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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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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버팀목

DUMMY

제8장. 버팀목


동양일보 보도국 스포츠부 소회의실.


“내가 강민우 사건 관련 취재내용을 한번 정리해 볼 테니깐, 박기자가 들으면서 미비하거나 혹시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 줘.”


“네.”


박문철과 박수지는 분위기를 쇄신(?)하고,

강민우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옆에 있는 소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서로 마주 앉아 있었다.


박문철이 종이 위에 주요정황들을 화살표로 이어가며, 또박 또박 느린 어조로 강민우 사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 지금부터 갈게. 침착하게 잘 듣고 잘못된 거 있으면 지적해 줘.

때는 10년 전, 2020년 3월 신천지 사태로 코로나 포비아(phobia)가 극에 달해 있던 바로 그 시점....


민우의 여동생이 콧물은 없는데 고열, 기침, 호흡곤란 등 코로나 유사 증세를 나타낸다.

여동생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는데도,

고아원 측에선 타이레놀 한 알씩만 먹이면서, 다른 원생들에게 전염될까봐 여동생을 완전히 격리시킨 채 방치한다.


꼬마 민우는 1339에 전화하지만 1339에서는 보호자인 고아원에 문의한 결과, 단순한 감기라는 설명을 듣고 그냥 넘어간다.

이에 발을 동동 구르던 민우는 마침 TV에서, 대구와는 달리 서울은 아직 음압병실에 여유가 있단 보도를 보게 되고,


혼자 몰래 고아원을 빠져 나와 인근 종합병원인 부성병원으로 찾아가,

접수를 위해 병원 접수처로 가지만 보호자가 없다고 접수 자체가 거절된다.


급한 마음에 민우는 곧바로 응급실로 찾아가 한 의사를 붙들고 통사정을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마침 급한 환자를 돌보던 중이던 이 의사와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뭔가 실랑이가 일어나고,


이 과정에서 격분한 꼬마 민우가 의사 옆에 있던 의료 캐리어를 밀치고,

이 바람에 그만 그 위에 놓여 있던 링게르병과 주사 등이 바닥에 떨어져서 깨지고 만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당시 의사가 돌보던 바로 그 환자는 그 이후 치료과정에서 급작스런 쇼크 상태에 빠져 사망한다.

자, 여기까지 박기자가 이해한 것과 비교해서 이상 없지?“


잠시 말을 멈춘 박문철이 박수지의 확인을 촉구했다.


“네.”


고개를 끄덕이며 비교적 담담한 표정으로 짧게 답한다.


“자, 그럼 계속 갈게...

유가족들은 의료과실이라고 강력히 항의하며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병원을 위협하고,

잘못하면 복잡한 의료소송에 휘말릴 위기에 처한 병원 측에서는 그 해명과정에서...


....모든 것은 제 때에 응급조치를 받지 못하게 방해한 강민우 때문이라며 모든 책임을 민우에게 떠넘긴다.

결국 꼬마 강민우는 독박을 쓰게 되고,


웬일인지 강민우의 보호자 겸 유일한 지원자 격인 고아원은 침묵과 시인으로 일관하는 가운데,

유가족과 병원 측은 담당의사의 소견서가 담긴 탄원서를 소년부 판사에게 제출한다.


비록 12살 꼬마라지만 병원 응급실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일벌백계를 통해 사회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는 이들의 강력한 탄원서에,

판사는 대단히 이례적으로, 12살 꼬마에게 2년의 최장기 소년원 송치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민우의 여동생 강승아는 고아원에 그대로 방치된 채,

민우가 구속된 5일 후에 폐렴이 급속히 악화 되어 격리된 침상 위에서 6년간의 짧았던 생을 마감한다....“


수지가 다시 감정이 복받치는 듯 고개를 숙인다.

이런 수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박문철은 크게 한숨을 내쉰다.


“알아! 힘든 건 아는데, 이건 일이야. 우리 프로답게 가자구.”


묵직하게 내뱉고도 한참을 기다려 준다.

수지가 다시 얼굴을 들자 그제서야 다시 천천히 말을 이어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고아원은 2년 후에 우연하게 각종 비리가 드러나면서 원장 등 4명이 구속되고 공중분해 된다.


한편, 특별소년원 수감생치곤 정말 독보적으로 나이도 어리고,

아직 2차 성징 전이라서 몸매도 여리고 곱상한 생김새를 가졌던 강민우는 이 특별소년원에 수감 되자마자 한 방을 쓰는 4명의 16세 선배 수감생들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하게 된다.


이렇게 지속적인 성적 학대를 받으면서도 잘 참고 버티던 강민우는 수감 1년 11개월이 지나, 출옥을 불과 1주일 앞 둔 어느 날 밤...


.... 그 4명 중 한 명을 살해하고 만다.

나머지 3명은 옥중 다른 범죄와 연루되어 소년 교도소로 이감된 상태이고.


비록 살인을 하였지만,

수사과정에서 강민우가 이들 4인조로부터 2년여 동안 지속적으로 성적 학대를 받아왔음이 낱낱이 밝혀지고,

그런 정상이 참작되어 강민우는 비교적 경미한 5년형을 선고 받고 소년교도소로 이감된다...“


“그런데, 애초에 이 3인조와 같은 소년교도소에 이감된 게 잘못된 거 아닌가요? 상황을 뻔히 아는 상태에서...”


수지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항변하듯 박문철의 말을 끊어왔다.


“그게 말야, 아쉽게도 소년교도소는 우리나라에 딱 한 곳밖에 없어.

그 사이에 민우가 형사처벌 책임연령인 14세가 넘은데다 살인이라는 강력범죄를 저지른 이상 더 이상 소년원에 있을 수는 없고.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거지.”


“계속 하시죠.”


말은 그리 하면서도 여전히 수긍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젓고 있다.


“그럼 계속 갈 게.

어느 날, 강민우는 소년교도소의 세탁실에서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했던 3인조를 다시 만나게 되고,

이미 육체적으로 상당히 강해진 강민우와 이 3명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져 4명이 모두 혼수상태에 빠질 만큼 큰 중상을 입는다.

결국 3명은 깨어나지 못한 채 그대로 사망하고, 온 몸에 자상을 입었던 강민우만 깨어난다.


강민우는 또 다시 살인을 하게 되었지만,

3명이서 흉기를 들고 강민우를 기습한 정황이 밝혀지며,

다시 정상참작으로 죄과에 비해 비교적 경미한 10년형을 선고 받는다.

그리고 작년 3월에 형기를 조금 남긴 상태에서 가석방된다.


이상인데.... 혹시 박기자가 이해한 내용과 다른 건 없지?

아, 참고로 소년범은 형기의 3분의1만 지나면 가석방이 가능해.“


“네, 제가 이해한 내용이랑 똑 같아요. 이상 없네요.”


짧게 동의하자,


“굿.”


짧게 답변한 문철이 눈매를 바싹 좁힌다.


“.... 그림이 딱 그려져. 내가 사회부기자를 해봐서 아는데 말야, 병원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뭔지 알아?”


“의료소송이요?”


“그래. 병원 측은 꼬마 강민우를 먹잇감으로 던져준 거야.

분노의 대상을 찾는 유족들이 마음껏 뜯어 먹고 그들의 갈증이 포만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에는 이, 치에는 치, 그들의 마음 속 ‘정의의 추’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게다가, 민우의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할 그 고아원이란 곳도 나중에 비리 고아원으로 공중분해 될 정도로 썩은 곳.

꼬마 민우의 유일한 보호자는 후견인이라기보다는 병원과 공범에 더 가까웠던 거지.


둘 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구린 데가 있는 입장.

그런 점에서 병원과 고아원은 서로 이해가 맞아 떨어졌고... 피를 나눈 동지였고,

고아원은 그 이상한 침묵과 시인의 대가로 병원으로부터 모종의 뒷돈을 받았을 것이고...

병원은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한 거지. 그 골치 아프고 리스크가 큰 의료소송을.“


무릎 위에 말려진 수지의 두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박문철은 먼 창밖을 보면서 계속 말을 잇는다.

창밖에는 까치가 한 마리 날고 있었다.


“이건 일방적인 게임이야!

최소한 민우에게 부모가 있었다면,

그 부모가 아무리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이라 할지라도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가 없어!


하지만 이 세상 천하에 자신을 대변해 줄, 자신을 위해서 탄원서나 청원서 한 장 넣어 줄 이 하나 없는 천애고아라면?

이건 너무나도 손쉬운 먹잇감인 거지. 그런데 말야...“


이때 수지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박문철의 말을 끊어왔다.


“이, 이건 명백한 살인이라고요!

당시 코로나로 인한 어린이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요!

그런데 검사조차 받지 못하고...

그 고아원 사람들, 비리로 몇 년을 살고 나왔는지 모르지만 다시 살인죄로 기소해서 원점에서부터...“


“아, 아니, 그렇게 흥분하지 말고.

사실 강승아가 코로나로 사망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까.

그땐 몰랐지만 나중에 통계적으로 밝혀진 팩트에 의하면, 어린이들은 거의 중증으로 치닫지 않는 것으로 나왔거든.


오히려 신종플루 같은 단순 독감이었는데 괜히 코로나 포비아(phobia) 때문에 격리, 방치되어 사망했을 가능성이 훨씬 높지.

항바이러스제인 타미플루만 제때 처방받아 복용했어도 금세 회복했을 것을...“


차분하게 코로나 사태 1년 뒤에야 밝혀진 사실들을 통해 팩트체크를 해 준 뒤, 하려던 말을 얼른 이어간다.


“그런데 말야. 우리가 차별화된 기사를 쓰려면 반드시 짚어야 할 게 한 가지가 있어.

누구나 볼 수 있는 그런 지엽적인 문제들보다는 큰 맥!

즉, 강민우의 '스트레서'(stressor)가 과연 무엇이냐 이거지!”


“스트레서요?”


“아, 그게 범죄 프로파일링에 쓰이는 전문용어인데,

뭐냐면, 대부분의 연쇄살인범들은 이 ‘스트레서’란 걸 갖게 되거든.

아, 물론 강민우가 연쇄살인범이란 건 아니니깐 또 흥분하진 말고.”


박문철이 조심스럽게 박수지의 표정을 살핀다.

수지 얼굴에 떠오른 호기심을 본 박문철은 안심한 듯 다시 말을 잇는다.


“아무튼 이런 연쇄살인마라도 처음부터 실제로 사람을 죽이진 않거든.

시간 날 때마다 수시로 환상 속에서 사람을 죽이면서 만족감을 얻긴 하지만,

그건 판타지일뿐 실제로 행하진 않지.


그러다가 어떤 결정적인 사건이 계기가 돼서 이런 자신의 환상을 실행에 옮기게 되는데,

이런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사건을 범죄학에서 ‘스트레서’라고 불러.


마찬가지로, 강민우는 처음 소년원 송치 당시만 해도 완전 순둥이였거든?!

너무나 겁이 많아서 밤마다 4명에게 성적인 학대를 당하면서도,

반항은커녕, 위에 신고할 생각조차 못했을 정도로 말야!

그런데 이런 순둥이를 악만 남은 지옥의 야차 같은 꼬마로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뭐냐 이거지!“


말을 해가면서 문철은 제풀에 흥분해가는 것 같았다.


“박기자가 강민우라고 함 생각을 해봐!

밤마다 성적 학대를 받으며 꼬마 강민우가 무엇을 생각했을지 말야.

아주 잔인하고 통쾌하게 복수하는 걸 꿈꿨겠지.

하지만 꿈만 꿨을 뿐, 그런 상태로 근 2년을 버텼는데....


....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환상을 실행에 옮겨버렸어!

그것도 출옥을 불과 1주일 앞 둔 시점에서.

그 결정적인 계기가 과연 무엇이냐 이거지!“


박수지가 고개를 갸웃한다.

박문철이 곧바로 말을 잇는다.


“내 생각을 함 말해 볼까? 아까 말한 연쇄살인범들의 가장 흔한 스트레서가 무언지 알아?”


박수지는 말없이 고개만 도리질한다.


“그건 말야, 바로... 가까운 지인의 죽음, 특히 연인, 아들, 딸, 형제 등 가족의 죽음...”


“그, 그럼?!”


두 눈을 크게 뜬 박수지의 시선을 박문철이 정면으로 받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그래, 그게 아마 맞을 거야! 2년 후... 시기적으로도 일치하고 말야.

여동생이 이미 죽었단 걸 새까맣게 모르고 있던 강민우가 어떤 경로인진 몰라도 여동생 승아의 죽음을 알게 된 거지.


같은 고아원에 있던 누군가가 면회를 왔을 수도 있고.

아니면, 민우가 TV에서 자기 고아원의 공중분해 소식이 나오는걸 보고,

소년원 측에 제 동생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을 수도 있고.

암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어린 민우에게 얼마나 충격이었겠어?

철석같이 살아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부성병원 원무과장이 어깨를 다독이면서 동생을 음압병실에서 반드시 치료해주겠다는 확약을 했기 때문에,

경찰이 불러주는 대로 선선히 모든 범죄사실과 책임을 시인하고 그 후에도 한 마디 항변조차 안 했는데...


... TV보도에선 그 이후에도 계속 코로나로 인한 어린이 사망자가 단 한명도 없다... 당연히 여동생이 잘 살고 있으리라고 믿었겠지.


그런데 그 여동생이.... 강민우가 그런 수모를 받으면서도 버틸 수 있도록 해 준, 그 버팀목이 한 순간에 빠져 나가버린 거지.

아니, 그 버팀목은 이미 오래 전부터... 거의 애초부터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거지.

그 허무... 더 이상 뭐가 겁나겠어?“


박문철, 박수지,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차갑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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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제23장. 유럽! 유럽! 1 (뜻밖의 제안) +4 21.04.15 666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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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제19장 반역의 피 +2 21.04.10 690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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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제17장. 아름다운 비행 1 +2 21.04.08 685 11 15쪽
16 제16장. 라리가의 명장 파이뇨 감독이 내한한 진짜 이유는... +2 21.04.07 711 1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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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제10장. 새 아침 21.04.01 773 11 14쪽
9 제9장. 봄비 21.03.31 775 14 5쪽
» 제8장. 버팀목 +1 21.03.30 808 11 13쪽
7 제7장. 불쌍한 놈 2 +1 21.03.29 840 14 15쪽
6 제6장. 불쌍한 놈 1 +1 21.03.28 865 15 11쪽
5 제5장. 축구바보 박수지 기자 21.03.27 878 17 17쪽
4 제4장. 검정 장갑 21.03.26 922 16 15쪽
3 제3장. 축구의 상식 21.03.25 969 17 15쪽
2 제2장. 미스터 제로 +1 21.03.24 1,191 17 18쪽
1 제1장. 오로라를 가진 사내 21.03.17 1,475 25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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