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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자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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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w5058
작품등록일 :
2021.03.0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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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5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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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DUMMY

처음 드래곤이 날아왔던 날. 살아갈 마음도 없는 주제에 죽는 것은 무서워서 뒤로 물러나는 자들 사이에 그녀는 홀로 우뚝하니 서 있었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하게 만들었는지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았다. 허나 하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겐 무섭게 보일 뿐인 날개가, 비늘이, 포효가, 단지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칠 뿐인 무미건조한 일상과 함께 자신의 마음마저 앗아갔음을.


그 드래곤이 자신과 함께 가자고 했을 때, 그녀는 가족의 만류조차도 무시하고 그와 함께 갔다. 환생한 연인을 찾아왔다는, 어쩌면 지어냈을지도 모를 진부한 이야기에도 마음이 설렜다.


쐐기를 박은 건 드래곤의 눈이었다. 혹시 거절이라도 하면 어쩌나 하며, 집보다 커다란 눈을 또랑또랑하게 뜬 모습은, 커다란 강아지처럼 순수해 보였다.


“···름.”

“뭐라고요?”


“이름을 가르쳐 주세요.”

“에타리안”


딱히 이름이 없었던 어스름드래곤은 그 자리에서 이름을 만들어냈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름을 묻는 드래곤에게, 자신도 이름을 알려주었다.


들려준 이름이, 자신의 이름이 뭐였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 ˟ ˟ ˟ ˟



에타리안의 등에 타 그의 거처인 얼음 성채까지 순식간에 날아왔다. 드래곤의 거처답게 얼음 성채는 어떻게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농담이 아니고 화장실을 가는데 10시간 이상 걸어가야 하니 말이다. 다행히 곳곳에 설치된 포탈과 그가 준비해준 탈 것 덕분에 그렇게 많이 걸어 다니진 않아도 되었다.


성에 온 며칠간은 다른 것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쓸 일이 없다곤 하지만 에타리안의 덩치만큼 쌓인 보물들에 한눈팔고, 성채 곳곳에 설치된 포탈의 사용법과 위치를 익히기 바빴다.


이윽고 얼음 성채 내부의 생활에 익숙해졌을 무렵. 그녀는 애써 머리 한구석에 밀어놨던 의문을 그에게 던졌다.


생각해보면 이상했다. 여기는 그의 거처. 인간에겐 한없이 넓어도 드래곤에겐 적당한, 오히려 조금은 좁은 거처다. 이런 거처에 포탈이 왜 있을까?


“레이든이 쓰던 거야.”

“누구야?”

“네 전 환생녀.”


에타리안의 말에 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전 환생녀. 전 환생녀···.


“그 사람은 죽었어?”

“물론이지.”


사람이 아닌 드래곤인데도,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걸 묻느냐는 에타리안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하긴. 자신이 환생했는데, 환생 전 인물이 살아있다는 것도 이상했다.


“먼저 말해두지만 난 그 사람과는 달라.”

“···알고 있어.”


정말로 알고 있는 거냐고 소리쳐 물을 필요는 없었다. 눈가에 드리운 아련한 그리움이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건 너무나 명확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꽉 다물었다. 생애 처음으로 느낀 질투는, 굉장히 기분 나빴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호승심이 들끓었다.


자신만을 바라보게 만들고 싶다.


이전 환생녀도, 그리고 이후의 환생녀도 품게 될 마음을 그녀는 가슴 속에 품었다.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은 누구였더라?



˟ ˟ ˟ ˟ ˟



“정기 회의에 참석해보고 싶다고?”

“응.”


외출 준비를 위해 바닥에 누워 있는 에타리안의 옆에서 그녀가 말했다. 그의 비늘을 얼음덩어리들이 손질하고 있었다. 마술로 할 수 있는 일을 너무 많이 봤기에, 얼음덩어리들이 움직이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거라고 했잖아. 같이 가면 안 될까?”

“안 될 건 없지만···.”


등 쪽을 다 관리했는지 에타리안이 날아올라서 바닥을 등지고 누웠다. 수많은 얼음덩어리들이 달려들었다. 그녀가 보기엔 굳이 관리가 필요한가 싶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달랐다.


“지루할 거야.”

“지루해?”


“다들 수명이랑은 담쌓고 사는 자들이라. 인간의 관점으론 이해가 되지 않을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데?”


“지난번에 한 놈이 회의에 늦게 참석했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지만 알고 보니 2년 늦은 거더군.”

“···2년 지각했다고?”


그들의 시간 감각이 인간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도 예전 환생자인 아카리아가 말해줘서 안 것이다. 그리고 오랜 경험을 통해, 이런 말은 안 해주는 게 더 낫다는 것도 알았다.


“이번에는 가능하면 늦지 말아 달라고 말은 해놨어. 다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니.”

“그럼 더더욱 나를 데려가야지.”


너는 설마 나를 2년이나 홀몸으로 둘 생각이었냐며 그를 타박했다. 그녀의 입장에선 여기나 거기나 다를 바는 없을 것이다. 그가 없다면 여기도 지루하긴 마찬가지다.


“아~. 2년간이나 그이가 없다니. 마을로 돌아가서 바람 피워버릴 거야.”

“···미안해. 내 생각이 짧았어.”


에타리안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자 얼음덩어리들이 그녀의 외출복을 들고 왔다. 어떤 옷을 입고 나가야 그에게 어울리는 여자처럼 보일지 행복한 고민을 하던 여성은 누구였더라?



˟ ˟ ˟ ˟ ˟



“아니야. 이게 아니야! 이런 게 아니라고!”


얼음덩어리들이 가져온 화려한 옷가지들을 그녀가 쳐냈다. 있는 힘껏 짜증을 담아 손을 휘둘렀지만 원하는 바를 이루진 못했다. 튼튼한 얼음덩어리들에게 부딪쳐서 손만 아팠을 뿐이다.


“왜 그래?”

“에타리안. 이것보다 예쁜 옷을 가져다줘. 장신구도. 향수도 당연히 필요해.”


그녀가 이렇게 신경질적으로 변한 건 지난 정기 회의에 같이 갔다 왔을 때였다. 카르산의 마기스트라, 인간으로 변한 드래곤, 수발을 들기 위해 따라온 엘프. 그 외의 다른 종족들.


그들은 에타리안이 배우자를 데려온 것도, 그 배우자가 인간이라는 것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이전에도 그랬다. 오히려 그가 그런 자를 데려오자 그런 자들을 데려오는 게 유행이 되었을 정도다.


하지만 그들이 뭐라고 하지 않았다고, 그녀의 열등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작은 손짓에서조차 드러나는 위엄과 품위. 고작 말 한마디에 섞인 재치. 빼어난 외모는 그녀를 한없이 위축시켰다. 그녀는 자신이 저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게 무엇 하나 없었다. 차라리 그들이 그녀를 깔봤다면 반발심이라도 생길 텐데,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눈으로 배운 그들의 행동을 따라 해 봤지만, 오랜 세월 몸으로 익힌 기술을 고작 몇 시간 만에 따라 할 수는 없었다. 거울을 통해 본 자신의 모습은, 스스로 보기에도 인간이 되고자 애쓰는 원숭이 같았다.


에타리안에게 알려달라고 해봤지만, 천하의 드래곤도 그 문제만은 해결할 수 없었다. 애초에 뭘 알려 달라는지 알려줘야 그도 가르쳐 줄 것이 아닌가.


하다못해 외모만이라도 비슷하게 되고자 그녀는 스스로를 가꾸기 시작했다. 그녀에겐 다행스럽게도 드래곤의 거처엔 화려한 옷이 잔뜩 있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그녀는 인간이었다.


시간은 그녀에게서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젊음을 앗아갔다. 윤기가 사라지고 주름지기 시작한 피부.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는 육신. 그렇게 그녀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녀는 계속 다른 옷을, 장신구를 그에게 요구했다. 에타리안은 당연히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요구가 계속된 어느 날. 그가 말했다.


“대체 그런 게 어디에 있어?”

“뭐?”


“이거보다 더 예쁜 옷, 장신구가 어디에 있어? 말만 하면 구해올게.”

“어···.”


불만을 던지듯 나온 에타리안의 말에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주지 못했다. 당연했다. 사람의 욕망과는 달리, 세상의 물질은 엄연히 한계가 있었다.


에타리안도 에타리안 나름대로 애썼다. 드워프나 엘프에게 새로운 옷을 의뢰하기도 하고, 동료 드래곤, 카르산의 인물들에게 도움을 청해 물건을 가져왔다. 당장 그의 거처에 있는 물건도,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최상품들이다.


그 이상 좋은 물건 따위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아니. 애초에 이 물건들이 다른 물건보다 예쁘고 화려하다는 걸 구분할 눈이 그녀에게 있긴 할까.


드래곤이 자주 자리를 비우게 되자 서로에 대한 이해도 줄어들었다. 만날 때마다 요구만 내뱉었으니 마음을 내뱉을 시간이 없었다.


그나 그녀나, 이런 상황을 바라진 않았을 텐데.


“카르시안은 이런 말 안 했는데.”


결국 그는 금기나 마찬가지인, 이전 환생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삐져서 얼음 성채를 뛰쳐나갔다. 드래곤답지 않게 인간적인 감성을 지닌 그도 삐쳐서, 화가 풀릴 때까지, 1000년간 환생자를 찾지 않았다.


시체조차도 찾지 못했던 그녀는 누구였을까?



˟ ˟ ˟ ˟ ˟



“여긴 어디지?”


어느 날. 그녀는 알 수 없는 장소에서 눈을 떴다. 보이는 거라곤 눈앞의 계단뿐인 이상한 장소.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몰랐지만, 계단 위는 익숙한 얼음 성채였다. 이런 곳에 계단이 있었는지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 어스름 드래곤이 나타났다.


“에티!”


몸길이만 수 KM나 되는 드래곤이 날아오는 모습은 언제 봐도 장관이었다. 날기만 해도 여파가 보통이 아니기에 항상 그녀가 자리를 피했을 때 왔는데, 지금은 무슨 마술이라도 썼는지 그녀에게 피해가 없었다.


“이런 게 있으면 진작 써줬으면 좋았을 텐데.”

“꽉 잡아.”


제자리 감속을 반복하며 그는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녀가 아니라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사람을 위해서.


“에티. 있잖아. 본래 여기에 계단이···?”

“여기가 네가 사는 곳이야?”

“그래. 조심해서 내려.”


항상 그녀의 수발을 들던 얼음덩어리들이 에타리안을 타고 있는 그에게 다가왔다. 새로운 여성의 등장에 그녀는 몸에 소름이 돋았다.


“누구야? 이 여자는?”


항상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줬던 태초의 드래곤이, 생전 처음으로 그녀의 말을 무시했다. 말만 무시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아예 그녀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 사람은 죽었어?”

“물론이지.”


“난 안 죽었다고!!!!”


레이든은, 아카리아는, 카르시안은, 이해를 거부했다. 자신이 죽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환생이 왔다는 사실을.


에타리안에게 소리치기도 하고, 새로 온 그녀를 저주하기도 하고, 얼음 성채에서 빠져나가려고 해본 적도 있었지만, 어느 것 하나 성공한 게 없었다. 그녀들은 한없이 자신의 일상과 닮은, 그들의 일상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 채.


누군가의 마술에 의해 고정된 혼의 흔적들은, 그렇게 부의 감정만 쌓다가 하나하나 소멸했다. 그렇게 쌓인 부의 감정은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에겐 불행하게도 시간은 힘이 있었다.


10년, 100년, 1000년, 2000년.


누군가의 악의에 의해 셀 수도 없이 오랜 시간 쌓아 올려진 부의 감정은, 이제 저주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그것들은 어느 날, 한 태초의 생명체의 이성을 없애버리고, 언제까지 뛸 심장 박동을 멈춰버렸다.


늘 있었던 고요한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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