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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자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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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w5058
작품등록일 :
2021.03.0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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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2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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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DUMMY

조금 전 충격에 빙판이 부서졌는지, 얼음 성채 전체가 조금씩 흔들렸다. 어디서 들어온 건지 몰라도 호숫물이 얼음 성채에 차올랐다. 사방에 쌓인 보물들이 조금씩 흔들렸다.


날아오는 눈먼 보물에 잘못 맞았다간 크게 다칠지도 모른다. 물론 당장 저기 있는 산만한 위협과는 비교할 수도 없지만.


“뛰어라! 어디로든 몸을 숨겨!”


그들은 한없이 넓게만 느껴지는 홀을 뛰었다. 보물과 위에서 떨어진 잔해 덕분에, 몸을 숨길 곳은 많았다.


“두신호귀! 드래곤이 가진 능력에 대해서 아는 게 있으면 말해라! 불확실한 정보도 상관없다!”

“전능한 신을 떠올리게. 그게 드래곤이 할 수 있는 거니까.”


“뭐야! 그게!”

“틀린 말은 안 했···.”


두신호귀의 한 발짝 옆을 브레스가 쓸고 지나갔다. 검, 방패, 갑옷, 금화들이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드래곤에겐 손톱만 한 오차였지만, 그 오차가 두신호귀의 목숨을 구했다. 놈이 조금만 조준을 잘했다면 저 얼음 동상에 정수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목숨도, 이성도 날아간 드래곤이었지만, 세로로 가하는 공격이 썩 효과적이지 않다는 걸 이해하고 가로로 브레스를 뿜었다. 한곳으로 뭉치라는 아브리엘의 외침에 둘은 곧 중앙으로 모였고, 다시 늑대로 변한 아브리엘이 커다란 파편을 물어다 그들 앞에 놓았다.


아브리엘의 늑대 형태는 인간이라면 고개를 한참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크다. 하지만 그런 늑대 형태조차 드래곤의 앞발보다 작았다. 이 체급 차이는 일행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불합리하게 다가왔다.


브레스가 잠깐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 가공할 물리력에 파편이 뒤로 밀려나 그들을 깔아뭉갤 뻔했다. 아브리엘이 필사적으로 파편을 밀지 않았다면 실제로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저 드래곤이 성한 상태가 아닌 건 다행이군.”

“성치 않다고? 저게?”

“성한 상태였다면 마술을 썼을 테니까.”


즉사마술이나 중력 조종 같은 마술은 대처하기 까다롭다. 사용자가 드래곤이어선 저항도 불가능하다.


마술을 못 쓴다는 드래곤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를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무기 하나 없다고 일행의 승률이 올라간 건 아니었다.


“가만히 서 있지 말고 움직여라!”

“어디로요?!”


도망치는 건 불가능. 드래곤은 그들이 열 걸음을 떼는 것보다 빨리 앞발을 뻗었고, 그 앞발의 크기는 고작 열 걸음으로 빠져나가기엔 터무니없이 컸다.


대항하는 것도 불가능. 그들이 가진 모든 공격수단을 동원해도 드래곤에게 유효한 피해를 줄 수 없다. 이쑤시개로 사람을 찌르는 거나 마찬가지다. 조금 따끔할 것이고 심하면 피가 날지도 모르지만, 힘겹게 뿌리까지 쑤셔 넣어도 죽이는 건 어렵다.


반면에 그들은 드래곤의 작은 손짓 한번 스치기만 해도 생사를 장담할 수 없다. 밸런스라는 건 게임에서나 존재하는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괜찮나?”


“살아는 있어요! 다음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케일리는 이어진 드래곤의 브레스에 맞지는 않았지만, 무너진 파편과 보물에 깔려 생매장당할 뻔했다. 내부의 공간은 넉넉했지만 빠져 나갈 방법이 없었다. 이 상태에서 다음 공격을 받는다면 정말로 생매장당할 것이다.


주의를 끌기 위해 아브리엘은 주변에 있는 커다란 잔해를 물어 던졌다. 드래곤이 이성이 있었다면 이런 의미 없는 공격 따위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놈은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드래곤은 케일리를 끝장내지 않고 아브리엘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신호귀! 일단 케일리부터 끄집어내라! 서둘러!”

“···부디 힘내게. 케일리! 어디에 있나!”

“이쪽!”


조금 전처럼 해골 소환물을 불러낸 두신호귀는 케일리가 묻혀 있는 보물더미를 파냈다. 안에 갇혀 있는 케일리가 다치지 않도록 파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객관적으론 굉장히 빨랐지만, 그 빠른 시간도 그들에겐 아까웠다.


“스승님은요?”

“열심히 춤추고 있네.”


아브리엘은 드래곤의 공격을 피하고자 계속 늑대와 인간 형태를 오갔다. 변하는 순간 신체 위치의 우선권은 아브리엘에게 있다. 늑대에서 인간으로 돌아올 때 앞발로 변할지, 꼬리로 변할지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늑대의 각력을 이용해 한껏 거리를 벌리고, 형태를 오가며 공격을 피한다. 일격만 허용해도 치명적인 공격을 보물들의 산을 이용해 어떻게든 피한다. 하지만 언제까지 피하진 못할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하죠?”

“지금부터 생각해봐야지.”


이리저리 날뛰며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아브리엘이 어지간히 짜증났는지, 드래곤이 얼음 성채의 벽을 후려쳤다. 안 그래도 이전의 몸통 박치기에 불안하게 흔들리던 얼음 성채가 거세게 요동쳤다. 조금씩 들어오던 호숫물은 이제 눈에 보일 정도로 차오르고 있었다.


“···이 얼음 성채에 놈을 가둘 수 있을까?”

“건설적인 의견이지만 지금 놈을 가둘 수 있을 만큼 좁은 공간은 저기 저 꼭대기뿐일걸.”


두신호귀가 얼음성채의 한 컨을 가리켰다. 거주하는 방이 아니라 저 좁은 탑처럼 된 공간에 드래곤이 들어간다면 놈을 가둘 수 있을 것이다. 사소한 문제라면 미끼가 없는 한 드래곤이 저런 공간에 들어갈 리는 없고, 미끼 역할의 아브리엘은 지금 저기로 갈 방법이 없었다.


“어떻게 이 얼음 성채를 옆으로 넘어뜨리면···.”

“어떻게 넘어뜨리겠다는 건가. 빙판을 녹이기라도 할 텐가? 장담하건대 용암을 들이부어도 이 빙판을 녹일 순 없을걸.”


“반대만 하지 말고 너도 무슨 말이라도 해봐!”

“나도 생각하고 있네!”


두신호귀도 나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태도 때문에 그다지 진지하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몸통 박치기를 당해 비틀거리는 지금도, 빙판은 저 드래곤의 무게를 견디고 있었다. 이런 무식한 크기의 빙판을 녹여 얼음 성채를 넘어뜨릴 힘이 그녀는 없었다.


재주가 다했는지, 아브리엘은 드래곤의 발톱에 얻어맞았다. 물리 법칙에 따라 한참을 날아간 아브리엘은 얼음 성채 끝까지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아브리엘은 정말 오랜만에, 내장이 갈라지는 고통을 맛봤다.


“스승님!”


이성이 없는 드래곤은 아브리엘의 생사 같은 건 확인도 하지 않고 입부터 벌렸다. 무엇을 하려는지 볼 것도 없었다. 가로도, 세로도 아닌 정면 브레스에 맞으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할 수 있는 게 없는 케일리에게 손을 내민 건 불사조의 갑옷이었다. 그게 호의인지 다른 목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 손을 들어주었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순간 그녀는 알 수 없는 공간에 홀로 떨어졌다. 그녀 앞에 나타난 한 인영은 어지간히 보여주고 싶은 게 있는지, 그녀에게 환영을 보여줬다.


그 환영은 하나의 여성에게 달려드는 수많은 자가 있는 공간이었다. 달려드는 그들은 다수가 아니면 불완전했다. 하나이자 다수. 다수이자 하나.


달려드는 그들을 맞이하는 여성은 그들과는 정반대였다. 그녀는 하나여서 완전했고 다른 존재를 용납하지 않았다. 하나이자 모든 것. 모든 것이자 하나.


다수의 하나는 너무나도 불완전했다. 완전한 하나는 그런 불완전한 다수를 분쇄했다. 감격 한 번에, 손짓 한 번에. 심지어 눈길 한 번에조차 셀 수도 없이 많은 자가 사라졌다.


불은 그들의 것이었으나 여기서 그들은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이요, 완전한 하나는 불나방을 태우는 불꽃이었다.


불사조의 갑옷은 불같은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복수를 원하고 있었다. 복수를 돕지 않는다면 도움을 주지 않을 거라고.


“협상하는 거야? 지금 상황 안 보여?”


그녀는 눈앞의 인영을 냅다 바닥에 내리꽂았다. 두신호귀가 옆에 있었다면 갈수록 아브리엘을 닮아간다고 한숨을 쉬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여기 없었다.


“일단 성의를 보이고 입을 열어라! 이야기는 그다음이다!”


불손하기 짝이 없는 대답이 의외로 마음에 들었는지, 불사조의 갑옷이 불게 타올랐다. 계약이 성립되었다.


그녀는 그렇게 뱀이 허물을 벗듯, 스스로에게서 멀어졌다.


“무슨 짓을 한 건가?”

“왜?”

“자네 어깨 한번 보게.”


그녀의 어깨엔 거대한 불사조의 날개가 자라 있었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은 것처럼, 그녀는 있지도 않았던 날개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불사조의 갑옷이 가진 힘도, 머릿속에 새겨진 듯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어스름 드래곤에게 원한이 있었던 불사조의 갑옷은, 그녀의 의지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하지만 조금 부족했다. 불사조의 갑옷만으론 드래곤이 직접 사용한 보호 마술이 걸린 빙판을 녹일 수 없다.


그럼 다른 거로 부족한 것을 매울 뿐.


“뭐 하는 겐가?”

“가만히 있어 봐.”


케일리는 한참 동안 손을 뻗고 가만히 있었다. 무언가가 그녀의 머릿속에 직접 지식을 쑤셔 넣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곧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붉은 검 한 자루가 그녀의 손에 날아왔다. 혜성처럼 등장한 여명검은 이전과는 달리 불이라도 붙은 듯 반짝였다.


“하압!”


여명검을 바닥에 꽂자 빙판 전체가 끓어올랐다. 기화된 수증기가 시야를 가리고, 얇아진 빙판은 더는 버틸 수 없다고 경고하듯 금가고 기울어졌다. 아직 빙판이 부서져선 안 되기에 그녀는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마력을 멈췄다.


빙산에 충돌해 침몰하기 직전인 배처럼, 바닥이 한쪽으로 통째로 기울어졌다. 그 덕에 브레스가 빗나간 아브리엘은 목숨을 건졌다. 목적은 달성했지만 이제 그들이 문제였다. 어설프게 개화된 본능이 거기까지였는지, 그녀는 본래대로 돌아왔다.


“두신호귀! 나 좀 잡아줘!”

“자네가 날 잡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등에 달린 날개는 장식인가!”

“···아?”


두신호귀가 지적하고 난 뒤에야 날개가 있다는데 생각이 미친 그녀는, 해골 소환수들로 어떻게 버티고 있는 두신호귀를 낚아챘다. 균형을 잡기 위해 드래곤이 움직일 때마다, 빙판이 파도 위의 배처럼 요동쳤다.


“스승님은?”

“저쪽 구석에. 정신을 잃었나 보군.”


“아니. 하지만 몸이 안 움직인다.”

“···두신호귀. 스승님을 데리고 나가줘. 내가 드래곤의 시선을 끌게.”


“부탁한다.”

“···헤헤.”


아브리엘의 부탁에 케일리는 기뻐서 날아갈 것 같았다. 저 모멸을 쏟아내는데 달인인 스승이 처음으로 자신을 인정해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적당한 곳에 두신호귀를 내려준 케일리는, 아직 몸을 제대로 못 가누는 드래곤을 향해 날아갔다. 움직이는 대로 빙판이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거대한 몸집을 가졌기에 그들보다도 균형을 잡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케일리는 새삼 드래곤이 이성이 없다는 게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마술을 제외하고도, 이성만 있었다면 빙판 한복판에서 브레스를 쐈을 것이고, 아예 날아서 움직였으면 그들은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이쪽이다! 이 살찐 도마뱀아!”


케일리는 냅다 드래곤의 눈과 코에 불을 뿜었다. 몸 전체에 튼튼한 비늘을 두른 어스름 드래곤의 시선이라도 끌만한 곳은 그 두 곳밖에 없었다. 철천지원수를 본 듯, 드래곤이 포효를 내질렀다.


“KAAAAAAAAAAAAAAA!!!”

“ZRRRRRRRRRRR!!!”


귀가 멀어버릴 듯한 포효에 케일리도 포효로 맞섰다. 불사조의 갑옷이 동조하듯 불길을 내뿜었다. 드래곤과 불사조. 태초부터 이어진 그 둘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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