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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제로의 골키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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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03.1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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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7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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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0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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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장. 질주본능

DUMMY

제33장. 질주본능


민우가 이렇게 모험을 하면서까지 잉글랜드의 크로스를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이유는, 자신의 최대 복병인 '수비수 맞고 굴절되는 공'을 원천봉쇄하기 위함이었다.


닥공 이치수 감독은 공격에 관한 한 자신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해 주었지만, 수비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예를 들어, 20미터 프리킥 상황에서 오히려 거추장스러우니 수비벽을 치워 달라는 자신의 의견에 대해,


“아, 물론 네 순발력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이중의 안전장치가 있는 게 더 낫지 않겠어? 우리 수비 애들이 너의 성미팀 수준인 것도 아니고.”


회의감을 내비친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제도권' 감독의 한 명으로서 당연한 일인 지도 모른다.

제 상식의 세계를 한 순간에 깨 버리려 하면 겁부터 나는 것이 인간이기에.


민우는 사실, 저번 덴마크와의 평가전에서 아찔한 순간이 한 차례 있었다.

전반 33분경, 덴마크 공격수 얀센이 슛한 공이 옆에서 갑자기 뛰어들며 자신의 바로 앞을 막아선 센터백 이진수의 발끝에 맞고 순간적으로 굴절되었을 때.


너무 찰나 간에 지나간 일이라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지만 순간적으로 역동작이 걸렸었다.

다행히 공의 세기가 그리 강하지 않아 가까스로 발끝으로 쳐내긴 했지만 정말 가슴이 서늘해지는 위험천만했던 순간이었다.


만약 슛의 강도가 조금만 더 셌더라면, 또는 그 굴절이 조금만 더 자신 앞에서 이루어졌다면,

자신 역시 인간인 이상 무조건 골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가장 큰 위협요인은 우습게도 우리 편 수비수들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이런 점이 이번 월드컵의 가장 큰 복병이었다.

성미동 팀은 자신과 태민 형의 의도대로 철저히 훈련된 팀이었기 때문에 이런 장면이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성미동 선수들은 자신의 사인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주었기 때문에.

슛을 하려는 상대방 선수의 앞을 절대로 막아서지 말라는 자신의 지시를 지상명령처럼 따라주었기 때문에.


*********


이후, 한국은 뻥축구의 진수를 보여주기 위해 민우와 가장 호흡이 잘 맞는 차태민만 적진에 박아두고,

나머지 9명 전원이 수비에 가담해 밀집 수비 형태를 취한 채 호시탐탐 기습의 일격만을 노리고 있었다.


공은 대부분 잉글랜드가 점유하고 있었지만 공간을 내 주지 않는 한국의 촘촘한 수비막을 쉽사리 뚫지는 못했다.

우월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두어 차례 효과적인 돌파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번번이 민우의 평범한(?) 슈퍼세이브에 막혔다.


(전반31분)


한국의 페널티 박스 너머 5, 6미터 지점에서 공을 받은 이 경기 잉글랜드팀의 원톱이자,

프리미어 리그 3년 연속 득점왕에 빛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득점 제조기 데이브 매카트니는 생각했다.


'상대방이 이렇게 잔뜩 움츠린 상태에선 완벽한 상황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 수비를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일단 여기에서 한 방 쏴 주자!'


결심을 굳힌 그는 페널티 박스 정중앙 부근에서 공을, 한국팀 골문에서 봤을 때 왼쪽으로 툭툭 치며,

순식간에 수비수 2명을 옆으로 벗겨내고 밀집된 인의 장막 사이로 실낱같은 슛길을 확보해, 기습적인 중거리 슛을 날렸다.


다리의 백스윙이 거의 없는, 기습적으로 그냥 한 번에 스텝잡고 때린 반박자 빠른 슛이었다.


펑!


그의 발을 떠난 공은 백스윙이 거의 없었는데도 쏜살같은 스피드로,

페널티 박스 중앙에서 약간 왼쪽으로 치우친 열린 공간을 뚫고 한국팀의 골문 왼쪽을 향해 쏘아져 들어왔다.


골대 정 중앙 부근에서 전방을 주시하던 민우가 이 공을 막기 위해 지체 없이 왼쪽으로 다이빙을 하려는 찰나,

한국의 센터백 염종진이 슛을 중간차단하기 위해 자신의 오른발을 오른쪽으로 쭉 내밀었다.


그러나 공은 그의 의도와는 달리 약 45도 굴절되며,

애초 공이 향하던 방향과 반대편 방향인 한국 골대 오른쪽 모서리를 향해 쏜살같이 빨려 들어갔다.


상체가 이미 왼쪽을 향한 채 순간적으로 역동작이 걸리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 민우는 깜짝 놀랐다.

왼쪽 다리에 혼신의 힘을 주어 급히 방향을 튼 후 오른쪽 골대를 향해 뛰어 올랐다.


팡!


공은 공중에 떠 오른 민우의 쭉 펴진 오른쪽 손끝을 맞은 뒤 크로스바 상단을 때리고 골라인 아웃되었다.


전광석화!


보는 사람들의 눈에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고 현란한 몸동작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왼쪽으로 잠깐 치우쳤다가 곧바로 오른쪽으로 튀어 오르는 민우의 연결동작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오히려 민우가 왼쪽으로 페인팅을 준 뒤 오른쪽으로 점프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페널티킥 상황도 아니고 쓸데없이 페인트 모션을 취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공의 파워가 달라!’


민우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자신이 송두리째 무너지려는 찰나였었다.

그러나 어쩌면 자유를 향해 달릴 수 있는 길목이었는 줄도 모른다.

무실점에 대한 병적인 집착에서 풀려날 수 있었던 순간인지도 모른다.

훈련중독증에서 풀려날 수 있었던 순간인지도 모른다.


그래, 그건 중독이었다. 누르면 누를수록 악착같이 달겨드는 집착.

집착인 것을, 중독인 것을 잘 알면서도 탁 깨고 나와 버리지 못하는 스스로가 밉고 한심했다.


‘이것이 ’월드클래스‘인가?’


매카트니의 슛은 일단 각력 자체가 달랐고,

공을 스윗스팟(sweet spot)에 정확히 맞추는 것이 유소년 시절부터 잘 다듬어진 기본기로 몸에 체화되어 있었다.


반박자 빠른 슛은 골키퍼의 타이밍을 뺏을 수 있는 이점이 있지만,

디딤발이 불완전하고 백스윙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만큼 공의 파워는 줄게 된다.

그러나 지금 데이브 매카트니의 슛은 일반 한국 프로선수들이 완전한 백스윙으로 쏘는 슛보다 더 셌으면 셌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원래 공의 파워가 강했던 만큼 굴절된 공의 속도 역시 빨랐다.

그나마 천운인 것은 굴절이 문전 바로 앞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단 점!

만약 이런 굴절이 문전 바짝 붙은 곳에서 이루어진다면 자신 역시 인간인 이상 무조건 골을 먹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오늘 경기에서 보여주고 있는 이들의 공간돌파는 국내 선수들의 단순한 패턴과는 확연히 달랐다.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창조적인 돌파는 뛰어난 동체시력을 가진 자신으로서도 결코 예측이 쉽지 않았다.


물론 이치수 감독으로부터 각 선수들의 경기영상을 전해 받아 이미 한 사람, 한 사람, 면밀히 분석을 끝낸 상태였지만,

단순히 경기영상을 보는 것이 실제적인 경험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국내 경기에서처럼 공격수들을 완벽히 봉쇄하려면 이들의 움직임을 보다 더 많이,


‘몸으로!!’


겪는 것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경기는 그에겐 최고의 '학습의 장(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경기 중에도 이를 치열하게 분석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시간문제일 뿐이다.....................

자신의 무실점 행진이 멈추는 것은.


특히, 한국 수비수들이 성미동 팀 선수들처럼 자신의 요구를 100% 수용한 뒤, 이를 지키기 위해 그야말로 혼신의 노력을 경주해 주지 않는 이상,

그 시기는 조금 더 일찍 찾아올 것이다.

오늘 당장 그의 무실점 행진이 끊긴다 해도 조금도 이상할 게 없었다.

바로 조금 전에 끝났다 해도...


사실 민우는 한국 선수들, 특히 수비수들과는 생각보다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중요성을 인식한 수용이 형과 이치수 감독이 적극 나서 도와주었기에.

그래서 한국팀의 수비수들은,


“'확실히 걷어낼 수 있단 자신이 없으면 상대 공격수들의 슛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해요.”


이런 자신의 요구에 대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뜻을 나타냈었다.

민우의 초인적인 순발력을 전술훈련 과정에서 여러 차례 경험했기에.


하지만 '생각으로 수용하는 것'과 '몸으로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

평생 동안 수비수로서 굳어진 버릇이 결심 한번으로 하루아침에 고쳐 질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종진이 형(센터백 염종진)도 자신의 요구를 의도적으로 묵살하기 위해 이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수비수로서 굳어진 버릇이 순간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나왔을 뿐.


“내, 최대한 주의할께!”...라고 말하면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짓던 여드름쟁이 순둥이 종진이 형이.

지금도 얼굴이 벌게진 채 자신에게 미안해 어쩔 줄 몰라 해서, 오히려 안 돼 보이기까지 하는 그 착한 사람이.


이런 '굴절'이란 최대의 복병을 상대로,

또 지금 경험한 데이브 매카트니의 슛과 같이 자신에게 친숙하지 않은 월드클래스를 상대로......


......자신의 무실점 기록은 아마도 이번 월드컵 기간 어느 시점에서 무참히 깨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이없이 깨어졌을 때......


“아무도 내 골문을 통과할 수 없다!”


자신의 내부에 어느새 굳게 자리 잡은 신앙과도 같은 그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자신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과연 자신이 ‘어차피 시간문제였을 뿐...한강에 배 한번 지나갔을 뿐...’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모르면 모르되, 첫 실점!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골키퍼로서의 진정한 출발, 또는 종말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질주하고 싶은 욕망이 있기에. 갇혔기 때문에 못해봤던 질주....


‘.... 그것이 막다른 골목이 된다 해도.’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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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3장. 질주본능 +2 21.05.05 313 9 10쪽
32 제32장. 게리의 악몽 21.04.24 421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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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제5장. 축구바보 박수지 기자 21.03.27 878 17 17쪽
4 제4장. 검정 장갑 21.03.26 923 16 15쪽
3 제3장. 축구의 상식 21.03.25 969 17 15쪽
2 제2장. 미스터 제로 +1 21.03.24 1,191 17 18쪽
1 제1장. 오로라를 가진 사내 21.03.17 1,477 25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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