽
5 4화 21.03.18 19 0 13쪽
4 3화 21.03.16 31 0 13쪽
3 2화 21.03.13 33 0 11쪽
2 1화 21.03.11 54 0 12쪽
1 프롤로그 21.03.08 114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psw5058'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