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불멸자의 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연재 주기
psw5058
작품등록일 :
2021.03.08 16:34
최근연재일 :
2021.06.03 20:15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513
추천수 :
0
글자수 :
117,111

작성
21.04.13 23:19
조회
31
추천
0
글자
12쪽

14화

DUMMY

“두신호귀.”

“또 궁금한 게 생긴 모양이군.”


“어떻게 알았어?”

“나를 찾는 이유야 뻔하지.”


자신을 찾는 사람 중에 안 그런 자가 없었다며 두신호귀가 웃었다. 그는 우스갯소리로 말했지만, 정수의 현실이기도 했다.


인간은 절망에 빠질 때야 신을 찾고, 도움이 필요할 때야 정수를 찾는다.


“사랑이란 뭐야?”

“···너무 포괄적이군.”


누군가에겐 애정의 이름일 것이요. 누군가에겐 서로를 묶는 목줄일 것이요. 누군가에겐 그리움의 증거일 것이다. 하나로 정의하기에 사랑은 너무 다양했다.


“왜 그런 걸 묻는 거지?”

“그냥. 궁금해서.”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녀는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이 없었다. 다른 자들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기도 전에 마을 밖으로 쫓겨났고, 그 후로 대화다운 대화를 한 대상도 손에 꼽는다.


그녀는 사랑을 글로 배울 수밖에 없었고, 그 글조차도 마을 사람들이 가져다준 불쏘시개들이었다.


그 소설들에서의 사랑은··· 작가들이 연애를 안 해보고 글을 쓴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게 할 수준에 불과했다. 특히 이종족의 사랑은, 이런 대단한 존재가 주인공을 사랑한다는, 주인공이 뛰어나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명서였다.


케일리는 고작 그런 게 사랑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확실히 인간과 이종족의 사랑은 환상이긴 하네.”

“이종족간의 사랑을 엄청나게 부정하네.”

“정정하게. 정확하게는 인간과 이종족간의 사랑을 부정하는 거야.”


“왜? 트롤과 결혼한 인간도 있었다는데.”

“인간이 이종족에게 그렇게 관대하다면, 고작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진 않겠지.”


“그렇게 부정해도 이번 드래곤은 인간 짝을 구했잖아.”

“사실 그게 제일 이상한 것일세.”


“뭐가? 인간 짝을 구한 게?”

“인간 짝을 적절하게 구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일세.”


케일리는 여전히 영문을 몰랐다. 두신호귀는 또다시 동행자의 무신경함이 부러웠다.


“우리가 조사했던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이 1000년 전 것이었네. 찾진 못했지만 어쩌면 나나 아브리엘이 탄생하기 전 사람도 있었을지 모르지.”


“잠깐 딴 이야기해서 미안한데. 두신호귀는 몇 살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실례되는 질문을 하는군.”


세는 것 따위 잊어버렸지만 대충 천년은 넘게 살고 있다. 그다지 중요한 사실은 아니지만.


“정보통인 나도 환생에 대해선 알지 못하네. 하지만 말이야. 그 긴 기간 동안 인간으로 태어나서 드래곤과 만나는 게, 얼마나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나?”


“···어. 인간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로도 만났을 수 있잖아?”

“그럼 공교롭게도 우리가 조사했을 때만 인간이었다는 말이군. 이런 우연이 있나.”


인간의 종교에선 죄를 지으면 인간으로 태어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대체 얼마나 오만한 건지.


“애초에 드래곤이 사랑을 한다는 것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드래곤은 결혼 안 해?”

“드래곤은 자연발생체일세.”


드래곤들은 정령처럼, 환경이 갖추어졌을 때 지성을 갖고 세상에 태어난다. 누구보다 공정해야 할 그들이, 누군가를 특별시하는 감정을 가진다는 건, 스스로에서 멀어지는 행위다.


두신호귀는 문득 가시나무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없이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녔지만, 노래를 부르면 가시나무로 변해버린다는 새.


어느 날 그들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춰 버렸다. 가시나무 숲만을 남기고.


도대체 누가 가시나무 새에게.


“도대체 누가 드래곤에게 사랑을 가르쳤을까?”



˟ ˟ ˟ ˟ ˟



드래곤 최초 조우 후 다시 한 달. 그들은 북부의 거대 호수에 도착했다. 인간에겐 당연히 알려지지 않은 지도 밖의 땅이었고, 아브리엘도 여기까지 온 적은 없었다.


세상의 북쪽 끝이라 불리는 대산맥. 그 대산맥의 북쪽 끝에는 거대한 호수가 있었다. 그 거대한 드래곤도 들어가서 목욕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세상을 꽉 채울 것같이 넓은 호수. 그 호수의 중앙에는 드래곤의 거처로 추정되는 얼음 성이 있고, 절벽 아래에 바다와 이어졌다.


“절경이네.”

“호수가 얼지 않았다면 폭포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아깝군.”

“지금도 아주 멋진걸.”


이 추위에도 얼지 않고 파도치는 바다와 마침 하늘이 개어 반짝이는 눈 덮인 얼음 호수는 환상적인 광경을 자아냈다. 케일리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몇 달간 산맥을 헤매며 한 고생을 어느 정도 보답 받은 것 같았다. 세상을 구경하고 싶어 하는 나시프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이 바다 너머엔 뭐가 있어?”

“나도 모르네.”


“몰라?”

“날개가 달린 자도 이 너머에 뭐가 있는지는 알 수 없을 걸세.”


여기까지 도착한 자들은 당연하다는 듯 이 너머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해 했다. 하지만 이 지평선을 넘어간 자는 없다. 하늘로든 바다로든, 넘어가려고 하면 벽이라도 있는 듯 가로막히고, 시력을 강화하는 마술을 써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무슨 마술이라도 사용된 거야?”

“그렇다고 추측은 되네만···.”


뭔가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게 뭔지는 누구도 밝혀내지 못했다. 지평선 너머는 다른 자들의 출입을 거부하고 있다.


세상의 많은 부분이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쓸···.”

“또 아브리엘이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하라고 말하기 전에 끝내는 게 좋겠군.”


아브리엘의 표정이 보기 좋게 일그러뜨렸다. 그 모습이 너무 웃겼던 케일리는 한참을 웃었다.


그들과 함께한 시간은 1년도 안 된다. 유일란을 기다리며 성인식을 치른 시간에 비하면 턱없이 짧은데, 그동안 알게 된 건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았다. 성인식을 치르며 겪었던 일상은 벌써 흐릿해지고 있다.


그래도 그 소중했던 기억을 잊지는 말자.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이제 어떻게 해?”

“이제 다른 단서가 안 보이니, 얼음 성채 안으로 들어가 봐야겠지.”


“드래곤이 있는 거 아냐?”

“없길 빌어야겠지.”


“놈이 미치기 전에 무슨 마술을 걸어놨을지 모르니 조심해라. 물건 같은 것도 함부로 만지지 말고.”

“알겠어요.”



˟ ˟ ˟ ˟ ˟



“···리. ···일···.”

“비···. 빨···.”


“···무슨 일이에요?”


정수들의 시선 속에서 케일리는 몸을 일으켰다. 티격태격한 두 정수가 나란히, 같은 행동을 하는 건 드문 일이다. 그 행동에 담긴 감정이 걱정인 건 더더욱 드문 일이고.


“케일리. 괜찮나?”

“왜요? 뭐 때문에 그래요?”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나?”


두신호귀의 말에 케일리는 머리가 쑤실 듯이 아팠다. 뭐였지? 무슨 일이 있었지?


“잘 모르겠어요.”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기억해내야 한다.”


기억해내선 안 돼.


“···잘 모르겠어요.”


본능을 거부하고 어떻게든 기억을 떠올리려고 했지만, 머리는 여전히 그녀의 요구를 거부했다.


“케일리. 조금 전에 성공한 방법을 한 번 더 시도해보겠네. 과거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거기서부터 조금씩 최근의 기억으로 거슬러 오는 거야.”

“···네 엉덩이가 제일 먼저 떠올라.”


얼음 성채로 들어올 때, 두신호귀는 다른 때보다 훨씬 꼼꼼하게 마술을 확인했다. 그 과정을 뒤에서 지켜봤으니, 커다란 엉덩이가 뇌리에 박힐 수밖에 없었다.


“···쓸데없는 걸 기억했군. 그다음은?”

“네가 뼈다귀 탈 것을 꺼냈지.”


거대한 얼음 성채는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일이었다. 굳게 닫힌 성문을 열 수도 없고 창문은 너무 높이 있었다. 거기에 성문에서 첫 번째 창문을 발견할 때까지 5시간이나 걸어야 했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는지 두신호귀가 커다란 사마귀 형태의 해골 몬스터를 꺼냈다. 벽에 손톱과 발톱을 박아 넣으며 그들은 마침내 성안으로 들어왔다.


“그다음은?”

“보물들의 산을 지나쳤어.”


그들이 몇 시간 동안 걸으며 봤던 모든 곳에 보물이 널려 있었다. 검, 창, 활, 도끼나 갑옷 같은 무구는 말할 것도 없고, 마술 서적이나 신비한 재료, 희귀한 광석까지. 바깥에 풀리면 눈이 뒤집어져서 쫓을 사람이 산처럼 있을 것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이 많은 것들 안에 불사조의 갑옷이 있냐고 내가 물어봤던 거 같은데.”

“내가, 엘프와 정수가 있으니 늙어 죽기 전에는 찾을 수 있겠다 그랬지.”

“맞아. 그랬어.”


하나쯤 가져가도 모르지 않을까 말을 했던 기억도 났다. 드래곤의 거처라 무슨 마술을 걸어놨을지 모르니 시도할 순 없었지만 말이다.


“그다음에는?”

“···계단을 발견했어요.”


그 사실을 기억하자마자 다시금 머리가 쑤셨다. 친절하기 짝이 없는 알람 덕분에, 그녀는 거의 다 기억해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분은 그 계단이 있다는 걸 몰랐죠?”

“네가 계단을 내려갈 땐 바닥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 뒤로 우리들도 시도해봤지만 들어갈 수는 없었네.”


“네. 그래서 두 분은 남아계시고 제가 내려갔었죠.”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후의 일은 아무리 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계단으로 내려가고 나서, 제가 의식을 잃었나요?”

“···그래. 케일리. 결정적인 것 하나만 제외하면 다 기억해냈네.”


“뭔데?”

“이게 지금 세 번째일세. 자네는 벌써 2번 계단으로 내려갔다가 기억을 잃었어.”



˟ ˟ ˟ ˟ ˟



“아무것도 기억 안 나네요.”


두신호귀의 말을 들었는데도 기억나는 건 없었다. 마술 저항력이 높은 엘프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수단은 적다. 고등 정신조작 마술에 걸렸거나, 기억조차도 묶어둘 수 있는 고등 공간조작 마술이 저 계단에 걸려 있거나.


발견을 제한하는 마술까지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위험한 공간이다.


“이 이상 저길 들어가는 건 그만둬라.”

“내 생각도 그러네. 뭔가 있을 것 같기야 하지만, 저런 장소를 계속 들어갈 필요는 없네.”


“하지만 못 찾았잖아요. 이제 단서라곤 저 계단뿐인데.”


사실 그들은 꽤 오랫동안 얼음 성채 내부를 뒤졌다. 온갖 보물들이 가득한 곳이었지만, 그들이 원하는 불사조의 갑옷은 결국 찾아낼 수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단서가 될 만한 곳은 저 계단 아래뿐이다.


드래곤이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계속 여기서 시간 낭비를 할 순 없다.


“제 검은 어디에 있어요?”

“처음에 계단을 내려갔을 때 잃어버렸네. 이전에 준 예비 무구도 그렇고.”

“쯧.”


가볍게 혀를 찬 그녀는 예비용 무구 중에서 대충 손에 익는 걸 새로 꺼냈다. 놀들과 싸운 이후, 예비 무구 따윈 넘쳐났다.


“이걸 가져가라.”

“뭔데요?”

“야명석이다.”


야명석은 이름 그대로 밤에 빛을 내는 돌이다. 크면 횃불보다 훨씬 밝은 빛을 낸다. 밤눈이 좋은 그들이 들고 다닐 물건은 당연히 아니다. 계단 아래가 어둡다는 말을 들었기에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 주변에서 슬쩍 했다.


“진짜로 또 내려갈 거냐?”

“걱정해주시는 건가요? 스승님.”

“당연하지.”


생각지도 않았던 격한 호의에 케일리가 웃었다. 아브리엘은 결코 좋은 스승은 아니었지만, 그 이상으로 케일리 자신도 그렇게 좋은 제자가 아니었다.


아브리엘의 모습이, 자신의 가진 스승에 대한 환상에 미치지 못해서, 그의 가르침마저 형편없다고 거부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아까 들어가기 전에도 이 대화를 한 건 알고 있나?”

“에?”


“정작 들어가 놓고 무섭다고 울었지.”

“거짓말!”

“그래. 거짓말일세.”


거짓말이라고 말한 것도 똑같았다며 두신호귀가 웃었다. 어린 엘프는 조금씩 두 정수 사이에 안착하고 있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작가의말

조금 더 마음에 드는 전개가 떠올라 토요일 쉬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불멸자의 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1 20화 21.06.03 7 0 11쪽
20 19화 21.05.27 5 0 12쪽
19 18화 21.05.20 5 0 12쪽
18 17화 21.04.29 7 0 12쪽
17 16화 21.04.27 9 0 11쪽
16 15화 21.04.15 13 0 11쪽
» 14화 21.04.13 32 0 12쪽
14 13화 21.04.08 8 0 11쪽
13 12화 21.04.06 17 0 12쪽
12 11화 21.04.03 25 0 16쪽
11 10화 21.04.01 24 0 12쪽
10 9화 21.03.30 22 0 11쪽
9 8화 21.03.27 25 0 13쪽
8 7화 21.03.25 24 0 15쪽
7 6화 21.03.23 23 0 13쪽
6 5화 21.03.20 23 0 13쪽
5 4화 21.03.18 18 0 13쪽
4 3화 21.03.16 31 0 13쪽
3 2화 21.03.13 32 0 11쪽
2 1화 21.03.11 52 0 12쪽
1 프롤로그 21.03.08 112 0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psw5058'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