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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자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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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w5058
작품등록일 :
2021.03.08 16:34
최근연재일 :
2021.06.0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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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0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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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DUMMY

케일리는 대체 몇 번 생사를 넘나들었는지 세는 걸 잊어버렸다. 인간형으로 돌아온 아브리엘은 두신호귀가 불러낸 해골 소환수에 업혀 성채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시간이 더 필요했다.


케일리는 드래곤의 성질을 돋우는 데 집중했다. 움직임은 드래곤이 압도적으로 빠르지만, 시야는 사각이 있고 그녀는 작았다. 거대한 육체는 육탄전을 할 땐 도움이 되지만 몸 사이로 도망치는 적을 상대론 시야를 가리는 엄폐물이 된다.


그러는 중에도 얼음 성채는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드래곤이 성대하게 날뛰고 있었기에 침몰이 느려질 일은 없었다.


발에 호숫물이 차이건 말건, 드래곤은 그녀를 잡기 위해 날뛰었다. 이성이 날아간 드래곤의 움직임은 단순 그 자체. 그렇기에 케일리도, 이전의 아브리엘도 아슬아슬한 술래잡기를 계속할 수 있었다.


물론 아무리 단순하게 행동해도, 일격만 허용해도 가루가 될 공격을 계속 피하는 건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했다. 두 번 다시 못할 묘기를 그녀는 다행히 성공시켰다.


“케일리. 이쪽은 빠져나왔다.”

“좋았어!”


두 정수가 빠져나갔다는 것을 들은 케일리는 곧바로 성채의 한쪽 구석으로 날았다. 놈의 몸통 박치기에 아직 파괴되지 않은 곳. 그녀가 일찍이 봐두었던 탑이 있는 곳이다.


얼음 성채는 이미 절반이나 호수에 잠겼다. 저 거대한 드래곤도 팔꿈치까진 잠길 위치. 슬슬 날기엔 성채 내부가 좁았다. 거동이 불편한 드래곤은 냅다 브레스를 갈겼다. 끓어오르던 호수가 한순간에 잠잠해졌다.


하지만, 브레스를 아래로 쐈으면 모를까, 한번 부서진 빙판이 다시 붙을 일은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드래곤을 그런 일을 생각할 이성이 없었다.


오히려 문제는 케일리였다. 엄폐물도 없고, 피할 곳도 없는 곳에서 날아온 브레스를 피할 재주 따위 없었다. 놈의 브레스에 잠깐 스친 케일리는, 몸의 절반 가까이가 얼어붙어 얼음 성채 바깥으로 튕겨 날아가, 빙판에 몇 번 부딪치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빌어먹을···.”


브레스의 일격을 허락한 대가는 처참했다. 얼은 신체부위는 전부 부서졌고 멀쩡한 한쪽 팔과 다리는,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를 각도로 꺾여 있었다. 여명검은 쥔 팔과 함께 어디에 떨어졌는지도 몰랐다.


이런 상태에서도 죽지 않은 건 불사조의 갑옷 덕분이었다. 갑옷은 느리게나마 그녀의 몸을 회복시켰다. 엎어져 있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이제 다른 걸 할 필요도 없었다.


“···정말, 이성이 없어서 다행이네.”


문제의 드래곤은 본래 그녀가 날아서 빠져나가려고 했던, 튕겨나간 창문으로 나오려고 했다. 하지만 드래곤은 그런 좁은 창문으론 입조차 꺼낼 수 없었다.


이전이었다면 힘으로 부수고 나왔겠지만 가라앉기 시작한 얼음 성채에서, 수중에선 그런 힘을 낼 수 없다. 최후의 발악으로 내뿜은 브레스도 그녀에게 닿긴 한참 멀었다.


그렇게 놈은 평생을 함께한 자신의 거처와 함께 호수 아래로 가라앉았다. 다른 수많은 신비처럼, 사라진 이성을 따라서, 마침내.



˟ ˟ ˟ ˟ ˟



“네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나?”

“···너!”


그녀의 뒤에서 나타난 건 이전에 만났던, 이름 모를 마술사였다. 여명검을 뺏어갔던 바로 그자. 그자의 주변엔 도깨비불이 9개나 있었다. 그가 다룰 수 있는 최대 수.


“이 개자식! 제 아비 오줌으로 세수할 놈! 어미 젖에 코 박고 죽을 놈! 탯줄에 목 졸려 교살당할 놈!”


케일리는 차마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자신이 아는 모든 욕설을 쏟아부었다. 그가 바로 옆까지 올 때까지 단 1초도 멈추지 않았다. 천사도 타락시킬 것 같은 무시무시한 욕설에 그가 한숨을 쉬며 그녀의 목을 졸랐다.


“내 말에 대답할 생각이 없군.”

“···크윽. 뭐? 이 새끼야?”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냐고 물었다.”

“저 비만 도마뱀을 바다에 수장시켰지. 아. 혹시 네가 기르는 애완동물이었어? 그것참 미안하게 됐네. 그러게 입에 뭐라도 채워두지 그랬어. 아니면 뒤졌으면 재깍재깍 묻어주던가. 네가 수고를 들이지 않아서 내가 묻어줘야 했잖아. 이 애완동물도 제대로 간수 못 하는 얼간아!”


“···대체 그런 말은 누구한테서 배운 거냐.”

“책에서 배웠다! 뭐 보태준 거 있어!”

“그 책의 저자는 참 창의적으로 욕하는 법을 연구하는군.”


이런 말을 하러 온 게 아니라며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케일리의 욕설은, 그도 잠시 딴생각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에타리안을 죽···. 죽은 자를 죽였다고 말하면 이상하군. 아무튼 그걸 책망하려는 게 아니다. 네가 불사조의 갑옷을 입은 것을 말하는 거지.”


놈은 케일리의 갑옷을 잡아당겼다. 겁탈이라도 당하나 싶어 고개를 돌렸는데 그럴 일은 없었다. 불사조의 갑옷은 아예 그녀 신체 부위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뭐야. 이거 왜 이래?”

“불사조의 갑옷을 한번이라도 활성화시키면 이렇게 되지.”


“···그럼 어쩔 수 없었네.”

“말을 해줘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니 진정 어리석은 자로구나.”


“어쩌라고. 눈 돌아간 괴물한테 그냥 밟혀 죽어? 믿지도 않는 신에게 살려달라고 기도라도 해야 했냐? 그 자리엔 있지도 않았고, 도와준 것도 없으면서 뭘 잘난 척 떠드는 거야!”

“···네 말대로다.”


생각해보면 내가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었다며 그가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은, 케일리가 여명검을 빼앗아간 원한을 잠시 잊을 정도로 애처로웠다. 생각해보면 그녀는 이 남자의 이름조차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용서해라. 잘못인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는 없다는 걸. 가능하면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제 그럴 수도 없구나.”

“웃기시네. 뭘 하고 싶지 않았다는 거야? 날 생매장하려고 했으면서.”


“소생 제한 마술을 걸지도 않았고, 저주를 걸지도 않았으며, 고작 목숨을 빼앗으려 했을 뿐인데.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인가?”

“무슨 목숨이 여러 개 있기라도 해?”


“유사 신비도 가지지 않은 자의 죽음을 부정하는 건 어려운 것도 아니지.”


놈은 당연하다는 듯이 케일리가 영문을 모를 말을 해댔다. 유사 신비니 뭐니 알 수 없는 말투성이였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이전엔 놈이 봐줬고,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KAAAAAAAA!!!”

“스승님! 크윽!”


그들 사이로 늑대 형태의 아브리엘이 뛰어들었다. 놈은 케일리를 던져버리고 뒤로 몸을 날렸다. 성치도 않은 몸으로 또 빙판 바닥에 내쳐졌기에 그녀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ZRRRRRR···.”

“스승님!”


놈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괴력으로 아브리엘의 앞발을 잡아 빙판에 내팽개쳤다. 놈의 주변으로 9개의 도깨비불이 환하게 빛났다.


“스···.”


스승을 부르려던 케일리가 숨을 삼켰다. 멀쩡해 보이는 건 겉모습뿐. 아래쪽, 정확하게는 배 부분은 심각했다. 뼈가 다 보이고, 내장마저 다쳤을 깊은 상처. 싸우기는커녕 살아있는 게 용했다.


두신호귀가 마술을 사용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이전에도 그는 두신호귀의 마술에 별 피해를 보지 않았고 이번엔 아예 마술에 대한 대책도 갖춰왔다. 애초에 두신호귀가 사용하는 마술은 직접 공격보단 보조에 특화되어 있다.


“걱정하지 마라. 최소한 이 자리에서 손을 쓰진 않을 테니.”

“아. 그러셔? 퍽이나 믿음이 가네!”

“이번엔 에타리안의 넋을 빌러 왔을 뿐이다. 너희들이 내가 못하고 있던 걸 해줬으니.”


드래곤은 죽어서도 드래곤이었다. 거기에 그들도 일이 생겨, 500년 동안 다른 곳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죽어서도 의무에 묶여있는 친우의 짐을 덜어주지 못한 게, 그에겐 마음의 짐이었다.


“얼음에서 태어나 얼음 아래로 돌아갔으니. 그보다 더 자연스러울 수가 없구나. 편히 쉬게.”


눈을 깜박이는 시간도 아깝다는 듯, 아직도 가라앉고 있는 얼음 성채가 일으키는 파문이 사라질 때까지, 그는 시선을 움직이지 않았다. 호수의 파문이 멈추자, 그는 자신의 말대로 그들에게 손을 대지 않고 자리를 비켰다.


그 직후 긴장의 끈이 풀린 케일리도 기절했다.



˟ ˟ ˟ ˟ ˟



“에취.”

“깨어났나?”


“여긴···?”

“자네가 기절한 곳 근처일세.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 멀리 가긴 부담스럽더군.”


엉망일 거라 생각했던 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멀쩡했다. 단순히 몸이 멀쩡하다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 태어난 듯 개운했다.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알아서 척척 치료되더군. 난 자네 종족이 바뀐 줄 알았네.”

“갑옷의 효과인 모양인데, 나쁘지 않은데?”

“조심하게. 뭐든 좋기만 한 법은 없으니.”


“무슨 말이야?”

“뛰어난 무구는 그에 걸맞은 패널티를 가지기 마련이란 말이지.”


“잔소리는 됐어. 그보다 스승님은?”

“아직 기절 중이네.”


아브리엘은 여전히 늑대 형태로 배를 바닥에 깐 형태로 누워 있었다. 겉보기엔 멀쩡했지만 바닥엔 그의 피가 흥건했다. 케일리는 아래쪽을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런 몸으로 대체 뭘 하겠다고 놈한테 달려들었나요.”


당연히 아브리엘은 대답하지 않았고 평소라면 끼어들었을 두신호귀도 가만히 있었다. 케일리는 옷에 피가 묻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앉아 아브리엘의 몸에 기댔다. 그녀는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당시 케일리는 잘 몰랐지만, 유일란은 마을에서 인기가 많았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마을을 걸어 다니기만 해도 결혼하자는 청년들이 줄을 섰단다. 유일란은 그런 마을 청년들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우연히 마주친 한 엘프와 하룻밤을 함께했다.


이름조차도 모를 그 엘프는 더는 추위를 못 이겨, 남쪽의 보금자리로 향하고 있었다. 곁에 남아달라는 유일란의 말을 매몰차게 거절한 그는, 이튿날 아침 해가 떠오르기도 전에 마을을 떠났다.


그런 그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유일란은 케일리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유일란의 눈은, 입과는 달리 뭔가를 숨기는데 재능이 없었다. 가끔 그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으니까.


흐릿한 기억만으론 그 눈물의 의미까지 알긴 어려웠다. 그리움이었을까. 원망이었을까. 어쩌면 두 가지 모두 담겨 있었을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케일리는 아버지 같은 자들과 연이 없었다. 친아버지의 있었을지 모를 사정은 침묵과 시간에 가려지고, 남은 건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갔다는 현실뿐이다. 그 후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던 샤를은 20년 넘게 그녀를 속였다.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호의에 케일리는 어쩔 줄 몰랐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여정이 끝나는 날, 이 관계도 끝난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무구를 다 찾으면 그녀는 엘프들의 마을에 홀로 남을 것이다.


유일란의 유골을 세계수 아래에 묻고 봄을 기다리는 건 좋다. 하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아버지는 거기에 있을까? 설령 있다고 해도, 자신을 버렸던 그와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냉정하게 봤을 때, 엘프의 마을로 가는 건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일 뿐. 무슨 대책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답답한 마음에 케일리는 아브리엘의 등에 기댔다.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한 갈망과 부드러운 털 덕에 그녀는 금방 수면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달이 저무는 고요한 새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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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3화 21.04.08 13 0 11쪽
13 12화 21.04.06 2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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