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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자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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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w5058
작품등록일 :
2021.03.0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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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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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DUMMY

사냥꾼과 사냥감, 야만인도 잠든 깊은 밤. 잠들지 못한 한 존재가 밤을 거닐었다. 불안에 잠을 못 이루는 그는 오늘도 자신과 마주친, 운 없는 마을을 불태웠다.


마을을 지키는 자들에겐 불행하게도,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 세상 존재조차도 아니었다.


박쥐 형태의 날개, 새까만 피부, 붉은 눈동자, 머리 위로 튀어나온 뿔. 모습은 제각각 달랐지만 사람이 그들을 부르는 호칭은 하나였다. 악마.


악마 하나를 세상에 현계하려면 꽤 많은 제물이 필요하다. 다른 것으로도 가능하지만 대체로 사람을 쓰는 게 편하다. 반항하면 육신을 제물로 바치고, 이해관계에 따라 육신보다 가치가 높은 영혼과의 계약으로 악마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네 영혼을 바치면 가족들은 건들지 않으마.”

“···거짓말 아니지?”

“물론이지.”


“좋아.”

“네 운명이 결정되었다.”


그야말로 악마의 속삭임에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을 바쳤다. 살아남는 자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불안이 가득했다. 악마를 소환하는 자들이 약속을 지킬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니까.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나선 자들은 이미 다 죽었고, 저들을 상대로 도망칠 방도가 없다.


의심스러운 제안이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살길이 없으니 받아들였을 뿐이다. 불행히도, 그들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나머지는 살처분이다.”

“이 개자식!”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냐!”


명령을 받은 악마들이 욕을 퍼붓는 사람들을 해체하며 신체 부위를 나눴다. 악마들은 여러 종족으로 나누어져 있고, 선호하는 신체 부위. 예를 들면 팔이나 눈, 심장 같은 부위를 이용하면 보다 싼값에 그들을 부릴 수 있다.


“제발! 이 아이만은 살려주세요!”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죠!”


“···제국을···.”


악마들이 제멋대로 마을을 불태우고 때론 쓰지도 않는 재물을 챙기기도 했지만, 그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의 목적은 오직 하나. 더 많은 악마를 세상에 풀어놓는 것. 잠들지 못하는 자의 주변엔 이미 악마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는 부르튼 입으로 영창을 반복했다.


“···저주할 테다.”

“네놈의 이름을 말해봐라! 지옥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영창을 내뱉기도 바쁜 입이지만, 그 말들 사이엔 분명 사담이 끼어 있었다. 그건 대답 같기도 했고, 주문 같기도 했으며, 그가 한사코 무시해 온 다른 사람의 소망 같기도 했다.


“···나인테라···.”



˟ ˟ ˟ ˟ ˟



“하압!”

“찌아아아앗!”


나시프와 케일리가 휘두른 검이 맞부딪쳤다. 케일리가 들고 있는 건 여명검과 비슷한 형태의 평범한 중검. 나시프가 가진 무기는 케일리가 가진 중검보다 길고 얇으며 끝이 휘어진 곡도.


병장기로 싸울 땐 길이가 긴 쪽이 우선권을 가질 수 있다. 한 합 만에 자신의 실력이 케일리에게 못 미친다는 걸 깨달은 나시프는 이 우선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그 조바심 때문에 역으로 케일리가 거리를 좁히게 만드는 우를 범하고 말았지만.


마을에서 검 한번 못 잡아본 걸 고려하면 그의 성장 속도는 꽤 빨랐다. 의식주가 해결되고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으니 성장이 빠르지 않을 리가.


하지만 진정 말도 안 될 정도로 성장한 건 케일리였다. 아브리엘이 좋은 스승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최소한 누군가를 가르치는데 재능이 있었는지, 아니면 케일리의 재능이 뛰어났는지는 모르지만, 걷는 것보다 빨리 기어가는 법을 배운 어린아이처럼 불안한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둘의 대련은 케일리가 나시프의 목에 검을 들이대며 끝났다.


“졌네.”

“수고했어.”


“다른 기사분들과 싸울 땐 거의 안 졌는데.”

“···그야.”


케일리는 하고 싶은 내뱉을지 말지 잠시 고민했다. 황제에 대한 존경심이 하늘을 찌르는 지금. 제국민이라면 그의 비호를 받는 그를 독하게 대하지 못할 것이다. 소위 말하는 접대. 아슬아슬하게 져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았을까.


잠깐 고민한 케일리는 결국 그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성장한 건 무기를 휘두르는 실력만은 아니었다.


“언제까지 제국에 있는 거야?”

“일주일 정도?”


“다음에 한 번 더 대련해 봐도 돼?”

“얼마든지.”



˟ ˟ ˟ ˟ ˟



그들이 대산맥에서 돌아온 지 2주일 정도 지났다. 그들은 약속대로 두 번째 유물을 가져왔고 이번엔 황제도 약속을 지켰다. 그의 딸, 마타네아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서쪽 땅.


아브리엘은 당장 딸을 찾으러 가고 싶었지만 그녀가 발견된 위치가 썩 좋지 않았다. 서쪽은 이전부터 제국, 아니. 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이 있는 동대륙 사람들과 적대적인 자들. 야만인이라고 불리는 도우라도스인들이 사는 곳이었다.


“지금 거기 갔다간 야만인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을 거야.”

“죄다 동강 내면 그만 아닌가?”


“쉬운 길이 있는데 굳이 그렇게 돌아갈 필요는 없지.”

“쉬운 길?”


“혹시 나인테라에 대한 소식을 들었는지 모르겠군.”


세상에 들이닥친 추위에 이름 없는 마을이 생기고 사라지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 굳이 신경 쓸 것도 없었다. 폐허나 핏자국이 보이면 운 없는 마을이 또 몬스터에게 습격이라도 당했나 보다 하고 넘어간다.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신경 쓰기엔 세상에는 죽음이 너무 만연했다.


생존자는 없고, 다른 자들의 관심도 받지 못한 학살극에, 우연히 살아남은 자가 겨우 사건의 전말을 전했다. 수많은 악마를 이끌고 지도에서 마을을 없애는 자. 나인테라에 대한 이야기를.


“인간들이 죽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인내심을 갖고 말을 좀 끝까지 듣게.”


그제야 제대로 된 조사가 시작된 나인테라의 행적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길었다. 제국에서 가까운 이사벨의 북부부터 시작된 학살은 서대륙 내부까지 이어졌다.


“나인테라라는 것에 그렇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면서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한 건가?”

“···할 말이 없군.”


진사리안이 그답지 않게 뺨을 긁었다. 정보력은 자신 있다고 큰소리쳐놓고 정작 앞마당에서 벌어진 일을 알아채지 못했다. 게다가 나인테라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가 이루어진 건 생존자의 말이 아니라 다른 자의 말 때문이었다.


“서대륙인들은 이 야만인들은 일련의 사건을 동대륙인들이 했다고 확신하고 있더군.”


동대륙부터 서대륙으로 흔적이 쭉 이어졌으니 동대륙인의 소행이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도 없다. 확인을 위해 사절을 보내자는 왕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건 상식 밖이었지만.


“서대륙인들의 왕, 그러니까 그들의 말로 표현하면 선택받은 자가 반란으로 목숨을 잃었네. 다행히 그의 아들인 스카바론이 살아남아서 이쪽으로 망명을 왔어. 자신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면 협력해주겠다고 말이야.”

“이번엔 짐 덩이를 하나 데리고 가라는 건가?”


“유감스럽게도 하나가 아니라 호위를 겸한 사절단이 함께할 거야. 힘에 복종하는 야만인들이 반기를 드는 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거거든. 스카바론도 그에 대해선 입을 꾹 다물고 있고. 덕분에 중간에 낀 우리만 귀찮아진 거지.”


다른 때 같았으면 망명자를 구금한 뒤 서대륙에 첩자를 파견해 자세한 사정을 파악한 뒤에 행동을 옮겼을 것이다. 하지만 나인테라. 그자가 진사리안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도우라도스인들의 사정보다 나인테라다. 스카바론을 도와주고 나인테라의 정체를 파악해주게. 그 후에 사절단을 통해 자네 딸의 행적에 대해 알려주지.”


“···괜찮겠나?”

“응?”


“나야 좋긴 하다만, 벌써 내 딸의 행적을 알려줘도 괜찮겠냐는 말이다.”


그들이 가져온 무구는 2가지. 남은 무구도 2가지다. 정보만 살살 제공하면서 모든 무구를 모으게 하고, 그 이후에도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하는 게 최선책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이 방법을 황제가 모를 리 없다.


“하면 자네는 얌전히 따를 텐가?”

“물론 아니지.”


“그러면서 뭘. 자네의 환심은 이후에 다른 거로 사도록 하지.”


진사리안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충성심 없는 복종보다 위험한 건 없다. 진사리안은 그런 자를 억압해 데리고 있느니 깔끔하게 정리하는 걸 택했다.


“사절단을 준비하는데 3주 정도 걸릴 것이네. 그때까진 부디 편하게 지내게.”

“···뭐라고?”



˟ ˟ ˟ ˟ ˟



덕분에 그들은 뜻하지 않게 제국에서 긴 휴일을 만끽하고 있었다. 황제는 아예 그들이 편하게 기거할 수 있도록 수도 외곽에 커다란 별채와 사용인들까지 제공했다. 노숙이나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해왔던 케일리는 꺾어본 적 없는 호사였다.


그 호사가 케일리는 썩 반갑지만은 않았지만 말이다.


“잠깐 나갔다 올게.”

“모시겠습니다.”


“필요 없어. 혼자 갔다 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

“하지만···.”


“기다리고 있으라니까!”


무슨 말을 해도 반대할 것이 뻔했기에 케일리는 대답을 듣지 않고 날아올랐다. 다른 자들을 섬기지 못해 안달이 난 것 같은 사람들에게 대우받는 건 또 처음이었던지라 케일리는 편안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겪었다.


아무리 편해도 감시당하는 것 같은 상황이 썩 달갑지 않았기에 케일리는 대부분 휴가 대부분을 별채 바깥에서 보냈고, 자연스럽게 제국 수도의 상공에 익숙해졌다.


“두 분은 오늘도 화해하실 생각이 없나?”


두 정수의 사이가 안 좋은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황제와의 면담이 끝난 이후론 더 심해졌다. 이유는 별거 없었다. 아브리엘은 당장 마타네아의 위치를 아는 자를 죽이고 기억을 읽어, 딸을 찾으러 가자고 했지만 두신호귀가 거절했기 때문이다.


아브리엘의 뜻도 알 것 같기는 했다. 딸의 현재 위치를 안다고 해도 언제까지 거기 있을지 모르고, 이 위험한 세상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3주라는 시간은 딸을 찾는 아버지에겐 지나치게 길었다.


그런 아브리엘의 제안을 두신호귀는 단칼에 거절했다. 인간에 대한 원한이 있는 것도 알지만 아무 잘못도 없는 인간을 죽여서 정보를 제공하진 않을 거라고, 두신호귀는 못을 박았다. 거기에 그렇게 출발해봤자 제국이 준비한 루트를 따라가는 것만 못 할 거라는 게 그의 계산이었다.


협상이 결렬된 후, 두 정수는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아니. 케일리는 아예 둘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라라도 아브리엘을 따라 모습을 감췄으니, 제대로 대화를 나눈 상대는 나시프와 리린. 두 사람뿐이었다.


참 보람찬 휴가다.


처음 며칠간은 도시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그래서야 별채 안에 있을 때와 별 다를 바 없었다. 이세계인들과 거래해, 온갖 괴상한 것들이 넘쳐나는 제국의 수도에서도 케일리는 다른 자들의 주의를 끌었다.


그녀와 마주친 인간들은 하나 같이 그녀를 향해 절을 하며 기도를 올리기 바빴다. 추위를 느끼지 않는다는 이유로 태양인을 봄의 사도라고 치켜세우는 그들에게, 불꽃이 피어나는 불사조의 갑옷을 입은 그녀는 충분히 숭배할 대상이었다.


“이건 이것대로 기분 나쁘네.”


마을의 어린아이들은 케일리가 엘프라고,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녀를 따돌리고 괴롭혔다. 방향성만 다르지 제국민들도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고개를 숙이는 게 몸에 벤 쓰레기들.


평소였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생각을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이 떠올렸다. 그런 자신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걸 자각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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